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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담이 있는 거울 속 공간. 지하철역의 맞이방과 똑같이 생겼지만 좌우반전이 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세 사람만 있다. 라티카와 타일러의 협공을 받아,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예담은 무언가 알아낸 모양인지, 라티카와 타일러를 번갈아 보며 웃는다.
“하, 이거야 원.”
“왜 웃냐? 지금 네 상황 보면 웃을 상황이 아닌데.”
예담은 마치 타일러가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다시 일어서서, 마침 눈에 보이는 안내책자 가판대를 집어들어 던진다. 마침 이곳은 거울 속 세계라, 물건들을 부순다고 해도 실제 물건에 영향을 미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라티카와 타일러는 그것들을 마치 젓가락 쳐내듯 쳐낸다. 이곳은 마침 타일러가 만들어낸 공간의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
예담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걸 본 타일러는 잠시 말이 없다가, 잠시 뒤 미친 사람처럼 웃는다.
“하, 하하하! 이제 알았냐? 이래 가지고서야 원... 헛짓거리를 다 하고 말이야! 그게 나한테 유효하게 뭔가를 한 게 하나라도 있냐? 이러니까 너 같은 녀석은 나한테 상대가 안 된다는 거다. 하지만...”
그런데, 예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웃고 있다. 타일러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어느새, 거울 바로 옆에 있는 텀블러를 집어들고 있다.
“하, 텀블러가 뭐 어쨌다고? 그걸 가지고 나를 때리기라도 하게? 미안하지만 안 되겠는걸. 차라리 신발이라도 벗어서 뭐라도 하지 그러냐?”
“그러게. 이 상황에서는 순순히 인정하는 것만이 살길이야.”
타일러와 라티카가 이해할 수 없는지 고개까지 흔들지만, 예담의 얼굴은 태연하다 못해 확신까지 보인다.
“그래? 하지만, 이걸 보고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그 말을 하자마자, 예담은 자신이 챙겨온 텀블러의 뚜껑을 열어서 타일러의 바로 눈앞에 보여준다. 텀블러 안에 있는 물은, 펄펄 끓기 직전이다. 타일러는 그게 피부에 닿지 않았는데도, 기겁해서 뒷걸음질친다.
“뭣, 뭣, 뭐 하는 짓이야! 빨리 그걸 나한테서 떼지 못해! 이런 걸 왜... 그건 그렇고, 분명히 그거, 네 초능력이잖아? 이 거울 속 공간은... 초능력은 안 통할 텐데! 내 능력은 확실하다고!”
타일러의 말에 예담은 빙긋 웃으며 말한다.
“그래. 여기는 네 법칙이 지배하는 거울 속 공간이지. 그런데 끓는 물 자체는, 내 초능력이 아니거든. 초능력을 차단시킨다고는 했지만, 자연물까지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게 허점이었나 본데? 그러면 됐어. 자, 이제...”
예담은 곧바로 텀블러의 물을 쏟을 준비를 한다. 타일러는 그 열기에 크게 당황해서는, 뒷걸음질까지 친다. 라티카 역시 예상 외의 상황에 크게 놀란 건 마찬가지다.
“야, 잠깐, 무슨 짓을 하는...”
“어때? 이제 나를 이 공간에서 풀어주지 그래? 안 그러면 내가 이걸 너희들한테 바로 끼얹어 줄까?”
“그런 수작으로는...”
하지만 타일러가 만든 거울 속의 공간은 이미 허물어져 가고 있다. 예담의 손에 다시, 조금씩 열기가 돌아오고 있다. 눈앞에 있는, 좌우반전이 되지 않은 라티카와 타일러는 다시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뭐 해. 이미 마음으로는 패배를 인정한 건데.”
라티카가 예담에게 달려든다. 라티카의 계산으로는, 아직 타일러의 능력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니, 다시 한번 거울로 예담을 밀어넣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예담이 한 발 빨랐다. 재빨리, 라티카가 내지른 주먹을 피하고는, 팔을 살짝 잡아서 거울로 직격하게 한 것이다. 쨍그랑- 하고 거울이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뒤 라티카가 자기 손을 부여잡고 있다.
“이... 개자식이!”
예담은 뒤에 서 있던 타일러에게 다가간다. 타일러는 아직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내달려서 화장실 쪽으로 간다. 왜 화장실로 가는지 알 것 같지만, 뒤따라가 본다. 타일러는, 예상대로 거기에서 예담에게 마치 잘 왔다는 듯한 표정을 보인다.
“내가 왜... 여기로 왔게?”
“아, 알지. 여기에는 네가 능력을 전개할 수 있는 거울이 양옆으로 있잖아.”
“정답...!”
타일러의 그 말과 동시에, 예담의 시야가 또다시 좌우가 반전이 되는 듯한 감각이 들기 시작한다. 예상했던 바지만. 타일러는
“봐봐. 거울만 있으면 내 능력은 다시 쓸 수 있다고. 예상 외의 수단으로 나를 놀라게 한 건 칭찬해 주겠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오후 5시 45분, 예정된 시간에 제이든은 집에 돌아온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개들만 환영할 뿐이고, 제이든 자신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뭐 이래...”
“제 시간에 왔구나, 제이든. 그러니까, 엄마가 뭐라고 그랬니?”
“그러니까, 엄마 말 잘 따랐잖아요! 엄마, 제가 이 정도까지 했으면...”
하지만 제이든의 어머니는 제이든의 변명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제이든, 네가 무엇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지는 잘 알잖니? 그러면 그런 말은 좀 접어두는 게 좀 이치에 맞는 것 같은데...”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 것같이 보이자, 제이든의 속은 타들어 가지만, 달리 어찌할 방도도 현재로서는 제이든에게 없다. 제이든은 거기서 더 말하지 않고, 일부러 어머니에게 들으라는 듯, 문을 쾅 닫고 자기 방 안에 들어간다. 방 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제이든이 모은 ESP 클랜 배틀에 관계된 물건들은 미리 어딘가에 잘 치워 두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방을 뒤졌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해야 돼...”
그러다가 제이든은 다비드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는다.
“좋았어...”
다비드가 보내준 정보는 꽤 상세하다. 개중에는 제이든도 미처 알지 못했던 곳도 포함되어 있다. 쭉 그 리스트를 훑어보던 중, 제이든은 한 곳을 손가락으로 찍는다.
“그래, 여기야, 여기에 가서... 카드... 그걸 하면 딸 수 있어!”
이내 또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는, 다시 낮게 깐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그렇고 훼방꾼 어떻게 됐어?”
“아직...”
“네 선에서 처리하랬지!”
다비드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제이든의 목소리가 다시 격앙된다. 자신도 모르게, 제이든은 자기 책상에 자기 능력을 사용할 뻔한다. 자신도 모르게 ‘아차’ 소리가 날 뻔하지만, 그걸 틀어막고 말한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냐? 이런 건 후배들 잘 다루는 네가 하란 말이야!”
“아니, 알겠는데...”
“그러면 탕감하기로 한 거 없는 걸로 하든가...”
“아, 알겠어, 알겠어! 빚 갚을 테니까...”
“그럼 내일은 네가 직접 나서는 거다?”
“알겠어...”
다비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하고 있다. 제이든은 영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시간, RZ타워. 오늘은 RZ그룹 창립 기념일이어서, 특별히 타워 전체에 초록색과 라임색이 섞인 조명을 표출하고 있다. 하야토는 오늘 역시, 학교가 끝나고 나서도 강도 높은 ‘과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수직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저기 스페이스 콜로니에는 많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기분이겠지...”
막 하야토가 그렇게 말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려는데, 펜트하우스 입구에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인다.
“아니, 실장님. 이런 건 굳이 오실 필요는 없는데요...”
실장은 대답하는 대신, 손에 들고 있는 가방에서 봉제인형을 하나 꺼내서 보여준다. 딱 봐도 무슨 괴담 같은 데 나올 만한 디자인이다. 하야토는 인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이 인형은... 뭐죠? 무슨 주술 의식에나 쓸 만한 봉제인형인데, 실장님이 이런 인형은 왜 가지고 계세요? 설마 제가 모르는 실장님만의 취미라도 있으신 건 아니겠죠?”
“당연히 그런 건 아닙니다. 이건 말이죠...”
그런데, 안쪽에서 과자를 먹고 있던 유가 그 인형을 보고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한다.
“아니, 또 지아의 인형인가? 왜 여기까지 돌아다니는 거야?”
“너 저런 인형에 요즘 부쩍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아니라니까... 저런 인형을 무슨 부하 부리듯 하는 동생이 있는데, 요즘 저 인형이 하도 자주 보여서 말이지...”
“그런데, 인형이 자주 다니는 거하고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
“저기, 실장님...”
유가 인형을 받아들고는, 보여줄 게 있다는 듯 거실에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켠다. 그리고 채팅을 시작하자, 잠시 뒤 화면에는 민의 얼굴이 나타난다. 민은 자기 방에서 놀다가 그 채팅창에 들어왔는데, 난데없이 자기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걸 보자, 귀찮다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 쓰여 있다.
“아니, 왜. 갑자기 영상채팅을 켜고 그래...”
“네가 봐줘야 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
“내가 봐줘야 하는 게 뭐?”
아니나다를까, 민은 그 봉제인형을 보자마자, 얼굴이 또 찌푸려진다.
“학교에서도 집앞에서도 실컷 봤는데, 여기서까지 봐야 하냐...”
“에이, 그러지 말고, 좀 들어 봐.”
하지만, 스크린 너머의 민은 봉제인형을 보자마자 ‘또 그거냐’라는 듯한, 가라앉은 목소리와 뾰족해진 입을 보여주고 있다.
“말했지. 나는 그 인형 전문가가 아니라고. 왜 다들 나한테 보여주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민이 말하자마자, 하야토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인형의 옆에 비늘을 나란히 보여 준다. 그걸 보더니, 민은 또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고, 영상채팅 화면을 끄려고 한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아니, 아니, 그러니까, 조금만 내 말 좀 들어 봐...”
이번에는 하야토가 나서서, 민에게 사정을 한다. 그러자 민은 채팅을 끄려던 걸 멈추고 말한다.
“아니, 하야토 형은 뭔데 또 그래?”
그리고 그 시간, 미린대 경영관 지하 강당. 아까 신시아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강당 내부는 보안팀이 한번 더 강당 내부를 훑어보고 있다. 타마라 역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타마라! 또 그러고 있니!”
“아니, 안리 오빠, 무슨 적처럼 말하기야...”
안리 신부가 벌써 와 있다. 기도회가 열릴 강당 뒤편에는 이미 몇 명의 다른 사람들이 와 있다. 이 사람들이, 몇 번이고 들었던 그 진리성회 피해자들의 모임인 것 같다.
“아까 그 일은 정말 내 예감이 좋았던 것 같구나. 그 사이에 또 무슨 함정을 파 놨을지는 또 모를 일이지만...”
“그 걱정은 하지 마. 저기 봐. 보안팀도 와 있고.”
“그래. 좀 안심이 되네. 혹시 모르니까, 우선은 닫아 놓자고. 시간 되면 기도회 시작하자.”
안리 신부가 그렇게 말하자, 강당의 문들이 일제히 닫힌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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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6-01-09 14:31:59
진퇴유곡의 상황인 줄 알았지만 그래도 반전이 있었네요. 예담의 용기, 그리고 자연물에는 통하지 않는 타일러의 초능력의 합작품이네요. 덕분에 라티카는 자기 손을 뿐이고...
제이든이 다비드에게 그렇게 떠밀지만 다비드가 자기 입 속의 혀처럼 움직여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요. 하긴 사람이 본의 아니게 자기 혀를 깨무는 경우도 전연 없지는 않으니, 이것도 두고 봐야 할 일이겠죠.
지아의 봉제인형은 굉장하네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생명 없는 인형이 살아있듯 여기저기에 신출귀몰한.
시어하트어택
2026-01-10 22:46:22
타일러 역시도 자기 능력의 한계와 장단점을 알고 있어서, 예담을 일부러 화장실로 유인한 겁니다. 당연히 예담도 방법은 있겠지만요.
다비드가 끝까지 제이든의 수족으로 남아 줄지는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뜻밖의 방식으로 파국을 맞을 수도 있고요.
SiteOwner
2026-01-10 21:14:57
라티카도 타일러도 열탕에 화상을 입는 것만은 싫긴 하겠습니다. 게다가 예담은 겪어온 게 많으니...
제이든은 알아서 하라고 다비드에 떠넘기고, 다비드는 이리저리 치이고 하지만 둘의 이해타산은 언제든지 어긋날 수 있습니다. 제이든은 다비드가 딴 마음을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한데 그러다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같은 편에 있었다 배반한 사람이 가장 무섭습니다.
지아의 인형은 자주 나타나니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만, 안리 신부가 강당의 문을 일제히 닫도록 만든 상황을 만들어서 놀랐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6-01-10 22:48:54
라티카는 제대로 한방 먹었습니다만, 아직 타일러가 남아 있는데, 타일러가 또 무슨 묘수를 보여 줄지는 모릅니다.
안리 신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죠. 정오에 신시아가 겪은 일을 생각해 보자면 말입니다. 그런데 또 진리성회가 무슨 수를 꾸밀지는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