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 ESP 클랜 배틀이 벌어지는, 대저택을 개조한 경기장.
“어우, 보기도 싫어.”
제이든은 아주 대놓고 링에서 돌아앉아 있다. 아직 예선 단계이기는 하지만, 수호가 지금 링 위에 올라가서 상대 참가자를 ‘일방적’이라는 말에 가깝게 이긴 이 모습은, 제이든에게는 악몽과도 같다. 제이든이 직접 ‘형편없다’며 링에서 쫓아낸 그가 이렇게 며칠 만에 다시 돌아와서 ‘그 말은 틀렸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야, 뭐 해, 제이든? 이제 예선 다 끝나 가잖아. 이제 본선은 네가 진행해야지!”
“아, 맞아.”
제이든은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이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듯, 수호의 시선은 피해 가며, 링으로 올라온다.
“예선, 끝났습니다. 이제 10분 정도 쉬고, 본선이 진행되니, 관중 여러분께서는 지명할 선수, 그리고 배당금을 미리 정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서 링 뒤쪽으로 들어간 제이든은, 조용히 분노를 삭이고 싶으나, 그것은 매우 힘들다.
그리고 이 상황은, 조금 전에 예선에서 탈락한 한 선수가 경기장 내부를 찍으며 기록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가 기록하는 건 또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제이든. 물론 그건, 그 선수가 바로 제이든의 아버지가 몰래 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복면 레슬링에서 볼만한 가면을 쓴 채로 나와서, 첫 예선에서 바로 탈락했던 바로 그다.
“정말 사실이었군... 저 집 아들이 돈을 저렇게 펑펑 써대는 것도 모자라, 저렇게까지 돈을 펑펑 써 대니, 리빙스턴 씨가 그렇게 걱정하고 뭐라고 하는 것도 빈말은 아니었어.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꽤 판이 큰 모양인데.”
여전히 복면을 쓴 채이지만, 그의 눈은 꽤 바쁘게 굴러간다. 그가 예선에서 일부러 탈락한 것도 이를 위해서로, 사실 그는 제이든의 아버지의 의뢰를 받고서 현장에서 몰래 ESP 클랜 배틀의 정황을 살피는 참이다. 실제 직업 역시 체육관 관장으로,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진 터라 일부러 복면 레슬링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복면을 쓰고 나온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그를 알아본 사람은 이 저택 안에서는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르탱 씨. 바쁘신데 제 부탁까지 들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리빙스턴 씨. 화요일 오전에는 저도 딱히 할 일이 없는걸요]
그렇게 그 마르탱이라는 남자는 제이든의 아버지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 그의 눈이 제이든과 마주친다. 제이든은 곧장 뭐라도 잡아먹을 듯 두 눈이 벌개져서 말한다.
“야, 저 광대 왜 아직도 있냐? 빨리 안 쫓아내?”
제이든의 그 말에 폭주족 복장을 한 진행요원들이 일제히 가서 마르탱을 잡아끈다. 물론 마르탱은 그걸 간단히 잡아 비틀 수 있는 힘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은 적당히 녹아들며 정황을 살피는 게 목표이므로, 순순히 나가 준다. 대회장을 나서며, 그는 중얼거린다.
“제이든? 너 나 알지? 이제 확실히, 알려줘야 것 같구나. 그래, 네 아버지께는 잘 말하마.”
그 저택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그는 복면을 벗지도 않고서, 여전히 상의를 탈의한 그 복장 그대로 떠난다.
그 시간, 예담은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중이다. 마침 지금은 수학 시간이라, 예담 역시도 자신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비교적 멀쩡한 정신으로 잘 듣고 있다. 다들 잠을 이겨내지 못하는 오후 수업시간인 걸 감안하면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선생이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젤로를 지목하더니 발표를 시키려 한다.
“아, 선생님, 안젤로가 지금 아파서요...”예담은 급히 둘러댄다. 마침 그걸 눈치라도 챈 듯, 안젤로 역시 표정연기를 한다.
“어? 정말? 안젤로 아프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러면서도, 선생은 안젤로를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해 준다. 교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안젤로는 예담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는, 곧장 화장실 쪽으로 간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제이든은 다시 VIP석에 앉기 전, 시계를 본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겼다.
“마침내 본선이로군. 총 몇 명이지... 4명!”
제이든은 본선에 진출한 선수들을 모두 링에 올라오게 한다. 수호를 보면 괜히 얼굴도 그쪽으로 향하기 싫고, 또 만약에 자신이 화염을 뿜을 수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기는 하지만, 일단 제이든이 호스트이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제이든은 자기 자리 옆에 앉은 친구들과 모여앉아 비밀 회의를 시작한다.
“내가 호스트야. 그러니까 내가 지명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아니, 네가 하는 말도 참 이상하네.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를 지명해서, 그가 지게끔 유도한다? 과연, 평범한 사람들은 하지 않는 생각인걸.”
그렇게는 말하지만, 제이든의 친구들은 다들 제이든의 눈치를 슬금슬금 봤기에, 제이든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제이든이 수호를 지명하겠다고 하니, 의외라는 반응이다.
“네가 꼴도 보기 싫다는 그 선수를 지명해서, 어떻게 하게?”
“지금 봐봐. 여기 관중들의 판돈이 다 저 13번 선수에게 걸려 있단 말이야. 거의 50%는 되곘지. 그리고 또 보라니까?”
관중들에게 공표하지 않았지만, 제이든은 수호가 아닌 다른 세 선수에게 각각 50%, 25%, 25%씩 배당해 놨다. 그러고서는 수호를 지명해서, 수호에게 건 관중들을 농락할 생각이다.
“이제 눈먼 돈 떼먹을 일만 남았지. 봐봐, 너희들도. 오늘의 대회가 어떻게 끝날지.”
제이든은 매우 자신 있게 말하고는, 이윽고 링이 잘 보이는 VIP석으로 가서 앉는다.
“드디어 본선이군. 누가 나를 지명하려나...”
수호는 본선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원래 여기서 하기로 했던 대회 정탐을 넘어서서 본선까지 진출하니 그런 것도 있지만, 며칠 전에 문전박대당했던 상황이 떠오르니 더 그렇기도 하다. 마침내, 수호는 제이든의 지명을 받아 링으로 올라선다.
“의외인데. 저렇게 싫다더니 나를 지명한다고?”
반신반의하면서도, 수호는 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와 거의 동시에, 게임 대회에서 볼 것 같은 유니폼을 입은, 수호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선수도 링 위로 올라와서 환호를 받는다.
“이상하네. VIP나 되시는 분이 지명해 주시니 저렇게 다들 좋아하는 건가.”
수호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앞에 있는 상대를 똑바로 본다. 그러자 장내 아나운서의 경기 시작 선언이 울려퍼진다.
“본선, 제1라운드! ‘Z알파’ 선수와 ‘고 스윗 고’ 선수의 대결! 시작합니다.”
곧, ‘Z알파’라고 불린 그 상대방이 수호를 향해 달려든다. 수호가 잠시 보니, 그는 허공에서 무기 같은 것을 순식간에 만들어내고는, 금세 가까워진 거리로 압도한다. 수호가 그 모습에 크게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을 보이자, 그는 손에서 나온 것 같은 그 망치를 들고 수호에게 휘두른다. ‘오! 오!’ 하는 관중들의 감탄사가 나오고,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도 들린다. 제이든은 수호의 방어 위주의 행동을 보고서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보인다.
“봐봐. 저 녀석은 못 이겨.”
“정말이냐?”
“응, 그럼. 내가 보증한다니까.”
하지만 다음 순간, 수호는 Z알파를 향해 웃어 보인다. 그가 ‘무슨 수작이냐’고 물어 보려는 듯, 멈칫하자마자, 수호가 미리 링에 깔아 놓은, 에너지 구체가 Z알파의 머리를 향해 일제히 발사된다. 모두 명중한 그 에너지 구체에 맞고서,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한다. 그걸 본 제이든이 ’하‘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쉰다. 하지만 겉으로는 제이든이 손수 수호를 지명했기에,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겉으로는 그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
수호는 관중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대기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한 뒤, 보고한다.
[지금까지 제가 촬영한 그대로입니다. 도박의 성격이 상당히 강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대로입니다. 결승에 올라가게 되어, 그대로 속행하겠습니다]
한편 수업이 다 끝나고, 미린학원 만화부실. 막 동아리 활동이 시작될 참이어서 아직 부원들이 다 오지는 않았다.
“요즘 도서관에 꽤 사람이 많이 늘었나 봐?”
윤진은 만화부실 앞쪽에 있는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켜며, 옆에서 도와주는 고등학교 1학년생 후배 지온에게 말한다.
“그런데 그게 또 이상한 사건사고와 겹치니, 좋은 건 아닌가 봐.”
“뭐, 여기 만화부실도 마찬가지잖아요.”
지온이 가리킨 만화부실 뒤쪽의 서가에는, 만화부원이 아닌 고등학생들이 몇 명 모여서 열심히 무언가를 보고 있다. 역시, 평소에는 여기에 올 것 같지도 않게 생긴 얼굴들이다. 그런데 다들 만화의 내용을 보는 게 아니고, 단어나 문장 같은 것을 짚어 가며 보고 있다. 민이 그리로 다가가서 말한다.
“아, 거기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요?”
그런데 민의 말을 들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말을 하기는 하고 싶은데, 무언가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 이어... 으어이아...”
민이 종이와 펜을 주자, 그 고등학생들이 열심히 적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 우리의 말을 못 하게 하고 있어. 입만 기억이 나]
물론 도서관에서 본 것과 같은 말을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적게 해 본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고등학생들의 답은 바로 나온다.
[치열교정기를 꼈어. 그리고 키는 좀 컸고]
“에이, 치열교정기는 낀 사람이 꽤 있을 텐데, 그것만 다들 아는 건가?”
당장 윤진도 치열교정기를 낀 게 보인다. 그 외에도 다른 만화부의 남학생들 역시, 알게 모르게 치열교정기를 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장 지금 윤진의 치열교정기를 보고서 바로 윤진에게 달려오는, 윤진의 동급생이 있다.
“야, 야, 다미앙! 나는 그때 없었다니까? 네가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좀 진정하라니까?”
윤진의 치열교정기를 봐도 아무 일이 없자, 다미앙이라고 불린 그 남학생은 진정하고서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하지도 못하고 몸짓으로만 자기 뜻을 전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지금 우리도 동아리 활동중인데, 내가 왜 너희들 상담까지 해 줘야 하냐고...”
한편, 유, 토마 같은 친구들과 모여앉아서 만화책을 보던 민도 이 광경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만화부실까지 온 게 여간 신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무슨 일이래, 왜 다들 만화부실에 와서...”
“그러게. 무슨 만화책에서까지 단어를 찾아야 하나...”
그러다가, 민이 좋은 생각이 난 모양인지, 무릎을 친다.
“응? 왜?”
“얘들아, 잠깐만.”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