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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틀어준 그 영상의 첫 장면을 보자마자, 제이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아버지가 틀어준 그 영상이란 바로, ESP 클랜 배틀에 참가한 마르탱이 찍은 영상이다. 거기에는 제이든이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대회 진행요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거나, 즉석에서 보상금 같은 걸 주는 장면이 나와 있다. 심지어 성질을 부리는 장면까지 그대로 찍혀 있다.
‘내 친구가 이런 걸 찍었나... 아닌데!’
제이든은 잠시 그 영상을 살펴보더니, 이윽고 알겠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그런데 저를 좀 믿어 주시라니까요? 도박이 절대 아니라고요. 유망한 사업이에요. 제가 개척한다고 하면 조금 우스운 말이지만, 이건...”
“긴 말 필요없고, 당장 그만둬라. 또 이런 일이 내 귀에 들어가면, 너는 당장에 이 집에서 내쫓을 터이니 그렇게 알아라.”
“정말... 그건 도박이 아니에요...”
“아니기는. 돈을 걸고 하고, 그것도 거금이 오가는데 어떻게 도박이 아니니?”
“정말이요...”
제이든은 무겁게 입을 떼며 말한다. 하지만 그게 진심은 아니다. 제이든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런 제이든의 속마음을 간파한 듯하다.
“변명은 소용없다. 너, 내일부터 매일 아빠하고 엄마한테 나가고 들어갈 때 항상 보고해라. 그리고 학교 외에 다른 곳에 가는 것도, 당분간 금지다. 알겠니?”
“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제이든은 한숨을 땅이 꺼져라 푹 내쉰다. 물론 후회나 반성의 감정은 아니다.
블라디미르는 추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것은 별로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다. 지독하다면 지독한 고향의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군인이 되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또다른 시련이었다. 군대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다 겪고, 사회로 버려지듯 던져졌다. 그를 받아주겠다는 직장도 없고, 뒷세계의 유혹도 상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부모님의 이혼 및 아버지의 사망과 같은 불행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자, 그는 정신적으로까지 피폐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게 바로 진리성회였다. 마침 그의 주위에 있었던 그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도 입교시키니, 후보전도자로 임명된 것과 더불어 제1성지에서 열리는 총회장의 대집회에 참가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그 집회에서의 총회장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낙원의 실현에 앞장서고, 그 섭리를 방해하는 자들을 처단하겠노라고 맹세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초능력 시술을 받아 초능력도 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필리포를 잃은 건 매우 뼈아픈 것이었다. 필리포의 투명인간 능력은 그의 눈사람 능력과 매우 잘 맞아서, 항상 2인조를 이루어 활동했고, 임무 수행에 매우 잘 맞았다. 필리포를 그렇게 만든 게 바로 예담이었다. 그래서, 블라디미르는 예담만큼은 그가 직접 처리하겠다고 결심했다. 첫 임무에서 비록 실패하고 필리포조차도 잃게 되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그 작은 소망을 이룰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좋아, 이제 최후의 일격뿐이지... 그리고 고맙다는 말은 꼭 해야겠군. 방해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도움이 되다니!”
라티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별말이 없다. 하지만 그건 지금 신경 쓸 게 아니다. 블라디미르에게는, 지금까지 해 왔던 온갖 고생과 수난을 한 번에 보상받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으로만 가득하다. 그런 기대에 응답이라도 하듯, 눈사람들은 몸집을 그 사이 아파트 2층 정도 높이까지 불린 상황이다.
“하... 이 녀석 참...”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하던 예담에게, 이윽고 하나의 방법이 떠오른다.
“가만 보자, 라미즈, 너 이 석고상들, 움직이거나 할 수 있는 거야?”
“당연히 안되죠! 엄연히 ‘석고’인데요!”
“그럼, 좋아.”
“아니, 뭐가 좋다고요?”
라미즈는 되묻는데, 어느새 왜 예담이 그렇게 자신있게 말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어, 뭐야!”
눈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움직이려고는 하는데, 발이 녹아 버린 탓에 그렇게 기민하게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일 수는 있지만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그마저도 땅바닥에 닿은 곳은 계속 녹고 있다.
“그런데 선배님... 이거 좀 더운데요...”
라미즈는 자기도 모르게 겉옷을 벗어 던져 놓고서도 아직도 더운 건지, 숨까지 헐떡이고 있다.
“조금만 참아. 저 녀석만 할까?”예담의 말대로, 블라디미르는 어떻게든 눈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애를 쓰는 모양이다. 그게 잘 안 되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라티카에게도 괜히 소리지른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눈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는데!”
“나는 모르는 일이야. 약속대로 해 줬는데 왜 딴소리야?”
라티카는 블라디미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분명히 도와주겠다며! 그런데 왜 이러는데!”
“아, 그러면 나는 간다. 댁하고는 안 맞는 것 같으니...”
그렇게 말하고서, 라티카는 그 자리를 벗어난다. 거기에 더해서, 자기 능력까지 해제해서 가 버리는 건 덤이다.
“야, 야! 이 자식이 아주 보자보자하니까... 거기 안 서!”
블라디미르의 눈사람 군단은 이제 급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라티카의 능력 덕분에 겨우 버티던 것도 한계가 온 것이다. 곧, 예담은 블라디미르와 다시 대면한다.
“제법 머리 잘 썼는데.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야. 인정하라고.”
“아... 아...”
자신을 지켜 줄 눈사람이 다 사라져 버린 블라디미르는 뭐라고 하려고 하지만, 입에서 말이 잘 나오지 못한다.
“아, 걱정은 마. 물리적인 힘은 안 가할 테니까.”
그러자 블라디미르의 표정이 순간 밝아진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까치발로 걸어서 예담이 서 있는 곳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도도 실패해 버렸다. 지켜보고 있던 라미즈가 그 사이에 석고상을 만들어내서 블라디미르의 발목을 잡아 버린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언제 그냥 가래? 물리적인 힘만 안 가한다고 했지.”
“그러면...”
“자, 잘 참아내 보시든지.”
다음 순간, 블라디미르의 얼굴에 확 뜨거워진 열기가 와닿는다.
“앗, 뜨뜨뜨...”
얼굴이 벌게지지만, 블라디미르는 별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 라미즈가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어느새 라미즈의 손에는 석고상이 하나 만들어져 있는데, 마치 병원에 있는 사람 모형처럼 생겼고, 목덜미와 허벅지를 비롯한 몇 군데를 강조해 놓은 게 ‘블라디미르의 약점’만 콕 집어 놓은 것 같다.
“저기, 선배님,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 같은데요.”
“역시 그렇지? 자, 누가 시켰어? 얼른 말하지 않으면, 네 목, 그리고 허벅지에...”
“아, 말할게요, 말할게요! 다 말할게요!”
블라디미르는 이제 울상이 되어서는, 조금 전까지 죽을 것처럼 싸웠던 예담에게 애걸복걸한다. 예담은 블라디미르의 그 태도에 만족한 듯 말한다.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라티카는 그 현장을 벗어나 다시 어디론가 가는 길이다. 다비드와의 통화도 잊지 않는다.
“네, 선배님? 이번에는 실패했네요... 네? 그건 아직이에요. 내일 아침이 진짜죠. 좋은 결과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그때, 리암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다. 그런데, 라티카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리암은 곧바로 거기 멈춰서서는, ‘자신이 본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에 머리까지 가로로 저어 본다.
“뭐야... 라티카가 왜 저기 있어? 라티카, 몇 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었는데?”사실, 라티카는 몇 년 전, 리암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동급생이었다. 학교에서는 소위 ‘좀 노는 여학생들’로 유명했고, 고등학교를 지나며 소식이 끊겼었는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만 뒤쫓아가 볼까...”
슬금슬금,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라티카의 뒤를 쫓아 보기로 한다.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계속 쫓아가다 보니, 라티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나온다. 그곳은 동구의 재개발 지구에 있는 모듈형 주택. 딱 봐도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또래들뿐이다.
“뭐야... 저기가 무슨 아지트라도 되나.”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물론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리암이 뭔가 보고 놀란 듯 말하려다가, 입을 손으로 가린다.
“뭐야, 방금 뭐였지?”
그 시간, 민은 자기 방에 앉아서 컴퓨터를 막 켠 참이다. 마침 오늘은 반디도 일찍 집에 들어와서 그렇게 조용하지는 않다. 여전히 부모님은 오늘 늦게 들어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대문 앞에 누가 서 있는 게 보인다. 못 보던 사람인데, 헬멧을 쓰고 뒤에는 가방을 메고 있는 게, 누가 봐도 배달기사 같아 보인다.
“그런데, 우리 집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던가...”
민이 그렇게 막 중얼거리는데, 반디가 얼른 자기 방에서 나와서 거실을 거쳐 현관문을 나서더니, 곧장 그 배달기사에게 간다.
“뭐야, 누나 뭐 시켰나...”
그리고 그 예상대로, 반디는 배달기사에게서 음식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배달기사의 외모가 어딘가 ㄱ숙해 보인다. 고글을 쓰고 트레이닝복을 입기는 했지만, 키가 민과 비슷하고, 거기에 뒤로 묶은 머리 모양까지 보니 딱 아는 사람이다. 그래도 한번 시험 삼아, 배달기사가 쓴 헬멧을 염동력을 사용해서 자기 쪽으로 가져오려 한다. 하지만, 안 된다. 마치 민의 능력을 ‘먹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하,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그 배달기사가 고글을 벗는다. 그러자 메이링의 얼굴이 드러난다. 어느새 거기 온 민이 묻는다.
“어, 뭐야? 왜 배달기사를 하고 있어요?”
“그럴 일이 있어! 아직 다른 사람들이 이걸 알면 안 돼!”
메이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름 배달기사 일은 제대로 하려고 하는 모양인지, 반디에게서 결제도 다 받고 주문서의 내용도 꼼꼼히 체크한다. 그러면서 지나가듯, 반디에게 묻는다.
“학교 안에 또 진리성회 날뛰냐?”
“아... 나는 본관 쪽으로는 다니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어제 보니까 몇 명이 그 가판대를 끌고서 분주하게 움직이더라? 아마도 캠퍼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합숙소 같은 게 있는 모양이고...”
“그래서 가판대 끌고 뭔가를 한다고 많이 이야기가 들려오는구나. 너 혹시 그럼 내일 캠퍼스 안에서 하는 기도회는 가 볼 생각 있어?”
“아... 그 신부님이 한다는 거? 나는 그 시간에 교수님을 좀 도와야 해서, 안 될 것 같은데.”
“뭐, 그래. 알겠어. 또 보자.”
메이링은 고글을 쓰고는, 곧장 또 다른 배달지로 가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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