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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미술관 특별전시실.
주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과 조형물, 그리고 책자를 둘러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예담과 에스티, 그리고 연희 역시 그 사이에 껴서, 평범한 관람객인 척하며 주위를 살피는 중이다. 그런데, 비어 있던 무대 한가운데, 정장을 입은 사람이 하나 나타난 게 보인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자신을 보는 관람객들의 반응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자신하지요.”
“뭐야, 저 사람이 아까 본 ‘잔카를로’라는 작가인가?”
예담이 에스티에게 귓속말로 묻자, 에스티는 아까 좀 검색해 본 화면을 예담에게 보여준다. 과연 잔카를로의 얼굴과 일치한다. 평소 정장 입기를 좋아하고, 창작활동 말고도 예상하지 못한 퍼포먼스로 관람객들을 놀라게 하기를 즐기는 그 성격까지 일치한다.
그런데, 그 잔카를로라는 작가가, 예담의 바로 앞에서 걷고 있던 부부를 보더니, 대뜸 그 아내에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혹시 저기 보이는 그림이 뭔지 아나요?”
잔카를로의 일견 난데없어 보이는 그 말에, 지목된 그 여자 관람객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그 액자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거울의 질감이 느껴지는 추상화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음 순간, 그 액자에는 잔카를로가 지목한 그 여자 관람객의 초상이 나타나 있다. 잔카를로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초능력을 사용하거나 한 게 분명하다고 예담은 생각한다. 콕콕 찌르는 목소리를 내던 그 여자 관람객이 일순간 침묵하고, 동시에 액자에 나타난 게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인다. 그래도 그 관람객의 아이들은 어머니가 침묵하는 그 상황을 오히려 좋아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잔카를로의 다음 시선은 예담에게 돌아간 것 같다. 액자가 다시 조금 전의 그 빈 액자로 돌아간 바로 직후, 여자 관람객은 다시 아까처럼 콕콕 찌르는 소리를 내며 남편과 아이들에게 툴툴댄다.
“호오, 무언가 있는 분 같은데요?”
잔카를로의 그 말을 듣자 순간 예담은 가슴 아래쪽에 불이 하나 지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오감 이외의 다른 감각으로 예담이 초능력자임을 알아챈 것 같다. 예담의 그 반응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그가 계속 말한다.
“이처럼 좋은 작품에 딱 어울리는 분을 찾다니 저도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예담은 무슨 꿈속의 공간에 와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어딘가로 납치된 기분이다.
“뭐냐, 이건!”
다음 순간 예담이 있는 곳은, 판타지 속에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미래의 시간대에 있을 것 같기도 한 공간이다. 그런데 무슨 청각이 반쯤 차단된 것 같고, 거기에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잔상이 짙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무슨 장난을 쳐 놓은 거야, 잔카를로라는 이 양반은...”
예담은 그렇게 툴툴거린다. 그것보다도 얼른 이 공간에서 나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방금 그 중년의 여자 관람객을 보기는 했지만, 여기는 시간마저도 1초가 1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에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불안해지자, 예담은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데운다. 그런데 또한 기묘한 장면이 연출된다. 예담이 내뿜은 그 열기가 마치 시각적 효과를 연출하는 것처럼, 붉은색과 주황색, 그리고 노란색으로 주위가 변한다.
“무슨 이런 게 화가야. 장난이나 치고!”
예담은 점점 더 열을 받은 건지, 자신을 둘러싼 주위를 완전히 붉게 바꾸어 버린다.
그런데...
“어? 뭐야?”
다시, 예담은 미술관 한가운데 서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들려온다.
“아니, 무슨 이런 게 예술이래!”
예담이 투덜거리는데, 에스티가 예담을 전시장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말한다.
“너 방금 무슨 조각상처럼 가만히 있었던 거 아냐?”
“뭐... 내가 그랬다고?”
예담의 그 말을 들은 에스티는 마치 증거를 내미는 형사처럼,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여준다. 정말로, 예담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거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사이에 벌어진 액자에서 일어난 일은 더 눈을 믿기 힘든데, 예담의 실루엣이 아래에 나와 있고, 그 실루엣을 기점으로 붉은색과 주황색, 그리고 노란색의 그러데이션이 액자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그림을 전시한다고 하더니 이딴 장난을 치고 있어...”
“그것보다도 나는...”
듣고 있던 연희가 말한다.
“오랜만에 의문이 이렇게 말끔하게 풀려서 아주 상쾌한데. 그것보다도, 저 화가를 저렇게 놔둬도 되는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아니, 지금 저는 이상한 공격을 받았는지도 모르는데, 한다는 말이 그것밖에 안 되나요!”
“생각 좀 해 봐. 오랫동안 품고 있던 궁금증이 풀리면 기분이 좋겠냐, 안 좋겠냐?”
“그런 게 아니라...”
연희는 뭐라고 말하려는 예담을 끌고서, 다른 전시실로 간다. 그림체가 다들 비슷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잔카를로의 다른 그림들인 것 같다. 그림체가 모두 비슷하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아까 예담이 겪은 것과 비슷한, 실루엣이 한쪽에 배치되어 있고 그것을 기점으로 추상적인 문양이 뻗어나오는 형태의 것들이 보인다.
“저게 뭘 나타낸 걸까...”
“어렵지는 않죠! 저처럼 마비시켜 놓고 그걸 그대로 떠다 옮겨 놓은 거겠죠!”
예담은 그렇게 툴툴거리다가, 문득 특별전시실을 돌아본다. 잔카를로는 아까 예담에게 하던 걸 다른 관람객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잠시 마비된 듯한 관람객의 얼굴과 실루엣이 액자에 그대로 나타나는 게 보인다. 초능력이 없거나 하면 그냥 실루엣만 나타나는 모양이다.
“어... 뭐야,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그리고, 예담이 아는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 시간, 민은 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쇼핑몰 ‘R24’ 안에 있는 ‘실내 어드벤처 룸’이라는 곳에 놀러 간 참이다. 평소 같으면 이런 곳에는 잘 가지 않고 자기 집 근처에 있는 RZ게임센터 같은 곳에서 해결하겠지만, 색다른 것을 일단 들었으니 한번 해 보고 싶은 생각에서다. 지하철 시립미술관역에 내려 강변 쪽을 보니, 미리 기다리고 있던 선글라스를 쓴 큰 키의 여자가 손을 흔든다. 오늘 만나기로 한, ‘아투시’라는 닉네임을 쓰는 20대의 실내 어드벤처 룸 유경험자다. 그리고 같이 만나기로 한 타냐와 아리엘도 도착하고, 아투시의 지인으로 보이는 20대 남자도 온다.
“오, ‘발레로’님도 왔군요. 이제 다 왔네요, 가 볼까요?”
아투시의 말에 민과 일행은 일제히 R24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 어드벤처 룸까지는 별로 많이 걸리지 않는다.
“오늘은 좀 이상한 사람들이 없나...”
하지만 민의 그런 바람은 오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그림자가 하나 민과 아투시의 앞을 치고 지나간다.
“뭐야, 새치기를 하려면 좀 그럴듯하게 하시지.”
이상하게도, 그 그림자는 만질 수도 있고, 또 물리력을 가할 수도 있다. 그걸 밀쳐내고서, 아투시는 다시 자기 자리에 가서 서지만, 그 그림자는 다시 민과 아투시를 밀치고 자기가 앞에 서려는 의사를 분명하게 한다. 자꾸 이렇게 들어오니, 민보다도 아투시가 더 열을 낸다.
“새치기는 좀 작작...”
아투시가 마침내 그 그림자를 발로 밀치는데, 그 그림자가 아투시를 집어삼켜 버린다. 마치, 그가 먹잇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것이다. 갑자기 사람이 하나 사라지자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당황했는지 우왕좌왕한다.
“뭐야, 아투시 님 어디로 간 거죠?”
타냐와 아리엘, 그리고 발레로는 순식간에 벌어진 그 상황에, 잠시 혼란이 온 모양이다. 민이 중얼거린다.
“하... 이상한 녀석들은 또 이래.”
그리고 그 시간, 방송국 ICNN의 스튜디오 후문.
선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손에 든 USB를 들고서 서성거리고 있다. 조금 있다가 만나기로 한 PD를 애타게 찾고 있다. 그는 두 달 전에 진리성회를 탈퇴한 전 신자로, 이 방송국의 PD와 사전에 연락을 하고서 접선하기로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던 참이다.
“오, 맞아! 저기 오네!”
그는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체크 무늬의 티셔츠를 입고 둥그런 안경을 쓴, 덩치가 큰 남자를 보고서 손을 흔든다. 그로서는 처음 PD를 보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탈퇴한 이후로 처음 믿을 만한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니 안도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그의 눈을 순간 의심하게 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 PD가 그에게 10보 정도 앞으로 다가왔을 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그 사람을 알아본다. 익숙한 얼굴이니 모를 수가 없다.
“로마노, 이 자식 너, 설마...!”
“오라시오, 배교를 하다니 간도 크군?”
진리성회의 처단조에서 초능력자를 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는 사람을 맞닥뜨리니, 당황스럽다. 거기에다가 그가 평소 비능력자 행세를 하고 있었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오라시오는 당황스러운 이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한다. 마침 그때 오기로 한 PD다. PD로 위장했던 로마노의 모습과 완전히 같은, 바로 그 진짜 PD다.
“저... PD님, PD님!!”
목이 꺼져라 그가 외치자, 그 PD는 오라시오의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인지, 두리번거리며 그 목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오라시오는 지금 동작이 매우 둔해지고 있다. 그의 의지가 아니다. PD로 위장했던 로마노의 초능력에 당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손을 흔든다. 마침내, PD는 그 손가락을 보고야 만다. 하지만 PD가 거기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오라시오는 사라지고 없다.
“여기요, 여기요!”
하지만 오라시오는 답이 없다. 이미 로마노의 능력에 의해 마비된 다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태워져 진리성회 본부 진리궁으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PD는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건 바로 USB. 오라시오가 모은 자료들이 담긴 것이다.
“이것, 설마...”
PD는 얼른 그 USB만을 챙겨서 그 자리를 벗어난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곧장 자기 사무실로 향한다. 사원증을 찍고 게이트를 통과하자, 그는 안도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섣부른 판단에 불과하다. PD가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거기에서 서성이던 척하던 직원 하나가 PD를 마크한 듯, 슬금슬금 뒤따르기 시작한다. 사원증도 목에 걸고 있는 직원인데, 진리성회 신도였던 것이다.
“예, 강사님. 이제 말씀하신 대로...”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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