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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가,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안 그래도 어두운 공간이, 칠흑처럼 바뀌어 버리는 것을 보자, 예담은 지금 자신이 한나의 심연 속 깊은 곳을 바로 들여다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전에, 자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한나는 곧 다시 정신을 차린 건지, 아니면 열로 인한 고통마저 잊어버린 건지, 다시 예담을 보고서 소리를 높인다.
“감히 이런 짓을... 하지만 이제 끝이야! 발악한 건 칭찬해 주겠지만.”
그 말대로, 공간 자체가 예담을 향해 집어삼키려는 기세로 움츠러드는 듯하다. 하지만, 공간의 수축을 보자마자, 예담은 웃는다.
“왜 웃어!”
“그래, 지껄일 힘은 남아 있네. 하지만 너의 공간은 이 열기를 못 견디는 것 같은데?”
“뭣...”
예담의 말대로다. 암흑 공간은, 점점 흐려지고, 예담의 떨어지는 느낌도 어느새 없어져 간다. 공간 자체가 열을 버티지 못했는지, 곳곳이 갈라지고 김이 새어나온다. 예담 역시도 다시 원래의 현실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보니, 아까의 그 산책로다. 한나는 온몸이 시뻘게진 채로, 산책로 한쪽에 쓰러져 있다. 일어나서, 그동안 참아 왔던 날숨을 ‘파’ 하고 터뜨린다.
“하... 됐나...”
진리성회의 본부 진리궁. 총회장은 아침에 이어 장로들을 다시 소집한 상황이다.
“요아힘 되프너 지역장은 세라토를 떠났나? 아니면, 아직인 건가?”
“오늘 저녁에 출발해서 임지로 향한다고 합니다. 내일 오전에는 도착할 겁니다.”
“확실히 입지를 다지라고 앉혀 놨더니만 아주 자기 왕국을 차려 놨지, 응! 어디 헌금도 안 걷히는 곳에서 고생해 보라고 해.”
총회장은 여전히, 자신이 아침에 알게 된 그 로건의 투서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모양이다. 물론 그가 분개한 부분은 ‘지역장이 전횡을 부린다’가 아닌, ‘자신에게 가야 할 돈을 떼먹었다’에 더 가깝다. 더군다나 세라토 교구의 헌금은 이제껏 진리궁 및 제1성지의 건축, 그리고 총회장의 ‘비밀 자금’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터다.
“이래서 그런 곳은 오래 앉혀 놓으면 안 된다니까!”
“그렇다면 세라토 교구 지역장은 누구를 임명하시렵니까?”
“설마, 총회장님의, 아드님?”
총회장은 장로들의 말에도 가만히 있다가, 별안간 무언가 생각이 나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의 시선이 향한 쪽은 실라누스 장로. 그 장로의 얼굴은 총회장의 시선이 향하자마자 어두워지는 게 눈에 띈다.
“실라누스 장로! 아직 그 신앙심이 부족한 게 보인다!”
“죄송합니다. 즉시 임명 절차에 착수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실라누스의 말에 총회장은 흡족한 듯 웃음을 짓다가, 이윽고 또 무언가 생각난 듯 무릎을 치며 말한다.
“아, 그리고 ‘트루스 콘체른’은 왜 이번 달 실적 보고가 없어. 응? 교세에 충당할 돈인데 그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최근에 정부 차원에서 조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대응하느라 그랬습니다.”
총회장의 말에 지목된 장로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총회장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까지 내쉬며 말한다.
“‘콤부리우스’ 장로, 그걸 이 총회장이 일일이 이야기해 줘야 알겠나! 기업체 소득은 법의 허점을 잘 이용하라고 내가 누누이 이야기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콤브리우스라고 불린 장로가 그렇게 말하자, 총회장은 아직도 불만을 잠재우지 못해서는, 씩씩거리는 소리를 자꾸만 내며 말한다.
“똑바로 해. 그거 관리 잘 못 하면 섭리를 거스르는 거야!”
“알겠습니다.”
“아쉬워. 정말 아쉽다고.”
쓰러져 있는 한나는 여전히 웃음을 내비치며, 경멸하는 어조로 말한다.
“야, 뭐가 아쉬운데? 너 어차피 나하고는 어떻게든 작별했을 거 아니야. 고생을 사서 하는 게 더 이해가 안 되는데, 나한테는.”
“그러니까, 섭리의 실현, 그리고 낙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너를 내 손으로 처치하고 싶었는데, 못 이룬 게 아쉽다 이 말이야. 아쉬워. 여기서 할 게 정말 많았는데.”
쓰러져 있는 한나의 바지 주머니에 무슨 USB 같은 게 몇 개 삐져나와 있다. 그것도 모두 일련번호 같은 게 적혀 있고, 이름 같은 것도 적혀 있는 게 보인다.
“이게 다 뭐냐?”
예담이 묻자, 한나는 여전히 경멸의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하, 하하하...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허락도 안 받고 멋대로 뒤지면 어떡해. 지젤도 이걸로 하니까 아주 능력을 잘 쓰던데? 물론, 원래 능력자만큼 쓰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원래... 능력자라니. 이게 다 뭐야?”
예담은 자신이 한나에게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하고 자기 귀를 의심한다. 지젤과 사쿠라도 예담과 똑같이 경멸하는 태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원래 능력자’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딜 가져가려고!”
예담이 그 USB들을 가져가려고 하자, 한나는 저항할 힘은 남은 건지, 자신의 공간을 열어서 그 USB들을 감춰 버린다.
“절대 섭리의 방해자들에게는 못 줘.”
“제가 멋대로 그렇게 남들을 우롱해 놓고!”
예담의 그 말에도, 한나는 웃는다. 어이가 없어진 예담은, 한나를 돌아보며 혀를 차며 말한다.
“대단하다. 이거 하려고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텼냐?”
“다 섭리 안에서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어?”
예담은 머리를 흔들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다가, 문득 한 가지가 생각난다.
“야, 에디! 에디 어디 있어! 네가 데려갔잖아!”
“내가 데려간 거 아닌데.”
그러면서도 한나는 웃는다. 물론 지금은 ‘아쉽다’는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 웃음이지만 말이다.
“말은 못 해 주지!”
한나는 말은 못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게 누구인지, 답은 나온다. 그런데, 예담이 한나가 있는 산책길을 벗어나 막 다시 계단에 들어서려 할 즈음, 한나가 다시 예담에게 말한다.
“기대하는 게 좋을걸! 우리 아버지 다음으로 오는 사람은 그야말로 섭리가 함께 하는 분이거든?”
“아, 기대해야겠지.”
예담은 한나의 그 말을 듣자마자,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멈춰서서 뒤돌아보며 말한다.
“물론 네가 들으면 절망할 소식을 말이지. 너도 기대하고 있으라고. 네가 말하는 섭리 어쩌고 하는 녀석 따위, 너처럼 이렇게 때려눕히면 그만이니까.”
“하, 하하, 하하하! 그거 재미있는걸. 그래, 멀리서도 기대하지.”
이제 한나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반의 ‘그냥 장난기 좀 많은 동급생’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예담은 자못 당당하게 뒤돌아서서 다시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만, 온몸을 타고 소름이 올라오는 것 같다. 마치, 한나가 등 뒤에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악녀같이도 느껴진다. 한나는 예담을 그냥 보내지는 않고, 한마디 덧붙인다.
“그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예담은 그 길로, 에디부터 찾는다. 마침 에디는 어렵지 않게 찾았다. 그것도 허술하게, 마크리누스가 잡고 있는 게 보인다. 마크리누스에게 한번 주먹을 보이며 위협하자, 마크리누스는 의외로 순순히 에디를 놔준다. 이미 정체도 드러났으니 그로서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마크리누스를 그 자리에서 다시 꽁꽁 묶어 버리고서, 교실로 달려간다. 혹시나 한나가 쫓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서다. 다행히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 교실 뒤편으로 가서, 한나의 사물함을 열어본다. 역시 예상대로, 진리성회의 교리 서적 몇 권이 꽂혀 있는 게 보인다. 그건 그렇고, 이제 한나를 저번 주의 그 시선으로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진리성회의 신도라는 걸 안 이상, 이제 ‘같은 반의 친구를 보는 시선’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때 마침, 사쿠라와 지젤이 교실로 다시 들어오려는 게 보인다.
“여기-”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쿠라와 지젤을 보자, 예담은 일부러 보라는 듯 둘을 부른다.
“응? 너 왜 한나의 자리 앞에 서 있어?”
“그러게. 너하고 한나하고 혹시 무슨 자석이라도 생겨서 붙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
“천만에, 그 반대야.”
“응...?”
“무슨 소린데? 너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예담은 사쿠라와 지젤 역시 한나와 같은 진리성회 신도가 아닌가 하는 일말의 의심이 있기는 했지만, 하는 말들을 들으니 그 의심은 조금은 풀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너희들,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어? 섭리가 구현되는 날, 세라토에 낙원이 만들어진다.”
“하하하하!”
사쿠라는 예담의 그 말을 듣더니 다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웃는다.
“야, 너 설마 그 진리성회 신자냐?”
“무슨 소리야. 내가 말하려는 건 그 반대라니까? 됐어. 너희들은 의심 안 해도 되겠어.”
그렇게는 말해도, 예담은 여전히 불안하다. 한나가 또 일어나서 자신에게 다시 덤벼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왜 한나가 아닌 자신이 불안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억울하기는 하지만. 문득 주머니를 뒤져본다. 아까 지젤에게서 주운 USB는 아직 잘 있다.
한편, 미린역 근처 번화가.
마치 테마카페나 만화 같은 데서나 입을 만한, 빨간 베레모와 검은 바탕에 기묘한 두더지 같은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금속제의 장식물이 매달린 바지를 입고서, 민은 한숨을 내쉬며 걷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한번씩 눈길을 주며 지나가는 걸 참지 못하겠는지, 다분히 의도적으로 시선을 다른 쪽으로 향하는 건 덤이다. 그걸 본 지아와 아리엘은 자꾸만 ‘저쪽을 보라’는 표정과 손짓을 하며 민의 시선을 유도한다. 물론 민을 빼고서 민의 친구들, 그리고 4학년 동생들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같다.
“아니, 좀 웃지 말라니까!”
“버, 벌칙인데 안 웃기면 안 되잖아...”
어느덧, 조금 시간이 되자, 아리엘과 케이는 서로를 돌아보다가, 이윽고 벌칙을 끝내도 되겠다는 눈짓을 주고받는다. 그러자 민은 ‘휴’ 하고 안도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런 복장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투덜댄다.
“내가 다시 이런 거 입나 봐.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참...”
“형, 그런데 이거 알아? 이런 건 심한 축에도 못 낀다고!”
타토와 아리엘의 그 말을 듣자, 민은 짜증을 내야 할지,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침 그 근처를 언주가 친구들과 지나던 참이다. 당연히도, 민은 시선을 피하려고 하지만...
“뭐야, 하, 하하하!”
민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언주가 민을 알아보고는 누구보다도 더욱 낄낄거리기 시작한다.
“아니, 미아 선배한테서 무슨 미션 같은 거라도 받았어? 왜 이런 걸 입고 있어?”
“......”
민은 말하기도 싫어서, 입을 꼭 다물고 있다. 그나마 고개는 돌리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25-05-30 22:40:27
SiteOwner
2025-05-30 23:26:22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해보고 여러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해 보니 확실히 보인 게 있습니다. 인간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운동권이라든지 종교단체라든지 하는 것도 말로는 정의니 진리니 어쩌니 해도 정말 돈 안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는 게 잘도 보이다 보니 예의 진리성회의 활동상황은 역시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섭리고 뭐고간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의미없는데 한나는 잘도 그런 말을 해대는군요. 그렇게 혼쭐나고도 정신을 못 차렸으니 다음에는 전신에 3도화상을 입어야 할 듯합니다.
민의 염동력으로 저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지, 만일 제가 민이라면 그 방법을 쓸 수도 있을 듯합니다. 성격이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의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와 비슷한 면도 있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