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보내준 집 앞과 자동차의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던 인영은, 이윽고 메시지를 적어넣는다.
[우선 집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선 설치해 줘]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도 늦나요?]
인공지능으로부터 그 메시지를 받은 인영은, 잠시 고민한다. 이것도 적어야 하나, 하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키보드의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럼]
인영은 그렇게 적어넣고 엔터를 치려다가, 아까 그 영상을 다시 본다. 생각보다, 차의 파편이 집 대문 앞에 많이 튀어 있는 게 보인다. 그걸 보더니 인영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다. 메시지를 치려다가, ‘음성 메시지 모드’로 바꾸고는, 분을 감추지 못한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되겠어. 오늘은 일찍 가야겠어. 그때까지 집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 줘!”
“물론이죠.”
어쩐 일인지, 인공지능 역시 인영의 그 말에 기계음으로 대답한다. 아무튼, 인영은 메시지 입력을 마치고는, 급히 짐을 챙겨 자기 자리를 나선다. 하마터면, 생체인식도 잊어버릴 뻔했다. 그런데, 막 인영이 사무실을 나오려는데, 옆에 있던 직원이 인영을 보더니 말한다.
“상무님 어디 가십니까? 지금 퇴근하실 분이 아닌데...”
“그럴 일이 있어! 놀러 가는 거 아니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줘!”
“알겠습니다...”
그 부하직원은 인영이 갑자기 회사를 나가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러면서도, 인영이 완전히 사무실을 빠져나가자마자, 그 부하직원은 ‘후’ 하고 참아 왔던 것 같은 긴 숨을 내쉬고는,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른다.
“이야! 갔어! 갔다고!”
한편, 미린중학교 도서관 근처의 복도. 예담은 혼란스러워하는 지젤과 사쿠라를 붙들고 다시 물어본다.
“진짜 너희들 못 본 거 맞아?”
예담이 다시 묻지만, 지젤과 사쿠라 모두 고개를 가로저을 뿐, 별다른 말은 없다. 그 말에, 예담은 한나를 찾아보기로 한다. 설마 한나 역시 에디처럼 마크리누스나 다른 자들에게 납치당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다시, 예담의 주위 공기가 더워지기 시작한다. 숨이 거칠어진 게 피부로도 확 와닿는다.
“왜 한나만 없는 거야. 설마 이 상황은, 한나가...”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예담은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한다. 아까 식당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것까지는 알고 있는데,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예담도 불안하다. 얼른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에 잡히는 교실 문을 하나하나 열어보려 한다.
그러나, 그 장본인인, 한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예담의 등뒤다.
“어,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금방 승부가 날 줄은 몰랐지.”
예담의 눈에 한나가 들어오자마자, 예담은 잠시 말을 잃고서 우두커니 서 있다. 한나 역시, ‘왜 지금 이 시점이냐’고 예담에게 물어보고 싶기라도 한 건지,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아 보인다. 예담은 지금까지 이렇게 화가 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곧장 한나를 돌아보고서, 끓어오르려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낼 뻔한 것을 어떻게든 참는다.
“한나, 너...!”
“조금 설명을 해 보려고 하는데.”
“설명이라니... 무슨 수작이야!”
“여기는 설명 같은 걸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뭘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예담이 되물으려는데, 어느새 예담을 따라온 지젤과 사쿠라가 자신들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 되물으려 하던 찰나였다. 그런데, 별안간 예담의 몸이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가는 것 같다. 다음 순간 예담은 자신이 이상한 공간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우주선이 워프한다든가 할 때 나오는 공간과도 같다.
“한나, 무슨 짓이야, 말해!”
“좀 기다려 보라고! 설명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한나는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지, 즉답을 피한다. 다음 순간, 예담은 엉뚱한 곳에 자신이 서 있음을 눈치챈다. 주위를 보니, 익숙한 곳이기는 한데, 교실은 아닌, 산책로다.
“아니, 여기는 운동장 뒤쪽의 산책로잖아. 한나, 무슨 꿍꿍이야? 왜 나를 여기로 끌고 온 건데?”
한나는 대답하는 대신,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이러는 건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지젤, 사쿠라와는 꼭 붙어 다녔는데, 지금은 혼자서 저러는 것도 그렇고, 또 지젤과 사쿠라는 마치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보였다는 것 역시, 예담에게는 더욱 의심스럽다.
결론을 내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건 일요일에 봤던 것과도 연결해 보면 바로 나온다. 예의 그 세 명 중 한 명이라고 의심했는데, 지젤과 사쿠라를 소거해 보면, 결국 답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그래, 있지.”
예담은 한숨을 내쉰다. 마주쳐도 하필이면 이런 곳이고, 또 여태까지 있었던 괴상한 일들의 실체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설마설마했는데, 그게... 너일 줄이야.”
“꽤 늦게 알아냈네. 나는 네가 금방 알아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지 뭐야?”
예담은 겨우 화를 억누르고 말하지만, 한나는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기라도 하는 건지, 태연히 예담을 향해 입꼬리를 올린다.
“뭐 하고 싶은 말이 또 있나 본데. 왜 이렇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건데? 갑자기.”
“원래는 조금 더 너를 지켜보고서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누가 우리 가족의 발목을 잡아 버렸지. 그래서 가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너를 처리하고자 나서게 되었고.”
“처리하니 뭐니, 너희 진리성회 신도들은 왜 그렇게 귀찮은 행동을 사서 하나 몰라.”
예담의 그 말에, 한나의 표정이 확 일그러지는 게 예담의 눈에도 훤히 보인다. 지금까지 알던 한나의 표정이 아니다. 잠시 후 한나는, 표정을 풀고서 계속 말한다.
“사실, 우리의 섭리를 방해할 녀석들을 경계하고 있었어. 그 중에는 너도 포함되어 있었고. 초능력이 강한 녀석들 또한 눈엣가시지만, 너나 그 리암이라는 대학생처럼 이리저리 엮이는 녀석들은 정말... 성가시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섭리라는 말은 또 뭔데?”
사실 예담 역시 한나가 뭘 하는 건지는 대략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의 입으로 직접 말하게 하려고,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말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한나는 자기 입으로 거기에 대해 말한다.
“섭리라... 내가 말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하하하!”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한나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던 건지, 예담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한나를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그런 예담을 한나는 ‘가엾다’는 듯 바라보며 말한다.
“좀 말해 봐. 그 잘난 섭리라는 무언가에 대해서 말이야.”
예담의 그 말에도 한나는 무엇인지 모를 웃음을 짓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참 오묘한 거야. 진리가 이 세상에 온전히 퍼지면, 그게 바로 낙원이고 섭리가 실현된 세상인 거지. 그런데 그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멍청이들이, 꼭 있다니까.“
“멍청이라니...”
예담의 목소리는 다시 끓으려다가도, 강한 자제력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멍청이라도 된다는 거냐? 말해 보시지.”
“아, 그것도 말하려고 했는데, 사실 비하할 의도는 아니었어. 다만, 네가 그런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앞서 말한 멍청이들과 다르지 않아. 거기에다가, 그 흐름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드니, 경계를 안 할 수가 있겠어?”
한나의 그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 그리고 평소에 철저히 숨기고 있던 그 이면의 모습을 보니, 예담은 할 말이 잠시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머리를 짜내서, 어떻게든 생각하고 있던 말을 꺼내 본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라니,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인걸.”
“사실 우리 아버지, 즉 지역장님은 너를 쭉 경계해 오고 있었어. 왜냐고 물으면 그건 같은 말을 또 반복하게 되는 거고. 아무튼, 그렇게 네가 능력에 각성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건만,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네.”
“야,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들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이상한 짓 하는 녀석들은 이렇게 말이 많냐? 그 시간에 그냥 공격해 버리지 그래!”
“나도 이 말만 끝나면 승부를 보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하지만 한나의 말은 거기서 이어지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예담이 한나가 짚고 있는 벽의 온도를 올려 버린 탓에, 거기서 손을 급히 떼느라 그런 것이다.
“앗, 뜨뜨뜨... 이렇게 먼저 하는 게 어디 있어!”
“그러니까 말했잖아? 말이 너무 많다고.”
한편 미린초등학교 4학년 E반 교실 앞.
“야, 누가 온다고?”
“그거 자꾸 시간 끌려고 그러네. 자, 졌으면 순순히 벌칙을 받아야지?”
민이 타토의 난데없는 말에 되묻지만, 타토는 민의 시간 끌기는 이제 못 봐주겠다는 표정이다. 거기에 유와 토마 같은 친구들까지 민을 슬슬 눈치를 주니, 민은 이제 더 못 버티고, 그 벌칙을 수행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타토의 말처럼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인다. 타토와 아리엘을 보고서 손을 흔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같은 4학년생인 것 같은데, 민과 다른 친구들 역시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서로 인사를 한다든가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야, 타토! 아리엘!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겼냐?”
“에이, 너는 항상 이럴 때 나타난다니까. 타이밍은 지지리도 못 잡으니 말이야.”
타토와 아리엘은 오히려 그 4학년생을 보고 손을 흔들며 ‘이리로 오라’는 눈짓을 준다. 그런데 그 4학년생은 민의 가방을 보더니 말한다.
“아, 찾았다, 찾았어!”
“얘는 또 무슨 딴소리야. 뭘 찾았다고?”
“내 인형들 그렇게 잘도 훔쳤잖아!”
“어, 뭐야, 인형? 설마 지아, 너였냐?”
그렇게 말하다가 민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그 지아라는 4학년생을 돌아본다.
”잠깐. 그래, 맞아!”
민 역시도 지아의 입가를 가리킨다. 과연, 샌드위치의 부스러기가 입가에 묻어 있는 게 보인다. 그걸 본 민은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고 싶어서 입은 근질거리지만, 애써 참으며 말한다.
“너 말 잘했네. 그럼 그 인형들을 왜 그렇게 밖에 내놓고 다녔어?”
그러나 지아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민을 보기만 한다.
“아니, 왜 말하지 않고!”
“벌칙을 어서 수행해야지?”
지아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아니, 너도 알고 있었냐?”
“그럼, 보러 온 건데.”
민은 더 뭐라고 해 보려고 하지만, 유와 토마 모두 민에게 벌칙을 어서 수행하라는 눈짓을 주고 있다. 거기에 케이는 다른 자기 동급생들보다 더 실실 웃는다.
“어제처럼 되고 싶지 않지? 그러기 전에 어서...”
그 말에, 민은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옷걸이에 걸린 그 문제의 옷을 꺼내든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25-05-21 13:54:50
인영이 사무실을 나간 이후의 부하직원의 태도가 매우 괴이하네요. 지금 아주 더운데도 불구하고 오싹해졌어요.
한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네요. 게다가 한나도 진리성회 사람이었네요. 지역장의 딸이기도 하고.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밀하다니, 악인의 전형 그 자체네요. 그럼 그 다음은 혼 좀 나는 게 답일 듯...
문제의 인형들의 주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군요. 지아라는 이름의.
SiteOwner
2025-05-22 00:23:01
타인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자를 잔인하다고 합니다. 인영이 사무실을 완전히 나가자 환호성을 지르는 그 부하직원도, 문제의 인형에 얽힌 자들인 타토와 지아도 역시 그런 부류의 인간. 그런 자들을 교정할 수단은 하나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들의 불행이 타인의 즐거움이 되면 될 일 같습니다.
한나는 종교2세군요. 그런데 부모의 종교활동으로 피해를 입어 가정에서 벗어나려는 부류가 아니라 오히려 부모의 뜻을 이으려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녀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슬픔이 여기서도 진하게 느껴집니다.
예담이 정말 뜨거운 맛을 보여줘서 다행입니다. 말 많은 악당이 걸어야 할 길은 이미 나온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