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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지스타 후일담

Lester, 2025-11-18 13:40:46

조회 수
7

0. 후일담을 쓸 정도로 만족스러운 여행은 아니었기에 코멘트로 퉁칠까 했습니다만, 돌아와서 곱씹어보니 나름대로 생각할 부분이 있기에 그냥 별개의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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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본래의 목적이었던 지스타 자체는 전반적으로 실패였습니다. 나름대로 참신한 게임들을 접하면서 지적 허기를 채우기는 했지만 교통비와 숙박비 등 비용을 감안하자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다음은 개인적으로 느낀 문제점들입니다.


(1) 갈수록 줄어드는 인디게임 부스들과 주최측의 푸대접

입장권 확인하는 데에서 팸플릿을 주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인디 게임들에 대한 안내는 불성실 그 자체였습니다. 몇몇 부스는 개발자 본인이 오는 지극정성을 보여줬지만 대개는 유통사 측 사람이었고, 가장 심한 경우는 한국말을 아는 중국인이 안내를 맡고 있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기사(링크)에 나오듯이 부스 간판을 달아도 입구와 반대로 달아서 바로 보이지 않게 하거나, 작품 이름보다 집단 이름을 더 크게 써서 헷갈리게 하는 등 안내는커녕 훼방을 놓기도 했죠. 이러니 외국 인디 게임들이 점점 참가를 포기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약 10년 전의 BIC나 지스타에는 외국인들이 와글거려서 개발자들과 얘기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이번엔 그럴 기회가 겨우 있었다고 해야 할 정도였죠. 개인적으로는 3군데 정도 명함을 돌리긴 했지만, 이미 유통사와 협업 중이라는 이유로 연락을 줄 기색은 보이지 않았으니 실패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2) 참가 자체에만 의의를 두는 듯한 게임 관련 학생들

기왕 지스타에 가는 김에 거기 참가하는 게임 관련 학과 학생들의 선정작들을 통해 젊은이의 패기(?)나 열정 같은 걸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만듦새가 아쉬웠고 패기나 열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게임 중독을 보드게임으로 표현하거나 휠체어와 샷건을 연동(휠체어로 이동)한 특이한 사례들이 엿보이긴 했죠. 하지만 나머지는 어디서 본 것 같은 형식들이 대다수였기에 부스에 들러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몇몇 게임들의 경우 직접 해보고 플레이 도중에 발견한 버그에 대해 알려주거나 의견을 전달했는데, 아무리 눈치 없는 저라도 느끼는 게 있다고 할까요? 말투나 표정은 정중했지만 대답의 내용이나 태도에서 '알긴 아는데 어차피 시연용 데모판(체험판)이니까 그 정도는 당연한 거지,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굴어요? 게임을 만들어 보지도 않은 당신이 그 고충을 알기나 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즉 말로는 '피드백 대환영'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귀찮아'인 경우가 적지 않았죠. 개인이 아닌 학교 단위로 참가하는 것이기에 아무리 개인이 두드러져봤자 의미가 없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대학교에서 교수들이 취업 알선하듯이 회사에 소개받을 텐데 굳이 완성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게으름도 엿보였고요.


(3) 코스프레

이런 행사에 당연히 있기 마련인 코스프레는 뭐, 하는 입장도 즐기는 입장도 아니기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딱 본전이었죠. 다만 모르는 캐릭터들이 너무 많았다보니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다는 인상을 크게 받았습니다. 전문 촬영사들이 DSLR을 들고 다니면서 '비전문가는 빠져'라는 분위기를 풍겼던 것도 있고요. 실내도 그렇고 실외의 코스프레들도 점점 극단화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몰리기 쉬운 토요일이 아니라 슬슬 분위기를 파악하고 한적해질 즈음인 일요일이라 무리가 가지 않는 쪽으로 코스프레 캐릭터를 바꿨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메탈슬러그 시리즈의 모덴군,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에치오 아우디토레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도 애정이 있는 작품군이라 같이 사진을 찍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남았습니다.


(4) 사진 촬영

사실 지스타에 가서 사진을 단 한 장도, 그러니까 코스프레와 별개로 게임 관련한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더더욱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지친 상태에서 관람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막상 밖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다시 한바퀴 둘러보다가 지루하다는 이유로 일찍 퇴장한 것도 그렇고, 찍으려면 얼마든지 찍을 수 있었음에도 왜 그 생각을 못한 건지 저 자신이 보기에도 답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자체적인 생일 축하를 위해서 지스타에 다녀온다'라는 목적 의식 혹은 과도한 의미 부여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지스타 자체가 명색이 국제행사임에도 국내 위주로만 돌아가는 티가 날 만큼 생색내기에 가깝게 허술해지고 있다는 것도 한몫했겠죠. 그렇기에 사진을 찍는 것도 의미가 없는데다 돈낭비했다는 것을 인증하는 결과가 되기에 무의식적으로 포기했을지도 모르지만... 좋든 싫든 다녀왔다는 흔적은 남기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 자신이 한심하고 많이 답답했습니다.


2. 그 외에 여행에서의 즐거움은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1) SRT

옛날에는 시외버스로 다녔지만, 지금은 시간을 재 보니까 5시간에 육박하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SRT로 왕복을 끊었습니다. 덕분에 편하고 빠르게 다녀왔네요. 부산으로 갈 때는 심심해서 최근에 민생회복 쿠폰으로 산 니체의 철학 관련 입문서를 재미있게 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지스타를 좀 더 느긋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체력을 보충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옆에 앉은 아저씨가 깨워줘야 할 정도로 숙면하기도 했고요. 이건 후술할 모텔에서 발견한 의외의 재미 때문일 공산이 더 크겠지만요.


(2) 사진미술관

예정보다 일찍 해운대로 왔다보니 숙소 찾기 외에는 도무지 시간을 때울 게 없을 것 같아, 모텔을 물색하던 중 주변검색에 '랠프 깁슨 사진미술관'이 뜨기에 충동적으로 다녀왔습니다. 폐장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고 3층(지상 2층 + 지하 1층)이라기에 오래 걸릴 줄 알았지만 입장료가 3천원이라 별 생각 없이 둘러봤는데, 사진미술관답게 사진밖에 없어서 관람은 금방 끝났지만 지스타에서 채울 수 없었던 지적 허기를 조금 더 채울 수 있었습니다. 기간상 The Black Trilogy(참고)라는 기획전시 중이었는데, 흑백인데다 촬영의 취지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사진들이 몇 가지 있어서 제법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벽에는 작가 랠프 깁슨의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글이 쓰여 있었는데, 지금의 저에게 딱 맞는 말이기도 했죠.


두려움과 모호함을 안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라.

Go into the unknown with fear and ambivalence.


생각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가성비로는 갑이었다고 하겠습니다.


(3) 시간 때우기

이후 다시 '여행을 왔는데도 노는 법을 몰라서 할 게 없다'라는 권태의 지옥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돼서, 새벽 바다 대신 저녁 바다를 접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거슬렸기에 모래사장 맨 앞에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들으니까 좀 낫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바에야 사람들이 별로 없는 변두리까지 걸어갈 걸 그랬나 싶지만요. 그래도 파도 소리가 도움이 된 덕분에 간단한 지스타 방문기를 개인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고,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됐습니다.

덕분에 옛날처럼 PC방에 구겨져서 저녁을 보내기보다는 돈을 쓴 김에 편하게 있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돼지국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숙소를 찾기로 했습니다. 큰 길가에 있는 가게에서 먹었기에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고기와 순대가 같이 들어 있었고 허기지기도 했기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4) 숙소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이번 여행의 꽃이었습니다. 여행지의 모텔에서까지 평소 집에서 하던 것처럼 면벽수행을 할 수는 없기에 컴퓨터가 있는 방을 찾아봤고, 다행히 2번째 시도만에 컴퓨터 있는 방을 구했습니다. 원래 비었던 방이 아니라 체크아웃이 늦어지는 방에 교대로 들어가는 방식이라 밖에서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지만, 다른 모텔을 찾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무조건 OK했죠. 2시간 정도야 PC방에서 기다리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카드키를 받고 객실에 입성했는데, 이게 왠걸, 게이밍 컴퓨터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해운대가 부산의 대표 여행지들 중 하나인데다 젊은 커플 손님을 위해서인지, 게이밍 컴퓨터를 구비한 모텔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더군요. 게다가 슬슬 유행의 끝물이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있거니와 사양이 높아서 집 컴퓨터로는 돌리기 버거웠던 GTA5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온라인 모드에 접속해서 옛날처럼 모르는 외국인들과 협력하거나 훈수도 두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옛날의 저라면 이것만 가지고 체크아웃까지 계속 즐겼겠지만, 역시 나이와 체력 탓인지 게임 중에 꾸벅꾸벅 졸아서 결국 도중에 끄고 잤습니다. 상술한 SRT에서 숙면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앞으로도 애용해야겠다 싶어서 모텔 명함은 챙겨뒀는데, 막상 지스타에 또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BIC라면 생각을 해보겠지만 BIC도 예전 글에서 지적했듯이 국내 게임 위주로 돌아가는 판국이라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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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상입니다. 지금까지 적었듯이 들인 돈에 비하면 알찬 여행이었다고는 절대 말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못할 정도로 생각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쉽네요. 너무 다녀오는 데에만 급급해서 돈낭비였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듭니다. 지스타 가기 전에 맡았던 번역 프로젝트를 마감에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도 있고... 충동만으로 결정하면 절대 안 되겠다는, 대가를 조금 크게 치른 깨달음이었다고 봐야겠네요.


4. 돌아오고 보니까 날씨가 이제 본격적으로 추워지네요. 연말에 갑자기 바빠질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느긋하게 보내면서 체력을 보충하는 데에 전념해야겠습니다. 내년은 또 어떤 작품을 맡게 될지 기대하고 싶습니다만, 한국어 번역이라는 게 기대한 대로 도착하지는 않다 보니...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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