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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의 교제에 가해지는 인민재판

마드리갈, 2024-03-07 23:40:12

조회 수
115

인민재판(人民裁判, People's Court)이라는 말은 그럴듯한 위선이죠.
인민의 힘으로 누군가의 죄상을 밝히고 처분을 가한다는 자치의 원칙에 충실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누군가를 다수의 힘으로 침묵시키거나 굴복시키거나 배제하는 비겁한 행동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고 실제로 인민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각종 사적제재가 그 본질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소련의 1심재판소인 나로드니이 수트(Народный суд) 같이 사법제도의 한 분야라도 실상은 불합리와 차별이 제도화되었을 뿐인 것도 그런 인민재판의 위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요.

국내 연예계에는 별로 관심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최근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서 의아하게 여기고 있어요.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이 교제중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카리나의 팬들이 비난하는 것은 물론 소속사의 사옥 앞에서 전광판이 적재된 트럭을 동원하여 시위를 하는 등의 험악한 반응을 보인 일도 있었어요. 여기에 대해서 카리나 본인이 자필 사과문을 공개하기까지 했고 그것에 대해 영국의 BBC가 보도하기도 했어요.

여기에 대한 BBC의 보도기사 원문 및 국내언론의 인용보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본원적인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애초에 교제가 사과할 일인가 하는.
그리고, 팬은 대체 연예인에게 무엇을 구하는 건가 하는.
그리고, 이렇게 특정인을 다수의 힘으로 굴복시켜서 얻을 것은 과연 무엇인지도 의문스러워요.

지난달이었죠. 
미국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1989년생)가 그녀의 연인인 미식축구 선수인 트래비스 켈시(Travis Kelce, 1989년생)가 소속된 캔자스시티 치프스(Kansas City Chiefs)가 경기에서 우승하자 미식축구 팬들의 시선을 받으며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어요(기사 바로가기, 영어). 이 장면이 참 아름답게 보였는데, 글로벌과 선진성을 외치면서 왜 여전히 편벽되고 퇴영적인 인민재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요? 이런 건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인민재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섬뜩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사안이 잠잠해지면 그 다음 인민재판에 누구를 올릴까를 찾아 나서겠죠. 한번 그렇게 인민재판을 하던 자들이 두번 세번은 못할 것도 없을테니.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Lester

2024-03-08 00:01:59

어디선가 읽은 글이지만 "일본 아이돌 그룹 시장 못 봤냐, 그들로서는 자기에겐 아이돌이 전부인데다 돈을 쓰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라고 진단하더군요. 뭐 일본 아이돌은 우리나라만큼 치열하진 않지만 악수회 같은 데에서 몹쓸 짓(그러니까 손에 '자신의 것'을 묻히고 모르는 척하면서...)을 했다는 사례도 있었고, 앨범 판매량에 목을 매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게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식 인민재판보다 더 흉악하고 위험한 게 뭐냐면, 보통 인민재판은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뒤집어씌우고 사회에서 말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서 반감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본주의식 인민재판'에서는 저들이 "소비자"라는 이유로 권리를 빙자해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도(블랙 컨슈머), 실질적으로는 별 게 아니어도 심적으로 만족할 만한 보상이 주어지면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지켰다고 가라앉는(천민자본주의) 행태가 쉬지 않고 벌어지는 게 문제에요. 그것도 자본주의의 대원칙처럼 '효율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소비자라는 자격을 활용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거죠.


좀 더 생각해보면 사실 예고된 행태일지도 모릅니다. 공산주의/사회주의의 모순은 절대다수가 알고 있으니 혁명은 기대하기 힘들죠. 하지만 밑에서는 어떻게든 들어엎고 싶어해요. 거기서 '소비자로서 판매자에게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이상하게 결합된 게 아닐까 싶네요. 갑질 자체는 명칭만 없었다 뿐이지 예전부터, 심지어 돈과 상관없이 많이 있었어요. (심하게 말해서 '이리 오너라'도 갖다붙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점점 발전하는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소위 사회 부유층들의 행태가 부각되면서 '갑질'이라는 표현이 붙고, 거기에 처벌과 후속조치도 유야무야되며 대대적인 공분을 산 상황에서, '그럼 소비자가 못할 게 뭐냐'라는 심리가 퍼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가게가 부각되면 찾아가서 매출을 늘려주는, 소위 '돈쭐내는' 사례가 역시 매스미디어에서 부각된 것도 이런 '소비자로서 활동하는 방법'을 잘 알려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건만, '소비자'라는 단순한 학구적 명칭이 무슨 방패처럼 사용되는 것 같아 씁쓸해지네요. 물론 통신사를 비롯한 과도한 매출 추구도 문제긴 한데, 그러면 합리적인 소비를 하든지... 왜 둘 다 해서 자기모순을 일으키는 건지 알 방도가 없습니다.

마드리갈

2024-03-08 21:02:00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이 참으로 끔찍하네요, 자본주의식 인민재판은.

"소비자니까 소비할 권리가 있다" 라는 총론적으로 옳은 말이 각론에 들어가면 "연예인은 상품이니까 소비자의 소비대상이다" 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이어지는...그리고 이런 게 유독 일본이나 우리나라같은 동북아시아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다는 게 더욱 끔찍해져요. AKB48의 멤버였던 미네기시 미나미(峯岸みなみ, 1992년생)가 교제를 했다는 것이 알려져 삭발한 모습으로 울면서 사죄영상을 올린 그 2013년의 상황도 끔찍했지만 11년이 지난 경우는 카리나의 소속사 앞에서 트럭시위를 할 정도로까지...진짜 이런 건 확대재생산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갑질의 예비공동정범은 도처에 있다 제하의 2019년 글에서 지적한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네요.

Lester

2024-03-09 06:16:44

동북아시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엉망진창인 것 같아요. 유럽 동쪽은 우러전쟁이고, 서쪽은 파업과 이민자 갈등으로 난리. 미국은 초심을 잃고 뒤틀린 정치적 올바름과 BLM 운동으로 난리. 중동은 종교적 갈등으로 난리. 동남아시아는... 글쎄요?


특히 미국의 경우는 동북아시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정치적 올바름과 BLM 운동 모두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시궁창이란 점에서요. 차별은 나쁘니까 하지 말자는 점에서 출발했는데, 기본적으로 풍부하게 주어진 (그리고 넓은 땅덩어리 특성상 통제하기 어려운) 자유와 결합해서 엇나간 거죠.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시아도 원래는 공동체주의가 강해서 개인의 자유란 것이 없어도 억누를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를 통한 '경제적 자유'라는 돌파구를 찾고 몰리는 바람에 병목현상이 생기면서 이 난리가 난 거고...


더 황당한 건 "내가 내 돈 쓴다는 데 뭐 어쩌라고, 너는 돈 안 써서 상관 없으니까 입 다물어"가 궤변으로라도 말이 되고, 또 실제로 이런 논리를 써먹고 있다는 거에요. 작게 보면 가챠게임에 돈을 쏟아붓는 게이머들이 그렇고, 크게 보면 불매운동이고 뭐고 개인적인 소비라지만 멀리서 보면 어느새 담론이 형성되어 있어서 인과관계를 알기 힘든 세태가 그렇죠.


2020년대가 끝나려면 아직 6년이나 남았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습니다. 미래에서 봤을 때는 2020년대 앞에 '격동의' 혹은 '혼란의' 같은 수식어가 붙을 것 같네요.

마드리갈

2024-03-10 01:13:55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도 사실 구조적 불안을 전혀 떨칠 수는 없어요. 태국의 경우는 대마 합법화의 폐해가 워낙 큰데다 미얀마는 정국불안이라든지 로힝야족 차별문제 등도 여전하고, 스리랑카는 국가파산 상태에 인도는 지역, 언어, 인종 등의 대립은 물론이고 집단폭력이 만연해 있다 보니 답이 없어요.


어디까지가 소비자주권이고 어디부터가 인민재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양자를 엄밀히 구분할 수 없다는 게 이 사안이 비극인 주요 이유겠죠. 그리고 2020년대는 한 영단어로 요약하자면 Turmoil이 될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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