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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화가 마츠이 유세이(松井優征, 1979년생)의 만화로 애니화도 된 암살교실(暗殺教室)에는 쿠누기가오카 중학교(椚ヶ丘中学校)라는 사립중학교가 배경으로서 나오고 있어요. 대외적으로는 편차치 66의 입시명문으로 알려진 이 중학교에는 A, B, C, D반 및 E반이 존재하고 E반은 엔드(End)의 E반이라는 끔찍한 이명이 붙어 있음은 물론 명실상부하게 온갖 지독한 차별이 가해져 있어요. 당장 3학년 E반이 쓰는 교실 자체가 산골짜기의 구교사(旧校舎)에 공조장치 같은 건 아예 없고 신청해도 설치해 주지 않는 열악한 공간인데다 E반의 학생들은 온갖 이유로 학교에서 공개적인 차별과 미움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 부활동도 전면금지되어 있는 등 교내에서는 철저히 인간쓰레기로 전락해 있어요. E반으로 강등된 이유 또한 아주 자의적이죠.
참고로 편차치 66이 고등학교 진학에도 계속 유지된다면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学), 토호쿠대학(東北大学), 나고야대학(名古屋大学), 교토대학(京都大学), 오사카대학(大阪大学), 큐슈대학(九州大学),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学), 츠쿠바대학(筑波大学), 등의 명문 국공립대학 또는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이나 케이오기쥬쿠대학(慶応義塾大学) 등의 명문사립대학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이죠.

이 암살교실에는 몬스터가 있어요.
몬스터 하면 살생님(殺せんせー)이라는 그 괴상한 모습과 비범한 능력을 지닌 주연캐릭터가 생각날 법도 하지만 사실 살생님은 그렇게 불리지 않아요. A-D의 4개 반의 교사들 및 이사장 아사노 가쿠호(浅野學峯)가 출제한 극한의 시험문제가 바로 몬스터(問スター). 몬스터(モンスター) 클래스의 난문(難問)이라서 몬스터가 된 것이었어요. 이것의 수준은 교사들조차도 "어지간한 대학에 진학하고도 남을 정도" 라고 평가할 정도로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죠. 물론 정규교과과정 밖의 것도 얼마든지 나와 있는데다 목적 자체가 E반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 일부러 중학교 범위를 대놓고 벗어나는 극악의 난이도로 낸 것이었어요. 출제범위 또한 A-D의 4개 반에만 가르쳐주고 E반에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예 정보 자체도 주지 않는 것.
그런데 그렇게 해서 E반이 망했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어요. E반의 담임인 살생님은 인간의 능력 자체를 벗어난 괴물임은 물론 모든 학생들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해서 효과적으로 지도해 주었고, E반 학생들은 살생님을 빨리 죽여서 방위성이 지급하는 100억엔의 상금을 손에 넣는다는 목표도 뚜렷했고 학교의 차별시스템에 맞선다는 대항의식도 높았다 보니 E반이 다른 네 반을 압도하는 쾌거를 달성할 수 있었어요. 또한 살생님 건이 해결되고 나서는 쿠누기가오카 중학교의 실태가 알려져 결국 이사장 아사노 가쿠호가 사임하면서 차별시스템도 해체되고 말았어요.

요즘 국내 대학입시에서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죠.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국민의힘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약칭 수능)에서의 이른바 "킬러문항" 을 비판하고 나섰어요.
문제의 킬러문항이란 킬러문제라고도 표기되는 것으로, 아예 작정하고 틀리게 내는 문제로 정규 교과과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하더라도 이미 시간을 과도히 써버려서 다른 문제에서의 대량실점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것이죠. 결국 이런 문제를 풀려면 사설학원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솔루션이 저렴하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현역 고등학생보다는 아무래도 재수생에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어요.

저는 시험은 변별력이 충분히 갖추어져야 한다고 보고 실수나 가산점 등이 생사여탈권을 지녀서 단 한 문제만 틀려도 불합격으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킬러문항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굳이 그걸 정규 교과과정 밖에서 끌어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반대해요. 이렇게 되어 버리면 공정성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공개시험의 의미가 없어져 버리거든요. 결국 그런 킬러문항 솔루션에의 도입비용을 조달할 수 없는 학생은 실력을 갖추기도 전에 미리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버리는 그게 공정함이라면 누군가가 했던 "네 부모를 탓해" 라는 말에도 일절 토를 달지 말아야겠죠.

그리고 또 하나 실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어요.
더불어민주당이 말하는 "최악의 교육참사" 라는 것. 바로 이 기사예요.

자립형사립고(약칭 자사고), 외국어고, 과학고 같은 교육기관에 대해 시종일관 적대적이었고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자사고 폐지를 평가점수 조작을 벌여서까지 추진했던 그 과거는 생각도 안하네요. 구조화된 비정상과 불공정과 악폐습을 바로잡는다는 것이 대체 무슨 최악의 교육참사라는 것인지. 게다가 정작 이재명 대표 또한 과거 대선후보 때 킬러문항 배제를 대선공약으로 넣었으면서 말이죠.
게다가 하나 더.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의 발언을 하나 보죠.

도종환 의원의 발언 중 이런 게 있어요.
"일단 학교에 맡겨야 되고요. 선생님들의 전문성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인정해 주면서 거기다 맡겨야 되는데 이렇게 교과서 내라든가 교육과정 내라든가 내외라든가 이런 얘기를 비전문가들이 툭툭 던지고 막 이 해명의 해명이 이어지면서 그다음에 막 국장의 징계로 이어지고 또 교육과정평가원 감사로 이어지고 그러면 공무원들 일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때 그렇게 잘 했군요. 자사고 등을 적폐로 여겨서 학교에 안 맡기고 정부에서 만기친람했고. 그리고 그렇게 전문가를 중용해서 부동산정책이 연전연패했군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 하나를 인용하죠.

그러면 그 논리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겠네요. 역시 비전문가도 참여해야겠네요.


창작물 속의 몬스터는 창작물 안의 것이고 이미 작중에서도 차별시스템이 혁파되어 생명을 잃었어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능 킬러문항은 현실의 것인데다 구조적인 차별과 불공정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물론 평등과 공정을 그렇게도 잘 주장하던 진보정당이 평등과 공정을 솔선수범해서 짓밟고 있어요. 그나마 암살교실의 아사노 가쿠호는 최소한의 책임이라도 졌는데.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Lester

2023-06-25 04:42:18

제가 수능을 봤을 때 킬러문항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있었을 겁니다. 그때도 수능 잘 봐서 대학은 가는 게 당연시됐으니까요. 뭐 나중에 찾아보고 나서야 (정확한 점수 없이 등급만 표시됐다는 점에서) 최악의 수능이라고 불렸음을 알게 됐지만...


부실공사 관련 글(링크)의 댓글에서 지적했듯이 전문가라고 만능은 아니더군요. 애초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오히려 그릇된 권위에 의거하는 논리적 오류에 가깝기도 하고... 막상 다른 수능 관련 다큐(링크1, 링크2)에서도 나옵니다만 현재 수능은 그 '전문가'들, 그것도 수능을 창시한 사람마저도 폐지하고 아예 새로운 시험이나 평가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틀에 벗어난 생각이라는 게 틀이 있어야 나온다고는 하지만, 그 '틀' 자체가 오래됐다면 거기서 나온 생각도 오래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솔직히 지금 수능은 그냥 이리저리 꼬아놓은 말을 이해하는 '독해력'과 그것을 "주어진" 답과 연결짓는 '유추력'밖에 시험하지 못합니다. 교과서에 없는 온갖 지식을 인터넷에서 접하는 세대이건만 그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옛날 사고방식만을 사실상 강요한다는 거죠.


도종환 의원이 과거에 시인이었을 땐 그의 시 몇 가지가 교과서에 수록됐고 당시 필독도서 중 하나였던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에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허나 정치인이 되고 나서는 성향 문제 등으로 인해 그의 작품이 거론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죠. 교직을 떠난 교사, 문학을 떠난 시인. 과연 교육과 문학에 대해서 전문가 혹은 당사자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입장일까요.


최근에 알게 된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無知의 知)가 생각납니다.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는, 자칭 지식인이라는 사람들과 설전 끝에 아포리아(난제 혹은 모순)에 빠트렸습니다. (일화에 따라서는 신탁에서 자신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지목되자,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기 위해 여러 헛똑똑이들과 설전을 벌여 이기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고도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좀 길기도 하고 애초에 저부터도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겸손' 혹은 '자기과신에 대한 경각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자신이 전문가입네 혹은 내가 잘 알고 입네 하고 나서대는 순간 자기수양을 그만뒀다고도 할 수 있죠. 이에 비춰봐도 비단 말씀하신 전문가들이 얼마나 전문적일지는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드리갈

2023-06-25 16:19:22

필요한 지식과 사고력을 묻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위한 문제가 되어버렸고 그 주객전도 속에서 결국 킬러문항이 난무하게 되는 이런 현실, 정말 비극이죠. 암살교실의 몬스터는 범위 자체도 쿠누기가오카 중학교 3학년 내로 한정되었고 차별시스템이 백일하에 드러나 사회적으로 지탄받게 되자 아사노 가쿠호는 책임을 지고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라도 했지, 우리나라의 킬러문항은 대입수험생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데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죠.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기득권 카르텔이 내세우는 논리가 교육현장에 혼란을 가중시키느니 운운하는. 그럴 것 같으면 민주화운동이니 개혁이니 하는 것도 현상을 혼란시키는 거니 하지 말았어야죠.


그렇게 현직을 떠난 사람들이 전문가 또는 당사자라고 자부할 입장은 안되죠. 과거의 그 경험이 현재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전직 인사들이 갖고 있는 그 사고방식도 권위주의인 거예요.


그럼요. 사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만 정확히 파악해도 굉장한 것인데 그걸 안 하려고 하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게 되어 있어요. 결국 기본을 지키지 않으니 이런 꼴이 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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