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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는 예담이 한 말에 그의 속이 제대로 긁혀 버렸는지, 숨이 불규칙해지고, 입은 파르르 떨린다. 순간적으로 블라디미르의 온몸이 마치 거대한 얼음 기둥이 되어 버린 듯하다. 그 냉기를 이기지 못하고 예담과 라미즈가 나가떨어지자, 블라디미르는 씩씩거리며 말한다.
“너희들은 모르지! 진짜 눈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게 뭔지!”
어느새, 눈사람들이 라미즈를 둘러쌌다. 곧바로, 블라디미르는 라미즈를 둘러싼 눈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마자, 눈사람들이 모두 기다렸다는 듯 냉기를 내뿜기 시작해서, 라미즈를 얼음으로 덮어 버리려 한다.
“좋아, 그러면 이제 덮쳐라!”
하지만. 그 다음 동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눈사람들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눈사람들은 마치 석고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블라디미르 역시도 짐짓 경솔하게 나서지는 않고, 상황을 지켜본다. 여전히 라미즈와 눈사람들은 그대로다. 거기에다가, 라미즈의 주위에 풍기는 냉기는 점점 더 짙어진다. 블라디미르의 말이 허언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담은 라미즈와 똑같이, 엎드려서 눈사람들의 가운데에 둘러싸여 있는 게 보인다. 블라디미르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한다.
“하, 하하, 하하하하! 섭리의 적인 네가, 그렇게 위장을 해서 내 눈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지. 지금부터 네 속임수를 조각조각 부수어 주지. 우선은...”
하지만 블라디미르에게는 뾰족한 수가 없다. 당장 예담이 눈사람을 또 녹여 버린다면, 이제는 거기에 대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쩐다... 말은 꺼냈는데!’
그런데, 블라디미르에게도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그 행운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찾아온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조금 전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던 눈사람들이, 모두 또 하나의 생명을 얻은 것처럼 스멀스멀 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두 발로 선다. 뜻하지도 않았던 일이건만, 이 행운을 블라디미르는 놓칠 리가 없다.
“좋았어... 내게도 이런 기회가 오는군! 이 기회, 놓치면 안 돼!”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곧 누군가가 자신을 거기서 끌어내려는 걸 알게 된다. 예담도 아니고 라미즈도 아닌 제3자다. 황당했는지, 블라디미르는 홱 돌아본다.
“에이, 누구야! 지금까지 뭔가 이상하게 일이 잘 돌아간다 했더니만...”
“누구기는. 방해자는 꺼져라.”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블라디미르가 그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비니를 쓰고서 체형은 좀 말라 보이는 여자인데, 딱 봐도 블라디미르를 노린다든가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아까 다비드와 통화하고 예담을 쫓아가던 라티카다.
“뭐야? 나를 노리러 온 것 같지도 않으면서. 저리 가라. 나한테 용무 없으면.”
“그래. 나는 댁에게는 용무가 없지만, 댁은 내가 없으면 지금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망해 버릴 판인데?”
“뭐... 라고?”
블라디미르는 일견 황당하게 들리는 라티카의 말에 위협을 하려 하지만, 곧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건 다름 아닌 그가 만들어낸 눈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애초에 눈사람을 만들어낼 힘도 소진했고, 눈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다시 눈사람을 만들어내서 군단을 재건할 수 있었는지, 그 답은 멀지 않을 텐데?”
“아, 그랬나!”
블라디미르는 곧장, 이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얼른 라티카에게 손을 내민다.
“왜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공동의 목표가 있는 것 같군. 잘 싸워 보자고.”
하지만 라티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블라디미르가 숨기던 다른 사실까지 알아본 모양이다.
“당신이 믿는 것, 강요하지는 말라고. 나는 아무 관심도 없거든?”
블라디미르는 라티카가 어떻게 그런 걸 꿰뚫어 봤나 하는 생각에 라티카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돌아보면서도, 당장의 도움의 손길을 거절할 생각은 없다.
“그래... 섭리의 적이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 아무튼, 나를 좀 도와 달라고!”
“그렇게 나올 것이지.”
라티카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금세 눈사람 군단이 다시 예담과 라미즈의 주위를 가득 메운다. 아까보다 더 강해져서 눈사람들은 마치 눈이 아닌 얼음으로 만든 것과 같이 보이고, 거기에다가 라미즈가 만들어낸 석고상까지 박치기를 반복해서 부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거 무슨... 이건 완전히 눈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세졌어?”
“그러게요. 선배님, 설마 저를 얼음지옥 같은 곳으로 끌고 왔다든지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러려고 한 건 아니라고. 정말이야!”
예담은 다시, 능력을 발동해서 눈사람들에게 직접 손을 대서 하나하나 녹이려고 한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녹은 부위를 서로 맞대더니, 눈사람들은 이제 자기들끼리 뭉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사람들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든가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리타키가 증폭시켜 주고 있는 블라디미르의 능력이 더 강화된 탓에, 아파트 단지 바깥쪽에서도 새로 만들어진 눈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블라디미르의 입에 웃음기가 다시 돈다. 비록 다른 이의 힘을 잠시 빌릴 뿐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일종의 후련하다는 감정이 그에게 북받쳐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래... 이거라고! 드디어... 드디어! 내일이면 나는 전도자가 되는 거야. 그리고 강사... 지역장... 장로까지! 일사천리라고!”
자기도 모르게, 블라디미르는 입에서 그런 막연한 기대로 가득한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그의 고난으로 가득 찼던 과거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래... 승리를 눈앞에 두니 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군그래...”
그리고 그 시간, 민은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마스크는 이미 자기 손을 떠났으니,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전송하고서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을 마주친다. 친구들이나 선후배, 가족은 아니다.
“뭐야, 너!”
민에게는 의외로, 그 키 작은 남자가 먼저 민을 보고서 놀란 듯하다.
“이런 데서 다 만나고!”
“헤헤, 잘 지냈어?”
그 키 작고 후드 점퍼를 입은 남자는 수호다. ESP 클랜 배틀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미린역 번화가 쪽에 들러볼 생각이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민과 마주친 것이다. “그새 꽤 일을 많이 겪은 것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할 말은 많다니까! 그러니까...”
심심했던 민은 수호가 말하는 걸 한번 들어보기로 한다. 수호는 자신이 ESP 클랜 배틀에서 어떻게 이겼는지를 설명하는데, 수호가 얼마나 재미있게 말하는지, 10분이 그냥 간다. 오늘의 대회에 대해 설명을 다 마치고서, 수호는 얼른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나 이제 간다. 또 봐.”
그런데, 그런 수호의 뒤를 민이 끌어 잡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이 자기 능력을 사용해서 수호를 다시 데려온 것이지만. 어찌나 순식간에 그렇게 했는지, 수호는 ‘시간을 멈춘 건 아닌가’ 하고 순간 착각한다.
“아니, 왜!”
“잠깐 좀 이리 와 봐. 혹시 이거 봤어?”
민이 마스크 사진을 보여주자, 수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 본 적 없나 보구나.”
“이게 뭔데? 무슨 마스크를 다 보여 주고 그래...”
“아, 모르면 됐어. 또 봐.”
수호와 헤어진 민은 그 길로 다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시간, 제이든은 집에 막 도착한 참이다. 요즘 따라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성격도 더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마침, 집에 딱 다다르자마자, 그를 반겨주는 건 개들이다.
“미로, 마놀라! 형 왔다.”
역시 그를 반겨주는 건 이 집에서 개들뿐이다. 개들을 꼭 안아 주고서, 한숨을 푹 내쉬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는다. 집에 들어가니 상황은 180도 바뀐다. 싸늘한 시선을 보이는 아버지, 그리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역시 차갑게 쏘아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제이든에게 이곳이 사막 같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집 안의 공기마저도 확 말라 버린 것 같다.
“제이든?”
“......”
제이든은 아까 아버지가 보낸 메시지도 무시하고서,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제이든을 불러 세운다.
“아빠 좀 보자. 아까 아빠 메시지를 봤는데도 그러니? 이리 한번 와 보거라.”
“네...”
제이든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발걸음을 돌려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는다. 그러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너 마음을 언제쯤 고쳐먹을래? 가만히 있는 것도 모자라서, 함부로 도박까지 손을 대면 어떡하자는 거니?”
“아빠, 그건 도박이 아니에요. 사업이라고요. 그것도 요즘 뜨는 유망한 사업이요.”
“너는 이럴 때마다 항상 이런 식으로 말했지.”
제이든의 아버지는, 제이든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까지 몇 장 찍고, 제이든이 관여하는 ESP 클랜 배틀에 관한 자료까지 수집한 모양이다. 물론 아버지가 직접 가거나 한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서, 제이든은 변명을 순조롭게 한다.
“이건 진짜라니까요? 뉴스라든지, 아니면 최신 트렌드를 좀 보세요. ‘외우주 서핑’ 같은 것도, 처음에는 다 그런 취급을 받았잖아요?”
하지만, 일은 제이든이 일견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지금 말하려는 게 엇나간 것 같은데.”
“네? 무, 무슨...”
“이건 뭐지?”
아버지가, 제이든의 계좌 내역을 다 뽑아와서 제이든의 앞에 보여준 것이다.
“이건... 이건 말이죠...”
제이든의 아버지는 그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아 보이지만, 지금은 그걸 억누르고서, 차분히 말한다.
“제이든, 아빠 말 들어라. 네가 한 것 때문에 거래처에 납품할 게 차질을 빚고 있어. 네가 날린 그 돈이 만약에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당장에 그게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봐라!”
“아니에요, 아빠. 그 돈을 그렇게 쉽게 날리거나 한 건 아니었다고요!”
물론 제이든이 정말로 돈을 날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든가 하는 건 아니다.
“그럼 이건 뭐니?”
아버지는 또 기다렸다는 것처럼, 영상 하나를 틀어준다. 그 영상의 첫 장면을 보자마자, 제이든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탁 막힌 듯 숨이 거칠게 쉬어지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게, 제이든은 중얼거린다.
“이게... 이 영상이 어째서...”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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