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버스라는 게 있었습니다.
흰색 바탕에 짙은 분홍색 띠, 그리고 그 위에 MYUNG JIN이라고 로마자로 표기된 버스회사 로고가 외형상 특징인 그 버스는 Western Corridor라고 불리던 수도권 북부지역 소재의 미군부대를 잇는 버스였습니다. 그 버스와 관련된 추억을 몇 가지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1.
동두천 캠프 케이시 구내의 명진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돌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미군 가족 중 흑인 어린이가 저에게 돌을 던진 것이었는데, 순간 화가 나서 그 아이를 노려보면서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어머니가 저에게 사과를 하면서, 그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소리를 높였던 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군요. 어린이에게 따져봤자 뭐하겠나, 이미 아이의 어머니가 저렇게 사과를 했는데 됐지 하고 그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씁쓸합니다.
2.
동두천과 의정부 사이였다고 기억납니다.
저는 버스의 통로 왼쪽 좌석에 앉았고, 통로 오른쪽 좌석에는 한 여성과 어린 두 딸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어로 말하더군요. 아무래도 미군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이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한국에 온 것 같았습니다. 딸들은 검은머리면서도 묘하게 백인같아 보였습니다.
그 어린이들이 말하던 게 아직도 생각납니다.
おかあさん、おとうさんどこ?あっち?こっち?
(엄마, 아빠 어디, 저기, 여기?)
3.
명진버스 안에 깡통이 하나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운전수가 주행 도중에 차문을 열더니 방향을 이리저리 꺾어서 문 쪽을 향해 유도한 뒤에 밖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군들이 욕을 하고, 저는 얼굴이 확 뜨거워지더군요.
그때 저와 미군들이 한 대화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In his mind, he's driving a Porsche, but he should have reminded he's driving a bus.
Yeah, you're right. In the states, his driving like that results in at least $500 fine.
4.
버스 안에서 어떤 미군의 소지품에 감동적인 시가 한 편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미군에게 말을 걸어서, 그 시를 읽고 놀랐다고 밝히면서 작가가 누구인지를 물어봤습니다. Charles M. Province라는 미 육군의 군인이 1970년에 발표한 시라고 합니다.
그 시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It is the Soldier, not the minister
Who has given us freedom of religion.
It is the Soldier, not the reporter
Who has given us freedom of the press.
It is the Soldier, not the poet
Who has given us freedom of speech.
It is the Soldier, not the campus organizer
Who has given us freedom to protest.
It is the Soldier, not the lawyer
Who has given us the right to a fair trial.
It is the Soldier, not the politician
Who has given us the right to vote.
It is the Soldier who salutes the flag,
Who serves beneath the flag,
And whose coffin is draped by the flag,
Who allows the protester to burn the flag.
벌써 이것도 정말 오래전 일인데, 여전히 생각난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제 명진버스 이런 것도 옛 말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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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안샤르베인
2017-07-16 22:31:56
마지막 시는 군인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느낌이네요. 요즘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 터라 왠지 눈길이 가서 읽어보았는데,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SiteOwner
2017-07-16 22:46:04
우리가 누리는 자유라는 게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지요. 그래서 Freedom is not free라는 역설적인 격언도 있는 건가 봅니다. 그래서 요즘 저 시가 다시 생각나서 자주 낭송해 보고 합니다.
마지막 연의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지요.
국기에 경례하고 국기 아래에서 복무하고 관이 국기로 덮이면서 국기를 불태우며 시위하는 자들까지도 보호하는 그들이 바로 군인이라는 것. 미군이 세계최강인 것이 단지 규모, 장비, 기술, 경험뿐만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군인을 존경하고 복무자를 우대하는 상무정신이 있으니 역시 최강인 점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