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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序

지난 글 #1 철도통계의 맹점

지난 글 #2 국가별 통계 A

지난 글 #3 국가별 통계 B

지난 글 #4 도로와의 비교

지난 글 #5 동력의 집중과 분산

지난 글 #6 동력집중은 그만

지난 글 #7 관절대차 문제

지난 글 #8 고속선-재래선 혼용


독일의 법학자 포이어바흐가 말한 합리적 행위자가 범죄를 실행하는가 단념하는가에 대한 사고과정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이해득실을 따지게 되어요. 작게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단위의 정책결정에까지, 무엇이 이득을 안겨주고 무엇이 손실로 이어지는지는 항상 생각을 하게 되어요.

물론 이러한 사고와 의사결정이 항상 의도대로만 돌아가 주는 것은 아니라서, 간혹 여러 가지의 이유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기대하지도 않은 분야에서 의외의 대성공을 거두기도 해요. 또한, 인간이 반드시 이득을 추구하는 것만도 아니라서, 호의나 뇌물을 거부하거나, 사상이나 신념, 종교 등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경우도 있는 등, 사고와 행동이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손실이 발생한다고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의사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특정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해요.

망하고 싶어서 사업을 추진한다면, 추진자가 제 정신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파산해 가는 기분을 체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업을 벌여서 자금난, 도산 등의 위기에 자신을 몰아넣는다는 설정으로 만들어진 창작물 속에 존재하거나 사업추진자가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어요.

이 사례를 볼까요? 마케팅의 대표적인 실패사례 중인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일본판매 프로젝트.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일본에서 겨울의 소나타(冬のソナタ)라는 이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도심은 물론이고 전통관광지에서조차도 관련상품이 인기리에 팔렸고, 심지어는 겨울연가를 테마로 해서 나온 파친코도 존재하고 있어요. 그런데, 겨울연가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은 배용준이 직접 출연한 현대자동차 쏘나타는 일본에서 전혀 성공하지 못했어요. 왜 그럴까요? 반한? 애국심? 테러공포? 역시 일본이라서?

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드라마 이미지만 보고 고가품인 자동차를 덜컥 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겨울연가는 일본의 중장년 주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일단 그 사람들은 자동차 구매자의 주축은 아니지요. 보통 누가 자동차 구매를 결정하나요? 패밀리카의 경우 보통 가장이 주도하고, 보조적으로 주부가 쇼핑이나 아이들의 통학용으로서 소형차나 경차를 구입하는 정도예요. 그리고 그 주부들을 구매자로 특정한 자동차는 주차에 편리한 소형 차체, 대용량 트렁크, 상대적으로 좁은 뒷좌석 등의 구조적 특징이 있어요.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는 미드사이즈 패밀리카이니 이것은 소형차나 경차도 아니고,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른 경쟁차종에 비해서 이점도 전혀 없어요. 그리고 수백만엔 하는 고가의 제품은 구입시에 이성이 먼저 작용해요. 즉 차량가격, 금융프로그램의 이자율, 중고차의 리세일 밸류 같은 지표가 먼저 작용하지요.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자산규모가 아주 큰 계층에게는 더욱 좋은 선택지가 많으니 당연히 현대자동차 쏘나타를 구입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어요. 대체 누가 구매하겠어요? 실패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예요. 당시 의사결정자들이 수익을 기대하고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고가품의 특성, 시장의 특성 등과 같은 마케팅 전략이 처음부터 잘못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사업추진자의 결정이 이성적이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반한이나 애국심 등으로는 당연히 겨울연가의 대흥행을 설명할 수 없으니 이런 원인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구요. 그래서 예의 사업은, 망하고 싶어서 추진한 사업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이제 철도로 눈을 돌려볼까요?

철도사업이 갖는 태생적 리스크가 있어요. 철도는 범용재가 아니고, 장거리 고속 교통수단이면서도 의외로 말단에서의 교통수요대응력이 낮아서 매우 정밀한 설계가 필수적이라는 점이 바로 그거예요.


범용재란 무엇일까요? 汎用財, 즉 여러 목적에 두루 쓸 수 있는 재화를 말해요.

도로의 경우, 이 위로는 걸어다닐수도, 차량을 운용할 수도 있어요. 게다가 각종 건물은 구조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 내장공사만 바꾸는 것으로도 충분히 다른 목적에 쓸 수 있어요. 갈비집으로 쓰던 건물이 횟집이나 중식당 같은 다른 식당이 되거나, 아예 다른 업종의 사업장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반드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즉 내구연한이 충분하고 물리적인 크기만 맞다면 일부개조를 통해 다른 용도에 사용해도 상관이 없어요. 자동차의 경우, 반드시 한 목적에만 쓰이지 않는데다 극단적으로 나쁜 지형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도로와 평지 위를 달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철도는 어떨까요? 철도차량을 얹어 운행하는 목적 이외에는 다른 곳에 쓸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철도차량도 궤도 위에서 운용될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서 다른 용도로는 쓸 수 없어요. 게다가 궤간, 차량한계 등의 물리적 규격에 철저히 구속되기에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해요. 퇴역한 철도차량을 식당 등의 편의시설이나 박물관 전시품 등으로 돌릴 수는 있지만 그건 원래 의도된 용도가 아닌데다 제한되어 있어서, 사실상 철도차량은 궤도 위에서가 아니면 쓸 수가 없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더 이상 철도가 철도의 구실을 하지 못하면, 범용재가 아닌 터라 그 운명은 다른 범용재에 비하면 비참할 수밖에 없어요. 대부분의 경우 철도는 폐선되면 걷어내져서 다른 시설물이나 제품을 만들 자재로 유용되고, 터널이나 노반 등의 시설물은 그냥 버려지며, 교량 등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통행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철거되기도 해요. 그리고 차량은 해체되어 고철로 팔리고, 소수의 운좋은 차량만이 다른 철도회사에 팔리거나 박물관의 전시품이 될 뿐이지요. 이게 철도의 운명이예요. 즉 범용재가 아닌 철도는 가치가 없어지면 소멸해요.


그리고 말단에서의 교통수요대응력이 낮다는 게 무슨 개념인지 볼까요?

대구에 사는 사람이 서울로 간다고 가정하지요. 그럼 무엇을 타고 갈까요?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자신이 직접 자동차를 운용하지 않는다면 대중교통의 선택지는 3가지가 있네요. 열차, 고속버스, 또는 항공. 이것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변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운임과 소요시간, 운행빈도 말고도 이게 있어요. 자신의 위치에서 얼마나 가깝고 목적지에서 얼마나 가까운가.

운임으로 지불할 돈이 충분히 많다고 가정해 보죠. 그러면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항공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누구나 예외없이 항공을 선택할까요? 대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아니오."

대구공항은 동구에 있고, 흔히 동촌비행장으로 통해요. 이 공항은 동쪽의 외진 곳이라서 대구의 도심에서는 한참 멀어요. 마찬가지로 김포공항은 강서구에 있는데 여기가 서울의 서쪽 끝이지요. 게다가 탑승수속 절차가 필요하기도 해요. 만일 대구 서부에 사는 사람이 서울 강남에 일이 있다면 더 편리한 선택지가 있어요. 서대구고속터미널에서 강남행 고속버스를 타면 되는 거니까요. 제주에 가는 것처럼 선박의 소요시간 및 배멀미 문제 등으로 항공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이점을 가지지 않는 한 이건 당연한 거예요. 게다가 대구는 어차피 내륙이라서, 부산이나 여수, 목포 등과 같이 선박이 선택지로 있지도 않으니까요. 이렇게 출발지의 위치로 인해 교통수단의 선택이 달라지게 되어요. 그리고 위의 경우 왜 열차가 아니라 고속버스가 선택될까요? 서울 남부의 대형 철도역은 영등포역밖에 없는데 영등포에서 강남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그래서 도착지에 따라서도 교통수단의 선택지는 크게 갈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동대구역이나 대구역에서 열차를 많이 탈 수 있더라도 고속버스를 선호하는 선택지가 충분히 가능하고, 따라서 동대구역이나 대구역의 교통수요대응력은 대구공항의 제주행 항공편의 그것보다 비중 면에서는 결코 높을 수가 없어져요.


그렇다면 철도정책이 왜 정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제 이유가 다 나왔지요?

그래요. 바로 그것.

잘못되어 용도가 없어지면 사라진다.

속도와 정시성이 좋아도 철도역이 멀면 이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철도정책은, 그 사업을 추진할 비용과 그 사업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의 크기가 정밀하게 계량되어야 하고, 따라서 비용편익분석에 특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어요. 게다가 합리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정치논리 등 외부의 다른 것이 개입되면 결국 망하기 위해 추진된 프로젝트밖에 되지 못한다는 위험이 존재해요.



다음 회차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의 의미와 방법론, 그리고 우려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살펴볼께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하네카와츠바사

2013-10-11 10:42:32

사실 겨울연가를 차용해서 더 인기를 낸 건 빠찡코였죠. 빠찡코 기계용 소프트웨어는 2편까지 출시됐고, TV 광고로까지도 나왔으니 말입니다...

마드리갈

2013-10-11 11:29:40

어떤 미디어의 대유행과 관련상품의 성공은 별개의 문제예요. 아무래도 영상물에서 게임으로 시장이 확장되는 것이 상호연관성도 높은데다 진입장벽이 적으니까요. 영상물에서 자동차로 시장이 확장되려면 그 이미지의 차용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해요. 그에 대한 생각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전개했으니 망할 수밖에 없어요.

철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고속철도 운용으로 철도선진국의 이미지를 얻는다는 데에 급급하여, 철도의 본질 그리고 국내의 교통환경에 대한 이해없이 무리하게 강행된 사업은 온갖 문제를 일으켜요.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는 일본에서 철수한 거로 끝났지만, 한국의 철도는 얼마나 많은 불경제를 양산할까요. 이건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지니 문제가 되어요.

대왕고래

2013-10-12 02:14:46

그러니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모두들 고생하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고생하는 방법으로 만드는 건 이상한 짓.

어울리는 것을 곁들여야 맞는 마케팅이지, 더러운 것이랑 같이 밥을 놔두면 먹을 사람 아무도 없는 것이다...

라는 것으로 보여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네요...;;;

마드리갈

2013-10-12 02:19:18

그렇죠. 처음부터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상황 및 추진프로젝트에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서 처음부터 잘 해야 해요. 대충 해 놓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 대처하면 된다는 건 아주 위험한 발상이고 제대로 잘 될 가능성이 없어요. 설령 제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엄청난 비용을 들인 이후의 일이니까요.

아무리 산해진미인들 더러운 것이랑 같이 두거나 하면 누구도 거들떠 볼 리가 없어요. 음식을 먹을 때는 이런 것을 철저히 하면서, 본질이 똑같은 다른 의사결정에서는 의외로 이것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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