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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일곱번째는 한 세기 전의 호주, 뉴질랜드 및 남극편으로 결정되었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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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갈색은 육상지형, 남색은 해양 및 도서지형, 녹색은 각 도서 및 속령, 청록색은 천연자원, 보라색은 도시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각 지역의 특이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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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tesy of TheRomangOrc


우선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항목부터. A부터 G까지 7개 항목이 있어요.

A. 타조가 많다.
호주의 타조는 정확히는 에뮤(Emu, Dromaius novaehollandiae)라고 불려요. 호주의 대부분의 지역에 서식하는 이 에뮤는 여러 아종이 있지만 호주대륙종만 살아남아 있고 다른 아종인 태즈메이니아(Tasmania), 캥거루(Kangaroo) 및 킹(King) 섬에 각각 서식하던 아종은 유럽인들의 호주 정착 이후 멸종되어서 지금은 박제가 전해지고 있을 뿐이예요.
잡식성인 에뮤는 수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틸수도 있는 강력한 생명력을 지녔다 보니 멸종할 여지 자체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이 지도의 발행시점 8년 뒤인 1932년에는 밀 농사에 위협이 되는 에뮤의 개체수를 조정한다는 명목하에 여름인 11월 2일에서 12월 10일 사이에 호주군 주도로 986마리를 사살하지만 생태계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이 작전이 종료되어 버렸어요. 이것을 이후에는 에뮤전쟁(Emu War)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사실 호주의 생태계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은 그 에뮤전쟁보다 더 뒤의 시점인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식량확보용으로 사육하게 된 토끼였고, 결국 토끼 개체수 조절에 실패한 지금 호주는 토끼관련 정책에 가장 가혹한 국가로 남아 있어요.

그러고 보니 호주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동물인 캥거루와 코알라(Koala)는 일러스트로도 지문으로도 언급되지 않네요. 말 일러스트는 있으면서...


B. 농산물, 특히 축산이 풍부하고 금, 은이 많이 산출되는 동시에 양모 생산도 많다.
호주는 역시 천연자원대국. 그리고 남반구에 위치했다는 점이 농업에는 매우 유리헤요.
사실 인구가 많은 국가들은 대부분 북반구에 있다 보니 농업생산력이 줄어들거나 상실되는 겨울에는 식량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져요. 그런 점에서 태평양과 인도양에 모두 접한 호주는 물론 대서양에 접한 아르헨티나도 호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일찍부터 번성할 수 있었어요. 단 두 나라의 운명은 크게 갈려버려 호주는 지금도 세계적인 부국이지만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전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후로는 20세기 후반은 물론 21세기에 들어서도 그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도 구조적인 빈곤과 사회불안에 시달리고 있어요.

호주 내륙은 그레이트샌디사막(Great Sandy Desert)을 필두로 건조한 지대가 많고 가축의 사육도 이에 맞춰 조방적(粗放的)인 대규모 기업형 목축업으로 영위대고 있어요. 물론 소 사육 두수도 많지만 이런 건조지대에서는 양이 보다 적합해요. 게다가 양고기는 양을 도축하면 얻어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양모(羊毛)는 양이 생존해 있으면 정기적으로 털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여러번 수익을 반복해서 낼 수 있으니 여러모로 유용해요. 호주가 이렇게 목양농업의 본산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척박한 내륙지역의 환경을 잘 이용한 지혜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호주청정우라는 쇠고기 브랜드는 물론이고, 국내에 수입되는 양고기 상당부분이 호주산인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느릴 수 없을 거예요.

광물자원 또한 발군의 보유량 및 생산량을 보여주고 있어요.
일반소비자용 제품을 만들지는 않아서 인지도는 낮지만, 리오틴토(Rio Tinto)라는 영국-호주 다국적 광업기업이 있어요. 연매출인 540억 달러 정도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기업 중에서는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Bayer)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죠. 이 리오틴토 또한 금을 비롯하여 구리, 알루미늄, 몰리브덴, 우라늄, 티타늄 각종 금속자원을 대거 생산하고 있어요.



C. 항만이 깊고 풍경이 아름다워 세계제일이라는 평가가 있다.
시드니(Sydney)는 흔히 세계 3대미항이라는 타이들로 잘 설명되어요. 다른 둘은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및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Rio de Janeiro). 실제로 시드니 항이 입지한 포트잭슨만(Port Jackson Bay)는 60m 내외의 수심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대형선박의 출입이 자유로운 장점이 있기도 해요.

시드니 상공의 사진을 보면 역시 미항이라는 평가가 잘 어울려요. 포트잭슨만을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의 모습도 잘 보여요. 
사진 가운데 위의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와 그 오른쪽의 하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Sydney Opera House)가 보일 거예요. 이 지도의 제작시점에서 하버브리지는 착공이 막 시작한 상태였고 오페라하우스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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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PORT JACKSON, Smart Travelers.de 웹사이트, 영어


D, 풍경이 아름답고 일본과 매우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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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Tasmanian Wilderness Escapes, Travel Marvel 웹사이트, 영어

호주대륙 남동부의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은 면적 68,402평방km의 섬으로 이름의 유래는 의외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탐험가인 아벨 타스만(Abel Tasman, 1603-1659). 그의 1642-1643년 항해에서 유럽인들에게 존재가 알려진 곳이 모리셔스(Mauritius), 뉴질랜드 및 호주 남부의 태즈메이니아 섬이었지만 당시 그는 그 섬의 이름을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총독이었던 안토니오 반 디멘(Antonio van Diemen, 1593-1645)에서 유래한 반 디멘스란트(Van Diemensland)로 명명했어요. 이 지역과 1천여개의 부속도서는 이후 뉴홀란드(New Holland)로 불리다가 뉴사우스웨일즈 식민지(Colony of New South Wales) 및 태즈메이니아 식민지 시대를 거쳐 1901년의 시작과 함께 태즈메이니아 연방주로 재편되어 호주의 영토로 확정되었어요. 
이 지역은 일본에서는 타스마니아(タスマニア)라는 이름으로도 잘 통하고 있는데, 철자 그대로 읽은 것일수도 있지만 이름의 어원이 네덜란드인인만큼 네덜란드어의 방식을 살려서 읽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게다가 에도시대의 일본은 네덜란드로부터 서양의 문물을 대거 받아들였다 보니 이것이 더욱 친숙할 수도 있을 거예요.

태즈메이니아는 관광으로도 광업으로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데다 풍경 또한 위에서 소개한 사진처럼 홋카이도(北海道)를 연상케 하는 매력이 있어요. 또한 인구가 적어서 60만명이 넘지 않는데, 홋카이도의 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긴 하지만 500만명대 전반으로 인구밀도가 매우 낮기도 해요. 또한 배스 해협(Bass Strait)을 건너는 대형 페리가 다니는 것도 홋카이도와 혼슈(本州) 사이의 츠가루해협(津軽海峡)을 잇는 대형페리가 운항되는 것과 매우 유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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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Spirit of Tasmania I & II  Ship Evacuation Analysis, Knud E. Hansen 웹사이트, 영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 2척의 페리가 태즈메이니아 주정부의 투자회사인 TT-Line Company Pty Ltd 소속의 총톤수 29,338톤 및 여객정원 1,400명/자동차 500대 수송력을 지닌 스피리트 오브 태즈메이니아(Spirit of Tasmania) I 및 II. 두 척 모두 1998년에 핀란드에서 건조되어 처음에는 그리스의 파트라(Πάτρα)와 이탈리아의 안코나(Ancona)를 잇는 국제여객선으로 운용되다가 2002년에는 호주로 매각되어 태즈메이니아주의 데이븐포트(Davenport)와 빅토리아주를 잇는 편도 9-11시간의 해운교통수단으로 활약하고 있어요. 단 2022년에는 빅토리아주의 행선지가 멜버른(Melborne)이 질롱(Geelong)으로 변경되었어요. 이 여객선들도 2024-2025년 사이에 핀란드에서 건조된 총톤수 48,000톤 및 여객정원 1,800명 규모의 신조선박으로 대체될 것이 예정되어 있어요.

또한, 100년 전 지도에서 언급된 일본과의 유사성은 오늘날에도 태즈메이니아 호주-일본협회(Australia-Japan Society of Tasmania, タスマニア豪日協会)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어요(공식사이트 바로가기/영어). 1969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1987년 4월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어 활동을 지속중이예요.


E. 태즈메이니아 인은 우수한 종이 이기고 열등한 종이 진 결과 결국 멸망해 버렸다.
태즈메이니아 섬에는 팔라와(Palawa) 또는 파카나(Pakana)로 불리는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이 있었고 인구규모도 수천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어요. 그들의 문명에 대하서도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보니 많은 것은 여전히 알려져 있지 않아요. 확실한 것은 그 원주민들이 수천년 이상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영위하다 1803년에 영국인들이 태즈메이니아 경략을 추진하면서 그들로부터 전염된 각종 병에 희생되거나 무력충돌 과정에서 전사하는 등 30여년만에 인구가 수백명 위주로 급감해 버린 것.
이후 1997년에 태즈메이니아 주정부 차원에서의 공식사과가 만장일치로 결정되고 2005년에는 원주민 후손에 대한 뿌리찾기 관련의 법안도 통과되었어요.

이 시대를 풍미했던 우생학(優生学, Eugenics)의 잔영도 이렇게 태즈메이니아 관련의 설명에서 짙게 드러나고 있어요. 
그리고, 이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인구격감의 큰 원인은 후술하는 멜버른의 설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F. 펭귄 수백만 마리가 모여산다.
역시 남극을 상징하는 동물 하면 펭귄이죠. 물론 펭귄이 남극대륙에만 사는 것은 아니고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칠레 등 남반구 국가의 해안에도 서식중이고 예외적으로 꽤 북쪽인 페루의 해안에도 사는 훔볼트펭귄(Humboldt Penguin)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역시 남극대륙에 사는 게 개체수에서도 종류에서도 압도적이예요.

그러면, 여기서 남극에서 사는 펭귄들의 모습을 소개해 볼께요.
2019년 올해의 야생사진가상(Wildlife Photographer of the Year)의 포트폴리오(Portfolio) 분야의 우승자인 독일의 사진가 슈테판 크리스트만(Stefan Christmann, 1983년생)의 사진으로. 아트카 만(Atka Bay)에서 찍힌 황제펭귄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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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Emperor: A Survival Story, 2019년 10월 16일 Nature picture library 웹사이트, 영어


G. 일본해군의 시라세 노부 중위가 오오쿠마 후작의 후원하에 카이난마루를 타고 남극탐험에 도전하여 남위 82-83도까지 진행, 도망치는 펭귄들이 그 용기에 감탄하다.
시라세 노부(白瀬矗, 1861-1946)는 일본의 남극대륙 탐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인물로 한때 승려가 되려고 했지만 진로를 바꾸어 19세가 된 해인 1879년에 육군교도단기병과(陸軍教導団騎兵科)에 입대하면서 군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이전에 썼던 아명인 치쿄(知教)대신 노부(矗)라는 새 이름을 쓴 그는, 이미 스승 사사키 셋사이(佐々木節斎)로부터 북극탐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탐험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고 18세가 되는 해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담배를 피우지 않는다/차를 마시지 않는다/온수를 마시지 않는다/추워도 불을 쬐지 않는다의 5개의 계율을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속 지켰다고 전해져 있어요.

그러나 그의 북극탐험에 대한 꿈은 1909년에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Robert Peary,1856-1920)의 북극점 도달 뉴스로 인해 한번 좌절되고 목표를 남극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것도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 1874-1922)이 남위 88도 23분까지 진행한 것까지 알려져 또 의기소침해져요. 한편으로는 영국 정부에서 로버트 스코트(Robert Scott, 1868-1912)의 남극원정이 1910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발표한 상태였어요. 시라세 노부는 당시의 일본의 국회인 제국의회(帝国議会)에 남극탐험 비용보조를 청원했고 의회도 만장일치로 그 청원에 찬성했지만 일본 정부측에서는 성공가능성을 의심하여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어요. 결국 14만엔(현재가치 5억 6천만엔)에 달하는 비용은 국민성금으로 충당되었어요.
사실 시라세 노부는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2. 일본 중심의 동북아시아편에서 언급된 군지 시게타다(郡司成忠, 1860-1924/다른 발음 군지 나리타다)가 결성했던 보효의회(報效義会)의 회원으로 군지와 함께 슈무슈 섬 탐험에 동행하기도 했지만 여기에서 큰 충돌이 벌어졌어요. 당초에는 생존하여 월동한 회원 전부가 1894년에 군함을 타고 귀향하려 했지만, 군지 시게타다의 아버지가 "치시마열도의 개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나는 섬에 잔류하겠다" 라는 의사를 피력했는데 그 의사를 바꾸기 위해 시라세 노부와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4명을 섬에 잔류시켰는데 그 4명 모두가 괴혈병에 걸리고 시라세 노부를 제외한 모두가 병사했어요. 시라세 노부도 죽을 뻔 했다가 1895년에야 겨우 구조되었고, 그 뒤로는 시라세 노부가 군지 부자를 극도로 증오하게 되었어요. 그런 시라세 노부가, 과거의 동지였지만 불구대천의 원수로 돌아선 군지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 배를 마련했고, 그렇게 확보된 204톤급의 어선에 중고 증기기관을 장착하는 식으로 개조한 배를 카이난마루(開南丸)로 명명하여 극지탐험에 나섰어요. 문제는 배의 크기. 여기에 대해서 타다 케이이치(多田恵一, 1883-1959)가 350톤급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시라세 노부가 탐험가로서의 정신론을 강조하면서 200톤급의 선박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언을 무시하는가 하면 육군 장교 출신으로서 대원들을 일방적으로 지휘하려는 성향까지 보여서 불만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어요.

그렇게 준비작업이 계속되어 1910년 7월 5일에는 남극탐험후원회(南極探検後援会)가 결성되고 회장에는 제8대 및 17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오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1838-1922) 후작이 취임했어요. 그리고 같은 해 11월 29일에 탐험선 카이난마루가 출항하는데 극지에서의 썰매 운용을 위해 준비한 29마리의 개가 원인불명의 이유로 죽고 시라세 노부 본인과 서기장 타다 케이이치, 선장 및 다른 대원들의 불화까지 생기는 등 여러모로 험난했어요. 이런 우여곡절의 항해는 1911년 2월 8일 뉴질랜드의 웰링턴 기항 및 5월 1일의 시드니 기항으로 일시 중단되어요. 이미 웰링턴에 기항했을 당시에는 남극의 여름이 끝나가서 위험해져 있었으니까 할 수 없이 시드니 기항으로 일정을 바꾼 것이었어요. 그러나 대원들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아서 시드니 체류 중 시라세 노부에 대한 독살미수사건도 발생하기까지 했어요.

탐험대원들이 시드니를 떠난 것은 도중에 이탈하여 일본으로 일시귀국후 추가 활동자금 및 썰매용 개로 쓸 카라후토견(樺太犬)을 확보해 온 타다 케이이치가 합류한 이후인 1911년 11월 19일. 그리고 이듬해인 1912년 1월 16일에 대원들이 남극대륙에 상륙했어요. 그 지점이 저 지도에 나오는 빅토리아랜드(Victoria Land)에 있는 남위 78도의 카이난 만(開南湾, Kainan Bay). 그리고 이후인 1961년에 뉴질랜드 남극지명위원회에서 그 카이난만이 있는 해안이 이름이 시라세해안(白瀬海岸, Shirase Coast)으로 명명되었어요.
남극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아서 남극점 도달은 단념한 대신 과학조사가 이루어졌어요. 1912년 1월 28일에는 대원들이 남위 80도 5분/서경 156도 37분 지점을 야마토설원(大和雪原, Yamato Yukihara)으로 명명한 후 만세삼창을 하고 그 땅에 남극탐험동정자방명부(南極探検同情者芳名簿)를 묻은 뒤 일장기를 게양하여 일본령을 선언하였어요. 그러나 그 지역은 빙붕이지 육지는 아니었던 것이 아주 나중에야 밝혀져요.
그 야마토설원에서의 활동 이외에도 로스 만(Ross Bay)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서 로스 만에는 탐사선의 이름을 붙인 카이난 만은 물론 후원회장인 오오쿠마 시게노부 후작의 이름에서 유래한 오오쿠마 만(大隈湾, Okuma Bay)라는 지명도 새로이 생겼어요. 탐험 도중에는 이미 남극점에 도달한 이후 귀환하던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드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의 탐험대와 조우하기도 했어요.

당시의 탐험대 대원은 이렇게 되어 있고 가장 큰 사진으로 나온 인물이 시라세 노부, 작은 사진들 중 첫째줄의 왼쪽에서 세번째가 위에서 언급된 타다 케이이치 서기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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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시라세 노부 중위가 이끈 일본남극탐험대 / 그 기념비 [남극-북극과학관], 한 장의 특선사진 "바다와 배" 웹사이트, 일본어)

귀환과정도 결코 순탄치 않았어요.
사실 시라세 노부 본인에 대한 독살미수사건도 있었던만큼 이 갈등의 골은 절대 쉽게 메워지지도 못했고 웰링턴에 도착한 끝에 결국 시라세 노부와 그와 뜻을 같이 한 4명은 카이난마루 대신 다른 화객선(貨客船)에 타고 귀국하는 일도 벌어졌어요. 또한 남극을 출발할 때에는 사정이 매우 나빠져서 사용했던 카라후토견 21마리를 모두 남극에 두고 와야 했어요. 그 중 6마리는 남극의 극한상황에서도 살아남아서 나중에 파견된 남극탐사대가 결국 구조했지만...
귀환해서도 문제가 심각했어요. 후원회가 자금을 유흥비 등에 탕진해서 돈이 없었고 대원들에게 지급할 급여도 없는 상태로. 시라세는 4만엔(현재가치 1억 6천만엔) 가량의 거액의 빚을 졌고 있는 자산은 집이나 가재도구는 물론 군복이나 칼까지 매각해서 충당해야 했음은 물론 여러 곳을 전전해야 할 정도로 주거도 불안정했어요. 당시 남극에서 촬영된 각종 영상필름을 갖고 딸과 함께 다니며 일본은 물론 대만, 조선, 만주 등을 다니며 강연회 등을 열어 발생한 수입으로 20년간 채무를 변제하며 생활했어요.
그는 결국 1946년 9월 4일, 작은딸이 일하는 배달전문식당에 딸린 방에서 쓰러져 85년의 생애를 마감했어요. 사인은 장폐색(腸閉塞). 급한대로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조문객도 별로 없었고 이웃주민들도 시라세 노부가 거주하는 사실을 거의 몰랐다고 해요.

이후 그의 유산은 앞에서도 언급된 시라세해안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는 한편, 1990년에는 그의 고향인 아키타현 니카호시(秋田県にかほ市)에 시라세 남극탐험대기념관(白瀬南極探検隊記念館)이 설립되어요. 초대관장으로서는 1970년에 일본인 최초로 요트로 세계일주에 성공하는 것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그의 동생의 손녀인 시라세 쿄코(白瀬京子)가 취임할 예정이었으나 기념관 개장을 9일 앞두고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는 못했어요.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의 쇄빙선에도 시라세(しらせ)가 있어요. 단 해상자위대의 보유함정의 이름은 모두 히라가나로 표기되어 있어요. 해상자위대의 소속 함정에는 인명을 붙이지 않는 관례가 있지만, 시라세 노부의 이름이 남극의 시라세해안으로 남아 있다 보니 그 지명을 인용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이렇게 실질적으로 인명이 채택된 효과가 나고 있어요.
초대 시라세는 1982년에 취역한 기준배수량 11,600톤/만재배수량 18,900톤 규모의 쇄빙선으로 2008년에 퇴역후 2010년에 상설전시중이고, 2대 시라세는 2005년에 취역한 기준배수량 12,650톤/만재배수량 22,000톤 규모의 조금 더 커진 것으로 2023년에는 제65차 남극지역관측협력(第65次南極地域観測協力)에 나서 11월 25일에 호주 프리맨틀(Fremantle)에 기항한 후 보급 및 정비를 거쳐 11월 30일에 출항하여 남극 주변을 탐사한 끝에 2024년 4월 8일에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임무를 마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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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제65차 남극지역관측협력, 해상자위대 웹사이트, 일본어)


우주보다 더 먼 곳(宇宙よりも遠い場所)라는 애니에도 이 2대 시라세의 모습이 나와요. 단 여기에서는 2대 시라세가 다른 쇄빙선이 신조되면서 퇴역한 이후 개조되어 펭귄만쥬호(ペンギン饅頭号)라는 이름으로 재취역했다는 설정으로 등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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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스테이지01 "시라세" 란 어떤 배? 베테랑 간부에 여쭤봤습니다!, 우주보다 먼 곳 공식웹사이트, 일본어)

일단 이 비교장면에서는 시라세라는 이름이 쓰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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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애니 "우주보다 먼 곳" 리뷰. 4명의 소녀가 남극을 향하는 청춘 그래피티가 어른의 마음을 휘어잡는 이유라면? [연말연시 추천애니], 2018년 12월 30일 패미통 기사, 일본어)

그리고 이 이미지에서는 이름이 펭귄만쥬호로 바뀌어 있는 게 보이죠.


주의해야 할 사항은, 지도 원문에 나온 "해군" 표현은 명백히 틀렸다는 것.
사실 시라세 노부는 일본육군의 인물이었고 전역 당시 최종계급 또한 일본육군 중위였어요. 일단 원문의 내용에 충실하게 번역했고, 원문의 내용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 둘께요.




그 다음은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항목. 1부터 9까지 9개 항목이 있어요.

1. 포트 다윈
호주 북부영토(Northern Territory)의 주도이자 호주 북부의 대표적인 무역항인 포트 다윈(Port Darwin)은 실제로 진화론을 주장했던 그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에서 유래하는 게 맞아요. 그가 탑승한 영국 해군의 군함인 HMS 비글(Beagle)이 1839년 9월 9일에 현재의 포트 다윈에 도달했고, 당시 다윈과 동승했던 해군장교 존 클레멘츠 위컴(John Clements Wickham, 1798-1864) 부함장이 그를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지명에 남긴 것이 현대에 이어지고 있어요.

이 다윈은 1897년, 1937년 및 1974년의 사이클론(Cyclone) 상륙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고 1942년에는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호주 본토에서 일어난 전쟁으로서는 최악의 피해를 입고 호주군과 미군이 패배한 역사도 안고 있어요. 


2. 퍼스
퍼스(Perth)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 서호주) 최대의 도시이자 인구도 230만명이 넘어요. 또한 1924년 당시에는 현재의 스리랑카에 해당되는 영국령 실론의 콜롬보(Colombo), 영국령 예멘의 아덴(Aden), 수에즈운하(Suez Canal), 영국령 사이프러스(Cyprus), 몰타(Malta) 및 지브롤터(Gibraltar)를 거쳐 영국 본토에 닿는 인도양 항로의 기점이었고 현재는 호주 서부와 영국을 잇는 항공로인 일명 캥거루 루트(Kangaroo Route)의 기점 공항인 퍼스공항(Perth Airport)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호주대륙 남부를 횡단하여 동쪽 끝의 시드니까지 갈 수 있는 호화 침대열차인 인디언퍼시픽(Indian Pacific)도 운행되고 있어요.

퍼스 내륙의 배후지에는 1894년에 금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로 활황을 기록하여 인구 1만명대를 넘었지만 그 열풍이 꺼진 이후 퇴락하여 예산부족으로 2007년에는 경찰서까지 폐지되고 현재는 인구 100여명에 불과한 마을인 멘지스(Menzies)도 기재되어 있어요. 지도 원문에서는 멘시나(メンシーナ)라고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고, 결국은 의심되는 지역 전체를 구글 지도를 비롯한 각종 찾아가면서 철도노선을 따라 추적한 결과 문제의 장소를 특정할 수 있었어요.


3. 멜버른
호주를 대표하는 대도시 중의 하나인 멜버른(Melborne)은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식민지 출신의 농장경영자 겸 탐험가인 존 배트맨(John Batman, 1801-1839)이 1835년에 현지의 원주민들과 체결한 배트맨 조약(Batman's Treaty) 기원하고 있어요. 이전에도 그 지역을 발견한 사람들은 1797년에 호주대륙 본토의 남쪽과 태즈메이니아 사이의 해협을 발견하여 배스 해협(Bass Strait)의 지명의 유래로 기록되는 탐험가 조지 배스(Geroge Bass, 1771-1803) 이래로 여러 영국인들이 근처 해안을 항해하거나 상륙하여 탐사를 하는 일이 있었고 1834년에는 최초의 정착촌도 만들어졌어요. 그러나 존 배트맨이 특기되는 이유는, 호주의 원주민인 어보리진(Aborigine)들과 체결한 그 조약이 유럽인들이 현지인과 협상하여 토지를 취득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조약이라는 점에 있어요. 이 조약으로 그는 야라강(Yarra River) 근처의 2,000평방km 및 질롱(Geelong) 근처의 400평방km의 토지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원주민들에게 담요, 칼, 도끼, 가위, 돋보기, 밀가루, 손수건, 셔츠 등의 유럽인들이 생산한 물품을 넘겨주었고 1835년 8월 26일 당시의 뉴사우스웨일즈 주지사인 리차드 부크(Richard Bourke, 1777-1855)의 선언으로 공식화되었어요.
 
배트맨은 1820년대에는 검은 전쟁(Black War)이라는 태즈메이니아 정복전쟁에서 원주민 학살에 앞섰고 이것은 당시 영국인들의 기록에서도 확인되고 있어요. 그리고 1833년에 매독(梅毒, Syphilis) 진단을 받고 1835년부터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1837년에는 더 이상 걷지 못할 정도가 된데다 1839년에는 결국 그가 설립한 도시인 멜버른에서 38년의 짧은 생을 마쳤어요.
그는 멜버른 설립자라는 위상을 지녔으며 멜버른은 물론 호주 여러 지역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는 등 호주의 역사 형성에 기여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호주 원주민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분명 그가 태즈메이니아 정복전쟁에서 원주민들을 많이 죽인 것은 영국인들의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어보리진에 대한 배트맨의 시각은 동정적이었다는 견해도 꽤 있어요. 이런 이유에서 몇몇 지명에서는 배트맨의 이름이 빠지고 있어요.

멜버른은 남부의 빅토리아주(Victoria)의 주도로 2024년 현재에는 호주에 단 2개만 있는 인구 500만명 이상의 대도시 중의 하나로 자리잡아 있어요. 다른 하나는 동부해안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즈주의 주도 시드니(Sydney). 
인구는 시드니 쪽이 대체로 근소히 많았지만 올림픽에 대해서는 1956년에 멜버른이 호주 최초이자 남반구 최초의 개최도시를 취득했고 시드니는 20세기의 마지막인 2000년에 그 지위를 얻었어요. 단 1956년 올림픽 중 승마경기는 개막식이 열린 11월 22일보다 이른 시점인 6월에 스웨덴의 스톡홀름(Stockholm)에서 분산개최되었어요.

멜버른과 시드니의 지역감정은 아주 지독한 것으로 악명높았고, 영국의 대양주 6개 식민지를 통합한 연방이 1901년에 출범한 이후 그 연방의 수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그 지역감정이 발호되었어요. 결국 호주의 새로운 행정수도는 타협안으로서 뉴사우스웨일즈주내에 건설하되 시드니에서는 최소 100마일(=161km) 떨어진 곳에 세우는 방안이 추진되어 1913년에 두 도시의 중간쯤에 있는 게획도시인 캔버라(Canberra)가 설립되었어요.


4. 동부해안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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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Lady Musgrave Experience, 퀸즐랜드 관광청 웹사이트, 영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는 호주 동부해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상징하지만 의외로 이 시대에는 별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지도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 시대에는 항공관측이 많이 발달하지 않은데다 호주가 아시아 각국은 물론 유럽이나 미주에서도 아주 멀었다 보니 일단 방문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이곳은 생물체가 만들어낸 지형 중 가장 크고 우주에서도 관측가능한 곳으로 1981년에야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선정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1987년에 미국의 뉴스방송국 CNN이 세계 7대 놀라운 자연(Seven Natural Wonders of the World)으로 선정한 한편 호주에서는 퀸즐랜드 주정부가 2006년에 주의 상징으로 지정한 이래 그 다음해인 2007년에 호주 연방차원의 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아름다움은 수면 위는 물론 수면 아래에도 펼쳐져 있어요.
이곳을 탐사하여 세계최초로 기록으로 남긴 제임스 쿡은 그 수면 아래의 아름다움을 못 봤겠지만, 현대의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수중촬영기술 덕분에 그 아름다움을 잘 즐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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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Great Barrier Reef, Britannica 웹사이트, 영어


5. 뉴칼레도니아 섬
칼레도니아란 스코틀랜드(Scotland)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작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는 프랑스의 역외영토(France d'outre-mer)로, 누벨칼레도니(Nouvelle-Calédonie)라는 프랑스어 표기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당연히 공용어도 프랑스어이고 주민 또한 원주민 이외에도 프랑스계 백인들도 있어요.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영국의 해군장교 겸 탐험가인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으로, 해군 중령(Commander)이 된 1772년에서 1775년 사이에 걸친 제2차 항해에서 이 섬을 발견한 이후 스코틀랜드 북동부와 비슷한 인상이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섬의 이름을 정했어요. 한편 프랑스에서는 1788년에 라페루즈 백작 쟝-프랑수아 드 갈롭(Jean-François de Galaup, comte de Lapérouse, 1741-1788)의 원정대가 이 섬의 서안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탐험 도중에 실종되면서 라페루즈 백작 본인은 프랑스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고 이후 나폴레옹 3세 시대인 1853년에야 프랑스가 뉴칼레도니아를 복속시키면서 이 섬이 프랑스의 역외영토로 굳어졌어요. 

뉴칼레도니아는 니켈(Nickel)의 생산지로도 명성이 높아요.
니켈은 열이나 부식에 매우 강한 고내구성의 금속으로 화폐에도 사용되는가 하면 요즘에는 항공기엔진 등의 극한의 내구성이 필요한 분야나 각종 2차전지 등에도 많이 쓰이고 있어요. 세계 니켈의 25%가 바로 뉴칼레도니아 섬에 집적되어 있고 전세계 연간생산량의 10%인 200,000톤 정도가 뉴칼레도니아 섬에서 생산되는 등 니켈은 뉴칼레도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원이죠. 1924년 당시에도 세계적인 니켈 산지인 이곳은 1세기 뒤에도 여전히 그 명성을 이어 인도네시아, 필리핀 및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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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Trafigura-backed nickel mine seeks new partner for bailout, 2024년 1월 31일 MINING.COM 기사, 영어

이것이 뉴칼레도니아의 니켈광산 중에서도 특히 대규모인 고로 니켈광산(Goro Nickel Mine)의 항공사진. 여기에는 대략 니켈광석이 3억 7천만톤 정도 부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정련하면 순수한 니켈은 대략 592만톤 정도가 얻어진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광산은 브라질의 광업기업 발레(Vale)가 소유하면서 네덜란드의 수믹니켈(Sumic Nickel), 일본의 스미토모(Sumitomo)와 미츠이(Mitsui) 및 뉴칼레도니아 지방정부가 지분을 나눠갖고 있어요.  


6, 영국령 노포크 섬
노포크 섬(Norfolk Island)은 태즈메이니아의 일부로 분류되어 있다가 1856년 11월 1일부터 분리되었고 1914년 7월 1일부터는 호주로 귀속된 섬으로 영국의 대양주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면적 35평방km 미만의 이 작은 섬은 농경에 불리한 문제가 있어서 이미 영국인들이 18세기 후반에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무인도가 된 지 수백년도 더 지났지만, 지도에서 나오듯 태평양을 가로질러 영국의 북미식민지인 캐나다 서부와 영국의 남태평양식민지인 피지, 호주 및 뉴질랜드를 잇는 해저전선이 통과하는 섬이라는 데에서 노포크 섬의 중요성은 바로 보여요.

영국의 개척 초기에는 호주 본토와 마찬가지로 죄수의 유형지로 이용되었어요.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주지사 토마스 브리즈번(Thomas Brisbane, 1773-1860)이 그 섬의 적당한 크기와 열악한 환경에 주목하여 예의 노포크 섬을 "범죄자에게 최악인 유형지" 로 활용하기로 하고 그 이후 30여년간 죄수 유배지로 쓰기는 했는데 죄수들의 폭동이 빈발하는 바람에 결국 1855년에 마지막 죄수가 태즈메이니아로 이송됨에 따라 다시금 버려졌어요.
그 이후인 1856년부터는 남태평양의 핏케언제도(Pitcairn Islands)에 정착했던 주민들의 일부가 이 노포크 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포경업이 발전하면서 포경선단의 거점으로서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20세기의 시작 전에 포경업이 전세계적으로 쇠퇴한데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일본과 노르웨이를 제외하고는 상업적 규모의 포경업 자체를 영위하는 국가가 남지 않아서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고, 노포크 섬은 인구 2천명 남짓한 정착촌으로 남아 있어요.


7. 산호초
남태평양이나 인도양 등의 따뜻한 대양에서는 산호초(珊瑚礁)를 많이 볼 수 있어요. 특히 고리 모양의 섬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아서 환초(環礁, Atoll)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아요. 이렇게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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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here to stay in the South Pacific, 2015년 1월 8일 CN Traveller 웹사이트, 영어

이런 산호초는 유인도인 경우도 무인도인 경우도 모두 있는데다 산호가 계속 생육하고 수명을 다한 산호의 유해가 축적되어 가면서 섬이 커지는 경우도 있어요. 특히 유명한 환초로서는 1946년에서 1958년 사이에 미국의 핵실험이 실시되었던 마셜제도(Marshall Islands)의 비키니환초(Bikini Atoll, Eschscholtz Atoll)가 있었고, 위와 아래가 분리된 여성용 수영복의 이름이 비키니로 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구글지도에서 몇몇 산호초를 보면 활주로가 있는 산호초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 산호초는 현재 유인도거나 과거에 유인도였던 적이 있다는 것도 그렇게 확인할 수 있어요.


8. 에그몬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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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몬트 산(Mount Egmont)은 오늘날에는 타라나키(Taranaki)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통하는 뉴질랜드의 산으로, 북섬(North Island)에서 2번째로 높은 해발고도 2,518m(=8,216피트)의 성층화산(成層火山, Stratovolcano)이자 남쪽에 다소 낮은 봉우리를 가진 특이한 모습으로도 유명한 산이예요. 이름의 유래는 영국의 귀족이자 미지의 남쪽 땅(Terra Australis incognita) 탐사안을 지원해 준 제2대 에그몬트 공 존 퍼시발(John Perceval, 2nd Earl of Egmont, 1711-1770).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1770년 1월 11일에 그의 이름을 붙여서 한동안은 그렇게 불리다가 1986년 5월 29일부터는 당시 뉴질랜드의 국토부장관으로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Māori) 혈통인 코로 웨테레(Koro Wētere, 1935-2018)의 결정에 따라 마오리어 표기인 타라나키라는 이름이 병기되어 오늘날에도 두 이름이 모두 통용되지만 타라나키가 좀 더 많아졌어요.

여담이지만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관현악작품인 에그몬트(Musik zu Goethes Trauerspiel Egmont, op. 84)은 이 에그몬트 산과는 관계가 없어요. 에그몬트 산의 명명도 베토벤의 출생도 모두 1770년의 일이지만 여기에 언급된 에그몬트는 독일의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희곡의 주인공으로 인용된 16세기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귀족이었던 라모랄 판 에그몬트(Lamoraal van Egmont, 1522-1568) 백작이다 보니 무관해요.


9.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의 유산
남태평양 탐험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자면 역시 영국의 해군장교이자 탐험가인 제임스 쿡 대령(Captain James Cook, 1728-1779)이 최우선적으로 꼽힐 거예요. Captain은 해군대령이자 탑승하는 선박내의 최고책임자인 선장이기도 하고, 보통 탐험가로서의 커리어가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제임스 쿡 선장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러면, 현존하는 그의 초상화를 토대로 한 이미지를 소개해 볼께요. 그의 초상화의 원작자는 영국의 화가이자 정치가인 내서니얼 댄스-홀란드(Nathaniel Dance-Holland, 1735-1811) 준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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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제임스 쿡 선장의 탐험은 영국의 대외관계사 그 자체를 대표할 정도예요.
그렇게 길지 않았던 그의 51년간의 생애는 탐험 그 자체였고,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34세 때인 1762년에 결혼한 이후의 17년간은 영국에서의 부부생활보다는 지구 각지를 돌았던 기간이 더욱 길었을 정도였어요.

당시의 그의 탐험루트를 정리한 지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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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James Cook, Britainnica 웹사이트, 영어


1768-1771년의 1차탐험은 군함 엔데버(Endeavour)로, 1772-1775년의 2차탐험 및 1776-1779년의 3차 및 생애 마지막 탐험은 레졸루션(Resolution)으로 수행되었어요. 그 중 1차탐험에서는 뉴질랜드 일주가 있었고 2차탐함에서는 남위60도 이남의 남극권 진입을 달성하는 한편 3차탐험에서는 태평양을 남북으로 종단하여 베링해협을 통과하여 북위 60도 이북의 북극권 진입까지 달성한 뒤에 하와이에 도착했고 원주민들과도 우호적이었어요. 그것이 바로 유럽인이 하와이에 도착한 최초의 사례. 그러나 1779년 2월 하와이 섬 원주민들이 쿡의 원정대의 보트를 훔치는 사건이 일어나자 보복 차원에서 당시의 추장인 칼라니오푸(Kalaniʻōpuʻu, 1729-1782)를 납치하려 했고, 그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쿡은 원주민들의 무기에 찔려서 결국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했어요.
그 세 차례의 탐험루트는 거의 겹치지 않았지만, 모두 뉴질랜드를 경유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예요.
뉴질랜드의 북섬(North Island)과 남섬(South Island) 사이에 있는 해협은 쿡 해협(Cook Strait)으로, 그리고 남섬 남부에 있는 3,724m(=12,218피트) 높이의 큰 화산은 쿡 화산Mount Cook)으로 명명되었어요. 단 오늘날에 쿡 화산은 1998년에 아오라키(Aoraki)라는 원주민명이 더해져서 기존의 이름과 병기되는 방식으로 통하고 있어요.

여담이지만, 뉴질랜드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좀 대충인 경우가 많아요. 바다쪽으로 뻗은 육지로 항해의 길잡이가 되어 중요시되는 곶(Cape)에는 그냥 동서남북 방향이 붙어 있어요. 그렇게 동쪽은 이스트 곶, 서쪽은 웨스트 곶, 남쪽은 사우스 곶, 북쪽은 노스 곶으로.
또한 하와이주의 기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요. 바로 이렇게. 미국의 연방주의 기 도안에 외국의 국기가 들어간 것은 이것이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어요. 이것도 결국 제임스 쿡의 유산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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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hat’s the Story Behind Hawaii’s Flag?, 2008년 10월 21일 Hawai'i Magazine 기사, 영어




이렇게 호주, 뉴질랜드 및 남극편을 마쳤어요.
그 다음은 북서쪽의 인도양 방면으로 가 볼께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6 댓글

Lester

2024-05-18 17:45:47

본문이 길어서 코멘트를 분할해야 할 것 같네요.


A. 에뮤 전쟁은 대강은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까 웃지 못할 이야기가 가득하네요. 심지어 에뮤 군단 중에 리더격인 녀석이 지휘(!)를 했다는 건... 상대가 동물이라지만 동물학자가 나서야지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군대를 파견해서 큰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도 충격이고요. 대자연의 승리라기보다는 대책을 잘못 세운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노르웨이의 사슴 대몰살 덕분에 생태계가 살아난 것처럼 자연의 힘을 무시할 수도 없겠지만요. 캥거루와 코알라가 없는 건 글쎄요, 공식 표기나 자료가 없어서?

B. 1차자원이 많은 곳은 여러모로 부럽네요. 그나저나 슬슬 시들해지는 양꼬치 열풍의 양고기는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요.

D. 난학이라고 했던가요. 당시 일본과 네덜란드의 관계는 다른 나라들처럼 일방적이기보단 상업과 문화의 교류도 풍성했다고 하니 네덜란드식 표기를 따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고즈넉한 풍경이 딱 북부 지방 같네요. '북쪽 나라에서'였나 하는 일본의 전원일기격 드라마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리고 페리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크네요. 자동차도 싣고 나를 수 있을 듯.

E. 외부에서 유입된 전염병 때문에 몰살당하는 건 남미의 고대 문명들도 마찬가지였죠. 그걸 우생학으로 설명하다니 참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이 지도를 만들고 있을 무렵의 일본은 멸망하지 않고 어찌저찌 살아남았으니 저들보다 낫다는 생각의 발로였던건지...

F. 황제팽귄은 새끼가 귀여워서 광고부터 매체까지 폭넓게 등장하죠. 그나저나 지구가 온난화되면 남반구 해안에 사는 펭귄들은 냉지가 사라져서 서서히 남극으로 쫓겨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더운 지역에서도 살아남으면 그걸 펭귄이라고 봐야 할지도 미지수인데... 북극곰도 북미 대륙의 육지 곰들과 어찌저찌 뒤섞여 살아가는 걸 보면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상황일까요?

G. 시라세 노부에 대해서는 아문센 vs 스콧의 남극점 도달 승부에서 번외편으로 살짝 나오길래 이름만 아는 정도였는데, 그런 곡절이 있었군요. 정신론을 내세웠던 부분은 같은 섬나라 영국 출신인 스콧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스콧 또한 현지적응이라는 실용성보다는 '영국인이라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세우면서 과학 연구까지 눈독을 들이는 바람에, 연구장비는 무거워서 도움이 되지 않고 생존용 장비는 관리가 부실했던 등 수난이란 수난을 다 겪고 모두 사망했죠. 같은 영국인인 섀클턴이 성공과 업적에 눈이 멀기보다 생존을 택하여(본인 왈 "죽은 사자보다는 산 당나귀가 낫다") 전원 무사귀환이라는 불멸의 업적을 세운 것과는 정반대고요. 지금이야 군인도 명예로운 전사보다는 병력보존을 위해 생환을 우선시하지만, 당시 군인이었던 시라세 노부는 군국주의 시대상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 것인지... 2차대전 당시 가미가제를 비롯한 자포자기성 공격과 전략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지네요.

마드리갈

2024-05-18 23:30:16

이번에도 길고 자세한 코멘트에 감사드려요.


역시 호주의 자연환경은 특별한 데가 있어요. 그리고 다른 대륙과 이어지지 않았다 보니 그러한 점도 특이하고, 천연자원의 부존량이 많은 것도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지층의 소산이 아닐까 싶네요. 

캥거루와 코알라가 없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료가 없어서는 아닐 거라고 봐요. 예의 지도의 남미편에도 이미 여러 종류의 뱀이 많다든지 하는 것이 나오는데 사실 예의 유대류(有袋類) 동물은 그런 아마존의 크고 작은 뱀들보다 더욱 희소하다 보니 그냥 문제의 지도제작자들이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큰 듯 해요.


사실 하신 질문 상당수는 이미 본문 속에 답이 있어요.

국내에서 유통되는 양꼬치용 양고기 또한 호주산이 많아요. 게다가 호주 본토와 태즈메이니아를 잇는 페리는 실제로 자동차도 500대까지 적재가능하다고 소개해 두었어요. 저 페리도 충분히 크지만 대체투입될 예정으로 현재 건조중인 페리는 총톤수 기준으로 63%나 더 커져서 앞으로 수송력도 대폭 증가될 예정에 있어요. 그리고 페리라는 것은 사실 크기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국내의 각 도서지역을 연결하는 그런 작은 페리에서부터 저런 큰 페리까지 다종다양해요.


펭귄이 반드시 추운 지방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어요. 그렇다면 남반구의 각지 해안지대나 세계 각지의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펭귄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니까요. 확실한 것은 생물의 변화는 느린 동시에 빨라서 현재 살아있는 생물들에게는 이런 급격한 기후변화는 분명 매우 큰 고통이 되겠지만 일단 살아남은 생물들의 후대는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추측도 해 보고 있어요.


시라세 노부에 대해서는 따로 코멘트할께요.

마드리갈

2024-05-18 23:47:47

그러면 이제 시라세 노부에 대한 코멘트로 옮겨 갈께요.


시라세 노부가 일본육군의 군인으로서 활동한 것은 맞지만 그에 대해서 군국주의를 말하기에는 시대상이 맞지 않아요. 그의 확인된 군 경력은 1879년에서 1905년으로 일본의 군국주의화 경도가 시작된 시기인 1931년의 만주사변 및 1933년의 국제연맹 탈퇴 시점에서는 이미 군문을 벗어난지도 20여년은 크게 넘었어요. 그래서 시라세 노부를 군국주의와 엮기에는 부적합한 듯 해요. 


저는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의 탐험가로서의 능력은 분명 뛰어났는데 본인의 기준에 맞추어서 타인들을 후려잡은 게 아닌가 싶고 게다가 자신이 육군장교 출신인데다 러일전쟁 도중에 부상을 입고도 회복된 뒤에 진급한데다 그 이후 치시마열도 탐험 때에도 결국 살아남았던만큼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력이 있었다 보니 탐험가라면 당연히 자신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것이 타다 케이이치와의 대립의 원인이 된데다 결국 미수에 그쳤지만 독살시도까지 있었을 정도로 대립이 격화되어 있었던 것이구요. 그리고 그의 남극탐험은 스코트와는 다르게 목표를 무리하게 추진하다 죽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처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바로 변경하는 등 유연성도 꽤 있었다 보니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도 보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가 이후 여러 강연회를 다니며 발생한 수입으로 빚을 갚아나간 행적을 보더라도 반박의 여지는 충분히 있어요. 그렇게 거액을 진 사람들 중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시라세 노부가 명예로운 죽음을 우선시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요. 그리고 이미 그런 위기가 남극탐험 이전의 러일전쟁 및 치시마열도 탐험에서도 있었고.

Lester

2024-05-18 18:19:27

다음은 지역 관련 코멘트.


1. 6대륙 중에 유일하게 혼자 뚝 떨어져 있는 호주는 다윈에게 여러모로 생각과 연구의 바탕이 됐을 것 같네요. 물론 진화라는 게 여기저기서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외부의 영향 없이 스스로 일궈낸 결과란 것도 어떤지는 확인해 봐야 할 테니까요.

2. 인디언 퍼시픽은 열차 관련 책자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사막을 횡단하는 거라 경치를 구경하는 재미는 별로겠지만 그래도 침대열차니까 나름대로의 특별한 기분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차에서 공연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시끄럽다고 난리칠 테고...

3. 사람 이름이 배트맨이라니 적잖이 놀랍네요. 확인해보니까 베이트먼(Bateman)에서 e가 빠졌을 거라고 하네요. 하지만 처음에는 조약을 체결해서 토지를 매입해놓고 나중에는 원주민 학살에 앞장서다니... 이 또한 상명하복의 결과인지 본색을 드러낸 건지 더 연구가 필요하겠죠. 서구 문명과 다른 대륙 현지인들의 충돌이 대체로 학살과 착취로 얼룩진 것을 보면 저는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옆의 뉴질랜드는 1840년에 와이탕이 조약을 통해 마오리족을 보호하기로 결정했는데, 2023년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先住民)의 목소리 국민투표가 부결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인정되지 못한 걸 보면...

4. 그저 남국의 절경이라는 말밖에 안 나오네요.

5. 니켈은 잘 모르겠지만 광산의 소유와 지분에 대해서 살짝 궁금하네요. 소유는 타국의 광업기업이고 지분은 현지 지방정부와 다른 나라 기업이 나눠갖는다... 뭐 발레가 처음부터 광산을 만들었으면 당연하겠지만, 뉴칼레도니아 지방정부로서는 약간의 지분만 갖고 있는 걸로도 괜찮을까요? 단순무식한 제 생각으로는 소유자나 최대지분자가 싸그리 긁어가면 손해 아닐까 싶은데...

6. 주업이던 포경업이 쇠퇴했다면 뚜렷한 생업이 없다는 뜻일 텐데, 그 상태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 유령섬이 되는 걸까요?

7. 산호초인데 활주로를 놓을 수 있을 정도면 생각보다 지반이 든든한(?) 모양이군요. 그렇다고 관광객들 숙소 마련하겠다고 덕지덕지 건물을 세우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8. 엄청나게 인지도가 높지만 않다면 결국 선주민&현지인들의 이름으로 바뀌는 듯하네요. 우리나라 등산가 고상돈이 다녀간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구급이라 아직 그대로지만, 하산 중에 사망했던 매킨리 산은 결국 데날리로 바뀌었으니까요.

9. 제임스 쿡과 엔데버 호에 대해서는 탐험 관련 책자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미니어처를 사용해 엔데버 호의 내부 구조와 승무원들의 구성을 표현한 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선원들 말고도 온갖 학자들이 동승했다고 나와 있더군요. 올리신 제임스 쿡의 초상화에 대해 아내 엘리자베스 쿡은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별로라고 생각했다는 짜투리 내용도 재밌어서 기억나고요. 탐험루트를 보니 인도와 아시아를 정확하게 무시하고 지나간 게 신기한데,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아서 무시한 걸까요, 아무도 몰라서 가려고 하지 않은 걸까요?


p.s. 오랫동안(최소 약 1시간) 켜놓고 코멘트를 적다보니 로그인이 풀리네요. 보안상 당연한 조치이지만...

마드리갈

2024-05-18 23:59:43

호주대륙을 중심으로 한 대양주는 다윈의 입장에서는 그 지역이 자연의 신비를 가득 담고 있는 도서관이자 보물창고 그 자체였을 거예요. 그리고 오늘날의 생명과학과 의학의 비약적인 발달의 그 시작도 바로 다윈의 진화론에 있고. 그래서 그의 발견은 여러모로 의미깊어요. 그런 게 없었더라면 저는 작년말에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죽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인디언 퍼시픽은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로망 중의 하나예요. 언제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호화침대열차는 그 자체로 호기심이 안 갈 수 없어요. 이런 종류의 것으로는 호주의 인디언 퍼시픽이나 남아프리카의 블루트레인 등이 있지만 남아프리카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호주와 뉴질랜드의 차이는 아무래도 원주민계열 인구의 비율의 차이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네요. 호주의 경우는 원주민계가 3%도 되지 않지만 뉴질랜드는 16.5%로 원주민계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거든요. 게다가 유명인들 중에서도 마오리족 혼혈이 꽤 있어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성악가인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 1944년생) 또한 전형적인 영국계 백인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아버지가 마오리족 출신으로 성씨 또한 마오리족의 것을 쓰고 있다든지 하고 있어요. 그런 차이가 호주와 뉴질랜드의 세부사정을 다르게 한 것 같아요.


그럼 여기서 또 분할할께요.

마드리갈

2024-05-19 00:47:50

문제의 존 배트맨에 대해서는 저 또한 레스터님께서 생각한 것처럼 본색을 드러냈다고 보고 있어요. 영국인들이 그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해서 후대에 남긴 것은 역시 그가 주도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어요. 그나저나 배트맨이라는 성씨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고 저도 많이 놀랐어요.


호주의 이곳저곳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죠. 그래서 역시 인기 관광지인 듯해요.

그리고 이전 코멘트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태즈메이니아는 정말 일본의 홋카이도와 닮았어요. 말씀하신 1981년작 NHK 연속TV소설 북쪽 고향에서(北の国から) 방영 이후 이국적인 풍광이 인상적인 비에이-후라노지구(美瑛・富良野地区)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일본국유철도 말기인 1986년부터 후라노익스프레스(フラノエクスプレス)라는 4량편성의 특별사양 특급열차가 만들어져 2004년까지 운용되었고 그 이후 개조차량은 퇴역했지만 키하261계 특급기동차로 특급후라노라벤더익스프레스(特急フラノラベンダーエクスプレス, 공식사이트/일본어)가 기간한정으로 운행되고 있어요.


사실 뉴칼레도니아 현지의 광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딱 2가지만 생각하면 되어요. 문제의 뉴칼레도니아가 프랑스의 역외영토인 점과 각종 계약에는 독소조항이 꼭 들어간다는 것. 이것만 생각하면 되어요.

어차피 광산 자체를 떼서 옮길 수는 없는 법이고, 브라질 기업인 발레 소유라도 그 광산이 엄연히 프랑스 땅에 있는 이상 프랑스의 법을 어길 수는 없어요. 극단적인 경우를 들어 보죠. 항구까지 니켈광석을 운반해 와서 화물선에 실었다고 하더라도 프랑스 해군이 그 화물선을 억류하겠다고 하면 브라질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사실 그까지 안 가더라도 현지 경찰이 브라질 기업의 뉴칼레도니아 현지사무소의 계좌를 동결하겠다면 끝나죠. 즉 전근대사회의 동인도회사같은 행태는 불가능해요. 당장 쿠바 혁명 당시에도 카스트로의 편을 들었던 바카디 일가도 쿠바의 신생 공산정권을 자산을 강탈당한 뒤에 탈출해서 미국에 정착한 뒤에 다시 주류제조사 바카디를 세웠는데, UN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프랑스를 그렇게 만만하게 볼 나라가 있을까요? 경제의 영역은 아니지만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프랑스의 핵실험을 반대했다가 선박을 폭파당한 사례도 있어요.

그리고, 저런 계약은 누구든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독소조항을 집어넣어요.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의 역외영토에 설립된 지방정부이지만 그 니켈광석을 보유할 뿐 채굴, 운반, 유통 및 가공을 통한 제품생산의 능력은 없고 채굴은 브라질의 발레, 유통 및 가공은 네덜란드의 수믹니켈, 일본의 스미토모 및 미츠이 등이 나누어서 하는 것이고 이 중 누군가가 독주할 경우 브레이크를 강하게 걸 수 있어요. 앞서 말한 극단적인 경우처럼 프랑스의 정부기관이 사업 자체를 진행안되게 엎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경제대국인 프랑스를 신뢰할 나라는 없어지겠죠. 그리고 그런 사례는 애국적 소비로 시장을 왜곡하는 중국이나 침략전쟁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이키는 러시아나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북한 정도가 아니면 택할 메리트 자체가 없어요.


섬이 유인도였다가 무인도가 되는 이유는 여럿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주산업이 쇠퇴해서 결국 비워져 무인도가 되는 경우도 흔히 있고 각종 정책상의 이유로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보조금을 받고 이주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의 항속거리상 태평양상의 산호초 섬 위에 세워진 비행장도 이제는 항공기의 항속거리도 증가한데다 사람이 많이 살기에 부적당하여 유인도로 발전하지 못한 채 그대로 버려진 섬도 꽤 있어요. 그때 만들어진 활주로는 그 당시의 항공기에는 적절한 수준이었지만 오늘날의 경우는 경비행기 정도가 아니면 별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 정부기관의 정기적인 관리 차원이 아니면 접근하는 사람들도 없어요.


뭐랄까, 역시 원주민의 비중이 높으면 그렇게 되는 듯해요. 뉴질랜드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경우도 알래스카주는 인구 자체가 워낙 적은 땅이다 보니 원주민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게다가 20세기 후반부터 각계를 풍미중인 정치적 올바름(PC)의 영향이 여기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제임스 쿡의 활동시대에는 이미 인도와 아시아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영국이 영향력을 행사중이다 보니 딱히 탐험해야 할 가치를 못 느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 위해 정확히 피했을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항해술이 그렇게 정확히 기존의 알려진 지역을 피해 갈 수 있을 정도로까지 고도로 발전했다는 게 경이로와요.


이번에도 여러모로 면밀히 읽어보시고 코멘트하신 점에 깊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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