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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수사대] Prologue-XIX. 마도서

국내산라이츄, 2024-04-23 22:30:38

조회 수
43

괴담수사대는 살인사건 현장에 와 있었다. 보통 살인사건이 일어나 현장으로 출동해보면, 현장에는 범인이 아무리 깨끗하게 정리하려고 해도 피가 튀어 있었고, 과학 수사를 진행한 흔적과 함께 피해자가 쓰러진 곳에 하얀 선이 그려져 있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번 사건 현장은 달랐다. 

사건 현장에 있는 피해자의 몸에 피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추파카브라나 흡혈귀라도 왔다 간 건지 온 몸에 피란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 외에 겉으로는 피해자를 죽일 때 저항한 흔적과 목 옆부분에 칼로 찌른 흔적 말고 별도로 시신이 손상된 흔적은 없었다. 몇 번 똑같은 현장에 출동한 태훈의 얘기에 따르면, 요즘들어 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다 이렇다고 한다. 

“흡혈귀에 물리기라도 한 건가… ”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있다고? 아니, 있어도 한국인들은 마늘을 엄청 먹는데다가 이 사람은 기독교 신자라 집에 십자가도 걸어뒀는데 와서 죽일 수 있을 리가… ”
“여전히 많이 먹긴 하지만 요즘은 이전보다 마늘 먹는 양이 좀 줄어들기도 했고, 십자가를 두려워한다던가 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에 있는거잖아? 애초에 흡혈귀 전설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포르피린증인가 하는 병의 증상때문이고. ”
“니 말도 일리는 있는데, 내가 흡혈귀라면 마늘이고 십자가고 목을 물어서 피를 빨아먹지 목을 졸라서 죽이는 수고스러운 짓은 안 할 것 같은데. ”
“그것도 그래. 목을 물어서 피를 빨면 곧 얌전해지는데, 굳이 그런 수고스러운 짓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
“흡혈귀고 나바리고간에 두분 다, 사건 현장에 집중 좀 해주시죠. 지금 농담따먹기 할 시간이 아닙니다. ”

흡혈귀의 소행인지 아닌지로 얘기하던 파이로와 애시는 결국 미기야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서, 사건 현장을 마저 둘러보고 있었다. 집 안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걸어두는 기도문을 새겨 둔 나무판이 걸려있었고, 벽에 걸려있는 달력도 교회 달력이었다. 현관 입구와 안방 벽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예수 조각상이 걸려있었다. 

“혼자 사는건지 집이 휑하네. ”
“그러게… 가족은 없는건가? ”

집 안에 피해자 외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은 없었다. 정확히는, 피해자 외에 다른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흔적이 없었다. 방 하나가 아예 너저분한 상태로 손 하나 댄 흔적이 없는 걸 봐서는 아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모종의 이유로 급하게 집을 나간 듯 했다. 

“이렇다 할 단서가 없어. 저쪽 방이 비어있는 걸 보면 누군가 같이 살다가 나간 것 같으니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고… 영상은? ”
“죽은 지 딱 엿새째라 보긴 했는데, 목을 졸라서 죽이고 어딘가로 끌고 갔어요. 시신이 집 안에 있는 걸 보면 피를 여기서 모조리 뺐다는 얘긴데… ”
“영상 사라지기 전에 욕실 봐봐. ”
“욕실이요? ”
“생각해봐, 욕실에서 피를 뽑으면 뽑고 나서 번거로울 일이
덜할 거 아냐. 피가 튀었으면 현장에서 물로 씻으면 되고,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기에 돌리거나 그 자리에 버리면 그만이잖아. ”
“……! ”

라우드가 욕실에서 영상을 확인할 동안, 야나기는 이웃 사람들을 탐문했다. 하지만 이웃 사람들도 대부분 피해자를 이웃에 사는 사람 1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몇 명은 피해자의 얘기를 듣고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이제 시달릴 일은 없겠다며 안도하는 듯 했다. 

“그러고보니, 그 아줌마한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최근에 나갔어요. ”
“나갔다고요? 어디로 갔는데요?  ”
“그건 나도 모르지. 소리소문없이 집에서 나가서… 나가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안 알려주고 전화번호도 바꿨다고 들었어요. ”
‘절연이라도 할 셈인가…? ’
“혹시 딸이 왜 나갔는지 짐작 가는 건 있으세요? ”
“옆집에 살던 사람이 딸이 모아오던 적금까지 엄마가 몰래 깨서 교회에 갖다 바쳤다고 싸우는 걸 들었대요. 평소에도 마주치기만 하면 교회 다니라고 성화라 그 사람 싫어하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어요. ”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수사를 마친 야나기는 피해자에게 딸이 있었지만 돈을 모두 교회에 갖다 바치는 피해자를 보며 치를 떨고 결국 절연까지 하게 됐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평소에도 만나기만 하면 전도해서 피해자를 고깝게 보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피해자를 고깝게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짜증날 정도로 전도해서 일부러 그 사람 나갈 시간에는 장도 안 보러 나갔다고 할 정도였다. 힘든 일이 있어서 넋두리를 늘어놓아도 다 교회에 안 나가서 그러는거라고 앵무새처럼 전도하는 통에 학을 뗐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욕실에서 영상을 확인한 라우드는 용의자가 피해자를 욕실로 데려가 온 몸의 피를 최대한 빼 어딘가에 담고, 시체를 다시 원래 있던 곳에 던지듯 두고 물로 주변을 청소하는 영상을 보았다. 물로는 혈흔을 깨끗이 씻었을 지 모르지만, 감식반운 루미놀 반응이 대량으로 일어난 것을 통해 이 곳에 대량의 혈흔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여기서 죽이고 욕실로 가서 피를 뺐다는 건 알겠는데… 대체 그 많은 피를 어디에 쓰려고 담아간걸까? ”
“악마 숭배라도 하나… 그런 요상한거에 빠진 놈들이 사람 죽이기도 하잖아. ”
“음… 참, 피해자에 대해서 뭐 알아낸건 있어? ”
“최근에 가족이 절연을 했대. 그 전에 돈때문에 한번 다투는 걸 들었다고 했어. ”
“돈때문에? ”
“적금을 몰래 깨서 교회에 헌금으로 냈다나봐. 이웃 사람들 중에도 자꾸 만나기만 하면 전도해서 고깝게 보는 사람이 있었고. ”
“뭐… 그런걸로 죽음이 정당화되지는 않겠지만, 참… ”

현장 조사를 마친 미기야가 태훈과 얘기를 나눌 동안, 파이로는 집 한켠에 걸려있던 기도문이 새겨진 나무판을 보고 있었다. 나무판에는 ‘이 집에 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라고 쓰여있었지만, 결국 평화가 아닌 불화와 죽음만이 남아버린 집을 보니 어딘가 씁쓸했다. 파이로의 생전, 하늘님을 믿는다는 걸 들키면 순사들이 목을 치고 경을 친다던 시절보다는 낫지만 지금이 정말로 그 시절보다 나은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피해자들 모두 이 근처에 살고 동네 교회를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 외에는 아무런 연관점이 없어요. ”
“음… ”
“그러고보니,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살인이랑은 뭔가 달랐어. 피를 다 빼서 뭐에 쓰려는거지…? ”
“악마 소환이라도 준비할 셈인가? ”

괴담수사대는 사무실에 돌아와서 머리를 맞대봤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범인이 뭘 목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는지, 왜 피해자들이 모두 교회에 다닌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는지, 그리고 왜 피를 전부 뽑아서 가져갔는지. 이 정도면 난제신 라플라스마저 두손두발 다 들 것 같았다. 태훈에게 연락해서 더 알아보긴 했지만, 동네 교회를 다닌다는 것 외에는 나이도, 성별도 이렇다 할 공통분모가 없었다. 

“마침 있었군. ”
“……! ”

그러던 와중,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새까맣고 긴 머리를 대충 하나로 묶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여자였다. 이전에 호수공원에서 만났을때와 달리, 머리 위에 검은 왕관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붉은 달의 악마였다. 호수에 강림해서 벌레같은 것을 보듯 살인자의 귀를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갔던. 

“물건을 하나 찾고 있는데. ”
“물건? ”
“너희들이 맡고 있는 사건이랑도 관련이 있는 물건이야. ”
“……? ”
“연쇄살인 하나 맡았지? 피해자는 온 몸에 피가 하나도 없었고, 전부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
“……! ”

그녀는 돌돌 말린 양피지 하나를 건넸다. 양피지를 펼쳐보자, 거기에는 책이 그려져 있었다. 표지의 위쪽 반은 마치 불빛 하나 없는 밤하늘처럼 검고, 아래쪽 반은 기분나쁠 정도로 빨간 책이었다. 책 표지에는 제목이고 저자고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런 책은 본 적 없는데…? 제목도 없고… 서점은 고사하고 헌책방에서도 못 찾겠어. ”
“당연하지. 그 책은 팔기 위한 책이 아니니까. ”
“팔기 위한 책이 아니라고요? 그럼…? ”
“이건 마도서야. 책 주인이 잃어버린건지, 어디다 흘린건지 인간계에서 잃어버려서 찾고 있어. 누군가 이 책을 주워갔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 책은 절대 인간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거라 빨리 회수해야 하거든. ”
“그래서, 이 책이 이번 사건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데? ”
“그 책에 주기적으로 피로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죽어. ”

양피지에 적혀있는 설명에 따르면, 피로 그 책에 무언가를 길게 적을수록 제한시간이 늘어난다. 제한시간은 페이지당 하루이고, 제한시간 안에 피로 무언가를 적지 않으면 소유자는 잔인하게 죽는다. 대신 그 책에 본인이 원하는 것을 적으면 이루어지고, 미래의 일을 일기로 적으면 그대로 일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살인자가 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노리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을 가지고 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죽음을 늦추기 위해서였다면 시체에서 피를 전부 뽑아간 이유가 말이 된다. 최대한 많이 뽑아갈수록 많은 페이지에 글을 쓸 수 있고, 제한시간도 길어지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 ”
“음? ”
“당신이 말한 그 책, 악마의 책 아냐?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 피를 거기다가 써도 돼? ”
“신실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잘못된 방향으로 뒤틀린 사람이라면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르지. 그런 인간들은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을, 신을 등에 지고 선행으로 포장할 뿐이니까. ”

물론 살인자 입장에서 피해자가 신실한지 아닌지는 알 바 아니었다. 살인자에게 필요한 것은 책에 글을 쓰기 위한 잉크였고, 살인자에게 사람은 살아있는 잉크통일 뿐이었다. 

붉은 달의 악마는 책을 찾더라도 파이로와 야나기 외에는 어느 누구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말을 전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책은 살아있는 인간이 만질때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죽은 둘만이 괜찮다면서. 

“피를 꽤 많이 빼간 것 같던데, 그런 것 치고 살인사건이 꽤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았어요? ”
“피가 굳으면 글을 쓸 수 없잖아. 마장동에서 선지 사면 상처 났을 때 철철 나는 것 같은 액체상태가 아니고 약간 젤리같은 상태로 나와. ”
“그럼 그 상태로는 글을 쓸 수 없겠네요? ”
“그렇지.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먹거나 버리거나 두가지밖에 없어. ”
“그렇다는 건 며칠 후에 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얘긴데… ”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피가 굳어서 더는 쓸 수 없게 되거나 피를 다 쓰게 되면 또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다른 살인사건과 달리, 꽁무니를 뺀답시고 아무것도 안 하다가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살인자 입장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슬슬 경찰들도 순찰을 강화할거고, 교회에서도 신도들을 보호하려고 움직일거야. 그렇게 되면 아마 피를 얻기는 더 힘들어지겠지. ”
“그렇겠네요. 라우드 씨, 영상에서 범인의 얼굴을 보셨나요? ”
“둥근 안경 말고는 모르겠어요.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뭘 뒤집어 쓴 모습이라… ”
“흠… ”
“일단 이전 피해자들이 어느 교회에 다녔는지부터 알아볼게요. ”

라우드는 태훈에게 연락해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어느 교회에 다녔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괴담수사대가 현장에 갔던 피해자와 다른 피해자들이 전부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해자는 전부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어요. ”
“이 정도면 그 교회에 원한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 ”
“그건 잡아서 물어보면 알겠지… 일단, 살인자도 그 인근에 살지도 몰라. 한번에 그렇게 많은 피를 대중교통을 타고 운반하기는 힘드니… 무게도 무게지만 분명 피 냄새가 날 거야. ”
“살인자가 차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
“용기를 꽁꽁 싸매지 않는 이상,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운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면허가 있어서 렌터카나 공유 자동차를 빌린다면, 내부에 흘렸다간 업체측에서 보상을 요구할 게 뻔하고. 과속방지턱을 밟거나 차가 회전할 때, 브레이크를 밟을 때… 액체를 흘릴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잖아. ”
“듣고 보니 그렇네… 그 정도의 피를 차로 안전하게 옮기려면 트럭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지만 트럭 면허가 있을 것 같은 나이대는 아니었어. ”
“트럭도 용달 트럭이 아니라 택배 트럭같은 게 있어야 할걸요? ”

괴담수사대가 얼마 안 되는 단서를 토대로 살인자에 대해 추리할 동안, 애시의 예상대로 경찰들은 순찰을 자주 돌게 된데다가 인근 교회에서도 수상한 사람을 각별히조심하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았고, 어떤 교회에서는 혼자 사는 신도들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데려다 주기 시작했다. 그렇다보니 이전처럼 타겟을 정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 녹록치 않게 되자, 살인자는 처음에 자기 손에서 피를 내어서 글을 썼지만 그 양으로는 겨우 하루정도 연장할까 말까였다. 하지만 손에서 피를 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러다가는 빈혈로 죽을 것만 같았다. 

“어떡하지… 빨리 피를 얻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

피를 많이 얻은 것은 좋았지만, 그렇게 얻은 피는 얼마 쓰지도 못 하고 굳어버렸다. 생각보다 많은 양을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티가 안 나게 처리할 방법은 더더욱 없었다. 선지도 아니고 인간의 피를 먹어서 없앨 수 있을 리도 없다. 

책은 그런 그녀를 닦달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빨간 눈이 피를 흘리거나, 책상에 빨간 손자국이 놓여져 있거나, 창문에 까마귀가 날아와서 살인자를 쪼아먹을 기세로 쳐다보다 가곤 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빨간 손이 올라오기도 하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어떻게든 해야 해… 어떻게든… ”

한편, 슬슬 가져갔던 피를 못 쓰게 될 시기라고 생각한 괴담수사대는 도박수를 두었다.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다녔던 교회에 직접 가서, 살인자가 나타나는지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라우드가 지도로 확인해 본 결과, 그 동네에 교회는 그 곳 한 군데였고 다른 교회는 옆 동네라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그 곳 외에는 걸어서 갈 만한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 미기야는 혹시나 살인자가 나타나면 얼려서 붙잡아두기 위해 코우기에게도 연락을 했다. 

순찰도 강화된데다 교회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해 더 이상 혼자 사는 신도들을 노리기 힘들다고 생각한 살인자는, 이전처럼 집에 찾아가 죽이기보다는 일요일 오후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교회 밖에서 담소를 나누고 돌아갈 때 납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 교회 주차장에 숨어 타겟을 물색하던 살인자는 마침내 타겟을 정했고, 양 손에 밧줄을 꼭 쥐고 타겟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저 사람인 듯 합니다. 도망치기 전에 잡아야 해요! ”
“……! ”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마치 커다란 얼음 속에 갇힌것처럼, 주변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몸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있는 힘껏 로프를 든 팔을 뻗으려고 했지만, 등부터 시작된 냉기가 전신을 감싸면서 목을 남긴 모든 신체부위가 얼어붙어, 몸이 떨리고 심장이 뛰는 와중에도 살인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 능력을 이렇게도 써먹을 줄이야… ”
“능력은 쓰기 나름이니까요. ”

뒤에서 살인자를 얼린 두 사람은 메피스토의 힘으로 살인자의 모습을 잠깐 숨기고, 지금 살인자가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둘러대며 어서 사람들이 돌아가도록 했다. 살인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코우기가 연락했고, 곧 괴담수사대가 현장으로 달려왔다. 

“굿 타이밍. 사람들은? ”
“저희가 다 돌려보냈습니다. ”
“고마워, 덕분에 생포했어. ”
“그나저나 책은 어디에 있죠? ”
“뭐, 뭐, 뭐야! 당장 이거 풀어! 풀어달라고! ”

코우기와 함께 온 메피스토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봤지만, 살인자의 근처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옷 속에 있거나 다른 곳에 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와중에 내가 저놈때문에 일요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느냐며 열받은 파이로가 발로 차서 얼음을 깨버리려는 걸 현이 간신히 뜯어 말렸다. 

“자, 그럼 살인자씨. 얘기를 들어보실까. ”

눈앞에 몰려든 사람들과 거대한 가윗날을 본 살인자는 패닉에 빠졌다. 지금 살인자에게 있어서는 잡혔다는것보다도 실패했다는 게 더 큰일이었다. 새벽까지 새빨간 눈들에게 시달리다 겨우 잠들었는데, 이대로 끝이구나, 살인자는 절망했다. 그리고 파이로가 뭔가를 물어보려던 찰나, 등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쥐떼가 찍찍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같기도 한 수수께끼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러나세요, 휘말리면 위험합니다! ”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메피스토가 코우기와 괴담수사대를 물러나게 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절규하는 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절규하는 소리가 등 뒤로 가까이, 파도치듯 밀려오면서 등 뒤에서 무언가가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위험하다, 살인자의 본능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지만 두 다리도 두 팔도 움직일 수 없었다. 

-쩌저적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살인자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등 뒤에서 절규하는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붉은 손들이 빠져나와 살인자를 잡아당겼다. 막 얼음이 녹아 도망치려던 살인자는 그대로 손들에게 잡혀버렸고, 동시에 땅이 갈라지면서 손들과 함께 살인자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땅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그 자리에 책이 놓여있었다. 

“……! ”
“책은 찾은 모양이네. ”

등 뒤에서 붉은 달의 악마가 나타나 책을 주웠다. 

“하여튼, 칠칠맞단말이지… 위험한 물건은 좀 금고같은 데 보관해 두라는데도 말을 들어먹지를 않아서 이 사달을 내니… ”

책을 주운 붉은 달의 악마는 대충 감사 인사를 건네고는 툴툴거리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현장에 남은 것은 코우기와 메피스토, 그리고 괴담수사대뿐이었다. 현은 그나마 작은 교회이고 마지막 예배라 이 참사를 사람들이 보지 못 했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메피스토씨는 어떻게 여기에 오신건가요? 그리고 두 분은 어떻게 만났고요? ”
“붉은 달의 악마가 저에게도 왔다갔었습니다. 그 책이 워낙 위험한 물건이다보니 면식이 있는 곳에는 다 들러서 도와달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
“지도 앱 보면서 오다 보니 뒷길로 오는 중이었는데, 오다가 만난 메피스토씨가 주차장에 살인자가 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뒷길로 들어가서 얼린거고요. ”

이제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올 일은 없다, 그리고 살인자는 땅 밑으로 갑자기 사라져 실종 상태가 되었다. 일단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신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신이라면 그런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괘씸죄까지 더해서 지옥에 보내버릴 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면죄부 취급한다는 걸 알게 되면,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매우 불쾌할테니까요. ”

아무리 자비로운 신이라 한들, 손에 자신이 창조한 생명의 피를 여럿이나 묻힌 인간을 곱게 봐 줄 리가 없다. 아무리 자비를 구하고 용서를 빌어도 무수히 많은 손들과 함께 땅 밑으로 끌려간 살인자가 영원히 고통받을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건이 끝난 후, 괴담수사대는 붉은 달의 악마에게 답례로 로마네 콩티를 받았다. 로마네 콩티를 받아든 미기야가 대체 이 비싼게 어디서 났냐고 묻자, 붉은 달의 악마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대답했다. 

“그거 내 동생이 산책하는데 어떤 남자가 마시라고 주고 갔대. 근데 나나 동생이나 와인은 별로 안 좋아해서. ”
“어디서 들었는데, 교회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는다던데… 혹시 그것때문인가요? ”
“나나 동생이나 빵순이지만, 나는 와인이 입에 안 맞고 동생은 술을 아예 안 마셔. ”
“악마라고 해서 신성한 것을 무조건 멀리하는 건 아닌가보군요. ”
“뭐, 그렇지. 우리는 그냥 신의 이면일 뿐인거니까. ”
국내산라이츄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4 댓글

마드리갈

2024-04-24 13:25:01

읽고 나니까 오늘의 서늘한 날씨까지 맞물려서 확실히 오싹해지네요. 게다가 없어진 혈액의 행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종교가 만들어진 역사적 이유와 그 종교가 실제로 인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대조하면 참 역설적이라고 할까요. 분명 인간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종교가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어버려요. 종교2세(宗教二世)라고 불리는, 부모가 자녀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환경 및 그 피해자를 지칭하는 일본의 미디어용어도 같이 생각나면서.

악마는 신의 이면일 뿐...이 말이 꽤나 깊게 울리고 있어요.

국내산라이츄

2024-04-24 22:20:16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에서 언급한 종교2세 외에도 여러가지로 말이죠. 


아울러서 이 글에서 기독교를 비방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SiteOwner

2024-04-28 16:44:56

아무리 살인자라도 자신이 살인의 객체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전에 동생과 함께 신작드라마 수사반장 1958을 보다가 주인공 박영한 형사가 조폭들의 회식자리에 홀로 뛰어들어서 가져온 자루를 열어서 뱀을 꺼내자 조폭들이 일제히 겁을 먹는 장면을 보자 동생이 "조폭에게도 뱀은 무섭구나..." 라고 반응한 게 같이 생각났습니다(수사반장 1958의 "새끼" 와 "자식" 의 차별 참고).


그나저나 혈액을 탐내는 것은 여러 문화권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역시 공통적으로 공포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국내산라이츄

2024-04-28 18:55:51

헬싱에서 인테그라가 세라스 빅토리아에게 ‘피는 생명의 화폐’라고 하던데, 다량으로 흘리면 생명을 잃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물을 바칠때도 피를 보고, 예의 마도서같은 경우에도 피로 글씨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생명을 하나하나 깎아서 글을 쓰는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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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이니까 담담하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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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4-05-05 1
2453

설정화로 쓸 예정인 그림(아직은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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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하트어택 2024-05-04 9
2452

[괴담수사대] 외전 40-소름돋는 이야기 스레

| 소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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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5-04 14
2451

[괴담수사대] 삼신당의 두 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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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4-28 25
2450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7. 호주, 뉴질랜드 및 남극편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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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4-04-27 62
2449

[괴담수사대] 외전 39. 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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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4-27 28
2448

[괴담수사대] XIX-1. 단장의 고통

| 소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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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4-25 37
2447

Ai로 그려보자 - U149 +10Years -Tachi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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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etriever 2024-04-25 61
2446

[괴담수사대] Prologue-XIX. 마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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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4-23 43
2445

Ai로 그려보자 - U149 +10Years -Saku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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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etriever 2024-04-22 89
2444

마스터, 나쟈 선생, 쇼콜라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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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4-19 45
2443

[괴담수사대] XVIII-8. Int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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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4-19 50
2442

[추가] 연습이니까 담담하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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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4-04-18 87
2441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6.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편

| REVIEW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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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4-04-10 154
2440

Ai로 그려보자 - 시마다 & 니시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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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etriever 2024-04-07 46
2439

Ai로 그려보자 - 백여우 & 흑여우

| 스틸이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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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etriever 2024-04-05 49
2438

[괴담수사대] 외전 38. 딱지

| 소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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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3-31 43
2437

즉흥적이지만 꽤 쓸만한(?) 그림

| 스틸이미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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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하트어택 2024-03-31 70
2436

[괴담수사대] 시즌 18을 마무리하며

| 설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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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3-30 46
2435

[괴담수사대] XVIII-7. 사명

| 소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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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라이츄 2024-03-30 52

Polyphonic World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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