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써 보는 단편입니다. 2025년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편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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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그런 데가 있다고?”
도라고등학교 동아리 ‘도컬트’의 동아리방. 연희는 후배 ‘레나’에게서 방금 그 문제의 에스테숍에 대한 이야기를 막 들은 참이다.
“네, 선배님. 진짜라니까요. 성격을 반영해서 최상의 얼굴으로 만들어 준다고요.”
“어, 정말...”
레나는 자신이 받은 그 에스테숍의 명함을 내민다.
[당신의 얼굴이 바뀐다 - 상상이 현실로!]
[행복의 에스테숍 – 당신도 최고의 얼굴이 될 수 있습니다]
[문의는 아래로 – 미코를 찾아 주세요!]
“꽤 유명한 곳인가 봐요, 그렇죠? 여기 보면요...”
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SNS의 사진 몇 장을 보여준다. 다들 별 5개씩은 기본으로 주고 있고, 거기에다가 원장 선생과 직접 찍은 인증사진까지 있는 걸 보면 명성은 알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미스터리를 주로 탐구하는 동아리잖아. 레나, 이제는 할 게 없어서 이런 것까지 가져오면 어떡해?”
“에이, 선배님도 한번 이런 거 받아 보라고 제가 특별히 가져온 건데...”
“그런가...”
사실, 연희 역시 요새 얼굴이 푸석푸석해지는 걸 느끼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런 미스터리나 오컬트 쪽을 파고드느라 자신의 미용에는 조금 소홀히 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래, 그거 한번 줘봐.”
연희는 명함을 받아든다. 주소는 쓰여 있지 않고, 다만 연락처만 나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문구가 강렬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멀면 말짱 도루묵이잖아.”
“에이, 그렇게 멀지도 않아요. 바로 이 근처인걸요? 걸어서 10분도 안 걸려요,”
“뭐야, 정말? 어디, 나도 한번 가 봐야지...”
그렇게 그날 수업이 끝나고, 연희는 문제의 그 에스테숍에 발을 들여놓는다. SNS에서 본 사진들 그대로 내부는 깔끔한 데다가, 출입구에 전시해 놓은 후기글들이 이곳의 명성을 보여 주는 듯하다. 접수 데스크 쪽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네, 아까 전화하신 분이죠?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가게 안쪽에서, 이 에스테숍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온다. 한눈에 봐도 SNS에 나오는 인플루언서처럼 보이고, 마침 요즘의 트렌드인 어깨의 숄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여기에 앉으면 된단 말이죠...”
“네, 맞아요. 마음의 준비는 잘 하고 온 거겠죠?”
연희는 그 미코라는 가게 주인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의자 옆에 놓인 매뉴얼을 읽어보고는, 옆에 놓는다. 잠시 뒤 미코의 시술이 시작된다. 클렌징과 얼굴 마사지, 여기까지는 다른 에스테숍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자... 이제 기다리시면...”
미코가 방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황갈색의 병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그걸 보자마자, 연희의 머릿속에는 뭔가 지나가는 것 같다. ‘촉’이다. 연희가 그동안 수많은 ‘이상한 물건’들을 봐 오며 느꼈던,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그런 것이다. 연희의 입 속에 순간적으로 마른침이 삼켜진다.
“이게 뭐죠... 설마?”
“하하하! 처음 우리 가게 오시는 분들은 다들 이걸 보고 놀라죠. 뭐라고 해야 하나... ‘비법 세정수’라고 해야겠죠?”
그러고 보니, SNS의 게시글들 모두 공통적으로 그 세정수를 언급했다. 무슨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말했는데, 연희가 막상 그걸 받아보니, 다른 차원의 무언가다. 미코가 그 세정수가 밀봉된 것임을 확인해 주고, 봉인을 뜯은 다음 그걸 연희의 얼굴에 골고루 발라 주었는데, 1시간쯤 지나고 마무리 마사지를 끝내고 일어나 보자, 전과는 달리 얼굴에 윤기가 확 돌고, 세포가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무엇보다도 눈매가 완전히 바뀐 것 같고, 시술을 받은 덕분에 이목구비도 더 뚜렷해 보인다.
“어때요, 잘 됐나요?”
“네... 덕분에요!”
“그러면 저희 ‘행복의 에스테숍’ 많이많이 홍보해 주시고, 또 와 주세요!”
그 ‘또 와 달라’는 말이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들린다. 마치 꼭, 내일 또 와서 그 세정수를 얼굴에 발라서, 계속계속 마법에 걸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연희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입을 마스크로 가린 한 여자가 그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딱 보면 재벌 집의 며느리라든가, 아니면 TV에 나오는 유명 배우들이 입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인데, 연희가 한번 보자마자 참아줄 수 없을 만큼의 ‘생선 썩는 것 같은’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다. 연희를 향해서도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입을 연다.
“저 사기꾼의 집에 다녀오는 거니?”
“네? 사기꾼이라니...”
그 여자는 연희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이자, 자기 사진까지 꺼내서 보여준다. 과연 그 여자의 말대로, 과거의 사진은 정말로 아름다워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의 반응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다.
“두고 보라고! 너도 그 사기꾼의 말에 속았다가는 추해질 수가 있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살짝 들어가 보니, 어느새 미코와 그 여자의 드잡이가 벌어지고 있다. 드잡이라기보다는, 마스크를 한 여자의 일방적인 항의에 가깝지만.
“이 사기꾼아, 어떻게 했길래 내 얼굴이 이렇게 되는 거야?”
“저기, 고객님, 제가 그건 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 순간, 거울에 비친 그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마스크를 미코의 앞에서 확 벗은 것이다.
“네가 시술해 준다고 꼬드겼잖아! 그래서 내 얼굴이 이렇게 된 거고!”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전염병에 걸린 것같이 수포가 번져 있다. 거기에다가 그 수포는 손에까지 번지려는 게 보인다.
“내가 너를 반드시 감옥에 보낼 거야. 알았어?”
그 말을 들은 연희는, 서둘러 그곳을 벗어난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보니, 피부가 온통 가려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미코의 시술을 받은 얼굴은 그대로지만, 얼굴에 수포가 생긴 그 여자의 말을 듣고 나니, 듣기 전과는 사뭇 다르게 이 상황이 다가온다.
“도대체 뭐야... 나도 설마 저렇게 수포가 생기는 건가...”
하지만 미코가 신신당부한 게 있다. 절대 오늘 밤까지는 얼굴을 만지면 안된다는 것. 괜히 조바심이 더 나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다음날, 연희는 수업을 마치고 나서, 이번에는 다른 후배 2명과 함께 그 에스테숍으로 다시 간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 걸쳐서 미코에 대한 후기를 수집해 봤는데, 어떤 사람들은 얼굴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는 글이 보였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강한 불만을 품은 글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무슨 사기를 다 쳐요, 그런 데서?”
“나도 모르지. 예뻐지고 싶어지는 열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잖아?”
후배들은 그렇게 자기들끼리 이야기꽃을 막 피우기 시작하고 있다.
“레나, 로사, 이제 다 왔어. 미코 씨 만나면...”
그런데, 에스테숍에는 미코 말고도 또 다른 사람들도 더 있는 모양이다. 살짝 보니, 경찰들이다. 미코는 크게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경찰들은 사무적으로 거기 있는 황갈색의 병을 들여다보고 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저희 민원인분이 이걸 확인하고 싶다고 하셔서...”
“네, 하시죠...”
그때, 연희는 어제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오른다. 얼굴에 수포가 잔뜩 나서, 미코를 사기꾼이라고 불렀던 그 여자는, 그 황갈색의 유리병을 두 손에 하나씩 들고 깰 듯 말 듯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미코는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여자를 말리려고 하고 있었다.
“설마 저게 그 비법 화장수인가?”
“그런 것 같은데요. 한번 보죠.”
연희는 미코의 눈에 띄지 않도록, 먼발치에서 몸을 숨기고서 지켜본다. 경찰들은 시험지를 그 황갈색 병에 넣어 보고, 그걸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런데, 미코와 연희의 눈이 마주친 모양이다.
“어어...?”
“거기서 뭐 하니?”
“네...? 저는...”
“뭔가 궁금한 게 있나 본데...”
연희는 그 길로 꽁무니를 빼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미코가 있는 시술방까지 들어간다. 마침, 그 경찰들이 문제의 액체의 테스트를 마친 듯하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경장님.”
“어... 그래? 뭐지?”
“그냥 평범한 물입니다.”
“어... 물? 정말?”
“네. 순도 100%의 물입니다.”
“그래...”
경장이라고 불린 선배 경찰관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이지만, 곧 그의 시험지도 병 안의 액체는 순수한 물이라는 결과를 보인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미코가 그렇게 말하자, 경찰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에스테숍을 떠난다.
“어제 본 손님이죠? 아까 몰래 들어온 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죄송합니다. 그건...”
“됐어요. 어제 저보고 사기꾼이라고 한 그 손님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는가 보군요.”
“맞아요.”
“저에 대해 부정적으로 쓴 후기글도 좀 봤겠죠.”
“맞아요.”
“결국,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마음먹기... 라니요?”
“제게 있는 능력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정신상태가 반영되어, 얼굴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런 거겠죠. 저를 사기꾼이라고 했던 그 손님, 알고 보니까 이런 전력이 있던 분이었어요.”
미코가 뉴스 기사 몇 개를 띄워 보여준다. 모두, 백화점에서 점원에게 무릎꿇기를 강요하고, 주차장에서는 늦게 해 준다고 로봇을 망가뜨리는 등, 전형적인 ‘재벌 집안의 행패’ 이야기들뿐이다.
“제게 처음 왔을 때도 제법 거만하게 굴었던 것 같아요. 아랫사람 대하듯 했고, 가게를 나서면서도 ‘잘 안 되면 책임지게 할 것’이라며 무시하는 모습이었죠.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그리고 손님도 겪었다시피, 저는 그저 평범하게 마사지를 하고, 세정제와 클렌징, 이런 것들뿐이에요. 반대로 호평을 하신 분들은 떠올려 보니까 다들 저를 믿는 분들이었죠. 이것이 사실이고, 저는 숨길 생각이 없어요.”
“정말이죠...”
연희는 미코의 그 말이 자못 믿기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도 할 겸 되묻는다.
“정말 한 말들, 모두 사실이죠?”
“네.”
가게를 나오는 길에, 후배들이 연희에게 말한다.
“그런데요, 선배님, 정말 저 가게 주인이 무슨 초능력자라도 되는 걸까요? 마음먹은 대로 얼굴을 성형하는 그런 능력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죠...”
“에이, 무슨! 그냥 평범한 에스테숍일 뿐이라고! 레나, 이상한 소리도 잘 해.”
연희는 뒤돌아보며 말한다.
“그래, 너희들 좋을 대로 생각해도 좋아. 나는 시술 결과에는 만족스러우니까.”
“그런데 정말... 그 분이 초능력자면 어떡하죠?”
“에이, 아니라니까! 그냥 피부병이 있는데 떠넘기려던 사람이었다니까!”
사실은, 그렇게 말해 놓고도, 연희의 생각 한쪽에는 아직 불안감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제 여기에 왔을 때부터 각오했던 바다.
“그래... 정말 마음먹은 바가 좌우한다면, 내 얼굴은 더 나아지겠지. 적어도 그저께보다는 말이야.”
“정말요? 선배님, 너무 휘둘리는 건 아니죠?”
“에이, 아니라니까, 정말이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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