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 예담의 집 근처. 리암이 자기 가방에서 고글을 하나 꺼내 들고 있다.
“봐봐. 이걸 쓰면 더 잘 보일걸.”
왜 그러는지 몰라서 리암을 돌아보던 예담에게 리암이 고글을 하나 씌워준다.
“아니, 이게 왜... 그런데 이게 뭐죠...”
그렇게 말하다가, 예담은 리암이 왜 자신에게 그것을 씌워줬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무언가 보인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유독 형광색으로 빛나는 발자국. 예담의 눈이 확 뜨이는 것 같다.
“오... 이게 혹시 형이 쫓는 그...”
그런데, 답은 바로 뒤에서 들려온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음성이다.
“오랜만이야, 리암? 어제부터 계속 나 쫓더라?”
“라티카... 너!”
“그래. 리암, 잘 지냈어? 이렇게 얼굴 툭 까고 보니까, 좀 솔직해졌지?”
예담은 그 목소리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다. 목소리만 익숙한 게 아니다. 얼굴도 본 적이 있다. 예담의 기억이 맞는다면, 블라디미르와 싸울 때 옆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때를 기점으로 블라디미르의 공세도 끝나 버리고, 예담은 손쉽게 블라디미르를 이길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자신이 세라토 교구의 ‘제나 회당’ 소속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강사들의 명령을 받아 이렇게 한 것이라며, 강사들의 이름까지 다 말했다. 물론 그 이름을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은 예담도 알 것 같다. 바로 그때 메로비우스의 얼굴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 라티카라는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건지, 예담은 쉬이 짐작되지 않는다. 아는 얼굴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방해하지 말고 좀 옆으로 가 줄래?”
“안돼.”
리암이 그렇게 말하자, 라티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역시 오랜만에 만났는데 똑같네, 똑같아. 그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 리암 아니랄까 봐. 그렇다면 방해꾼으로 간주해야겠는데?”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런데, 리암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옆에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뛰어나오더니 손에 플레잉 카드같이 보이는 것을 들고서 휘두르는 동작을 한다. 리암이 급히 피해 보려고 하지만, 무언가 베인 것 같다.
“어엇, 이게 뭐야!”
순간, 리암의 팔에는 몇 개의 베인 자국이 보인다. 모두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 같은데, 보나마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가 한 게 분명하다.
“경고할 테니, 당장 여기서 빠져. 나는 저 중학생하고 할 일이 있으니.”
“네가 저 애하고 무슨 할 일이 있다고? 나는 그게 더 이상한데.”
리암은 라티카의 의도와는 달리,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고, 오히려 라티카의 앞에까지 와서 라티카를 마주 본다.
“우리는 말이야, 이 큰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고. 생각해 봐. 그냥 애 하나 잡아 오면 되는데 2천만 리라씩이나 준다니까. 이거 정말 수지맞는 거 아냐?”
“그랬나 보군...”
리암은 물론, 예담 역시도 별로 요동하지도 않고 있다. 라티카와 같이 온 여자는 약이 더 오른 모양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라티카를 제치고 앞으로 나서는 모양새까지 한다.
“언니, 저 녀석들 그냥 제가 확 한번에 처리해 버리면 안 돼요?”
“아, 그래. 대신, 민하 너, 멋대로 행동하다 나자빠져도 책임 못 져.”
민하라고 불린 그 여자는 라티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한다. 오른손에만 있던 카드가 왼손에도 들려 있다. 거기에다가 자신은 더 많은 걸 준비했다는 걸 과시라도 하듯, 어깨에 비스듬히 멘 가방에는 카드 모양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리암은 이미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뒤에서 지켜보는 예담에게는 나서지 말라며 손을 들어서 막고는, 앞에 있는 민하에게 달려든다. 민하는 비웃는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손에 든 카드를 다시 리암을 향해 휘두른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
“어엇?”
오히려, 민하가 나가떨어진다. 바닥에 쓰러진 민하의 팔과 다리에는, 아까 리암에게 했던 것과 같은 날카로운 카드에 긁힌 상처가 곳곳에 보인다.
“어째서 내 능력이 튕겨 나가는 건데! 이런 적은 없었다고!”
민하가 약이 올랐는지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서 리암에게 달려들려고 하지만, 라티카가 제지한다.
“왜, 왜요?”
라티카기 ‘가자’는 눈치를 주자, 민하는 되묻는다.
“에이, 언니, 그래도 제가 막 시작한 건데...”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다음 기회를 노리자.”
“그래도...”
민하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곳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라티카에게서 몇 번 더 눈치를 보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라티카의 뒤를 따라간다. 정작 라티카 역시 아쉬움이 남은 듯한 표정이다.
“뭐지...”
예담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리암의 팔에 벤 자국이 있는 걸 보더니, 급히 달려간다.
“괜찮아요?”
“아, 나는 괜찮으니까, 네 갈 길이나 가.”
리암은 그렇게는 말하지만, 상처가 쓰린 건 어쩔 수 없는 건지, ‘쓰읍’ 소리를 입 안으로 삼키려 한다. 예담이 머뭇거리자, 리암은 손짓을 하며 ‘가라’는 말을 한다. 예담은 하는 수 없이, 계속 학교로 향한다.
그렇게 예담이 학교에 다다랐을 때, 예담의 눈에, 교문에 걸린 마스크가 보인다. 그 마스크를 보자마자, 예담의 머릿속에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
“맞아... 어제 누가 나한테 보낸 메시지 중에도 마스크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민이 어제 보냈던 메시지다. 예담이 자세히 보니, 그 마스크와 문양이 똑같다. 짐승의 이빨의 들쭉날쭉한 형태까지 똑같다.
“에이, 누가 관심받고 싶어서 저러나...”
그러다가, 예담의 머릿속에 또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어제 갔던 도서관에서다. 확실히, 예담은 저 문양이 있는 마스크를 봤었다. 그런데 그게 학생 중 한 명인지, 아니면 교생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서 보면 알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런데, 예담의 앞으로 로드리고, 아마데오, 그리고 미겔이 지나간다. 예담에게 그 순간, 무언가 기시감이 든다.
“어, 잠깐!”
“왜 그러니?”
로드리고가 예담을 돌아보며 말한다. 순간 예담은 어제 봤던 사람이 로드리고나 아마데오, 둘 중 한 명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둘이 좀 많이 닮아서, 누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다른 게 아니라... 저... 그게...”
“인사할 거면 그렇게 너무 얼어 버린 것처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어서 들어가.”
그러고 보니, 예담의 주위로 어느새 더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다. 다들 마스크를 보고 뭐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예담을 한 번씩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중에는 도서부 선배인 세훈도 보인다. 세훈을 보자마자, 예담은 당황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한다.
“아니, 제 마스크 아니라고요! 저는 감기도 안 걸렸고, 뭘 숨길만 한 상황도 아닌데... 정말이라니까요!”
“그래, 누가 너보고 했다고 하는 거니? 나는 그저 궁금해서 보고 있는 건데.”
세훈의 그 말에 예담은 한결 안심되는지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마스크를 보고서 괜히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마스크하고... 말을 이상하게 하는 거하고... 진짜로 상관이 있는 건가.”
예담은 고개를 흔들며, 교문 안으로 들어선다. 들어가는 길에, 사쿠라와 지젤, 그리고 에스티가 보인다.
“아니... 나 진짜 저 마스크가 왜 저기 걸렸는지 모른다니까. 진짜야.”
“아, 안 물어 봤는데.”
“네 일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기냐, 지젤!”
“우리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자.”
“아, 알겠어.”
그리고 그 시간, 라티카는 미린중학교 근처 소공원 벤치에 앉아서 다비드와 통화하고 있다. 아까 예담을 만났을 때의 의기양양한 모양새와는 달리 목소리가 좀 많이 죽어 있다.
“네, 선배님. 처음에는 실패했는데...”
전화 너머의 다비드는 라티카보다도 더, 어쩌면 다비드 본인이 직접 예담과 싸운 게 아닌가 생각될 만큼 초조하다.
“오늘 무조건 해야 해! 너 학교 안에 네가 아는 후배 있잖아! 그 애들을 이용해! 안 그러면 내가 너, 당장에 모듈 하우스에서 나가게 할 테니까!”
다비드의 일견 다급하고도 재촉하는 그 말에 라티카는 바로 대답한다.
“네, 선배님. 오늘 즉시...!”
“이래야지 내 후배지.”
전화를 끊은 다비드는, 다시 제이든에게 전화를 걸어 보려 한다. 하지만...
♩♪♬♩♪♬♩♪♬
신호음만 들릴 뿐, 전화를 받는 목소리라든가,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에이, 제이든, 왜 정작 필요할 때는 받지도 않고 이래!”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민은 잠시 교문 근처에 다시 나와 본다. 역시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스크를 많은 사람들이 봤을 텐데도 특별히 이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글쎼... 마스크 걸려 있는 건 그대로네. 그런데 진짜, 누가 한 건지는 다들 모르는 건가.”
그런데 바로 그때, 아말이 막 교문을 통과하려는 게 보인다.
“야, 아말, 잠깐!”
민의 제지에, 아말이 멈춰선다. 아말은 걸려진 마스크를 보더니, 머리를 긁적거린다.
“아니, 왜? 모르겠어?”
“모르지는 않는데... 내 말이 정말... 이 안에 있는데...”
“이 안에 있다는 게 무슨 말이야...”
민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아말이 특정한 단어의 발음을 못 한다는 걸 깨닫고는, 얼른 학교 건물을 가리킨다.
“어, 맞아, 맞아!”
“분명히 이 학교 안에서 얼굴을 봤다는 거지?”
“이제 떠올려 보니 맞는데... 진짜로!”
“그래.”
아말의 뭔가 알겠다는 듯한 반응에, 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교문에 걸어 놓은 마스크를 회수해서, 잠시 학교 건물을 둘러다본다. 그리고 약 몇 초 정도 있다가, 다시 그 마스크를 공중에다 던진다.
“야, 뭘 하려는데? 아무데나 던지면 안 되잖아?”
“아, 그런 일이 있어. 너도 이제 잡히는 걸 보기나 해. 그 발음 못하는 것도 고쳐야 할 거 아냐?”
“아... 알지.”
아말이 보니, 그 마스크가 둥둥 떠 있는데, 위치는 도서관 바로 앞이다.
“저리 띄워만 놓아도 되나...”
아말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곧 민을 따라 교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시간, 로건은 미린대 캠퍼스로 향하는 길이다. 오늘은 요 며칠과는 달리, 의대 쪽이 아닌 정문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미린대역 출구로 나와서 캠퍼스 정문을 향해 걷는 길에, 로건은 한숨을 연거푸 내쉰다.
“아무튼 말이야, 후보전도자들 버릇을 잡아놓지 않으면...”
그렇게 중얼거리던 로건의 눈이, 교문 바로 앞에 왔을 때, 누군가와 마주친다.
“설마 저 녀석... 리암이라는 녀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