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하신 작품이, 유녀전기의 작가 카를로 젠이 쓴 다른 작품인 약속의 나라군요.

일단 "유녀전기" 에서 숨이 탁 막히네요. 애니 1화를 보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도중하차해 버렸거든요. 그런 쪽에는 내성이 별로 높은 편이 아닌데다 추구하는 창작물의 형태와도 거리가 멀어서...

지적하신 부분은 확실히 혐오감이 드네요.

그리고, 스토리라인 내의 최소한의 개연성 확보에 별로 주력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이네요. 대체 무엇을 위해서 쓴 것일까요? 창작물이 현실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현실을 반드시 충실히 반영해야 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 동구권 붕괴 직전의 유고슬라비아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그것들을 어느 수준, 어느 관점으로 반영하는가는 작가의 판단에 달린 것이겠죠. 그런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허술하다는 감은 도저히 지울 수가 없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저라면 도저히 리뷰하지 못했을 듯...

뭐 사실 저도 한번 끝까지 정독하고 그이후 리뷰중간중간 확인하려고 읽은거말곤 거의 안읽긴 했습니다.

리뷰만 보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제가 느끼기에 카를로 젠은 "고2병계 밀덕" 독자들을 노렸거나 아니면 본인 스스로가 "고2병계 밀덕"이 아닐까 싶군요. 

이런 고2병계 밀덕 감성의 작품들은 (주로 일본산) 서브컬처 시장에서 가볍게 다루어지던 밀리터리 요소들과 이를 즐기는 중2병 감성(주로 판타지 장르의 소비자나 미소녀 애니메이션의 소비자들)의 소비자들에게 반발하고,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지 않던 전쟁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여깁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하지만 이런 류 작품들은 관점의 전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닌 그저 기존 트렌드에 대한 반발 떄문에 시작한 작품이다보니 제가 언급한 차이점을 제외하면 기존 중2병 테이스트의 작품들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지나치게 주인공 편의적인 전개도, 주인공을 정당화시키려는 모습도, 그리고 부족한 개연성도……. 그 결과 고2병계 밀덕 감성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결국 그리 즐기지 못하는 작품이 되어버리지요.

여담인데 해당 작가의 이름은 들을 때마다 스타워즈 신 시리즈의 빌런인 카일로 렌이 떠오르더군요.

사실 높은 확률로 그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을 겁니다. 애초부터 전쟁오락물을 쓰는 것이 목적이지만 기존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아닌 다른 테이스트를 선택했을 뿐이죠. 다만, 새롭게 잡은 방향성이 좀 지나칠 정도로 극명한 취향(고2병계 밀덕 테이스트)이었기에 해당 독자층이 아닌 이상 즐기긴 힘들 게 된 걸 겁니다. 비유하자면 시장의 매운 라면 열풍에 대한 반발로 사찰 음식 수준으로 싱거운 라면을 판매하기로 한 것이죠. 확고한 소비자층에게 어필할 수 있겠지만, 기존 라면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좋아하진 않겠고 건강 음식이라기에는 결국 라면이니까요.

근데 솔직히 유녀전기이나 이작품도 PTSD같은건 거의 안다루는거 보면 Papillon님이 전에 지적했었던 '전쟁 오락물'의 한계의 태생에서 못벗어나는거 같습니다.

약속의 나라는 그다지 잘 쓰여진 소설은 아닌 것 같군요.

특정의 시대와 장소를 모티브로 하는 창작물이 반드시 모티브에 대한 다큐멘터리일 필요는 없지만, 유고슬라비아의 복잡한 사회상을 너무 도외시한 것 같습니다. 이럴 것 같으면 현실세계의 시대와 장소의 대강만을 따오고 나머지는 오리지널 구성으로 하는 게 적당해 보입니다.

또한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주변 인물들에게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감정을 박탈해 버린다든지 기본적인 사고조차 하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는 건 확실히 몰입감을 떨어뜨리고 말아 버립니다,

제 감상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쓰고 싶어도 딱히 쓸 말이 없네요.

뭐...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혼란상을 좀 단순화시킨 면이 없지 않아 있죠. 그리고 주인공을 부각시키위해 주변 인물들을 말하고 감정좀 있는 인형으로 만들었고요. 사실 이는 작가의 대표작인 유녀전기에서도 드러나는지라...(아무리 대독일완성 상태 독일이라지만 혼자서 스웨덴-노르웨이, 러시아, 영-불 4면전선에서 미국 참전이전까지 우위를 유지하는 상황을 보여주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