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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원칙-1

프레지스티, 2015-04-26 13:14:56

조회 수
238

핏빛 색깔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나는 그 불길이 나무를 불태우고, 기둥을 무너뜨리고, 어쩌면 그 것이 사람이 있는 곳으로까지 번져서 사람의 목숨까지 해칠지도 모르는데, 그저 멍하니 그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것을 꺼버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다.


어째서였을까. 그 때엔 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어차피 이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번져있었으니까?

아니면 판단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었으니까?

아니면 불타오르는 광경에 동경이나 위압심에 꺼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도 한걸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본 결과, 그 때 바라보고만 있었던 이유는... 이거였었다.


내가... 내가 그 불을 질러버렸었으니까...








= 제 3원칙 =

1화 : 조각난 원칙




잠에서 깬 나는 별 다를 바 없이 그 날도 일어나서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때리듯이 좀 다듬고, 책상으로 다가가서 은환을 몇 알 씹었다.

그 뒤 입 가까이에 손을 대고 입김을 내본 뒤, 입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낸 뒤 창문을 열어보았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은 것 같다. 입김은 하얗게 나기 시작했는데, 조금만 더 지나면 눈이 내리지 않을까.

북한의 개마령인지 어디인지에서는 눈이 내린 것이 관측되었다는데, 거길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보지도 않은걸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하여튼 여기도 북한이랑 가까운 지역이니 북한에서 내렸다면 조만간 이 곳에도 첫 눈이 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 뒤 나는 창문을 닫고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선 나왔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놓고선 혼자서 먹고 있었는데, 나는 본 척도 안한 채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교복으로 갈아입고선 바로 집을 나가버렸다.


자전거를 타고선 가로등을 지나치고, 전신주를 지나치고, 이름 모를 가겟집들을 지나치며 나는 다양한 생각들을 하였다.

그 중 하나는 이 것이다.

요즘 보면 스마트폰인지 뭔지가 유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과그룹인지 하는 미국 동네에서 만든 핸드폰이 나왔는데 그게 아주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터치를 일일히 손으로 액정을 만져가며 해야 하는 그런 불편한 핸드폰을 누가 쓰지 싶다. 아마 그냥 일시적인 인기로 끝나고 결국엔 다시 폴더폰이 대세가 되겠지. 싶었다. 근데 말하려는건 이게 아니고, 스마트폰이라는게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한 녀석이라 요즘 쉬는 시간마다 그걸로 동영상을 보고 뉴스를 보는 애들이 많던데,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연쇄방화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즈음 계속해서 전국 곳곳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약 평균 4일에 한번 꼴로 나는 터라 엄청나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계속 서점만 골라서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방화를 누가 어떻게 한 것인지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에 불이 나는 이유가 꼭 반드시 누가 불을 질러서 내는건 아니기는 한데, 계속 서점만 무작위로 며칠 주기로 불타오르고 있으니 이건 어떤 머저리가 계획적으로 저지르는 방화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방화를 한 수단이 뭔지 알아내는 것은 고사하고 방화범이 목격된 적도 한 번도 없다. 인근 주민들이 저 사람이 수상하다고 해서 조사해본 사람이 몇몇 있기는 한데, 전부 무고했었다. 거기에 CCTV에도 찍히질 않았으니, 이건 그냥 건물이 제가 타고 싶어서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 이외에는 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게다가 철원에서 방화가 난 이틀 뒤에 부산에서 나더니 그 뒤로 6일 뒤에 전주에서 방화가 났었던 적도 있는데, 서점을 방화해서 뭐 얻는 것도 없는 판에 이렇게 자주 옮겨다니는걸 보면 진짜 할 짓 없는 놈인 것 같다, 싶다.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내 눈 앞에 익숙한 빨간 벽돌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자전거를 학교 교문 앞에 있는 거치대에 묶어놓고 교문에 적혀있는 학교명을 보았다.


그러니까....


ㅡㅡㅡㅡ              이 곳이...

    명                  내가 여태껏 3년동안 썩어온....

    향                  아주 개같은 학교...

    중                  명향

    학                  중학교이다.

    교                  나는 이 곳에서 아주 쌓인 곳이 많기 때문에

ㅡㅡㅡㅡ              이 표지판인지 뭔지 하여튼 이 명함인지 뭔지를 힘으로 떼버리거나 발로 차버리고 싶지만, 참도록 했다.



하여튼 좋은 추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학교를, 나는 건물 속으로, 교실 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3년간 다니면서 느낀 점인데, 내가 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나를 천천히 삼켜서 지옥과 마수의 장으로 나를 떨어뜨려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였다.


그렇게, 맨 뒤에 창문쪽 자리와 복도쪽 자리의 정가운데에 있는 내 자리에 앉고 난 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가방을 걸어놓고 나는 바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선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슬슬 정말로 잠에 빠져들려고 할때 쯤, 갑자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희제야! "

" 야, 정희제! "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한애리가 내 책상에 손을 짚고선 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로 고개를 뻗고선 나를 보고 있었다.


" 왜 불러...? "


한애리는 귀찮기 짝이 없는 애다. 어릴 적 내가 이 곳으로 이사오고 나서부터 같이 놀곤 했었던 앤데, 지금까지 줄곧 지켜봐온 바로는 좋게 말하면 잔망스러운거고, 나쁘게 말하면 처세술이 없고 개념이 없는, 특유의 활발한 행동을 아직까지 고치질 않고 있다.

애가 너무 필요 이상으로 이 곳 저 곳 참견하고 다니거나 간섭하고 다니는 일은 없기 때문에 주변의 인망이 아주 나쁘지는 않긴 한데, 나에게는 예외라서 계속 나에게 와서는 계속 엉겨붙으며 별 쓸데도 없는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놓고는 휙 하니 가버려서, 난 한애리를 솔직히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도 친구이고 본성이 나쁜 애는 아니라서 참고 같이 놀아주던 것을, 한 달 전에 그 정도가 점점 더 과해지기에 이 대로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냉정하게 하지 말라고 충고를 냈었는데, 그게 한애리 녀석에게는 타박으로 들렸었나 보다. 나에게 그 뒤로 삐진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나에게 계속 시비를 걸어오는걸 결국 내가 사과하고 서로 합의를 하자 다시 예전처럼 와서 말을 계속 거는데, 하여튼 쉽게 말해서 이번에도 왜 왔는지 용무는 아주 뻔하시다.


" 어제 스크립트 사건 또 난거 뉴스 봤어? "


" 아 그 서점연쇄방화사건? 알지. 아빠가 뉴스 보는걸로 들었어. "


" 왜 스크립트라고 부르는지 알지? 현장에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 유일한 증거라고 볼 수 있는게, 방화된 건물 안에서 타지 않고 깨끗한 종이 한 장만이 떨궈져 있대. 거기에 써진게 스크립트라서 그렇다나. "


" 별 쓸데없는 짓거리를 다 하네. 그냥 태울거면 태우기만 하면 되지 뭘 종이까지 떨구냐... "


" 아, 근데, 이 곳에서는 아직 한 번도 방화가 난 적이 없네. "


나는 짜증이 났다. 저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를 도대체 모르겠다.

이 곳은 출판단지라고 해서, 책에 관련된 산업과 행사를 자주 하기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 사람들도 이 곳에 와서 책을 많이 사가지고 와서는 돌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확실히 널린게 서점이다 보니 이 곳이 방화가 여태껏 한 번도 되지 않은 것이 이상하기는 하다. 

하여튼 쟤가 저런 말을 여러 번 할때마다 그냥 귀찮다는 듯이 애매하게 말하거나 지난 번에 했던 대답을 다시 이야기하면 애매한 표정으로 갸우뚱거리면서 다시 화제를 원점으로 돌리면서 신참한 대답이 나올때가지 계속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새롭고 참신한 답변을 하나 생각해둬야만 했다. 고민하다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흠.. 뭐, 아마 우리 동네에 안 좋은 기억이나 무슨 사연이 있어서 오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 "


그러자 한애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나에게 간절한 듯한 목소리톤으로 더 듣고 싶다며 이야기했다.


" 에엣? 그거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 줘! "


" 나도 잘은 몰라.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거야. 연쇄 범인이나 이런거 보면 막 변리학적으로 막 그 자기 출신지나 그런데에는 얼씬을 안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던가... "


변리학이 뭔지도 모르고(나중에 알아보니 있지도 않았다) 저런 조사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하여튼 한애리가 만족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나는 어떻게든 아는 척을 다 해가며 거짓부렁을 쳐갔다. 한애리는 눈을 껌뻑껌뻑거리며 나의 말을 경청하다 못해 거의 빠져들다시피하며 듣고 있었다. 저렇게 사람 말의 분위기에 잘 휩싸이는 순박한 아이이다 보니, 난 내 지인 중에서 사회에 나가면 바로 사기라도 당할 것 같은 사람 1순위가 한애리라 생각한다. 하여튼 한애리는 중간중간 아아, 으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더니 내가 말을 끝내자 이렇게 말을 했다.


" 역시 희제는 엄청 똑똑해. "


" ? "


" 어릴 적부터 공부 엄청 잘했었잖아. 전학오자마자 맨날 100점 맞고 그랬잖아. "


나는 좀 자격지심이 들었다. 이미 어린 시절은 별로 생각도 나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무의미한 시기가 되어버린지 오래인데 그걸 타인인 한애리가 자꾸 끄집어내니 별로 기분이 개운치도 않고 쑥스럽기도 하였다. 하여튼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말해뒀다.


" 뭐, 다 지난 일이잖아. 한애리. 지금은 그냥 반에서 20위하는 정도고. "


" 아니야. 너 정말 열심히 하면 다시 오를 수 있을거야. "


한애리가 저런 말 할 때마다 난 한애리가 너무 긍정적인건지, 혹은 내가 너무 비관적이여서 남들도 다 알아보는 내 능력을 나만 못 알아보는건지 가끔 파악이 안 된다. 근데 딱 하나, 공부 문제라면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솔직히 반에서 뒤에서 1,2등을 겨루는 한애리가 저런 말 하는건 솔직히 신뢰가 안간다.


" 하, 초등학교 때에야 뭐 쉬우니까 그랬던거지. 그나마도 6학년때부터 진도 못따라가서 이렇게 떨어진거, 너도 알잖아? 다른건 몰라도, 내가 갑자기 어떤 일을 계기로 해서 갑자기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생겨서 공부를 시도한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사람이란게 머리를 쓰는 사람이랑 근육을 쓰는 사람으로 있는거면, 난 근육쪽이잖아. "


" 아니야, 희제 너 정말 잘 할수 있어. 6학년때부터 진도 못 따라간 것도 사실 희제 너희 누나... "


순간 나는 욱하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나는 한애리를 정면으로 째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 야, 한애리. 이제 돌아가. "


한애리는 움찔하더니 알겠다고 나지막히 이야기하고선 되돌아갔다.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애리도 조심성 없게 남의 치부를 건드린 꼴이니 이 정도로 징계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나저나, 한애리가 자고 있던 나를 깨우고선 이야기를 늘어놓은 탓에, 내 수면욕은 완전히 땅으로 꺼져버렸다. 나는 다시 잠을 청하는 대신 턱을 괴고 남은 한 손으로는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한애리가 했던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어릴 적에 나는 지금보다는 쾌활한 편이였었던 것 같다. 추측형인 이유는 어릴 적에 강하게 임팩트를 남긴 사건이 없었던 터라 그냥 기억이 강하게 남은게 없다. 그다지 나는거라곤 한애리랑 같이 뛰어놀면서 매미를 손으로 잡는 등 같이 놀아제낀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누나 일이 터지게 되면서 그 충격이 너무 심했었고 그 이후로 심하게 성격이 바뀌게 되면서 그 이전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되기도 하였다.


' ....누나... '


마지막으로 보았던 누나의 모습은, 안경을 끼고선 슬픈 눈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선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였다.


알겠지 희제야?

앞으로 누나를 볼 수가 없게 될거야.

그래도 희제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해.

누나가 어디에서든 희제를 지켜보며 응원해주고 축복해줄게.

우리 착한 희제 잘할 수 있지?

그리고, 누나 말 잘 들어.

앞으로 희제가 어떤 이상한 일에 휘말리더라도, 절대 개의치 말아 줘.

누나가 절대 희제에겐 피해가 안 가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희제를 보호해줄거야. 희제랑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 그리고..... '


그리고, 뭐였지?


......뭐였더라.....



........................................................



곧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나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이 말이 수업이지 지금은 기말고사조차 끝난 12월이고 더욱이 우리는 곧 졸업할 신분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는 영화를 보거나 선생님이 이상한 놀이, 그러니까 이를테면 베스킨라빈스 이런 놀이를 반 학생들 전체랑 같이 하는 그런 무료하고 식상한 것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뭐라 딱히 꼭 집어서 말할 특징점같은게 없었다. 나는 학교에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질 않아서 핸드폰을 쓰질 않지만, 핸드폰이나 게임기를 꺼내고선 하는 애들도 보였고 잡담을 하거나 자는 아이들도 더럿 보였다.


그리고 4교시가 끝난 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비아냥의 의미로) 명문중학교로써 사회에 익숙해지게 훈련시키는 3대 특징을 갖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첫 째는 교장이 자꾸 학교 예산으로 자기 교장실에 있는 기물이 망가졌다는 변명으로 계속 재산을 착복횡령하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사회의 권력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고

둘 째는 별이별 말도 안 되는 규정으로 학생들을 파시즘적 사고관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며

셋 째가 바로 급식이 더럽게 맛이 없어서 학생들이 평범한 식사가 아닌 생존에 집착하게 한다는 것이였다.


확실히 점심이야 사실 굶으면 되는거긴 하지만 문제는 우리 학교는 7교시에서 하교하는 것이 아니라 딱한 이유가 없으면 야자까지 강제로 해야 했는데(중학생인데도)

지금이야 7교시까지 하지만 불과 몇 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반 학생들 중 25명이 야자를 해야 했을 정도로 거의 필수적이나 다름이 없다.

하여튼 점심이야 굶으면 되지만 저녘까지 굶고선 밤 9시까지 버티는 일을 한 두번 하는 것이 아니라 몇날 며칠을 굶다 보면 먹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급식이 진짜 맛 없어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그럼 다른 뭔가를 먹어야 하긴 했는데 우리 학교는 매점도 없고 밖으로 나갔다간 (학교 학칙상) 벌금을 내야 했었다. 거기에 선도부가 점심 시간만 되면 전부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막고 서 있어서 마치 북한의 굶어 죽어가는 꽃제비와 제3세계의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의 심정을 실시간으로 체험할 수 있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결국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는 먹는 아이들이 한 둘 늘어나게 되었다. 물론 급식비를 냈는데 도시락을 따로 싸가지고 간다는 점을 부모님이 이해해 줄리가 없었으므로 결국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각기의 방법으로 배고픔과 투쟁해야만 했다. 


뭐,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급식을 먹는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맛 없다. 예전에 1984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 잘 모르지만 1984년도 당시에 생활 수준이 그렇게 나빴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보면 식사가 형편 없다고 계속 나오는데, 그 것보다 더 나쁘다. 급식업체랑 비리를 짜고 있다는 설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정말 형편 없어서, 교사들조차도 급식을 안 먹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그래도 뭐, 내가 급식을 먹는 이유는.....


하여튼, 급식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한애리가 옆에 붙어서 나를 따라다녔다. 아예 연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내 팔에 팔짱까지 걸치는데, 어차피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고 거부하기도 좀 그래서 그냥 묵묵히 걸어갔다.


다른 학교라면 보통 점심 시간에 내가 먼저 먹겠다며 줄이 빽빽히 서 있는 채로 새치기가 일어나야 할 판인데, 이 망할 학교는 그러기는 커녕 줄 자체를 서질 않는다. 내 앞으로 있는 학생들이 대여섯 밖에 안 되고 급식실에 있는 학생 수가 전부 서른 명이 될까 말까 하는데, 우리 학교 전교생이 육백명이니 무려 20명 중 한 명 꼴로 먹고 있는 것이다. 뭐가 어찌 되었던 사람이 아예 모이질 않으니깐 새치기도 안 일어나고 급식실에서 뛰다가 식판을 엎지르거나 넘어지는 안전사고도 터지지 않으니 이게 만약 급식실에서 사고가 안 터지도록 안전한 학교 생활을 만들기 위한 교장의 배려라면 정~~~~말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하여간 한애리가 뒤에서 나에게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식판에 밥을 담고 반찬을 받았다. 급식비는 강제적으로 걷히기 때문에 음식 수량은 600인분으로 담겨져 있다. 아마 저 아까운 남은 음식들은 다른 곳에 쳐박혀 버려지겠지? 사료로도 못 쓸 것이 아마 돼지 사료로 주면 돼지들도 거부할 듯 하다.


하여튼 이제 의자에 앉아 식판을 내려놓고, 한애리가 내 옆에 앉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다시 식판을 바라 보았다.


현미밥과 새우튀김 셋과 딸기우유와 김치와 오뎅국.


현미밥은 마치 통일벼로 만든 듯한 어설픈 식감(통일벼를 먹어보진 않았지만)을 자랑했고,

딸기우유는 그나마 건질만 했지만, 오뎅국은 정말....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김치는 쉰 냄새가 너무 났고, 가장 최악은 새우튀김인데, 우리 학교가 가장 맛 없게 내는 급식이 바로 튀김류이다. 튀김류가 나오는 날이면 나도 먹질 않는데, 오늘은 급식 메뉴판이 확인이 안 되는 월요일이라서 튀김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를 모르고선 받았으니 엄청나게 난감하다. 한 마디로 먹을 음식이 없다. 김치로 전부 때우는 것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고, 많은 식사를 그렇게 먹어왔었지만, 오늘따라 그러기엔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그냥 버릴까? 생각을 하면서 옆을 돌아보는데, 한애리가 돌 씹는 표정으로 힘겹게 새우튀김을 먹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모습이 엄청나게 가련해보였다. 한애리는 내가 쳐다보는줄을 알았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는 찌푸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여군을 갈 건 아니지만 말이야.... "


그리고선 이어서 말했다.


" 군대 짬밥도, 차라리 이 것보다 몇 배는 더 맛있을 것 같아.... 정말 이 때만큼은 군대에서 밥 먹는게 차라리 더 낫겠단 생각이 들어. "


어찌 되었던 한애리도 나도 다 먹어가고 있는 사이, 한애리는 매우 불편한 표정을 보였다.

아마 한애리는 나 때문에 급식실까지 와서 따라서 먹는거지, 급식이 좋아서 먹는 것이 아닐텐데, 조금 미안한 감정과 불쌍한 감정, 그리고 한심한 감정이 섞인 미묘한 자애심이 들었다. 한애리가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입 주변을 닦는 사이, 나는 딸기우유를 한애리에게 건냈다.


" 마셔. "


한애리가 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손에 들려있는 딸기 우유를 보았다.


" 나도 있는데. "


" 내가 뭐 여자애도 아니고 이런걸 마시냐. 유치하게. 너 마셔. "


사실 나라고 딸기우유고 뭐고 못 마실 이유야 없겠지만, 그냥 한애리에게 이렇게라도 해주는 것이 차라리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였다. 한애리는 내가 준 딸기우유를 받아들고선 꽤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리고선 주머니에 우유와 접힌 손수건을 넣고 원래 자기 것으로 받았던 첫번 째 우유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 그런데 희제 너는 왜 맨날 급식을 먹어? "


" 어? "


" 급식 먹는 이유. 그냥 다른거 집에서 싸가지고 와서 먹어도 되잖아. "


나는 잠시 좀 생각을 하다 그냥 아무렇게나 말했다.


" 그냥 이거 먹는다고 죽는건 아니니까. "


한애리는 그냥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거리기만 했다. 그리고선 손으로 건너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 그러고보니 두희 쟤도 요즘엔 맨날 와서 먹네. "


" 전두희? "


전두희는 우리 반의 반장이였는데, 체육대회 때 반티 사이즈나 시험 점수 확인표 그런 사무적인 일로 몇 번 대화한 적은 있어도 그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거나 엮였던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있던 말던 상관을 안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요즘엔 내가 급식을 먹을 때마다 꼭 구석에서 자기 혼자 밥을 먹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 정말로 생각해보니 요즘엔 급식실에서 먹네. "


" 응, 그렇지. "


두희는, 바로 건너편 책상에 정면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쪽으로 앉아있으면서 혼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서,

어설프게,

가련한 눈빛으로.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경솔히 흘려냈다.


" ....전두희는 어떤 애지..? "


" 어? "


전두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서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아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아마 그 때 한애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리고선, 잠시 정색이 흐르다 말을 꺼냈다.


" 어...음.... 문학소녀야. "


" 문학소녀? "


내가 한애리를 바라보자, 한애리는 끄떡거리면서 이야기했다.


" 반장에, 안경을 끼고 있고, 책 읽는걸 좋아해. 그리고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잖아. 외모도 그럴 듯하게 생겼고. "


" 책을 읽어? "


" 응. 책 많이 읽던데, 쟤. "


" .......... "


나는, 그냥 멍하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꺾어 한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 내일부터는 쟤도 같이 먹자고 하자. "


" 뭐? "


한애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같이 먹자고. 친구잖아. "


" .....? "


한애리가 입을 작게 벌린 채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사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 했다.


" 그리고 사람 그렇게 쉽게 단정하는거 아니야. "


" 아...어...음... "


한애리는 뭐라 딱히 말할 것이 없다는 것 처럼 어물어물거리다 내가 걸어나가니 그 뒤를 쫓아갔다.




그 날, 수업이 전부 끝나고 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속으로 몸을 던졌다.

12월은 내 마음의 고독함을 끌어올려서 하늘에 걸어버린 듯 아직 5시인데도 어두컴컴하였다.


나는 이불로 얼굴에 푹 파묻힌 채로, 그 동안, 내가 전두희와 대화 했던, 하나하나의 대화에 대해서 있는 힘껏 떠올려보았다.


희제야 내일 체육복 반티 맞춰야 하는데 너 사이즈 몇이야?

희제야 너 도덕 수행평가 점수 싸인 안했어.

희제야 너 유림이 지갑 누가 훔쳐간거 누가 못 봤어?

희제야 너

희제야 희제야 희제야


희제야


그 것은, 더 이상 전두희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느 새 누나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누나 말 잘 들어.

앞으로 희제가 어떤 이상한 일에 휘말리더라도, 절대 개의치 말아 줘.

누나가 절대 희제에겐 피해가 안 가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희제를 보호해줄거야. 희제랑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이제부터 엄마도 없고,              (가지마 누나)

집에 남은 건                          (나를 버리지 말아 줘)

아빠랑 희제 둘 뿐이니까           나는 그 당시, 누나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칭얼거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아빠 말.....잘...             누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눈물을 금방이라도 떨굴 것 같은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듣지 마.



알겠지? 아빠 말은, 절대, 어떤 경우가 있어도,


듣지 말아야 해.


정말, 이 것만은 명심해 줘. 절대 아빠 말은.... 믿지... 마...



" 어디로 가는거야, 누나? "


그럼.... 희제야.... 잘 있어.....







" ..................... "


그리고 누나는 문을 열고선 나갔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다가 점차 작아지며 결국에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누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지 않았다.


대학에 붙고 난 뒤, 그러니까, 이름만 대도,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 줄 명문 대학에 붙고 난 뒤 누나는,

갑자기 가출을 해 버렸다. 나에게 저렇게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만 해 놓고선, 떠나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추락사로 판단하였다. 시신의 상태가 훼손된 부분은 없었고, 길가 위에 시체가 발견되었지만, 아마 경찰의 추측에 의하면 높은 곳에서 떨어진 육신이 나무같은 곳에 걸려서 사망은 하되 시신이 훼손되지는 않았고, 그 뒤 그 시체를 누가 길가에 옮긴 것이라는 것이였다.


정말 다가가서 보니, 정말 누나였다. 정말 누나였었다. 한 점의 상처도 없었다. 잠자는 공주님처럼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눈만 감고 있었을 뿐이다.

나를 향해 웃어주고, 기뻐해주고, 사랑해주는 누나였는데, 단지 경찰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테이프로 누나와 나의 사이를 가려버렸다.

죽었어도, 누나와 나의 사이에 그 테이프만 없었더라면, 누나를 꼭 끌어안아줄 수 있었을텐데.


그러니까, 내 생각은, 아무래도 누나는....


그 때였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정확히는, 문자 알림이였다. 휴대폰에 문자가 온 것이다.


무시했더니, 다시 울린다. 세네번, 다섯번이 울리니, 단순한 스팸같은건 아닌 것 같아서, 짜증을 부리며 이불을 휙 집어 던지며, 터벅터벅 걸어서 책상 위의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거기에 문자 메세지가 많이 도착해 있었다.


[ 뉴스 봐봐! ]

[ 빨리! ]

[ 얼른! 정말이야! ]

[ 대박이야! 정말이라고! ]


나는 핸드폰 폴더를 닫아버리고선 침대를 향해 가볍게 던지고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가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는데, 텔레비젼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 서점에 방화가 일어났다.

그렇다. 사람들이 스크립트 사건이라 부르는 연쇄 방화 사건이였다.





계속

=============================================

쓸 때 정말 재미있게 쓴 작품입니다. 그런데 보시는 분들은 어떠실지 잘 모르겠네요(삐질)

창작의 가치는? 에 대해서 다루는 작품입니다. 설정이 스포일러라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미가 없겠지만, 앞으로 엄청난 일들이 슉슉 일어나요. 서점에 불장난하는건 그냥 에피타이져. 메인은 이제부터입니다.

프레지스티

조명이 좀 더 비싼 것으로 대체된다고 해서 그늘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1 댓글

마드리갈

2020-02-18 23:59:36

서점에 방화라는 게 좀 꺼려지는 소재이긴 하고, 무엇을 읽었는지도 지금 당장은 파악되지는 않지만, 멀리하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껴지고 있어요.


운영진으로서 말씀을 드릴께요.

정당한 사유 없이 문장을 완결 없이 줄바꿈하는 것은 포럼의 방침상 금지되어 있어요. 그러니 운영진 권한으로 본문 부분은 고쳐두도록 할께요. 이용규칙 게시판 제12조의 추가사항을 참조해 주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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