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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칙을 위해, 캐리어 안에 있던 옷걸이에 걸린 그 옷을 꺼내던 중, 민은 그 옷이 무언가 익숙한 것임을 깨닫는다. 아주 우스꽝스러운 옷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입고 다닐 만한 그런 것도 아니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옷인데...”
민이 꺼낸 그 옷을 본 유와 토마가,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하, 하하하! 이거, 그 누나가 입을 만한 옷이잖아!”
“맞아. 인터넷에서 많이 봤어. 이거 입고 챌린지도 하고, 그 외에 이거저거 많이 하잖아.”
“에이, 그래서 너희들이 그때 뭘 했길래 내가 이런 걸 해야 하는 건데!”
민의 볼멘소리에 케이가 말한다.
“사실은 어제 우리끼리 게임을 하며 노는데 타토가 지면 벌칙을 수행하자고 했다? 그런데, 여기 지아가 글쎄, 이런 옷을 가져오는 거 있지!”
“아니, 지아의 집에 이런 게 왜 있어...”
“뭐기는. 우리 누나가 이런 거 잘 하거든.”
“그래서, 이걸 나보고 입으라는 거야?”
그 말에, 아리엘, 타토, 지아 모두 깔깔거리고 웃으며, 마치 길에 레드카펫이라도 깔아 주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민은 한숨을 내쉰다.
“에이, 그래, 알았어, 알았어! 입을 테니...”
민이 그 복장을 가지고 어딘가로 가려는데, 아리엘이 제지한다.
“잠깐! 여기서 입으라는 게 아닌데.”
“그러면, 설마...”
“가보자고!”
보나 마나, 번화가 같은 곳으로 가자고 할 것이다. 벌칙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막상 닥치면 또 다른 법이다. 민의 입에서는 한숨이 또 흘러나온다.
한편 그 시간, 미린중학교 뒤편의 산책로. 한나는 벌겋게 되어 하마터면 데어 버릴 뻔한 자기 손바닥을 잠시 물끄러미 본다. 한나의 얼굴이 다시 예담을 향해 일그러진다. 살의가, 확 와닿는다.
“이 자식, 너는 섭리를 방해하지 못한다!”
한나는 그렇게 일갈하더니, 곧장 예담을 금방이라도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 버릴 듯 노려보다가, 이윽고 스르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진다고 하기보다는, 스르르 흐려진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잔상이 예담의 앞뿐만 아니라 옆에도 보인다.
“이건 또 뭐냐? 너 분신술도 쓰냐, 혹시?”
“틀려, 그거하고는!”
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은 전혀 다른 쪽이다. 예담의 청각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분명 한나는 정면에 있을 터다. 아무리 점점 흐려진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느려터져서야!”
한나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언가가 예담의 등뒤를 강타한다.
“윽...”
예담은 순간 균형을 잃고는 휘청거리지만, 곧 다시 버텨 서고는 말한다.
“이제 알겠어. 그리고 한마디만 하지. 지금부터 너는 내 동급생이 아니야. 그저,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한 명의 광신도일 뿐이지. 이제부터 너를 그냥 한 명의 악당으로 대하겠어.”
그런데, 한나의 움직임은 예담에게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그렇게 물러터져서야... 올바른 그릇에 정신이 담겨야지, 안 그러겠어? 너는, 그런 그릇조차도 못 되는, 불량품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해?”
“어. 무슨 뜻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예담은 일부러 한나의 화를 돋우기 위해, 한나를 똑바로 보고서, 웃음까지 짓는다. 실제로는 화가 돋우어져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한 대 내지르고 싶기는 하지만, 그런 건 조금 접어둔다. 다 이기고 나서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한나는 입꼬리를 씰룩거린다.
“바로 그래서 너를 더욱, 내 손으로 처단하고 싶은 거야!”
“어디, 그래 보시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예담이 그렇게 말하자, 한나는 예담의 의도대로, 전투의 의지를 불사른다.
“각오는 됐냐!”
“각오는 무슨...”
그런데, 또다시 한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예담은 떠올린다. 일요일에 예담과 예성이 탄 차를 무섭게 쫓아오던 그 사람의 분위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감각도 이상해진 것 같다. 어느새 눈앞에는, 한 바퀴 돌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을 교실의 벽이 보이더니, 거기에서 한나가 보인다.
“각오가 됐냐고 물으면서 정작 자신은 무방비 상태면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네.”
다음 순간, 예담은 어떤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 보이는 건 까마득한 낭떠러지 같은 암흑의 공간이다.
“좀 알겠어? 이제 너는 심연으로 떨어지기만 하는 기분을 겪을 텐데, 어쩌나? 여기는 나밖에 꺼내 줄 사람이 없는데.”
그 순간, 예담의 머릿속에 또다시 스쳐 지나가는 게 있다. 일요일에 차를 세워 놓고 집으로 올라갈 때 마주쳤던 의문의 인물, 그 시선이다.
“그것도... 너였냐!”
“하하, 그런 걸 이제 알면 어떡하나? 그리고 이미 늦었지 뭐야! 이미 너는 점점 굴러떨어지고 있는데!”
그 시간, 메이링의 사무소.
“저... 변호사님.”
“아니, 왜, 아냐, 무슨 일인데?”
메이링은 조금 전에 수임한 사건을 검토하다 말고, 아냐가 부르자 돌아본다. 그것보다도, 아냐는 평소에 메이링을 먼저 부르거나 하는 일은 잘 없는데, 무슨 일인가 해서 한 번 더 물어본다.
“뭐길래 불러?”
“아,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네가 뭐?”
“변호사님이 어제 말한 그 정보원 있잖아요.”
아냐의 표정은 거기에서 조금 진지해진다. 메이링은 그게 웨이신을 말하는 것임을 알고는
“아, 그 사람,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그런데 왜?”
“제가 사건을 보다 보니, 이 사람이 관련된 일이 좀 많은 것 같은데요.”
“아니, 왜? 네가 보는 사건은 주로 경제 사건 관련일 텐데...”
“그 사건의 내용은 표면적으로 봐서는 횡령 건인데, 조금 꼼꼼히 읽어 보니 진리성회와 엮인 게 좀 많더라고요. 그리고 그 양웨이신이라는 사람이 고발인으로 다수 참여한 거고요.”
“그랬나...”
메이링은 곧바로 아냐의 자리로 가서 그 자료들을 보기로 한다. 과연 아냐의 말대로, 고발장에는 양웨이신의 이름이 적힌 곳이 많고 고소장에 적힌 회사는 특정한 이름이 적힌 곳이 많다.
“그 사건들, 한번 나한테 줘 볼래? 아무래도 내가 직접 봐야 할 게 좀 있어서.”
“알겠어요.”
“좀 더 들어보자고.”
예담은 여전히, 한나가 만든 그 암흑의 공간 속에 있다. 자신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예담은 한나에게 말을 건다.
“지금까지 나한테 해를 가하려고 그렇게 사람들을 보내고 한 것, 너만 한 거였냐?”
“자꾸 그렇게 딴소리나 할래? 지금의 네 상황이나 좀 파악하고 말하시지 그래?”
어느새 한나는 또다른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한나는 그 암흑의 공간 속에서, 빛나는 것 같아 보인다. 혹시 한나가 자신을 세뇌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예담은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무슨 수작이야!”
“어, 좀 생각이라는 걸 해 보면 어때? 그렇게 내가 고대하던 기회인데, 이걸 십분 활용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멍청한 인간은 없지. 그리고 공공연히 섭리의 적인데, 너를 세뇌라도 하겠냐?”
“아, 그래...”
“이대로 심연으로 떨어지라고! 혹시 너를 받아 줄 바닥이라도 있기를 바라야겠지!”
“그래, 좀 많이 어둡기는 하네. 마치 네 깊은 마음속의 심연 같은데.”
“말 다 했지...”
한나의 목소리가 어딘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 갑자기, 예담의 머리가 180도 기울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유 없는 느낌이 아니다. 한나가 예담의 목덜미를 뒤에서 잡고서, 그 칠흑 같은 공간의 아래쪽으로 향하게 만든 것이다. 떨어지는 기분도 기분이거니와, 어디로 떨어지는지 모르는 이 느낌은, 마치 사고로 다리나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이런 심정일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때, 좀 알 것 같아? 섭리를 방해하는 자는, 모두 이런 최후를 맞게 될 거라고!”
한나가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말함에도, 예담은 오히려 승기를 잡은 것처럼 한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너, 내 목을 잡은 거 맞지.”
한나는 예담의 그 말이 황당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무슨 그런 뻔한 말을 다 하냐? 설마 너 내 주의를 끌려는 건 아니겠지? 헛된 수작은 그만두고, 이제 네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나 하라고!”
그런데, 한나가 별안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한나의 두 손이 타는 듯하다. 그것도 마치 두 손을 불길 안에 직접 집어넣은 것 같은 기분이다. 거기에다가 그 고열은 한나의 두 팔을 타고 전해지고 있다.
“빨리 이거 해제 안 하면, 네가 타죽을걸.”
“뭣,,,”
한나는 예담의 그 말에 반박하려다, 곧 예담의 목에서 손을 뗀다. 하마터면, 재빨리 손을 떼지 않았다면 두 손에 큰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제법인걸. 그런데 기억해. 내가 풀어주지 않는 한, 너는 그대로 떨어지다가, 산산이 부서질 뿐이야. 불쌍해라. 섭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거부하고, 끝내 부서져 죽어버린다니!”
예담은, 그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떠올린 모양이다. 한나 역시도, 그걸 놓치지 않는다.
“허튼 생각하냐? 이래서 섭리의 적은 단번에 처치해야 했는데!”
한나가 발차기를 하자, 예담은 몸을 젖혀 한번 피한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기분이 들지만.
“어, 피했어?”
한나는 예담을 다시 노려보다가, 이윽고 일격을 준비한다. 한나는 이번에는, 손을 뻗어 잡으려 하지 않는다. 한나의 두 눈이 칠흑과도 같은 공간에서 빛난다. 그리고 예담의 몸에 더욱 무게감이 실린다. 한나가 기의 덩어리 같은 것을 예담에게 집어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지...”
예담은, 피하지 않는다. 대신, 무언가 깨달은 듯, 그 기의 덩어리에 손을 가져다 댄다. 예담의 생각대로, 암흑 공간 안이 확 더워지기 시작한다. 그 뜨거운 열기가, 바로 위에 있는 한나에게 확 쏟아진다. 마치, 열 분출구의 바로 밑을 밟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선우예담!”
“뭐기는. 이런 걸 보고... 뭐라고 해야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지. 능력을 해제하느냐, 아니면 달궈져 버리느냐. 선택은 네 몫이야.”
“네가 너... 너 따위에게! 섭리를 거스르는 자 따위에게...”
한나는 열기 때문에 제대로 말은 못 하면서도, 악은 박박 써 댄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래서 어디 섭리의 적을 이기기나 하겠냐?”
“닥쳐, 이딴 술수 따위로...”
한나는 예담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다시 무언가 반격을 준비하는 듯 보인다.
“한나, 또 뭘 하려고? 이제 네 현실을 받아들여. 섭리의 적 따위에게 져 버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닥쳐, 닥쳐, 닥치라니까!”
하지만 예담의 생각과 달리, 떨어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암흑 공간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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