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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말하는 타력본원(他力本願)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글자 그대로는 타인의 힘을 빌어 소원을 이룬다는 의미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아미타여래(阿弥陀如来)의 자비에 의한 구원인 것이죠. 저는 불교신자는 아니고 그 이전에 종교와 거리를 두는 사람이지만,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속성상 타력본원이라는 개념은 참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혼자서 해결하지 못한다고 그 사람이 나쁘다고 매도하는 게 아니라고 전제하는 그 따뜻함이 마음에 들거든요.
그런데 이 타력본원이라는 개념이 상당부분 오해받고 있죠. 타인의 힘에 맡기기만 할 뿐이라는 식으로. 여러모로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이제 반도체 이야기로.
이전에 쓴 글인 실리콘제도를 노리는 일본열도개조론에서 다루었듯 일본은 각지에서 반도체 생산체제를 강화하고 있는데다 일본기업은 물론 미국의 마이크론(Micron)과 웨스턴디지탈(Western Digital, WD)는 물론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전문기업인 TSMC와 PSMC도 유치하고 있어요. 특히 TSMC의 쿠마모토 공장은 일본 정부와 쿠마모토현(熊本県)은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제조업기업인 토요타(TOYOTA)와 소니(SONY)까지 가담하여 적극 지원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이것을 갖고 반도체가 몰락한 일본이 한참 아래의 체급인 나라인 대만에 손을 벌리고 있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논조. 그런데 여기서 도발적인 질문을 해 볼께요.

만일, 빈그룹, 살림그룹, 탄두아이 등이 한국에 진출하여 현지생산체제를 갖춘다면 그걸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비웃으며 내칠 것인가?

이 이름이 생소한 기업들의 면모를 알아보죠.
빈그룹(Vingroup)은 베트남 최대의 기업집단이고 그 사업영역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하면서 자동차, 전자기기, 2차전지, 제약공업 등의 제조업분야는 물론 인공지능, 교육, 네트워크보안, 편의점 등의 서비스업분야에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종업원 5만명 이상의 대기업이죠.
살림그룹(Salim Group)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식품기업이고 인도네시아 최대의 기업집단이자 이미 국적이 의외인 기업들을 알아볼까요? 3 제하의 글에서 다룬 적도 있는 세계 1위의 라면제조사.
탄두아이(Tanduay)는 필리핀의 플래그캐리어인 필리핀항공(Philippine Airlines) 및 항공기 유지보수와 기내식 분야의 강자인 매크로아시아 코퍼레이션(MacroAsia Corporation) 등이 속해있는 필리핀의 기업집단 LT그룹의 계열사로 제가 관심있어하는 증류주인 럼(Rum) 생산량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럼주의 명문이죠. 

이 세 기업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업계에서는 주목받는데다 위상도 높아요.
그 기업들의 국적국이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도 세계적인 위상도 낮다고 해서 그런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진출한다면 우리나라의 국격이 훼손되는 것일까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이나 일본이나 독일 등의 경제대국에 진출하는 것도 그 나라들의 국격을 해친다는 꼴밖에 되지 않아요. 그렇게 수용불가한 결론을 내지 않으려면 답은 이미 나와 있고, 무역으로 세계 속에서 번영하는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러지 않아야 해요. 결국 우리나라의 이 위상도 타력본원 그 자체이자 소산이니까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Lester

2024-03-26 01:42:12

검색해보니까 본래 불교에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해탈에 이르라'고 가르쳤지만, 불교가 대중화되고 세상살이가 이래저래 힘들다보니 아미타불의 힘을 빌어 깨달음을 얻자는 식으로 바뀌었다네요. 좋게 말하면 공동체의 형성에 일조하지만, 한편으론 약간 건조하게 보면 기복신앙화됐다고 볼 수 있겠죠. 게다가 타력본원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온 것 같고, 실제로는 타력 정도로만 쓰는 것 같네요.


반도체 이야기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옛말에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이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죠. 전 세계가 시장이라는 사실은 상식이라는 것조차 깨닫기 이전에 학습된 상황에서, 체급이 낮니 어쩌니 하고 천대하는 사고방식으로 과연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그 체급이 낮은 나라한테 언젠가 손을 빌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마드리갈

2024-03-26 02:00:33

역시 개인의 힘으로는 한정적인 게 많아요. 그러니 종교의 가르침 또한 개인 차원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었던 것이고 그렇게 타력본원 개념이 발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이게 불교 이외에도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의 주류종교에서도 나타나는데다, 유태교에서는 아예 은자(隠者) 자체를 부정하는 개념이 정착해 있어요. 즉 타력본원은 인간의 본성과 이어져 있고, 그러니 인용해 주신 불치하문이라는 그 한자숙어가 불과 4글자에 불과하지만 아주 깊은 함의를 담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논어에 나오는 "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焉)" 라든지, 일본 속담의 "세 사람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三人寄れば文殊の知恵)" 라는 말도 역시 그것과 맥락이 같을 것이고.


지금 해외에서 나돌고 있는 피크코리아(Peak Korea) 담론에 대해서 아직도 국내에서는 위기의식이 없는가 봐요. 21세기초의 IT산업의 급신장으로 일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는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세계속의 한국" 이 아니라 "고립된 쇄국" 으로 쏠릴 경우 닥칠 파국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게 되어요. 우리나라가 쇄국의 길을 택하면 외국도 결국 우리나라에 문호를 닫게 될 것인데... 

요즘 K접두어가 유행하는데 "K-인종차별" 이라는 말도 있어요. 어쩌면 그 의식이 반일의식과 뒤섞여 "일본이 대만 따위에나 손벌린다" 식으로 무시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일지도요.

Lester

2024-03-26 02:47:06

역사적으로 봤을 때 보통 빨리 성장하면 쇠락도 빠른 편이던데... 이런 시각이 들어맞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슬프게도 출산율이라든가 하는 지표를 보면 답이 없는 것 같아 막막합니다. 솔직히 흔히 나도는 '이민 가면 그만이야' 같은 넋두리도 최소한 우리나라에 남아서 외국이랑 잘 해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이마저도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가 하고 괜히 미안해지네요.

마드리갈

2024-03-27 00:05:01

문제는 경계하고 계신 그 시각이 우리나라의 경우 무서울 정도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내수시장도 해외시장도 급격히 포화중이라서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죠.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 될 것 같고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대응역량도 여유도 급격히 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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