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연습] 먼 길 떠나는 편지

Lester, 2024-03-07 01:19:31

조회 수
72

원래 연재하던 작품에만 연연하면 영영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 예전부터 생각해둔 간단한 주제로나마 짧게 써볼까 합니다.


=========================================================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행상을 통해 보내주신 책들 덕분에 공부는 잘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주에 부탁드린 아르카니아 산 모험기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을 꼬맹이들이 서로 읽겠다고 다투다가 그새 만신창이가 됐거든요.

지금도 마당에선 애들이 용 사냥 놀이를 하느라 시끌벅적합니다.

같은 책을 두세 권 보내주셔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저도 못 읽을 뻔 했습니다.


밤레로로 가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거기는 수도인 보르그단을 비롯해 여러 대도시와도 왕래할 수 있어서

재미있는 것들은 물론이고 온갖 지식과 문화가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스승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힘깨나 쓰는 사람들과 같이

이 마을을 떠나서 거기로 가 보고 싶습니다만,

농사일이 바쁘고 여러가지 사정이 있다보니 먼 미래가 될 듯합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제가 읽어준 걸 듣고 자기도 가겠다고 우기는 애들은 많지만

기나긴 여행길을 견뎌낼 실력이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딴에는 뒷산에서 트롤 잡는 것만큼 어렵겠느냐고 하는데,

지금까지 보내신 편지에 나온 괴물 이름만 하나씩 모아봐도 30개가 넘어가거든요.

15개쯤 됐을 때 알려줬더니 다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대서,

나머지 15개도 알려줘야 할지 고민입니다.

제가 경고한다고 들을 녀석들이 아니니, 언제 돌아오신다면

스승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행상들을 지켜주는 무장대에 들어가는 게 소원이라는 녀석들도 있으니

엄중하게 판단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제 투정이 길었네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글을 익히기는 아직 시간이 걸리는 터라,

당분간은 제가 계속 편지를 대신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마을 어르신들이 급한 사연만 정리한 덕분에

젊은 애들처럼 서로 먼저 얘기하겠다고 난리를 피우진 않았습니다.

받아적은 편지들도 동봉했으니 천천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이제 눈이 그쳐서 다시 농사를 지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쪽은 여전히 춥다고 행상에게 들었습니다. 부디 몸조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세레니갈력 4월 30일

예레바티우스 올림


------------------------------------------------------


노멘타굼.

저번에 행상 통해서 받은 그 빗자루 잘 쓰고 있단다.

무슨 동물의 털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쓸리고 상하지도 않는구나.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 언제 한 번 돌아오렴.

(사실은 노멘타굼 형님의 아버지가 괭이질을 하다가 발등을 찍어서 앓아 누우셨답니다.

대학을 그만두고 돌아오라는 얘기가 아닐지.)


자르고스.

3-4. 이걸로 체크메이트일세.

자네 실력이 많이 죽었군.

(아뇨. 파케우스 영감님이 훈수를 들어서 잘 두시는 겁니다.)


비리디아나.

누나가 생쥐 좋아한다는 말 듣고 나무 깎아서 만들었어.

잘 만든 건 아니지만 책상에 올려두고 보면 좋을 것 같아.

(뭐야, 나보다 잘 만들었네. 행상 중에 베레겔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소르만.

나는 '엷은' 포도주를 보내달라고 했지 '떫은' 걸 보내달라고 한 적 없어.

예렙 녀석이 잘못 적었거나 그 스승놈이 잘못 불러준 모양이구만.

(오해입니다. 전 말씀한 그대로 받아적었어요.)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4 댓글

마드리갈

2024-03-08 23:39:09

목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면서도 트롤을 잡는다든지 행상들을 지켜주는 무장대의 존재가 언급되는 것으로 봐서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아 보이네요. 그래도 편지에서 여러 사람들의 따뜻함이 느껴져서 참 좋네요. 뭐랄까, 바이올렛 에버가든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해요. 예전에 쓴 글인 오보에를 의인화하면 치하라 미노리가 된다?! 에 첨부된 영상같은.


나무로 깎은 생쥐는 어떻게 생겼을지 그게 궁금하기도 하네요.

3월이라지만 날씨는 춥죠. 그래도 이런 편지 덕분에 마음만은 따뜻해져 있어요.

Lester

2024-03-09 06:25:36

아무래도 판타지 세계라는 게 만화나 애니의 영향 때문에 꽤나 가볍고 쉽게 여겨지는 측면이 있지만,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부터 시작해서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북유럽 신화라든가 하는 내용들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죠. 저는 그렇게 원작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이번 연습글도 비슷하게 따라가되, 사람 냄새가 풍기는 분위기에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읽기에 따라 내용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도, 마지막에 '글을 모르는 마을 주민들을 대표해서 받아적는다'는 컨셉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적어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SiteOwner

2024-03-10 18:33:59

중세음악이 흐르는 배경 속에서 양피지에 쓰여진 편지를 읽는 듯한 이 감각이 좋습니다. 담고 있는 내용은 괴물에 대한 것도 있는데다 행상들을 지켜주는 무장대의 존재까지 언급되는 것으로 봐서 도적떼가 횡행하는 것도 시사되는 터라 마냥 평화롭지는 않지만, 편지에서 전해지는 이러한 애틋한 분위기가 참 따뜻하고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에 대한 단신도 재미있게 읽히니 여러모로 반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따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잘 느껴지는 이 편지를 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Lester

2024-03-11 03:17:30

괴물이야 판타지 세계관이라면 있는 것이나, 제목과 같이 '먼 길 떠나는 데'에 무장대를 넣을까 말까 고민을 제법 했습니다. 그런데 무장대 없다고 할 경우, 편지를 대신 전할 것도 없이 (식량과 물자와 시간이 많이 소비되긴 해도) 직접 왕래하면 되지 않겠는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소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오갈 수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무장대를 집어넣었습니다. 물론 본문의 핵심은 그게 아니기에 최대한 축약하고 다른 부분들을 많이 채워넣었는데 다행히 통한 것 같네요.


좋은 평가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목록

Page 2 / 12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채색이야기] 면채색을 배워보자

| 공지사항 6
  • file
연못도마뱀 2014-11-11 6570
공지

오리지널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안내

| 공지사항
SiteOwner 2013-09-02 2119
공지

아트홀 최소준수사항

| 공지사항
  • file
마드리갈 2013-02-25 4238
2435

[괴담수사대] XVIII-7. 사명

| 소설 5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30 60
2434

도쿄 메트로 긴자선 01계 전동차

| 스틸이미지 2
  • file
  • new
마키 2024-03-28 57
2433

Ai로 그려보자 - 금여우 무녀아가씨

| 스틸이미지 2
  • file
  • new
DDretriever 2024-03-27 60
2432

[괴담수사대] XVIII-6. 사랑의 맛

| 소설 4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26 69
2431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5. 제정러시아 및 소련편(하)

| REVIEW 6
  • file
  • new
마드리갈 2024-03-25 148
2430

[괴담수사대] XVIII-5. 재능맛, 노력 첨가

| 소설 4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24 54
2429

[괴담수사대] XVIII-4. 부패

| 소설 4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24 58
2428

Ai로 그려보자 - RobotⅡ

| 스틸이미지 2
  • file
  • new
DDretriever 2024-03-24 62
2427

[괴담수사대] 외전 37. 우리 누나 이야기

| 소설 4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24 64
2426

[단편] 최고의 레시피

| 소설 4
  • new
시어하트어택 2024-03-23 69
2425

[괴담수사대] 전노대부

| 소설 3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20 64
2424

Ai로 그려보자 - 소악마

| 스틸이미지 8
  • file
  • new
DDretriever 2024-03-19 145
2423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4. 제정러시아 및 소련편(상)

| REVIEW 4
  • file
  • new
마드리갈 2024-03-14 152
2422

Ai로 그려보자 - Fairy Series ~눈요정~

| 스틸이미지 2
  • file
  • new
DDretriever 2024-03-12 73
2421

[괴담수사대] XVIII-3. 신의 한 수

| 소설 3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11 60
2420

[괴담수사대] 악마와 계약을 할 수 있는 곳, 엘 푸르가토

| 설정 3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09 65
2419

Ai로 그려보자 - Fairy Series ~밤요정~

| 스틸이미지 2
  • file
  • new
DDretriever 2024-03-07 69
2418

[연습] 먼 길 떠나는 편지

| 소설 4
  • new
Lester 2024-03-07 72
2417

[괴담수사대] XVIII-2. 사랑의 묘약

| 소설 3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05 71
2416

[괴담수사대] XVIII-1. 악마와의 거래

| 소설 3
  • new
국내산라이츄 2024-03-05 75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