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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옛말에의 집착 그리고 태세전환

SiteOwner, 2022-08-16 22:27:45

조회 수
110

싫어하는 표현 중에 "옛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 가 있습니다.
사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천년 넘게 전해져 내려오는 각종 격언의 상당수는 인류의 경험에 따른 오랜 지혜를 담고 있다 보니 높은 확률로 가르침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게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즉 절대불변의 금과옥조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맥락을 생각하지 않으면 완전히 잘못된 결론이 나고 말아 버립니다.

이런 격언이 있지요. "대토목공사를 일으키면 나라가 망한다" 운운하는.
과거에는 이것이 상당부분 맞아떨어졌습니다. 인구가 적은데다 대부분의 생산가능인구가 농업에 종사하는 전근대사회에서는 대토목공사를 위해 생산가능인구를 대거 동원하면 그냥 농업생산력을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철저한 소비집단인 군대가 평시에 둔전을 운영하여 식량생산을 충당하는 등 전사회적으로 농업에 집중하지 않으면 현상유지조차 버거웠던 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그것이 반드시 진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대토목공사를 통해 흥한 나라들이 많아서입니다. 20세기 전반의 세계 대공황에 맞선 미국의 뉴딜정책이라든지, 20세기 후반의 세계최초의 상업운전 고속철도인 일본의 신칸센이라든지 우리나라의 국내의 경부고속도로나 해외의 중동건설신화 등은 예의 발언에 대한 훌륭한 반례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잃지 않고 대토목공사를 일으키면 나라가 망한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또 이런 격언을 생각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운운하는.
사실 역사상 존재한 대부분의 국가의 지도자는 남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지도자인 경우는 정말 적었는데 그러면 이것을 일반화하여 남성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면 동의하시겠습니까? 사실 지도자의 성별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를 융성시킨 지도자도 사실 남성 쪽이 많다 보니 성별에 따라서 뭐가 어떻다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불과 40년 전만 하더라도 국왕과 수상이 모두 여성이었던 영국이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항복을 받아낸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럼 이제 국내정치로 눈길을 돌려보겠습니다.
이번에 서울 남부를 강타한 수해의 주요 원인으로서, 2010년에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사임하면서 그 뒤를 이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대심도 배수시설 건설프로젝트를 대거 취소시킨 것이 거론되고 있습니다(오세훈 “故박원순 때 무산됐던 빗물터널 다시 뚫는다” (2022년 8월 11일 시사저널) 참조). 과도한 토목공사라고 지적하여 백지화된 프로젝트가 10년 후에 이런 결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대책이라면서 공급량 증가는 외면한 채 금원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가해진 온갖 방법이 부동산가격의 폭등을 만들어놓고 그 결과가 더불어민주당의 재보선 패배, 대통령선거 패배 및 지방선거 패배라는 3연패라는 패착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강령에서 1가구 1주택을 삭제하는 등으로 태세전환을 하였습니다(민주당 강령서 '소주성·1가구 1주택' 지운다 (2022년 8월 14일 한국경제신문) 참조). 그 금과옥조같았던 소득주도성장도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덤입니다.

틀린 옛말에 집착하다가 패착을 연속으로 겪고도 이제서야 태세전환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만시지탄이 없진 않으나 그래도 잘 한 것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타산지석도 모자라다고 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게 되겠군요. 그렇게 대토목공사를 죄악시하면서 그럼 행정수도 이전이니 혁신도시니 하는 것은 누가 추진했는지. 이런 데에서는 유독 틀린 옛말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Lester

2022-08-17 14:09:48

대토목공사의 경우 현대로 오면서 산업이나 일자리가 다각화되다 보니 관련 사업체들이 같이 상생하는 기회가 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축물에 모두 입주할 수는 있는 것인지의 의문이나 대규모 공사의 필요성 등에 대해서는 (나라가 망한다 급은 아니지만)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네요. 일종의 활용성 문제라고 해야 하나. 막상 댓글을 쓰면서 본문과 비교해보니 제가 생각한 토목공사의 '범주'는 산업용이 아니라 주거용에 맞춰진 것 같아서 딴소리를 한 것 같네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이건 뭐 반박하기도 엄청 쉽네요. 아주 먼 옛날 농경사회만 봐도 남자가 밖에서 사냥이나 농사를 지으면 집안일을 책임지는 건 여자였잖아요. 즉 누가 우월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가정이 파탄나는 구조 아닙니까. 이건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맞벌이'라는 게 보편화됐고요. 게다가 검색을 해보니 이건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므로 암탉이 (새벽에) 운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다'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지, 무턱대고 암컷/여성을 매도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요? [한국일보]) 즉 실제로 봐야 하는 것은 능력이고 또 이런 비방도 곱씹어보면 그 사람의 능력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감정적 호소가 잘 먹히는 모양입니다.


서재(?)에 있지만 못 읽은 (그래도 일감이 줄어들어서 틈이 나면 읽으려고 하는) 책들 중에 하나가 손자병법인데, 여기서 나온 구절 중에 유명한 게 있죠. "故其戰勝不復, 而應形於無窮. (그러므로 한번 전쟁에서 승리한 방법은 다시 사용하면 안 된다. 무궁한 형세의 변화를 끝없이 응용하여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어느 분야가 됐든 망조가 보인다는 건 형세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거구나 싶어서 납득이 됩니다.

SiteOwner

2022-08-19 18:12:48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Lester님께서 지적해 주신 게 맞습니다.

표현을 바꾸자면 이렇게도 쓸 수 있습니다. 대토목공사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제대로 잘 된 공사가 나라를 흥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공사가 나라를 망하게 만들 뿐이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감정적 호소가 잘 먹힙니다. 그러니 특정의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에도 죄책감이 전혀 없는데다 언론의 기사도 늘 감정적 선동 자체입니다.

인용하신 손자병법의 그 구절은 허실편의 것이군요. 글자 그대로 허와 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그 부분에서는 "당연한데 이걸 왜 새삼스럽게 그러지?" 하는 반문을 제대로 지적해 주는 구절이 많습니다. 하긴 구태의연해서 성공했다는 사례는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본 적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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