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6일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효되긴 했지만, 이 법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법을 만든다고 그걸 다 지킬까?" 하는 의문으로 대표되는 법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가장 큰 근거가 되겠습니다만, 그것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아주 강력한 요소가 있기에 더더욱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통신비밀보호법.
조선닷컴 2019년 8월 1일 기사를 읽어보면 사실 분노감이 치밀어오르지만 현실은 이렇게 법리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괴롭힘을 당하고,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전과자가 되고. 이게 현실입니다. 제3자들의 통신비밀을 해친데다, 채증수단의 엄격한 합법성을 요구하는 현행법의 법리상 IC레코더를 놔두고 직장 내 타인들의 대화를 녹음하려 했던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그렇게 대화녹음의 객체가 된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예외적인 경우는 거의 인정되지 않다 보니 제3자들의 대화내용을 알아내면 역으로 그렇게 한 것이 죄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대화의 당사자에 포함된 경우면 그래도 나을까 싶습니다만 그것 또한 그렇지가 않습니다.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지극히 신사적이거나 사무적으로 대하거나 아예 말을 섞을 기회조차 만들지 않으면 개정된 법이 상정하는 처벌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니 이것 또한 간단히 무력화됩니다.
대놓고 상대를 악인으로 몰아붙여서 매도하는 것보다 아예 무언의 동의하에 특정인을 배제하는 것이 더욱 무서운 차별일지도 모르고 사회가 이렇게 이행하고 있습니다.
또 우려되는 것은 역시 비판범죄학적 관점에의 강렬한 유혹.
비판범죄학에서 상정하는 것은 거칠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사회구조 자체가 범죄. 그러니 그 사회구조 자체를 전복해 버리자는 것. 그 직장을 파괴해 버려서 아예 괴롭힘의 구도 자체를 없애 버리자는 시도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주어진 규칙대로만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은 법안이 유효하더라도 기승을 부릴 것 같습니다. 더욱 교묘한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