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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10. 거대권력 타도투쟁과 매국노 발언

SiteOwner 2024.03.22 19:50:44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프롤로그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1. 게임과 공시생과 사교육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2. "여자 몇 분?" 과 열정페이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4. 연예인 머리핀과 액티브X와 편가르기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5. 미니스커트 단속과 먹방 가이드라인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6. 미키타카, 냐루코 그리고 쿵쯔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7. 1965년 대정전과 2018년 통신마비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8. 시저샐러드, 전환시대의 논리, 아우슈비츠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9. 소련전차를 비웃기 힘든 전기차


20세기말의 국내 대학가의 사정은 "운동권" 으로 상징됩니다.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학생운동집단이 대내적으로는 정권타도를,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반미 반일 고립주의노선을 표방하는 그런 행태는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고 미화되었는데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및 "나라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 등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도발적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그들의 노력으로 민주화운동이 쟁취된 것이며, 그들은 누구에게 이긴 것일까요?
이 대답에 대해서는 여러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운동권이 그 공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만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민주화 이후에도 운동권은 여전히 있었는데다 1990년대 후반은 한총련 폭력사태라는 초대형 폭력사태로 정기운행중인 열차가 탈취된다든지 서울시내가 마비된다든지 살인사건이 횡행한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운동권이 민주화운동의 쟁취자가 아닌데다 그들이 싸운 대상이 흔히 말하는 거대권력이 아닌 것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거대권력이 누가 되었든 간에 무조건 타도 운운했지만 결국 타도시킨 권력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맞서 싸운 대상은 있긴 합니다. 같은 대학생들.
평소에는 성실히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대학생들을 반동 매판자본가에 영합하는 쁘띠부르주아지(Petite bourgeoisie, 소시민)으로 매도하기에 바빴고 그들이 행동을 하면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대학생들로 충원된 전투경찰대원이 그들의 난동을 막아야 했습니다. 즉 그렇게 거대권력과의 투쟁을 외치면서도 결국 그 거대권력과 제대로 싸워본 적은 없었고, 결국은 대학생끼리의 싸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즉 그들이 이야기하던 상생이니 대동이니 공동체의식이니 하는 담론은 그들의 행동으로 철저히 부정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결국 수평폭력(水平暴力)의 범주를 지나지 못합니다.

요즘 좀 시끄러운 사안이 있습니다.
국가대표 양궁선수 출신의 인플루언서가 일으킨 매국노 발언 논란.
문제의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이하에 소개된 보도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친일파 후손됐다”…양궁 안산 한마디에 ‘날벼락’ 업체대표, 무슨일이 (2024년 3월 18일 매일경제)

문제의 이 사건에서도 위의 구도와 동일한 문제가 일어나 있습니다.
예의 인플루언서가 매도한 식당은 그녀의 출신지인 광주광역시 소재의 일본요리점으로 해외여행 컨셉트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 식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녀의 자유인데다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진심일지도 알 길이 없으니 일일이 평하고 할 것도 못됩니다. 누구의 말처럼 "존경하는" 이라는 수사(修辞)를 구사했다고 해서 그게 정말 존경하는 의미가 되지도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점에 대해서는 아예 보류해 두는 게 도리일 듯합니다.
여기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매도한 그 식당업주가 동향인(同郷人)이라는 것. 즉 매국노 운운하며 쏜 화살은 과녁이 아닌 지역주민에게 꽂힌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잘 포장해도 수평폭력이라는 말밖에 더 되지 않습니다.

20세기 운동권이 대학가에서 외치던 것들이 결국은 다른 대다수의 대학생을 매도하고 전경대에서 근무하던 다른 대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수평폭력이고 21세기 인플루언서가 한 발언도 그 발언자는 애국적인 발상에서 했겠지만 결과는 지역주민을 업신여기는 수평폭력이었습니다. 이런 구도에 대해서 생각조차 없으니 수평폭력은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수평폭력은 과연 무엇을 쟁취했고 또한 누구에게 승리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