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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30주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6개월

SiteOwner 2022.08.24 21:33:17
오늘은 한중수교일인 1992년 8월 24일로부터 정확히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킨 2022년 2월 24일로부터 6개월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한중수교 당시 저는 중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중수교에 대해서 전망이 밝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단교당한 대만 측 사람들의 오열하는 장면을 보면서 과연 이게 정답일까 하는 생각도 같이 했습니다. 더 큰 중국시장을 위해서, 그리고 소련 해체후의 탈냉전시대를 맞아서 새로이 중국을 인정해야 한다는 온갖 담론으로 미화된 한중수교 그리고 자유진영의 주요국 중 우리나라에게조차 버림받은 대만의 비극을 보면서, 한중수교에 대해 비판이나 우려는 조금도 없었던 당시의 세태를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소년이었던 저의 우려는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불혹에서 지천명으로 하루하루 가고 있는 저는 30년 전의 희망찬 전망을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1992년 당시 이미 인구 10억명을 크게 초과해 있던 중국에 대해 또래의 아이들조차도, 중국인 한 사람에 과자를 하나씩만 팔아도 10억개를 팔 수 있다고, 우리나라는 그냥 그거로 아주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을 쉽게 내뱉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국이 인해전술로 6.25 전쟁에 개입해서 통일의 꿈을 유린한 데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조용했습니다.
이제는 어떻습니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의 지위를 놓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코로나19 판데믹과 각종 인플레이션 덕분에 고물가에의 압박이 심화되다 보니 중국산 제품에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집니다. 그리고 중국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가 격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대중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협박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사드(THAAD)에 대해 대놓고 3불 1한을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산 컨텐츠를 제한하는 한한령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문화공정이 가해지는 것은 물론, 6.25 전쟁의 가해자 역할을 영웅적으로 미화까지 하는가 하면 전적지의 이름을 바꿀 것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보에 대해 정파에 상관없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운운하는 전략적 모호성이 금과옥조인 양 신봉하고 있으니 이것은 또 무슨 국공합작의 화신인지 모를 일입니다. 중국의 이런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2개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우습게 볼 수 없는 나라가 되는가, 중국이 마음껏 조종하는 나라가 되는가.

2022년 최대의 사건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대다수의 판단을 뒤엎고 장기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로 6개월입니다. 당장 저조차도 우크라이나가 길어야 몇주 내에 함락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했을 정도였는데 그 예상을 뒤엎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해 항전중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동서가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동부의 경우는 사실상 제2의 러시아였다 보니 정치상황의 주요 쟁점이 친러인가 반러인가가 지상의 과제였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침략자 러시아의 시각에서는 그렇게 어디가 친러이고 어디가 반러인지는 알 바가 아닙니다. 즉 친러도 반러도 우크라이나인이니까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면 될 일입니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자 친러지역 우크라이나인들도 마구잡이로 학살당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제4대 대통령으로 2014년에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야누코비치(Виктор Янукович, 1950년생)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미 말살대상으로 간주된 사실 자체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에도 선택지가 2개밖에 없습니다. 러시아군에 맞서 싸울 것인가, 러시아군에 살해당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우크라이나인들을 적으로 돌린 러시아는 수일 내지는 수주 안에 우크라이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낙관을 이미 포기했습니다.

낙관은 빗나가기 쉽고 침략자는 먼저 바뀌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침략자를 비호하든 반대하든 그 누구도 침략자의 눈에는 말살대상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과연 이런 현실을 바로 볼 용기는 얼마나 있으며 그 용기를 행동의 변화에 투영할 의사는 얼마나 있는지, 이렇게 29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두 사건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