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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의 서명에서 언급되는 인도 (※)

Lester, 2024-06-13 13:40:52

조회 수
141

※ 소설의 스포일러가 다소 있습니다.




아트홀의 지도 시리즈에서 인도 부분을 읽고 중학생 때 벼룩시장에서 샀던 "네 사람의 서명"이 생각났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두 번째 장편인데, 단편집만 만화판이나 아동용 요약본으로만 보다가 장편을 읽으니까 그 깊이에 감탄했더랬죠. 아마 긴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된 계기가 이게 아니었나 싶네요. 그리고 이후로도 홈즈 시리즈에 대해 단순 추리물 중 하나로서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계기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홈즈 시리즈만 매번 빌려다 읽고 거의 모든 에피소드의 내용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시험이나 수능에 도움은 별로 안 됐지만, 대신 창작을 비롯해 감성적인 측면에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번역에 필요한 스토리 유추라든가...


"네 사람의 서명"은 셜록 홈즈 시리즈의 두 번째 장편으로,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의 해당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 사심이 들어가서 내용이 충실한데다 같은 얘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 보이거든요. 여기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책(황금가지판)을 기반으로 어떤 식으로 묘사되는지에 대해서 언급해볼까 합니다. 줄거리는 대략 인도에서 복무했던 아버지를 잃은 아름다운 처녀 메리 모스턴이 생일마다 고급 진주를 제공받는 것도 모자라 본격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자 홈즈와 왓슨이 동행하고, 연락했던 남자의 가족이 숨겨왔지만 도둑맞은 인도의 보물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봐도 흥미진진한 내용이고 장편들 중에서는 로맨스 성향이 가장 짙은데다, 인도 이야기를 비롯한 과거편은 다른 장편에 생각보다 분량이 적다는 것도 여러모로 입문하기 편리합니다.


다만 인도에 대해서는 당대인의 시각으로 봐서인지, 약간 인종차별적인 느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나씩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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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홈즈가 보물을 훔쳐간 진범의 심복 격인 원주민 '통가(이름은 진범이 체포되고 나서야 알려줍니다)'의 정체에 대해 왓슨에게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고유명사 표기와 띄어쓰기는 모두 해당 서적의 표현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전략) "이건 최근에 나온 지명 사전의 첫 권이네. 요즘 나온 것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일 거야. 여기 뭐라고 씌어져 있는지 볼까?"


안다만 제도, 수마트라 북쪽으로 544킬로미터 지점, 벵골 만에 자리 잡고 있다.


"어디 보자! 이게 다 뭐야? <습한 기후, 산호초, 상어 떼, 포트블레어, 죄수들의 막사, 러트랜드 섬, 미루나무…> 아, 여기 있군!"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부족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부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의 부시맨, 아메리카 대륙의 디거 인디언, 푸에고 제도 사람을 꼽기도 한다. 안다만 제도 원주민의 평균 신장은 1미터 20센티가 채 안 되는데, 성장이 끝난 성인들 중에서는 이보다 훨씬 작은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사납고 까다롭고 끈질긴 성향을 갖고 있지만, 한번 마음을 주면 가장 헌신적인 우정을 발휘하기도 한다.


"왓슨, 이 점을 기억해 두게. 그러면 계속 읽어볼까?"


이들은 선천적으로 보기 흉한 외모를 타고났는데, 머리는 기형적으로 크고 눈은 작고 매서우며 이목구비는 제멋대로이다. 그리고 손발이 유난히 작다. 완강하고 사나운 기질 탓에, 이들을 교화하려는 영국 관헌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난파선의 선원들에게 이들은 항상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들은 돌을 매단 곤봉으로 생존자의 머리를 때리거나 독침을 날린다. 이러한 학살 뒤에는 반드시 식인 축제가 벌어진다. (후략)


뭐, 문명인이 쉽게 생각할 법한 '야만인'의 모습이죠. 대충 검색해보니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의 여러 원주민 혹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것으로 유명하다는 센티널족이 모티브로 보입니다만, 자세한 생활상까지는 나와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센티널족의 남자 평균 신장이 160~165cm(여성은 140~150cm 추정)라는 내용을 보면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것 같기도 합니다. 독침blowgun을 사용하는 원주민이야 아마존에도 있으니까요. 특히 그 침에 묻히는 독 중에 유명한 큐라레는 홈즈 시리즈의 후기 단편집에서 언급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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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진범인 조너선 스몰이 체포되고 나서 자신의 동기를 설명하느라 과거부터 현재의 행적까지 직접 털어놓는 장면으로, 중요한 부분만 추리겠습니다. 역시 표현은 해당 서적을 따랐습니다.


(전략) 하지만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았소. 아무 조짐도 없었는데 갑자기 큰 폭동이 일어난 거요(옮긴이는 여기서 이게 '세포이 항쟁'이라고 역주를 달았습니다). 인도는 영국의 한 지역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었소. 그런데 갑자기 20만 명의 시커먼 폭도들이 몰려나와서 그곳을 완전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거요. (중략, 아그라 성으로 피난을 간 스몰)


하지만 거기도 그렇게 안전한 곳은 못 되었지. 지역 전체가 완전히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소이다. 그곳에서 영국인들은 몇 명 이상 모이기만 하면 총을 들고 방어에 나섰소. 다른 지역에서는 무력한 도망자 신세에 불과했소. 구것은 수백만 대 수백 명의 싸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잔인한 자들은 우리가 직접 선발해서 가르치고 훈련시킨 현지인 보병, 기병, 포병들이었소. 그들은 우리의 무기를 들었고 우리 나팔을 불었소. 아그라에는 벵갈 제3연대 보병과 소수의 시크교도, 기병대 2개 중대, 포병대 1개 중대가 있었소. 점원들과 상인들이 군대에 자원 입대했고, 나도 나무다리를 이끌고 입대했소. (중략, 백인이라서 시크교도 2명을 부리는 성문 경비 지휘관 역할을 할당받은 스몰)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 녀석들이 폭도들과 내통했구나 하는 거였소. 바로 이것이 공격의 시작이지 싶었소. 만약 이 문이 세포이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아그라) 성은 함락되고, 부녀자들은 칸푸르에서와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소. (중략, 스몰에게 보물 이야기를 꺼내며 협력을 요구하는 시크교도)


'북부 지방에 작지만 풍요로운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가 있다. 군주는 선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데다가, 황금을 얻으면 쓰기보다는 모아놓기를 좋아하는 구두쇠 기질 탓에 더 크게 부를 늘려놓았다. 이번 난리가 터졌을 때 군주는 사자 편도 들고 호랑이 편도 들었다. 다시 말하면 세포이 편도 들었다가 (동인도)회사 편도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백인의 지배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사방에서 백인이 죽거나 패퇴한 소식밖에는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중략) 이렇게 재산을 나눠서 보관하기로 결심한 군주는 충직한 하인을 상인으로 변장시킨 다음 보물 상자를 들려 아그라로 보내고 자신은 세포이의 투쟁에 가담했다. 왜냐하면 그쪽에선 세포이의 세력이 훨씬 강했으니까.' (중략, 그 하인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았지만 보물을 숨겨놓고 체포된 스몰 일당)


그곳(안다만 제도의 블레어 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덥고 끔찍한 곳이오. 그리고 작은 정착촌 너머에는 기회만 있으면 독침을 쏘아대는 식인종들이 들끓고 있었소. 죄수들은 거기서 땅을 파고 도랑치고 마를 재배했는데, 그것 말고도 할일이 산더미 같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소. (중략) 하지만 안다만 제도는 육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 바다에는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소. 그래서 도망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중략, 교도관격인 장교들에게 보물을 나눠갖는 대가로 탈출 수단을 요구하는 스몰)


'그렇게 서두르실 것 없습니다.' 소령이 흥분할수록 나는 더욱 침착해지는 걸 느끼며 말했소. '나는 세 동지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네 사람은 행동을 같이하기로 했으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숄토가 언성을 높였소. '그 시커먼 세 놈하고 우리 계약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시커멓든 시퍼렇든 나는 동지들과 함께합니다.' 나는 말했소. '우리는 같이 행동합니다.' (중략, 숄토 소령에게 배신당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 스몰)


어느 날, 소머튼 선생이 열병으로 앓아누웠을 때 숲에서 일하는 죄수 패거리가 안다만 원주민 하나를 데리고 왔소. 그는 죽을병에 걸리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죽으려고 나왔다가 죄수들에게 발견된 거였소. 비록 독사처럼 위험한 놈이었지만 나는 녀석을 받아들였소. 그리고 두 달 간의 치료 끝에 녀석은 몸이 회복돼서 걸을 수 있게 되었소. 그러자 그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고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항상 내 막사 근처에서 어슬렁거렸소. 나는 그에게서 안다만 부족 말도 조금 배웠는데 그러자 그는 나를 더욱 따르게 됐소. (중략, 자신을 따르기 시작한 원주민 통가와 탈출에 성공해 여차저차 영국으로 돌아온 스몰)


가엾은 통가는 박람회 같은 곳에 흑인 식인종으로 출연했고, 우리는 그것으로 먹고 살았소. 통가는 날고기를 먹고 전쟁의 춤을 추어보이곤 했소이다. 하루 일을 끝내면 동전이 모자에 가득했소. (후략)


어쩌다 보니 내용을 전부 다 실어버릴 기세로 받아적었는데(…), 그만큼 소개 및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인용된 부분들을 봐도 당대(혹은 암암리에 현재)에 먹히는 클리셰 같은 표현이 가득하니까요. 게다가 세포이 항쟁(1857~1858년)이 벌어진 지 약 30년 뒤인 1890년에 발표된 작품이라 그런지 현실감이 넘쳐납니다. 작중 현재 시점은 1888년이지만요.


비록 통가를 비롯해 인도 및 인근 지역 기반의 캐릭터들은 탐욕스럽거나 악마에 가깝고 스몰은 상대적 소수인 백인으로서 의리가 넘치는 선량(?)한 이미지로 나옵니다만,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털어놓는 모습은 인상적이죠. 참고로 인용하려다 뺀 내용인데, 스몰의 인도 시절 고용주였던 백인 인도 농장주는 세포이 항쟁이 벌어졌을 때 피난을 안 가고 버티다가 부부가 나란히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 메리 모스턴에게 진주를 보내주던, 보물 상속인(?)의 동생인 새디어스 숄토는 정신도 약간 오락가락하고 인도에 가본 적도 없는 주제에 자기 집을 인도풍으로 꾸며놓기도 하죠.


이처럼 (백인의 의무라는 시로 백인우월주의 및 제국주의 사상을 설파한 러디어드 키플링처럼) 이국을 일차원적으로 야만인에 가깝게 묘사하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백인 또한 못난 캐릭터들을 넣어서 균형을 맞추려고 한 기색도 보입니다. 세포이 항쟁을 철저히 폭동과 학살로 묘사한 점은 역시 대영제국의 소속원으로서 식민지배 자체에 대해서 딱히 의구심을 품지는 않은(혹은 못한) 듯하지만, 코난 도일은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으로 유명한) 레오폴드 2세가 콩고에서 벌였던 학정을 폭로하는 데에 앞장서는 등 당대의 몇 안 되는 상식인이기도 했거든요.


=========================================================


역사학이나 고고학 중에서는 이렇게 역사책만이 아니라 당대의 물건이나 예술품을 가지고 시대상을 유추하는 분야도 있다고 하더군요. 예전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라면 이 쪽으로 진로를 잡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그 쪽에서 요구하는 건 '상상력'보다는 '사실(에 지극히 가까운 주장)'이라, 저하고는 안 맞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연구자가 아닌 현대인으로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은 꽤나 재미있는 건 분명한 사실인 듯합니다.


뭐, 그러합니다. 셜로키언이나 홈지언이라고 할 정도로 덕력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홈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얘기가 나온 김에 작정하고 글을 써봤습니다. 긴 글인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4 댓글

마드리갈

2024-06-13 23:19:13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 8. 인도 중심의 남아시아편에서 코멘트로 언급해 주신 그 네 사람의 서명 이야기군요. 역시 당시의 인도사정을 유추하기에 상당히 좋네요. 

사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따로 없어요. 순환논리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그런 것이죠. 누군가가 선인인가 악인인가는 그들이 어떤 집단에 속해서가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라서. 사견이지만 저는 세포이항쟁이라는 잘 알려진 용어에도 의구심이 좀 들긴 해요. 일단 지도 글에서도 잘 알려진 용어를 쓰긴 했지만...


당대의 물품으로 시대상을 유추하는 것도 고고학 연구의 좋은 방법이죠. 게다가 실제로 아주 정교한 위작을 사용된 원료나 구사된 기법 등으로 역추적해서 정체를 밝혀낸다든지 하는 것도 꽤 많은데다 무형의 자산인 음악에서도 그런 방법이 구사되어 위작감별이 이루어진다든지 하고 그러해요.

Lester

2024-06-16 11:17:22

그런데 그 개개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배경을 근거로 판단하는 풍조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사람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그에 맞춰서 판단 및 대화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죠. 생각과 가치관이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존재할 테니까요. 그럴 틈이 있든 없든 발휘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문제지...


말씀하신 재료를 근거로 위작을 판별하는 내용은 만화 "갤러리 페이크"에서 많이 봤죠. 작중에서 등장한 방법 중 하나는 '위작은 따라한답시고 불필요한 펜터치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필적감정과 비슷한 이치죠.

SiteOwner

2024-06-14 20:11:41

예전에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던 게 다시금 떠올라서 반갑게 느껴집니다. 좋아하는 추리작가 중에 코난 도일 이외에도 에드가 앨런 포우, 아가사 크리스티, 작가그룹 엘러리 퀸, 니시무라 쿄타로 등도 있다 보니 한동안 읽지 않고 있었던 추리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소개해 주신 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도 관련의 묘사가 매우 상세하고 또한 생동감있는 게 좋습니다.

원문으로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사실 창작물에 반영되는 시대상이라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데카메론에 스마트폰이 나올 수 없고 홍길동전에 모택동어록이 나올 수 없듯이. 그러니 그 정도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습니다. 이 수준을 넘어서면 정치적 올바름 사조가 과거작을 개변하려 드는 시도로 벌어질 것이 확실하기에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영향도 있다 보니 한국사회에서는 정복이나 식민지배 관련을 악마화하려는 경향도 다소 있는데 그것 또한 언더도그마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상당히 도발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그간 여진족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 Lester님을 몰아붙이기 위한 질문도 아니고 그래봤자 얻을 것 하나 없으니 그럴 이유 자체가 처음부터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계기로 뭔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을 듯합니다.

Lester

2024-06-16 11:52:50

코난 도일과 포우와 크리스티까지는 그나마 삼대장격인 사람들이라 읽어봤지만 나머지는 읽을 엄두가 안 나네요. 엘러리 퀸 시리즈에서 읽어본 건 탐정학원Q에서 지나가듯이 다룬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 전부긴 한데, 엘러리 퀸의 특징인 Q.E.D.가 만화 "Q.E.D. 증명종료"에서 내내 등장하는 걸 보고(실제로 작중 인물이 지적) 추리물은 돌고 도는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마지막에 적었듯이 당대에 만들어진 창작물을 생활상을 알아내는 사료(史料)로 활용하는 게 학문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개인적으로도 재미가 상당하더군요. 가령 궁정광대들은 그렇게 풍자를 해대고도 잘만 살아남았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는 윗사람들에게 직언을 해야 하니까' 그 특권이 광대들에게 주어졌다든가... 그래서 서양권(정확히는 유럽)은 풍자에 제법 관대하지만 동양권은 그런 게 없다는 비교도 있더군요. 반면 그 유럽에서 떨어져 나온 미국은 역시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서인지 정치적 올바름을 괴물로 탈바꿈시켰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정복이나 식민지배 관련을 악마화한 경향도 다소 있긴 한데, 정확히는 '우리 정복은 착하고 너네들 정복은 나쁘다' 식이죠. 즉 환단고기 주워섬기며 북벌을 외치는 세력이 찬양하는 고구려와 발해의 정복활동이나 삼국시대 백강전투에서의 승리와 한국사 전반에 걸친 왜구 소탕은 옳다고 했지만, 반대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국권피탈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나쁘다고 하는 식이죠. 물론 후자 셋의 경우 우리나라가 철저히 피해자 입장이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왜 중국에게는 우리가 못났다고 하고 일본에게는 여전히 고자세인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뭐 이 문제는 포럼에서 내내 이야기한 주제이니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요.


과거 비정상회담의 광복절 특집 당시 조승연이 특별출연해 지배국-피지배국의 당시와 오늘의 관계에 대해 해설(?)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해당 에피소드 1화). 그리고 해당 회차에서 나오기를 유럽은 각국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통합 교과서를 만들지만 한일중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해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라고 조승연이 코멘트했는데... 중국은 제쳐놓더라도 한국과 일본은 서로 내부의 반대가 만만찮아서 갈 길이 너무 멀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도 한일국교가 진정한 의미로 정상화된다면 아마 한일합작으로 가벼운 분위기의 여러 작품들이 먼저 나오다가 사극처럼 무거운 작품들도 각국의 장비를 동원해서 찍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여진족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중공은 아니니까 '새로운 중국'이 등장하면 그럭저럭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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