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사전의 표제어가 비속어가 아니라는 주장의 추억

SiteOwner 2023.08.23 22:35:57
국민학생 때의 일이었습니다.
대략 5학년 쯤 되니까 조숙한 아이들도 많이 보였고 성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의 여자아이들은 발육상황이 두드러지다 보니 키가 커지고 가슴과 엉덩이가 커져서 성인여성에 근접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조숙하고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이런 장난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공공연히 사용해서 좋을 것 없는 용어에 대해 이용규칙 게시판 제10조 및 추가사항에 따른 인용이 있으니 주의를 요하겠습니다. 이 점을 숙지하신 뒤에 열람을 이어나가시를 바라겠습니다.
무턱대고 행동부터 하는 경우에는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추거나 심한 경우 가슴을 만진다든지 팬티까지 잡아끌어내리는 등의 절대 장난으로 봐 줄 수 없는 짓을 자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남자아이들은 국어사전에서 성기에 대한 명칭을 찾아내서 대놓고 큰 소리로 읽는 식으로 놀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여자아이들 앞에서 일부러 "보지" 를 연호한다든지 여자아이들의 대화 일부분을 따라하면서 여자아이들이 "자지" 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고 변태라고 놀려댄다든지.
이런 사건이 빈발하면서 교사도 대응을 하게 되었는데 교사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는가 하면 그건 또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예의 머리가 좀 돌아가는 남자아이들이 이렇게 항변했으니까요. 예의 "보지" 도 "자지" 도 사전에 있는 말인데 왜 쓰면 안되냐고 따지면 교사들은 할 말을 못 찾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표제어 탓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좀 더 나아가서는 아예 복수의 표제어를 조합하면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 좆같다" 라는 문장을 구성하는 두 어휘가 모두 사전의 표제어니까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 사전의 표제어라고 해서 그것을 어느 상황에서 써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는 사용자나 사용환경에 따라 적절한 것이 따로 있습니다. 즉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사용자나 사용환경이 맞지 않으면 부적절한 어휘가 됩니다. 이것은 겸양어 같은 것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성기의 명칭이라든지 부정적인 상황판단을 가리키는 어휘가 예외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만 지켜도 좋은 언어생활은 영위가능합니다.

국민학교 5, 6학년 때의 그런 소동은 아이들이 졸업하여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을 일삼던 아이들에게도 식상해지는데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여러모로 통제의 범위도 강도도 높아지다 보니 그런 짓을 하다가는 현실의 생활이 힘들어지니까 더 이상 존속할 수가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리고 그런 소동은 그렇게 1980년대말의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끝나려나 싶었는데...

이런 뉴스가 있습니다.
최강욱 “깐죽거리지마라” vs 한동훈 “국회의원이 갑질하는 자리인가” (2023년 8월 21일 조선일보)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대해 "깐죽거리지 마라" 라는 표현을 썼고 한 장관이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에게 항의했습니다. 법제사법위원장은 해당 어휘가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게다가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도 "깐죽거린다는 말은 국회의원이 스스로 국회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 이라고 최 의원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최 의원은 "깐죽거린다는 말은 비속어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국어사전에 있는 그 어휘의 정의를 인용했습니다.

저야 한낱 연작(燕雀)에 불과한 재야의 소시민이라서 홍곡(鴻鵠)같은 위정자들의 복안 같은 건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은 확실히 판단가능합니다. 사전의 표제어라서 비속어가 아니라는 논리는 이미 1980년대 후반의 국민학생들 사이에서나 잠깐 유행하고 말았던 철지난 유행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이 글 속의 어떤 문장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