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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의 기억 속에서 그나마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누군가가 장난을 쳤고, 그걸 만화부원들이 적극적으로 막았다는 것 정도다. 2주 전의 일인데도 그게 잘 생각이 안 나는 건 마린이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맞아... 네 말 들으니까 생각나는 건데, 그게 누가 한 장난이었더라? 누가 그랬지...”
“누구기는!”
그렇게 얼른 그때 있었던 일을 떠올리지 못하는 마린을 보고 나디아가 ‘왜 그것도 못 떠올리냐’는 듯 목소리를 확 높여 말한다.
“아니, 누구냐니? 2주 전에 누가 우리하고 같이 있었던가?”
나디아의 말에, 마린이 여전히 2주 전 코믹 페스타에서 있었던 일이 잘 떠오르지 않았던 건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그날 행사장에 이상하게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고 그랬던 것 같기는 한데...”
“봐봐! 바로 그거라고! 바로 저기 있다고!”
나디아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곧바로 부스 바깥쪽에 누군가 대기했다가 들어오는 것 같다. 마린은 그걸 보고, 마치 도망갔던 기억이 집을 찾아 돌아왔기라도 한 듯, 밖에서 서성거리는 토마를 보고 손짓한다.
“야! 이리 와. 찔렸냐? 그럼 찔릴 짓을 하지 말든가!”
토마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긁으며 가까이 다가온다. 잔뜩 긴장했는지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부스 안을 울리고, 거기에다가 부스 안의 습도도 조금 높아진 것 같다. 분명히 토마가 긴장했을 것이다.
“또냐? 또 네 친구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야?”
“치... 친구라니요, 선배님! 그런 친구는...”
“자, 여기.”
토마가 더듬더듬 말하는 걸 듣고 있던 마린은 부스 옆에서 다른 부스를 구경하던 민을 가리킨다. 당연히, 민은 자신이 지목되자 금방이라도 펄쩍 뛸 듯,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니, 선배님! 지금 무슨 소리를! 내가 무슨 의사라도 돼요?”
“왜, 틀린 말은 아니잖아? 토마와는 비교도 안 될 능력자가 너잖아?”
“아니, 그러니까...”
민은 아니겠다 싶은 건지, 토마를 보고 손짓한다.
“아니, 나는 또 왜!”
“나하고 구경이나 하자고. 괜히 또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리고 준비라도 한 듯, 다른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얘들아, 어디라도 좀 놀다 오자. 여기만 있기는 좀 그렇잖아?”
“어... 그렇지!”
그렇게 민과 친구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자, 나디아와 마린은 ‘휴’하고 안도하며 말한다.
“그래도 저렇게 위험 요인을 미리 치워 놨으니까, 다른 일은 안 터지면 좋겠는데.”
“나도.”
한편 그 시간, 방송실.
“후... 이제 음악을 틀면 되겠는데...”
아멜리는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행사장에 틀 만한 음악을 찾으며, 가만히 중얼거린다.
“뭐가 있지...? 저런 데에는 좀 재미난 음악이 좋기야 하겠는데...”
그렇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아멜리의 선배 ‘피오리나’가 방송부장일 적에, 행사에 쓸 만한 음악들을 추려서 모아놓은 게 있다. 그런 파일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 아멜리는 곧장 컴퓨터에서 그 음악 목록을 뒤져본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음악 목록을 찾아낸다.
“오... 좋았어, 여기 이거지!”
아멜리는 ‘이거다’라는 듯, 그걸 틀고서 방송실을 나온다. ‘이제 됐다’는 표정으로 방송실을 나온다. 이제 행사는 완벽할 것이다...
그런데...
“저 애는 누구지?”
아멜리의 눈에 수상한 사람이 하나 보인다. 중학교 교복을 입었는데,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이상한 발걸음으로 걸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가만히 보니, 미린중학교 2학년의 로니다. 로니와 같은 어느 동아리에도 속하지 않은 학생이 수업도 끝나고, 경품 추첨도 꽤 지난 지금 여기에서 서성인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어느 동아리도 속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그렇다고 또 구경꾼도 아니고? 어디 가는 거야... 저 애는?”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아멜리는 로니의 뒤를 쫓아가 보기로 한다. 마침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뭐 하는 거냐고... 뭐 저렇게 비밀스럽지?”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만화부 부스. 민과 친구들이 다른 부스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보다 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아트북에 눈길이 가 있다.
“오, 이건 다 <초성간 패트롤>의 팬아트 모음인가?”
“그럼. 직접 그렸지. 이런 건 직접 그려야지 가치가 더 있다고!”
만화부 부스의 매대 앞에 앉아 있는 나디아와 동급생으로 보이는 중학생 한 명이 화보집 한 권을 두고 흥정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 하나 넣고 돌려도 이거만큼 괜찮은 그림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에이, 직접 그리는 거하고 같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리고 그 뒤에서 또 한 사람이 구경꾼들 사이로 낀다. 그 사람은 나디아를 아는지, 바로 나디아를 보며 손짓한다. 나디아가 거기에 반응을 보이자, 그 사람은 바로 나디아의 앞으로 온다. 그 사람은 자동차 연구 모임의 루카스다.
“오! 이거 네가 그린 거냐?”
“뭐? 차라리 프로그램 돌려서 그린 거라고 하지 그러냐.”
자신의 앞에서 귀찮게 하는 루카스를 앞에 두고, 나디아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물론 나디아의 앞에 루카스가 보여 주는 건, 아이란이 그린 그림을 엮은 아트북이다.
“뭐야? 같은 만화부원끼리 그렇게 험담을 해서야 되겠어?”
“이유가 다- 있지. 너는 모르는 내막 말이야.”
“나도 좀 알려주라.”
“몰라도 돼. 그리고 여기는 왜 왔어? 너희 동아리 부스나 신경 쓰지.”
“에이- 알잖아?”
루카스는 그렇게 밑밥을 깔기 시작한다. 즉석에서, 아까 슬레인과 셰릴과 나눈 대화의 녹음본을 들려주기까지 한다. 그걸 듣고 나자 나디아와 마린은 궁금증이 한층 더해졌는지, 루카스에게 다시 물어본다.
“아니, 그래서, 너는 지금 너희 동아리가 갑갑해서 여기 왔다는 거잖아?”
“그래. 좀 잠잠해지면 돌아가려고 하는데, 문제는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서.”
루카스는 속으로 웃는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으려고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더군다나, 명품숍 1년 이용권의 당첨자, 나디아가 눈앞에 있다. 이건 루카스에게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다. 슬슬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루카스는 슬며시 말을 꺼낸다.
“재미있는 거 하나 할까?”
한편 민과 다른 동아리의 친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다니다가, 재미있는 걸 찾아서 어디든 가 보기로 한다. 사실 아까 민이 토마를 데리고 만화부 부스 근처를 벗어난 것도, 토마를 옆에 두고 있으면 위험요소가 더 적어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분위기도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과 친구들이 행사장 안을 돌아다니던 중, 마침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이쪽까지 들린다.
“우와, 여기 행사장 옆에서도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응, 뭘 한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뭔가 재미있는 걸 하니까 구경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환호성을 지르는 것 아닐까?”
“에이, 당연한 소리를 왜 별난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어?”
“그러니까.”
친구들이 그렇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도 수호는 작정이라도 한 건지, 적극적으로 손짓을 하며 미린고등학교 운동장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너희들도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 자, 가 보자니까?”
아무튼 수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운동장으로 향하니, 그 환호성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과연, 미린고등학교 운동장 쪽에는 미린중학교 운동장에 펼쳐진 각 동아리의 부스만큼이나 흥미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충 봐도 큰 트랙에 무언가 달리는 게 보인다.
“이거 며칠 전에 봤던 거 같은데...”
그리고 민과 친구들이 운동장에 들어오자마자 들리는 건, 붕붕거리는 엔진 소리. 틀림없이 RC브라더스의 RC카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건...
“아차, 조심해야지!”
누군가가 민과 친구들의 바로 앞으로 ‘휭’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게 보인다. 순식간에 지나간 모양인지, 얼른 볼 때는 얼굴이 누군지 분간을 못 했지만, 뒷모습을 보니 알 것 같다.
“뭐야... 또 저 형이잖아.”
오스카가, 자신의 묘기를 뽐내며 보드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 개발한 기술인지 아니면 매번 해 오던 기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케이트보드 타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꽤 좋은 구경거리가 되는 건 확실하다.
“너희도 구경하러 온 거냐?”
한참 묘기를 부리는 중에도, 오스카는 꽤 여유있게 민과 친구들을 한번 돌아보며 말한다.
“이왕 왔으면 너희도 자리 잡고 앉아! 여기 자리 많이 없으니까!”
“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눈앞에 있는 트랙으로 RC카 한 대가 또 한번 지나간다. 그리고 주위를 보니, 과연 오스카의 말대로, 구경꾼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과자를 까먹든지, 아니면 잡담을 나누든지 하는 게 보인다.
“빨리 앉아! 안 앉으면 너희들 서서 봐야 한다?”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린다. 돌아보니 RC브라더스의 부원 사비하다.
“이런 재미있는 재대결의 장을 마련해 준 해진 선배한테 고마워해야 하지 않냐?”
“어...”
하지만, 민과 친구들에게는 어느새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눈에 띈다. 운동장 옆에 마련된 가설 행사장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게 눈에 띈다.
“저기는 뭐가 있길래 저러냐?”
“한번 가 봐야겠는데...”
민과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리로 향한다. 그 문제의 행사장은 다름 아닌 레디 길드 원이 차려놓은 야외 게임장. 조금 큰 스크린으로 게임 실황이 중계되고, 사람들의 시선은 거기에 대부분 쏠려 있다.
“어, 얘들아! 어디 가냐!”
한편, 문제의 대결을 막 끝낸 오스카는 민과 친구들이 레디 길드 원이 차려놓은 게임장으로 가는 걸 보고 조금은 애타게, 민과 친구들을 잡으려고 한다.
“너희들도 내 실력을 봐야 할 거 아니야! 이거 돈 주고도 못 봐!”
“어, 미안해요! 저희는 이만!!”
민이 오스카를 돌아보고 말하자, 오스카는 그래도 놓치지 않고 싶은 건지 한마디 한다.
“언제든지 오라고! 나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 시간, 민과 친구들은 게임장에서 진행되는 시합을 지켜보는 중이다. 잠시 둘러보다 보니, 민의 눈에 다른 자리들보다 조금 넓은 자리가 보인다. 그런데 그 자리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앉아 있다. 마침 레디 길드 원의 부원이기도 한 바실리는, 민의 일행이 눈에 띄었는지 가까이 다가온다. 민은 그걸 알고 바실리에게 와서 말한다.
“그런데, 바실리 형... 혹시 이것도 여기서 쓸 수 있는 거... 맞지?”
“야! 이건 당연히 안 되지! 이건 정식 대회가 아니잖아!”
“어... 그렇지, 참.”
민은 능청스럽게, 슬며시 화제를 넘긴다.
“혹시 여기 자리 없어? 우리 자리가 꽉 찬 것 같은데.”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4-01-05 11:04:46
역시 보는 눈은 여기저기 있기 마련이죠.
로니는 그걸 모르는 듯한데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어요. 이번에는 아멜리에게. 게다가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니까 로니가 뭔가 나쁜짓을 하는 도중에 현장에서 덜미를 잡힐 확률이 크게 올라갈 거예요.
활기찬 교류행사도 좋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니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역시 미성년자인 각급학교 학생들은 다른 걸까요.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닌데 벌써 이런 말을 하다니...
시어하트어택
2024-01-07 10:28:31
차라리 로니에게는 저기서 잡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당장은 온갖 수모를 당할지는 몰라도 토마처럼 누군가 옆에서 붙들어 줄 사람이 있으면 그게 훨씬 낫죠.
큰 행사여도 동상이몽이다 보니 각자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법이죠...
SiteOwner
2024-01-28 15:07:47
기억이라는 게 균일한 것이 못 되어서, 매우 선명하게 기억나는 오래된 사실이 있는 반면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도 모를 최근의 사실도 있기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취학전이었던 1983년 10월 17일에 신문에서 보았던 앞뒤로 문이 하나씩 있는 시민자율버스의 광고는 선명히 기억납니다만, 바로 어제 외출 때 썼던 경비의 총액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세상에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동네에도 도처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보니 허튼 짓을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비교적 좁은 학교 안이라면 로니가 아무리 잘 숨는다 한들 한계는 금방 드러납니다.
활기찬 행사는 역시 좋기는 한데 상황이 여러모로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묘기를 잘 부리더라도 사고가 날 때는 정말 한순간입니다. 자신감을 가지는 건 좋지만 과신은 말아야겠지요.
시어하트어택
2024-02-03 23:23:56
토마의 장난이 마린에게는 그다지 강렬한 기억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옆에서 겪었으면서도 말이죠.
로니가 아무리 장난을 치기 위해 이리저리 날고 긴다고 해도... 끝은 있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