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언어의 독과점에 숨겨진 문제 몇 가지

SiteOwner, 2018-08-06 22:56:21

조회 수
203



미시경제학에서는 독점(Monopoly) 및 과점(Oligopoly)을 눈여겨 보고 있으며, 이것에 대해 매우 정밀한 분석을 해 두고 있습니다. 그 분석 중 눈여겨 볼만한 사안은 독점과 과점의 폐해. 이것을 간단히 짚어보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유경쟁, 독점, 독점적경쟁, 과점의 네 가지로 구분되는 시장의 유형 중 독점은 공급자가 가격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급자가 오직 하나라서 소비자는 좋든 싫든간에 그 가격을 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과점은 소수의 거대 공급자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사실상의 지배자로서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형성되는 가격은 자유경쟁이나 독점적경쟁의 경우보다는 높기 마련이고, 그만큼 사회후생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독과점을 막기 위해서 여러 조치가 단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Standard Oil Company)의 분할이라든지, 작게는 식품분야에서 크게는 우주항공 분야에서까지 일어나는 업체간의 담합, 트러스트, 카르텔 등을 막기 위한 각종 정책이 시도된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언어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유감입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의 경우, 어떤 어휘나 언어의 상당부분, 혹은 전체가 새로이 탄생하거나 재정의되거나 주류로 정착하면 그 이후부터는 그 언어는 그것의 여집합을 적대시하거나 배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 경우를 보겠습니다.

진보, 자주, 민족, 페미니즘, 다원주의 등의 어휘를 보았을 때 이 어휘가 표방하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할 용기가 그렇게 쉽게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대척점에 있는 가치는 어떻게든 평가절하되거나 타도, 청산, 극복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또한, 언어에 독과점이 일어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언어의 정의에도 변동이 일어납니다.

이미 위에서 보듯, 시장이 독점 또는 과점 상태일 때에는 공급자가 가격결정권을 갖게 됩니다. 언어라고 해서 이게 달라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거의 동일한 형태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왜곡이 일어나고,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함의는 물론이고 사전적 정의까지 달라지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조선인(朝鮮人)의 일본어 발음인 쵸센진, 조센징 등은 분명 겉보기에는 조선의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과 글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일본 지배하의 우리나라의 언어환경에서 "조센징" 이라는 말은 일본인이 사용하는 한국인의 멸칭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조선총독부 체제가 끝난지도 이미 반세기하고도 절반 가까이가 지났지만 예의 어휘는 더 이상 가치중립적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의 각종 어휘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의미의 왜곡이 진행되어, 궁전이라는 어휘가 일반적으로는 군주국의 왕가가 거주하는 건물을 의미하지만 북한에서는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대형 문화시설로 완전히 다르게 정의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존재이고, 그래서 자신의 말이 옳다는 확신 및 자신의 생각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자체로서는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특정 가치의 절대화 등을 위한 도구로 쓰이면, 그 폐해는 좀처럼 극복하기 쉽지 않으며, 아예 불가능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독과점은 여러모로 경계해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습니다.


말과 글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현대사회에서 표현이 세련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하고 나날이 거칠어져 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된 현상에 일조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독과점으로 공급된 어휘에 대해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여러모로 생각하고 반성해 볼 일입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대왕고래

2018-08-26 04:11:48

단순한 버섯 이름에 자양강장제 이름이던 "운지"가 인터넷상에서 금어가 되어버리고, 어느 집단에서 "한남"을 명칭으로 사용한 덕분에 어느 대학 이름이 이상하게 보이게 되기도 하죠. 누군가가 한 언어를 다른 의미로 변질하는 순간, 그것은 아예 고정되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니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네요.

SiteOwner

2018-08-26 19:54:34

그렇습니다. 한번 변질된 말은 더 이상 제대로 쓸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그러한 현상이 나날이 늘어만 가니 앞으로 제대로 쓸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두렵고 그렇습니다. 문제는 언론매체나 어문정책 담당기관 등도 이런 것들에 무관심하여, 그러한 어휘에 휘둘리고 있으니 사정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


최소한 포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지요.

Board Menu

목록

Page 1 / 31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교환학생 프로젝트를 구상 중입니다. (250326 소개글 추가)

6
Lester 2025-03-02 424
공지

단시간의 게시물 연속등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SiteOwner 2024-09-06 470
공지

[사정변경] 보안서버 도입은 일단 보류합니다

SiteOwner 2024-03-28 302
공지

코로나19 관련사항 요약안내

621
마드리갈 2020-02-20 4120
공지

설문조사를 추가하는 방법 해설

2
  • file
마드리갈 2018-07-02 1142
공지

각종 공지 및 가입안내사항 (2016년 10월 갱신)

2
SiteOwner 2013-08-14 6151
공지

문체, 어휘 등에 관한 권장사항

하네카와츠바사 2013-07-08 6746
공지

오류보고 접수창구

107
마드리갈 2013-02-25 12271
6262

이탈리아, 페미사이드(Femicide)를 새로이 정의하다

5
  • new
마드리갈 2025-11-28 38
6261

국립국어원이 어쩐일로 사이시옷 폐지 복안을...

  • new
마드리갈 2025-11-27 18
6260

통계로 보는 일본의 곰 문제의 양상

  • new
마드리갈 2025-11-26 21
6259

마치부세(まちぶせ)라는 노래에 따라붙은 스토커 논란

  • new
SiteOwner 2025-11-25 27
6258

북한이 어떤 욕설을 해야 국내 진보세력은 분노할까

2
  • new
마드리갈 2025-11-24 32
6257

또 갑자기 아프네요

  • new
마드리갈 2025-11-23 30
6256

큐슈북부에서 눈에 띄는 여탐정 와카(女探偵わか)

5
  • file
  • new
SiteOwner 2025-11-22 114
6255

올해의 남은 날 40일, 겨우 평온을 되찾고 있습니다

  • new
SiteOwner 2025-11-21 39
6254

해난사고가 전원구조로 수습되어 천만다행이예요

  • new
마드리갈 2025-11-20 42
6253

반사이익을 바라는 나라에의 긍지

  • new
마드리갈 2025-11-19 48
6252

엉망진창 지스타 후일담

7
  • new
Lester 2025-11-18 121
6251

비준하지 못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어떻게 신뢰할지...

  • new
마드리갈 2025-11-17 50
6250

구글 검색설정이 겨우 원래대로 돌아왔네요

  • new
마드리갈 2025-11-16 51
6249

간단한 근황, 간단한 요약

4
  • new
Lester 2025-11-15 95
6248

원자력상선 무츠, 미래로의 마지막 출항

  • file
  • new
마드리갈 2025-11-14 54
6247

"라샤멘(羅紗緬)" 이란 어휘에 얽힌 기묘한 역사

  • new
마드리갈 2025-11-13 58
6246

공공연한 비밀이 많아지는 사회

  • new
마드리갈 2025-11-12 63
6245

다언어 사용이 노화가속 위험 감소에 기여할 수 있다

  • new
마드리갈 2025-11-11 65
6244

폴리포닉 월드 프로젝트도 문자의 옥에 갇히려나...

  • new
마드리갈 2025-11-10 67
6243

소소한 행운과 만족

  • new
마드리갈 2025-11-09 70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