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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논란과 드래곤 사쿠라

Lester 2024.06.30 11:06:17

[YTN] 학생들에게 국어 단어 묻자...돌아온 처참한 대답
[MBC] "문해력 떨어진다는데‥" 디지털 교과서 괜찮을까?
[SBS] 사생대회가 죽기살기 대회?…중고생들 국어실력 어쩌나
[YTN] 영어 실력은 느는데...'국포자'는 역대 최대




요즘 유튜브의 뉴스영상에서 종종 언급되기 시작한 게 근래의 청소년 세대(소위 MZ 세대)의 문해력 논란입니다. 사흘과 나흘을 헷갈린다든가 하는 일상언어의 혼란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시험문제 풀이를 위한 국어적 교육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미 일전에 무식은 죄가 아니다? 라는 제목으로 중학생들이 단어의 뜻을 몰라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죠. 문제는 그게 2021년 6월의 일인데, 3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니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일단 뉴스에 나오는 예시를 취합해 보겠습니다.

(1) 사례를 하다 - "예시를 드는 것"

(2) 조짐이 보인다 - "욕 아닌가요?"

(3) 금일까지 제출 - "금요일까지 내라고?"

(4) 사생대회 - "죽기 살기 대회?"


대체로 단어의 뜻을 하나만, 그것도 꽤나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2)의 경우 인기 유튜버 채널에서 망했다는 의미로 속어인 '조지다(혹은 과거형인 조졌다)'를 자주 사용하던데 이러한 '오해'와 크게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른 예시도 마찬가지로 비슷합니다. (4)는 아마 사생결단에서 사생만 떼어다가 이해한 듯한데, 애초에 그런 대회가 있기나 할까요? (1)은 어째서 사레가 들리다라고는 오해하지 않았을까요? (3)은 그저 오타라고 생각한 걸까요? 그저 '알고 싶지 않으니까 알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얼핏 편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손해인 사고방식이 엿보입니다.


그래서인지 4번의 YTN 뉴스처럼 "여전히" 국어 교육을 못 한다는 상황입니다. 뉴스 중간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의 말이 나오는데 "'살랑살랑' 바람이 분다고 했을 때, 도대체 '살랑살랑'이 어떤 이미지인지 감이 안 온다는 친구들도 있고, '억세게' 비가 온다고 했을 때 비가 어떻게 '억세게' 올 수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한 의미 이해가…."라고 하죠. 게다가 2번의 MBC 뉴스처럼 디지털 교과서의 사용이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현장의 또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당장 제가 링크한 3년 전의 글에서 보다시피 점점 국어능력이 부족해지는 것이 눈에 선한데, 환경을 바꾼다고 없던 국어능력이 생길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공부방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거야'랑 뭐가 다를까요.


그렇다면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요? 포럼에서 몇 번 언급됐던 일본의 교육만화 "드래곤 사쿠라(정발명 꼴찌 동경대 가다)"의 원작 만화에서는 작중에서 초빙된 국어 전문 선생 아쿠타야마 류자부로(짐작하셨겠지만 이름과 생김새 모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패러디입니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국어야말로 모든 교과의 기초. 국어에 충실하지 않고서는 모든 교과의 성적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수학, 과학, 사회…. 시험 문제는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죠. 영어조차도 일본어로 해석해 생각합니다. 이럴 때 독해력이 부족하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올바른 해답에 다다갈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작중에서는 팀 러쉴로우(Tim Rushlow)의 "She Missed Him"의 가사를 활용해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석을 전혀 딴판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일상생활에서 여러가지를 보고 "왜?"라는 질문을 통해 '제대로 읽기'를 실천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귀국자녀용 논술시험을 살짝 바꿔서 '객관적으로 논하는 방법' 등을 가르칩니다. 게다가 이건 그냥 작가 미타 노리후사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얘기가 아닙니다. 저도 이제 알았는데, 짜투리 코너에서 소개된 데구치 히로시(出口汪 / 단행본 발매 당시 동진위성학원 강사 겸 대학입시학원 SPS 주재 겸 총괄교장, 現 주식회사 스이오사 대표)가 강조한 내용을 작품에 녹여낸 것이더군요. (혹시나 해서 일단 영어로 이름을 검색해보니 동명이인과 얼굴이 뜨는데 머리숱은 부족해졌으나(...) 웃는 인상이 단행본에 수록된 얼굴과 똑같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만화를 독파한 제가 단언하건대 대체로 일본어에서 한국어로만 바꿔도 성립하는 이야기가 꽤나 많습니다. 애초에 성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어란 결국 문법체계와 그 안에 녹아든 문화가 다를 뿐이지, '사람들 간에 소통하기 위한 도구'임은 변함이 없거든요. 시험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출제자와 소통하기 위한 것이고, 작중에서도 출제위원들의 '오류의 여지는 최대한 남기지 않는다'는 고충(?)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약간 의외(?)의 결론이 나옵니다. 결국 국어를 못한다는 것은 사람들 간에 소통할 능력이 떨어지거나, 심하면 소통할 생각조차 없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코로나 사태 때문에 원격수업으로 사회성을 비롯해 여러가지를 배우지 못한 코로나 세대란 말이 있고 그 세대 이후로도 국어능력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무지하다고 웃어넘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야 이미 성인이니 해당사항은 없습니다만 고민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언어는 결국 사회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수많은 유행어와 속어와 밈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이유죠. 문제는 이러한 세태가 역시 언어의 일부인 번역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분명 오타나 비문 없이 표준어로 올바르게 번역했는데 알아듣지를 못하겠다고 트집을 잡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위에서 거론했던 뉴스들이 조회수를 위해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또 정상인(?)들이 많을테니 당장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3년 전에도 그랬는데, 앞으로 3년 뒤에 얼마나 국어능력이 향상됐을지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면... 썩 좋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