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전라북도 땅에 발을 디뎌본 적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처음으로 전라북도의 영역에 들어가 본 게 군복무 때, 정확히는 훈련병 시절에 행군했던 곳이 충청남도 논산시를 넘어서 전라북도 완주군 및 전주시의 북부 일부지역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에 업무상 전주, 군산, 익산 등에 몇번 가본 게 전부이기도 합니다.
자대배치를 받은 이후에는 부대 내의 카투사에 묘하게 전북, 그것도 전주 출신의 카투사가 많았고 그래서 자주 접하게 된 병원의 이름도 전주예수병원이었습니다. 저와 정치성향이 다르긴 했지만 저와 유의미한 대화를 많이 했던 선임병이 전주 출신으로 그의 어머니가 전주예수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례도 있었고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23년 전인 2000년 여름, 그 선임병의 어머니의 부고가 접수되어서 행정처리를 했던 게 기억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선임병도 전주 출신이었는데 그의 동생이 전주예수병원에 췌장암으로 입원해 있다가 2000년이 끝날 무렵 그 선임병의 전역을 수일 앞두고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도 기억나고 있습니다.
어떠한 지명이 익숙해질 때 그 원인이 비극에 기인한다면 여러모로 가슴아프기 마련입니다.
지난 2022년 11월에 썼던
어느 국가의 지명이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제하의 글에서 우크라이나의 각지 지명이 비극의 진원지로서 각인되는 것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는데, 한동안 기억의 저편에 머물러 있던 그 전주예수병원이 오늘 다시 생각나면서 안타까움이 배증됩니다. 그때 그 사람들의 아픔은 지금쯤이면 많이 치유되어 있어야 할텐데 하는 작은 소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