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단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부터 드려야겠죠.
1-1. 원래는 2025년 송년인사를 먼저 쓰려고 했지만, 갑자기 심한 코감기에 걸려서 골골대느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집안 문제로 병원 기록을 떼느라 돌아다닌 것도 있지만, 8시간만 돌아가는 전기장판이 늦게 가열되는 것을 깜빡하고 일찍 자려고 누웠다가 추위를 탄 게 가장 심각했던 것 같네요. 병원 다녀와서 약을 먹으니 누런코도 나오고 머리 아픈 것도 가라앉아서 다행입니다.
1-2. 그걸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올해는 무난했던 것 같습니다. 1000xRESIST라는 해외에서 스토리 관련하여 상도 많이 받았던(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장르 탓인지 별로 회자되지 못했던) 게임에 기여했던 것이 2025년의 최대 성과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이력서도 이미 제법 두툼해졌고, 인지도를 떠나서 1년 1대작 같은 느낌으로 참여하는 느낌이네요. 인지도라는 건 생기면 괜한 비난이나 비판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아서 게임 언론에 회자되지 않고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평생 현역으로 뛸 수 있도록 한번쯤은 게임 언론에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제 돈을 써가면서 억지로 인터뷰 자리를 만들 생각은 없고, 때가 되면 그런 자리가 알아서 오리라 믿습니다. 낭중지추란 말도 있고, 디지털 시대이기에 확률은 더더욱 높다고 보니까요. 그래서 정말로 이루어지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2-1. 2026년부터는 게임번역 외에도 뭔가 스토리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네요. 주로 해외 인디게임 위주로 번역을 한데다 오프라인 전시회도 많이 둘러봤으니, 싫든 좋든 인디게임에 대한 식견(?)이 많이 쌓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멋져 보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기획'보다는 '수수해 보여도 성과가 확실한 기획'을 포인트로 잡고 내세울까 합니다. 그래서 국내 인디게임 관련 커뮤니티를 조금씩 둘러보고 있고, 실제로 그와 관련된 구인구직들도 가끔 올라오더군요. 문제는 인디게임 개발 쪽으로는 실질적인 경력이 없거니와, 기획이 팀의 방향성이나 결정권으로 이어지는 경우 - 즉 정치가 될 것 같아 상상만 해도 지끈지끈합니다. 잘 풀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시도하는 태도와 뭐가 됐건 좋은 경험이었다고 자평하는 담대한 자세가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안해본 것에 도전하다 보니 쉽지 않네요.
2-2. 안해본 것이라고 하면 포럼에서의 소설 - 즉 "코스모폴리턴" 연재겠네요. 실제로 번역에 치여서 정신이 없었던 적도 있지만, 그게 핑계로 작용한데다 연재에 대해 너무 진지하고 완벽하게 임하다보니 도리어 발목을 잡힌 것 같습니다. 그래도 ChatGPT와 함께 고민했던 기록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것을 연습장에 필기로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중요한 것만 남기는 작업을 하면, 무엇부터 챙기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지겠죠. 최소한의 방향(범죄물보다는 해결사물, 최대한 훈훈한 분위기, 장르문학이니까 다문화 관련 현실보다는 비현실적인 쪽으로)은 거의 정해진 것 같기에, 여기에 최대한 맞는 소재부터 가볍게 써보려고 합니다. 분명 몇 년 전에도 대강당에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하는 태도로는 반드시 가라앉는다'라고 자평했던 것 같은데, 진지한 고민이 아니라 단순한 욕심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고 그렇네요.
3. 제가 2026년 올해에 소망하는 것들은 그 정도입니다. 이 이상은 바라지 않아요. 자동차야 있으면 좋겠지만 관리 이전에 어디를 자주 돌아다니고 싶은 것도 아니고, 집이야 넓으면 좋겠지만 혼자 사는 처지에 공허하니까 뭘 계속 사서 채워야 할 듯하고... 이런 식으로 물욕을 버리니까 보드게임 모임에서 동안이라는 소리도 듣고 마음이 놓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국내도 해외도 천지개벽 수준으로 뒤집히는 일들만 가득하기에 지금 재산으로는 오래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제 수준으로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파국에 대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네요. 이렇게 적고 보니 지구종말을 앞두고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 같기도 한데, 우습긴 해도 그것이 가장 자신을 지키며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약 몇십분 전에 제야의 종소리를 듣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새해가 된 지 몇십분 만에 조금이라도 발전을 이루었다는 거겠죠. 부디 2026년도 이렇게 사소한 성과가 쌓여 거대한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포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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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SiteOwner
2026-01-01 14:40:07
Lester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말의 기운처럼 활기하게 질주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좋은 말씀을 접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오늘은 이전보다도 글의 심지가 정리된 게 보여서 여러모로 좋습니다. 역시 이런 데에서도 성과가 보입니다.
한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성과란 쌓이고 쌓여서 역사가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타날 때는 갑자기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가지 않은 길을 가고 갔던 길을 다시 가면 더 잘 갈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라틴어 문장으로 하자면 "Paulatim ergo certe(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답례로 음악을 한 곡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독일의 16개 연방주 중 하나인 니더작센의 찬가인 니더작센리트(Niedersachsenlied)입니다. 독일의 교육자, 작사가 겸 작곡가였던 헤르만 그로테(Hermann Grote, 1885-1971)가 만든 이 노래는 올해로서 100년의 역사를 맞았습니다. 보컬은 독일의 민요가수 하이노(Heino, 1938년생/본명 하인츠 게오르크 크람(Heinz Georg Kramm)).
Lester
2026-01-02 11:18:34
새벽 감성도 있겠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쓴 덕분에 예전에 비하면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다루지 않고 그냥 '올해는 이러했고, 내년에는 이러고 싶다'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겠죠.
성과라는 것이 아무래도 눈에 띌수록 체감하기도 쉬운 법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렸기에 간과하다 못해 무시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상 하루하루의 모든 노력이 성과라고 볼 수 있을 터인데,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올해는 제발 좀 자신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싶습니다. '이 정도 해낸 것도 대단하다' 같이 생각하면 좋으려나요.
시어하트어택
2026-01-01 21:56:47
저 역시도 연말에 코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죠... 약을 먹으니 좀 나아지나 했는데 또 걸립니다. 어릴 적부터 비염도 달고 다니다 보니 더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작품 활동도 작품 활동이지만, 올해는 감상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이 움직이기도 해야겠고요.(육체적으로나 여가 쪽으로나) 그래야지 제 작품활동도 더 풍부해질 수 있으니까요. 레스터님의 작품활동도 더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Lester
2026-01-02 11:23:31
시어하트님도 고생이 많으시군요. 저 역시 어렸을 적에 비염이니 축농증이니 하고 고생이 많았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년(2025년) 초에 정밀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후각신경의 상당수가 없어졌댔던가 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감상을 많이 하는 게 여러모로 창작에도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시각을 주기도 하고,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기도 하고, 비슷한 장면에서 어떻게 차이점을 부여할 것인가 등의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거든요. 특히 요즘은 어지간한 건 인터넷 검색을 최대한 활용하면 나오기에 결국 시간과 노력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스스로 허들이 높아진 것 같아, 최대한 덜어내는 쪽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네요. 괜히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표현해야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드리갈
2026-01-02 18:17:18
레스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는 해는 무난했군요. 오는 해는 여러모로 새롭고 보람차리라 믿어요.
저는 오늘 노트북 상태가 이상해져서 8시간 동안 작업을 한 이후에 겨우 정상화를 시켜놨지만 자료백업 등의 다른 일이 겹쳐 있어요. 그래서 꽤나 정신없는 신년을 맞이하고 있어요. 2024년 및 2025년 결산도 올려야 하는데 여전히 우선순위가 밀려 있네요. 올해는 노트북을 꼭 개수해야겠어요.
Lester
2026-01-03 00:17:29
벼르고 별렀던 듀얼 모니터를 장만하니까, 확실히 하나는 번역 하나는 자료조사 하는 식으로 업무 능률이 올라간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다만 컴퓨터 사양이나 용량은 슬슬 한계에 부딪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무작정 컴퓨터를 바꾸자니 보존할 자료도 많고 부모님이 '안 쓸 거면 우리 줘라' 하고 압수를 하실까봐 곤란합니다. 하다못해 지금 있는 자료만 어딘가에 온전히 보전하면 본체를 처음부터 새로 맞추는 방향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윈도 10 지원이 아직 남았으니까 저도 최대한 벌어보고 바꾸든가 해야겠네요.
저도 새해가 새롭고 보람찼으면 좋겠습니다. 마드리갈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