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글의 등록순서대로 코멘트하지만, 6년 전부터 예의주시하던 고교학점제에 대해 Lester님께서 다루어 주셨기에 이 글에 대해서 먼저 코멘트하겠습니다.

2019년 7월 10일에 쓴 고교학점제 시행에서 잊고 있는 것 제하의 글에서 지적한 학생들을 수용할 공간인 버퍼존(Buffer Zone)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드웨어 자체가 아예 처음부터 안 갖춰져 있는데 소프트웨어를 논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인데다, 설령 하드웨어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서의 입시" 가 아닌 "입시의 한 부분으로서의 교육과정" 이라는 "개가 꼬리를 흔드는(Wag the dog)" 상황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없이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예정된 실패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강행한 이 패착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수정안했다고 탓할 사람들도 꽤 있을 듯합니다. 요즘 시대정신으로는.

할 이야기가 많다 보니 나중에 별도로 코멘트를 추가하겠습니다.

고교학점제 개편안이 나왔는데 이것 또한 정말 형편없습니다. 역시 공간의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언론보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출석 안해도 '인강' 들으면 되는 고교학점제… 본래 취지 무색해진 개편안 (2025년 9월 26일 조선일보)

간단히 요약하자면, 학생 차원에서는 온라인수업으로의 대체가 가능해진 것이 있고 교사 차원에서는 증원 및 학생부 세부능력 특기사항 기재분량의 반감 정도인데, 이래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되지 못합니다.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공간설계부터가 달라야 하는데다 그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역량이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요구된다는 점도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책이 없습니다. 또한 특정과목에 대한 쏠림이나 기피 등의 현상을 어떻게 완화할지에 대한 대책도 없습니다. 즉 고교학점제를 말하지만 정작 그 제도가 시행될 "고등학교" 라는 장소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려도 없으니 공중누각이 따로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은 입시에만 맞춰져 있으니 이런 제도 따위를 하느니 그냥 고교를 폐지하고 학생들에게 복지차원에서 유명 인강업체를 골라서 수강할 수 있게 수강쿠폰을 뿌려주고 전국단위로 실시되는 모의고사를 통해서 학생들을 일관된 기준으로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면 될 일입니다. 진짜 안되는 길로만 기어이 가겠다는데 얼마나 잘 될지를 기대하는 게 무리 아니겠습니까.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사례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해찬 세대" 인데, 이것을 뛰어넘는 "최교진 세대" 나 "이재명 키즈" 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드래곤 사쿠라에서 사쿠라기 켄지의 지론이 정말 멋지군요.

그렇습니다. 학생들의 뇌가 좋은 뇌로 성장하지 않으면 목표달성도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설사 달성했더라도 그것밖에 안 되어 버립니다. 즉 대학진학에 성공했지만 정작 대학생활에는 적응하지 못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형국이 되는. 한국인이나 싱가포르인이 열심히 공부하지만 과학분야의 노벨상은 아직 없는 것도 좋은 뇌의 성장에는 관심없이 그냥 단시간에 대량으로 수행되는 문제풀이능력에만 뇌를 쓰게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사실 학생자치활동 또한 좋은 학습입니다. 특히 사회를 지탱하는 민주시민 육성에는 필수불가결한데 우리나라의 교육에는 그게 없으니 정치극단주의에 빠지기 쉽고, 이념, 지역, 성별, 세대 등으로 갈라서서 싸우기 바쁜 형국이 더욱 극단화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의 교(教)는 물론이고 육(育)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오로지 인재를 찾는 일에만 경도된 편향성에 있습니다. 이게 각급학교나 대학 차원의 문제인 것만도 아니고 사회 전반의 문제입니다. 간혹 걸출한 인재가 나오기는 합니다만 영속적이지는 않습니다. 야구의 박찬호라든지 골프의 박세리라든지 수영의 박태환이라든지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같은 인재가 전설을 만들어 갔지만 그때뿐입니다. 그리고 한때 전세계를 휩쓴 한국 여자골프의 아성은 이제 어디로 간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공중분해되어 있습니다. 꾸준히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인재를 찾는 일에만 기울어져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매번 나와 주겠습니까. 요즘은 축구에서 손흥민이 대활약하고 있지만, 그가 은퇴하고 나면 그런 스타플레이어가 또 나올 수 있을지 솔직히 무섭습니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풍토는 "귀신" 이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어떤 분야에 통달한 사람을 귀신으로 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도 곱씹어 보면 참 무섭습니다. 생전에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죽은 후에야 인정하는 그런 태도가 전제되어 있으니 귀신이라는 말이 무비판적으로 쓰이는 게 아니겠숩니까. 그렇게 생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환경하에서 인재육성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니까 "좋은 인재를 찾아야 한다" 라는 압박감이 작용하고 결국 교육의 최대목표가 입시가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는 이미 자정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긴 코멘트를 이제야 마칩니다.

이제서야 코멘트를 시작하게 된 점에 미리 양해를 구할께요.

사이트 표시문제에 대해서는,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시간대에 호스팅회사가 정기적으로든 부정기적으로든 점검을 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미리 공지해 두기에는 매번 3-4일 전에 공지가 나오는데다 부정기적인 경우도 있으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매번 공지하기보다는 따로 공지글을 써 두어서 매주 금요일이 끝나는 시점과 토요일이 시작하는 시점에서의 게시물 및 코멘트 작성은 피하실 것을 권고드리는 것이 더 나은 듯하네요.

일단 여기서 코멘트를 분할하겠어요.

그러면 이제 본문에서 언급해 주신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이어나갈께요.

언제 교육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제대로 된 게 있기라도 하나요. 그래서 고교학점제에는 처음부터 기대도 안했어요. 위에서 오빠가 장문의 코멘트로 논한 것처럼, 고교학점제는 공간의 문제를 떠나서는 아예 성립 자체가 안되거든요. 만일 공간의 문제를 배제하는 경우에는 진정한 학점제는 고교가 아닌 편이 오히려 실현하기 쉬워져요. 당장 유명한 학원에서 제공하는 단과반 또는 종합반이나 패키지 강의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예이고, 실제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경우라도 학생을 위한 버퍼존을 학원이 갖추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정 필요하다면 학원 직영의 또는 계약관계에 있는 독서실 등이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더 좋은 대안이 있는데 "고등학교" 의 폼팩터가 굳이 필요한지는 글쎄요. 관 주도로 바보짓을 하기보다는 시장경쟁에 맡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애초에 중등교육 중 고교과정은 의무교육도 아니고.

특히, 정책결정권자들이 진보성향일 때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을 철저히 실험대상으로 여기면서 자신들의 자녀들만큼은 예외로 했다는 것에서 그 정책의 실효성이 제대로 증명되고 있어요. 흔히 말하는 혁신학교에는 보내지 않고 특목고나 자사고로 보내거나 아예 해외유학을 시키는. 그런 점에서 더 논할 게 있나 싶네요.

여기에서 다시 코멘트를 분할할께요.

편중되지 않는다는 게 정말 중요해요. 심신도 그리고 학습내용도.

사실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작정하고 포기한 인생이라고 공공연히 내보이지 않는 한은 누구나 열심히 하기 마련이예요. 하지만 결국 통년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달이 하나씩 지날수록 탈락자는 늘어가는 법이죠. 그게 바로 제대로 균형잡힌 심신이 형성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패착이죠.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순간을 월드시리즈 7차전같이 살 수 없어요. 그러다가는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서 뜻을 영영 이룰 수 업게 되거든요. 실제로 제가 2023년말에 갑자기 쓰러지는 일을 겪기도 했고, 그때 상황이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당히 이레귤러였던데다 제 몸의 상태 또한 위독했다고...

이야기가 좀 늘어진 감이 있는데, 다시 정리하자면, 심신의 역량도, 체력안배도, 학습컨텐츠의 내용에도 모두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이게 되지 않으면 단기간에는 통할 수 있지만 장기전은 수행할 수 없어요.

고교학점제에 대해 좋은 이야기가 영 안 나오는데 이런 비판도 있어요. 소개해 볼께요.

고1 때 '인생 로드맵' 결정하라니…"고교학점제, 원점 재검토하라", 2025년 10월 3일 서울경제 기사

고1 때 인생의 로드맵을 결정하라는 건 뭐랄까 카케구루이(賭ケグルイ)에 나오는 상황을 전국의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 같네요. 그 애니를 보면서 교내 도박의 패배자들에게 인생계획을 들이밀고 강요하는 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이 더 미쳐 있어요. 카케구루이의 범위는 작중 배경이 되는 학교의 구내로 제한되는데 우리나라의 현재 교육상태는 전국의 학생들을 상대로 이러는 거니, 역시 이번에도 현실이 창작물을 간단히 찍어눌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