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헛소리가 어디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진영을 막론하고 닮은 꼴의 헛소리를 하는 걸 보면 이건 특정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로 보이네요. 특히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들이 막 던지는 것을 보면, "되고 나서 그러던지?" 라고 반문하게 되네요.
더불어민주당 대권후보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개혁이라고 내놓은 게 있어요.
연공서열 없는 공공개혁이라는데, 대략 이런 것이죠.
첫째는 행정고시 폐지.
사실 현재 행정고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국가공무원 공개채용제도는 없어요. 정확히는 2010년까지 행정고시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것이 2011년부터 5급 공채로 이름이 변경된 것이지만요.
아무튼, 저 개혁안에 따르면 5급 공채는 폐지하고 7급, 9급 내부승진과 민간전문경력자 채용으로 고위공직자를 충원하는 방안이 핵심이라고 하네요. 사무관, 서기관 등의 관존민비적 잔재를 없애서 공무원 직급명칭을 국민친화적으로 한다는데...
둘째는 임금체계.
공직사회 전반의 호봉체계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어요.
셋째는 경찰개혁.
특권을 생산하던 경찰제를 폐지해서 모든 경찰관에 공정한 승진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
넷째는 검사임용요건.
검사를 임용할 요건을, 2026년부터 적용되는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이 있어야 판사로 임용되는 조건과 동등하게 하겠다는 것.
글쎄요.
참 이상적으로 보이긴 한데, 이런 것만 생각해 봐도 저 주장의 정당성은 논파되어요.
왜 기존의 공직자들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서 앞으로의 공직자가 될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까요? 기존의 공직자들이 저지른 비리는 그 당사자들이 책임져야 할 일. 공개채용이 불공정하니까 내부승진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참으로 끝내주네요. 민간전문경력자 운운도 허상투성이인 게, 그럼 민간경력을 쌓을 수도 없으면 그냥 공직을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인지.
저는 차별에 찬성하지 않아요. 그리고 불공평에 찬성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승진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도 찬성하고 있어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스타트라인이 일률적으로 같아야 한다고는 보고 있지 않아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승진욕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연령대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르다 보니 능력이 좋은 사람은 일찍부터 중간관리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필요하죠. 그게 없으면 1980년대의 소련같이 되어 버려요. 상층부가 전부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았다 보니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 연이어 임기중에 사망하는 일이 잦았어요 1982년에는 레오니드 브레즈네프(Леонид Брежнев, 1906-1982), 1984년에는 후임자 유리 안드로포프(Юрий Андропов, 1914-1984), 1985년에는 후임 콘스탄틴 체르넨코(Константин Черненко, 1911-1985)가 차례차례로 타계하면서 여러 현안에 허덕이던 소련의 사정은 급격하게 나빠졌어요. 이런 역사의 사례가 있는데 알고도 무시하는지 아예 모르는지...
공직자가 7급이나 9급으로 입사해서 5급이 되면 공정하다는 말도 어폐가 있어요.
그러면 민간전문경력자는 몇급으로 영입할 건지. 5급으로 임용한다는데, 그러면 그 7, 9급 시절을 안 거친 사람도 포함될 거니까 앞에서 제시했던 그 공정담론 자체가 이미 모순을 안게 되네요.
당장 시행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그럼 개혁을 지체시키겠다는 걸까요?
그렇게 시급한 것처럼 말해놓고 유예, 조치 등을 한다는 것은 결국 그 적폐로 지목된 대상을 연명시켜 주는 것인데, 이에 조금의 모순도 안 느껴지는가 보네요.
주장하는 본인부터가 그렇게 출세가도를 걸었다면 인정해 주겠지만, 최소한 그런 건 아닌 것 같네요.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공정을 입에 담는지.
주방과 욕실을 다시 한 번 살균소독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