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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柔夜 2020.03.01 05:10:45

안녕하세요, Novelistar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었던 유야입니다. 강산이 절반은 변했을 시간이 지났네요. 어떤 커뮤니티(타 커뮤 언급에 대한 방침이 어떤지 몰라 이렇게 적었습니다)에서 알게 되어 폴리포닉 월드 포럼에 들어왔던 당시에는 아마 스물이었을 거에요. 작성글 보기를 해보니 게임 해설 이야기를 해뒀네요.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게임 해설은 돈이 되지 않는다거나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 많다거나 하는 이유로 인해 그만 두었네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퀴어에 대한 것도 배우게 되었고 옳음과 그름에 대해서 고민하고 바르게 행동하려는 사람이 되었네요. 인천에 있는 공장에 다니면서 삶이라는 게 돈이 있으면 얼마나 풍족한지 배웠고 유년 시절부터 고장나버린 금전 감각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지금은 고향에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대학에 들어가 국어국문학과를 다니고 있네요. 평생 글만 바라보며 살아온 바보는 대학 졸업장이라도 따야 사람 취급을 해준다는 현실을 맞닥트리기도 했고, 기왕 마지막 기회라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오늘 들르게 된 계기도 별 거 없답니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불면이 가득한 밤을 보내던 와중에, 문득 과거에 좋아했던 노래가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전북 부안에는 위도라는 섬이 있답니다. 아마 고등학교 일 학년과 이 학년 방학에 두 번 들렀을 거예요. 그 때 배를 타고 가면서 그 두껍고 무거운 옛날 전자사전을 주머니에 겨우 쑤셔넣고 이어폰을 꽂아 노래를 듣곤 했어요. 선두 난간을 손으로 잡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 여럿이 희미하게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죠. 물론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할 때 뿐이지만요.

그 때 듣던 노래가 있었어요. 그 때 듣던 노래를 몇 년이 지나 잃어버린 걸 깨닫고 찾아보려 전자사전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죠. 파일을 찾기 위해 옛 컴퓨터에서 떼어둔 하드드라이브를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에 꽂을 자신은 없었어요. 그 때는 악성코드니 뭐니 그런 걸 잘 몰랐거든요. 그 노래를 주었던 사람. 제 뮤즈였던 사람. 어둡고 힘들던 중학교 시절을 버티게 해준 지인 중 한 축이었던 사람에게 지금 와서 부탁할 순 없었어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린 이미 너무도 다른 길을 걸었고 그렇기에 너무도 멀어졌거든요. 수소문 끝에 작곡가를 찾았지만 그 사람도 아마추어 시절에 쓴 곡이라 파일을 잃어버렸다고 해요. 그렇게 포기했고, 오늘 다시 생각이 나 찾아보다가 노래를 주었던 사람 생각이 나 예전에 쓰던 이메일 계정을 뒤적이고, 새로운 메일이 오진 않았을까 하며 광고 메일을 전부 지우고 또 지우며 찾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고.

그러다 추억을 되짚어보기로 했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이상하게 과거가 제게는 너무나도 희미하거든요. 만났던 사람. 소중했던 사람. 사건. 같이 나누었던 대화. 갔던 장소. 몇 달만 지나면 바로 십 년이 넘게 지난 것처럼 머릿 속에 희미한 안개만 남아버리거든요. 잘 기억하질 못하기 때문에, 종종 꺼내서 닦고 기름칠하곤 했는데, 힘든 나날이 이어져서 그런지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것마저도 몇 년을 잊고 지내고 있었답니다.

마치 손잡이에 먼지가 내려앉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책장이 무수히 많이 늘어서 있고, 먼지가 빼곡해선 손바닥으로 쓸어보지 않으면 언제 있었던 일인지도 모르는 거죠. 보통은 문으로 가로막혀있지도 않고 손만 뻗으면 책이 바로 날아와 잡혀서 언제와 어디를 기억해낼 수 있는 거겠죠. 다들 그런 건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저게 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제게는 아니기에, 그렇게 상상하곤 하네요.

그렇게 책을 꺼내 먼지를 쓸어보고. 그래, 이런 사람이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책을 책장에 꽂고. 또 다른 걸 꺼내서 이 사람하고는 어땠지. 이 사람은 되게 얄미웠지. 이 사람은 되게 천연덕스러웠지. 이 사람한테는 내가 정말 어린 짓을 했어. 바보 같았지. ……이 사람을 사랑했었지. 제 기억이 가득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처럼 말이죠. 몇 년 씩이나 일하지 않아, 아니 우울증에 찌들어 일하지 못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 도장을 찍은 사서 말이예요.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쓰게 되었어요. 다른 곳은 전부 전과 같지 않거나 무너져 있거나 발길이 끊겨 있다거나 하기 때문에, 이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한 켠으로는 갑자기 이런 글을 읽게 되어 당황스럽거나 하실까봐 죄송하기도 해요. 그 때 저는 많이 어렸으니까요.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기에, 치기 어리고 유치한 발상으로 인해 나온 말로 행여나 여기 계신 분들을 상처 입힌 과거가 있진 않을까 싶어서요. 살아오면서 머물다 간 곳에선 항상 그랬거든요. 참,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인 거 같아요 저는.


여하튼, 오랜만에 뵈어요. 아직 죽지는 않고 잘 살아있는 글쟁이에요. 다들 안녕하신가요? 안녕하시길 바라요. 건강하시길 바라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요. 종종, 놀러올게요.


- 柔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