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999년 4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5시, 세라토시 미린의 중심가 근처에 있는 카페 거리. 뒤로 약 2km 높이의 RZ타워가 보인다. 슬슬 퇴근 시간대가 가까워져 오는 때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많아지고 있다. 이레시아인 한 명이 거리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다.
“분명 이 근처 어디였지... 파라가 만나자는 곳이.”
이레시아인 남자는 다름아닌 호렌. 복장도, 머리도 그대로다.
“이름이... ‘쿠쿠스 가든’이라고 했나.”
그때다. 나무로 만들어진 외관에, 현관과 창가에 화초가 많이 놓인 한 카페가 호렌의 눈에 들어온다.
“내 예상이 맞다면... 저기인데.”
호렌은 바로 그 카페로 들어간다. 카페 안의 자리는 반 정도가 차 있다. 대부분은 교복이나 평상복 등을 입고 있다.
“어디 있는 거야. 안 보이는데?”
호렌이 카페 안을 헤메고 있던 그때.
“호렌, 뭐하는 거야? 여기라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호렌의 바로 앞에서. 테이블 하나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있고, 그 중에...
“아... 너 파라지? 분명히...”
“그래. 병원에서 헤어지고 나서 1년 반이나 됐네.”
파라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분명히, 2년 전의 파라가 맞다! 얼굴도 그대로다. 머리가 길어지고, 오른쪽 눈의 눈동자가 파란색으로 바뀌고, 복장도 평범한 20대 여성의 활동복인 걸 빼면...
“너 요새 뭐 하냐?”
“이제 대학 졸업하고, 어느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어.”
“그런데... 눈하고 다리는 어떻게 된 거야? 전혀 그런 데를 다친 사람 같지 않은데...”
“의족하고 의안이지 뭐겠어. 적응은 생각 외로 빨리 돼서,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어.”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은...”
호렌은 말을 이으려다가, 누군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즉시 90도로 숙인다.
“아, ‘테레미나리온’ 대신관님의 따님 레아 님이시군요!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레아라고 불린, 중학교 교복을 입은 이레시아인 소녀는 급히 손을 내젓는다.
“아니, 아니에요! 굳이 이런 데서 안 해도 돼요.”
레아가 호렌을 제지하자 호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다시 편다.
“그건 그렇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아는 사람들이야?”
호렌이 묻자, 파라는 직접 한 사람 한 사람 짚으며 소개한다.
“우선 여기는... 스텔라 법률사무소의 무룽메이링 변호사님이시고, 여기는 앨런 에반스 사무장님이시고...”
호렌은 어색하게 메이링, 앨런과 눈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이쪽은 아직 고등학생, 중학생인데, 조세훈 군, 공주리 양, 그리고... 츠츠지모리 사이 양이야.”
“아... 안녕하세요, 호렌 씨...”
세훈은 호렌을 보고 어색하게 인사한다. 이렇게 모두와 인사를 마친 호렌은 다시 파라를 돌아보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슨 일로 모인 거야?”
파라는 말없이 자기 그림자를 가리킨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은 사각에, 유리병이 하나 보인다. 호렌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겠어. 그런데, 이런 데서 보여 주기는 좀 그렇지 않아?”
“안 그래도, 6시쯤 되면 사람들 더 오니까, 2층으로 옮겨서 이야기하려고 했어. 2층을 통째로 빌렸거든. 너도 같이 들을래?”
“아, 좋아.”
호렌은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을 한번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 밀수업자 ? The Smuggler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