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애니를 볼 때 되도록 사전정보 없이 감상하고 있어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코믹스, 라이트노벨, 게임 등의 원작 미디어가 따로 있는 경우에도 일반적이라서, 나는 친구가 적다, 마요치키 같은 것들은 애니를 보고 원작 라이트노벨을 구독하는 식으로 갔어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같이 원작이 오래전부터 아주 유명했지만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애니화가 된 작품의 경우는 아직도 원작 코믹스를 읽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관행이 살짝 달라져 있어요.
발매 당시부터 좋아해서 구독했던 코믹스 첫 갸루(はじめてのギャル)의 경우는 이제 4권까지 나온 상황인데 벌써 애니화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경우가 원작을 아는 상태에서 보는 첫 애니가 되어 있는데...
첫 갸루의 경우 캐릭터설정과 주요 사건의 골자를 제외하면, 원작과 애니의 구성이 판이하게 달라져 있어요. 각 등장인물들의 등장상황, 자잘한 이벤트 등은 조금씩 다르게 각색되어 있거나 완전히 재구성되어 있고, 원작에는 아예 없는 오리지널 내용이 추가되어 있거나 원작에서 자세히 묘사된 상황이 간략화되어 있거나 등등, 확실히 많이 달라진 게 보이죠. 하지만 크게 불만은 없어요. 애니화된다고 해서 원작의 전개순서나 이벤트를 100% 그대로 추종할 필요는 없고, 애니는 코믹스나 라이트노벨과는 형식이 다른 미디어니까, 각각의 미디어의 형식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겠죠. 이를테면, 기어와라 냐루코양, 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되어 있다 등에는 애니화되었기에 가능한 것들, 이를테면 성우개그 같은 묘사가 들어갈 수 있을테니까요.
게임을 기반으로 한 경우, 특히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을 애니로 각색할 경우에도 이런 고민이 충분히 발생할 듯해요.
아마가미같이
인물별로 독립된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포토카노처럼 공통루트를 방영회차의 전반에 반영하고 후반의 한 회차씩을 개별 인물에
할당할까,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같이 특정 인물에 집중하지 않는 식으로 진행할 것인가, 그리자이아 시리즈같이 플레이어 캐릭터
중심으로 만들까 등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 이렇게 선택의 폭이 다양한 만큼 리스크도 커지겠죠.
그런데, 재구성을 넓게 인정하는 관점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통한다고 보장할 수도 없나 보네요.
원작의 영상화에 충실하다면, 원작을 알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만족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거예요. 반면에 원작을 재구성하거나 오리지널 전개로 갔을 경우에는 원작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있고, 아예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완전히 버림받을 수도 있으니 이것도 참 애매하죠. 과연 어디까지 재구성하는 것이 좋을까, 오리지널 전개는 어느 정도까지가 적정선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저는 캐릭터 원안, 주요 사건 및 주제의식 등의 골자를 유지하는 한에서는 나머지는 재미있게 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최대한 제작진의 재량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