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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와 블로그와 표현의 자유

Papillon 2016.07.20 14:30:13
제목은 가면라이더 오즈의 매 화 제목 양식(XX와 YY와 ZZ)를 패러디했습니다.

한 가지 상상을 해보죠.

여러분이 광화문 광장에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겠죠.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비닐로 된 조그마한 천막에 들어가 있어요. 이 비닐은 투명 비닐이라서 내부가 그대로 들여다보입니다. 거기다가 방음도 되지 않죠. 그런데 이 천막 안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합니다. “나는 로리가 정말로 좋다! 아, 이리야 쨩이랑 결혼하고 싶다아아아아아!”라고요. 이 사람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 발언의 정당성이야 사람마다 다르게 여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비슷하게 생각하겠죠. ‘어처구니가 없다. 저 사람은 대체 무슨 용기(혹은 객기)로 저렇게 불특정다수가 모인 광장에서 자신의 취향(혹은 사상)을 외치고 있는가?’ 아마도 이는 고금을 통틀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특정 조건 하에서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제가 보는 SNS나 블로그가 바로 그렇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기타 등등 SNS나 각종 블로그 서비스를 보면 다양한 글들이 올라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한 근황. 어떨 때는 특정 제품이나 매장의 홍보. 어떨 때는 지인과의 연락. 그리고 어떤 때는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는 것. 그리고 어떤 때는 자신의 사상과 취향을 설파하는 것……. 그 종류는 한정짓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런데 저는 이 중에서 근황이나 홍보 정도를 제외한 글은 솔직히 어떤 마인드로 거기에 공개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SNS는 광장이거든요. 그리고 광장에서 누구나 들릴 수 있는 큰 소리로 해당 대화를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당장 그 광장에는 해당 대화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 화자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 본인이 말하고 있는 주제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 그리고 그냥 시끄러운 것 자체가 싫은 사람들도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모 게임의 성우 관련 사건이나 각종 SNS 사건, 사고를 볼 때마다 제가 우려하던 것들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SNS나 블로그 서비스를 대하는 시선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생각할 수 있는 반박 중 하나는 SNS나 블로그는 개인 공간이라는 주장이네요. 본인이 계정을 만들고 그 계정의 주인만 내용을 쓸 수 있으니 개인 공간이고 거기에 무엇을 쓰던 자유. 이에 대한 제 반박은 위의 상상에 나와 있습니다. 개인 공간은 맞아요. 그게 방음도 안 되고 내부가 다 보이는 비닐 천막이라서 그렇지. 그것도 산 속 같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 한 복판에 놓여있는 천막입니다. 거기서 개인 공간이라고 떠드는 것? 뭐 그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떠들고 있는 장소가 그런 장소이니 그걸 누가 듣고 반응하더라도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죠. 

또 다른 반박은 아마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반박이겠네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저는 긍정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어요. 그렇기에 무슨 말이든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의 자유는 “무슨 말을 하건 비판받지 않을 권리”도 아니고 “발언의 여파에 대한 면책특권”도 아니며 “청중이 발언자의 말을 끝까지 옳다고 여겨줘야 할 권리”도 아니에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가 있더라도 사람들은 무언가 발언을 할 시에 때와 장소를 고려합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듣던 중 갑자기 서브컬처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진 않죠. 왜냐하면 그 장소에 어떤 이유로든 그걸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자신과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신나게 떠들곤 합니다. 가끔은 좀 과열된다는 것이 보일 정도로요. 그것이 표현의 자유와 별개인 대화의 기본이자 예의입니다. 그런데 SNS와 블로그 서비스는 그걸 고려하면 절대로 무슨 말이든 해도 될 정도로 “좋은 공간”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한 발언은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오곤 합니다.

최근 일어난 모 게임의 성우 교체 사건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으며 앞으로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사상을 함부로 표현하지도 못하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만약 해당 성우가 자신의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얘기가 나와서 현 상황에 이르렀다면 전 해당 성우를 옹호하고 게임사를 비판했을 겁니다. 또한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그처럼 읽힐 수 있는 사상을 넣어서 창작물이 판매 금지가 되었다면 저는 창작자의 사상을 비판할지언정 창작물을 규제하는 사람들에게 더 분노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건 그런 게 아니에요. 광장에서 남들에게 특정 안건에 대해 크게 외쳤다가 사람들의 반감을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감을 지닌 사람들은 해당 게임의 소비자층이었고 소비자층의 요구대로 게임사는 행동했을 뿐이죠. 이 과정에 표현의 자유는 억압당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잘못된 장소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여파를 온 몸으로 받고 있을 뿐이죠. 마지막으로 정약용 선생님의 명언과 함께 글을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 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