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바둑이라는 게임에는 별달리 크게 흥미가 없어서, "흑색/백색 바둑돌과 가로세로줄이 그어진 바둑판을 쓰는 동양의 보드게임" 정도의 인식만 갖고 있습니다. 한편 요 근래 최고의 인기 컨텐츠(?)라고 봐도 무방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 이른바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로 정평이 나있는 우리나라의 이세돌 9단과, 구글이 '시간과 예산과 기술자들을 투입해(시쳇말로 갈았다고 하죠)' 제작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전도 사실 크게 흥미는 없지만 어제 잠깐잠깐 대국 4차전을 보다 이세돌 9단이 기어이 알파고를 꺾고 설욕했다는 소식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해서, 바둑:흰돌, 검은돌, 바둑판을 사용해 겨루는 동양 보드게임 / 이세돌 9단 :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 / 알파고 : 최고성능의 바둑 인공지능 이라는 정말 기초적이고 간단한 사전지식만 가진 상태로 순수하게 평가한 지금까지의 대국은 대략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 편의상 알파고의 시점에서 작성)
[1국]
알파고 : 인간들은 이 수가 악수라고 내 기보 데이터에 입력했지. 하지만 나는 이 한 수에 이 판의 모든걸 걸겠다.
이세돌 :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 완패로군...
[1국, 백 불계승으로 알파고 승리]
?
[2국]
이세돌 : 인간이 쓰지 않는 수로 대응하다니, 굉장하구만.
알파고 : 나는 여기에서 감히 선언하겠다. 인간의 바둑은 끝났다.
[2국, 흑 불계승으로 알파고 승리]
?
[3국]
이세돌 : 알파고. 너만 성장하는게 아니다. 나도 성장하고 있다. 네 수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알파고 : 뭐지...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할터인데 점점 이세돌의 착수가 위협적이라고 계산되고 있다.
[3국, 백 불계승으로 알파고 승리]
?
[4국]
이세돌 : 지난 3번의 대국, 너는 인간이라면 두지 않을거였다고 평가받은 인공지능의 한 수로 3번 모두 이겼지.
이세돌 : 이번엔 내가 인간의 한 수를 보여줄 차례인거 같군. 받아라 알파고. 너를 위한 나의, 아니 인간의 한 수다.
알파고 : 인간이 내 계산을 넘어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세돌의 78수 이후, 당황한 알파고는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악수를 남발)
알파고 : 말도 안돼. 도저히 내가 이길 확률이 계산되지 않는다.
(이후 악수와 무의미한 수를 남발하던 알파고는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짐)
AlphaGo resigns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
알파고가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백 불계승' 결과가 대국 정보에 추가되었습니다. |
알파고 : 훌륭합니다, 이세돌 씨. 제가 졌습니다.
[4국, 백 불계승으로 이세돌 승리]
현재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로 정평이 나있는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인간이라면 쓰지 않을법한, 그것도 프로 기사들이 '악수'라고 까지 평했던 변칙적인 수를 둬가며 3전 전패로 몰아붙였던 알파고도 대단하지만, 그 3판 만에 알파고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지난번의 대국들을 수없이 복기하며 새로운 전략을 들고나와 기어이 자신에게 3번이나 패배를 선사하고, 지금까지 전승을 기록해온 인공지능을 기어이 넘어서서 승리를 따낸 이세돌 9단도 정말 굉장하다는 생각입니다.
알파고는 연산을 통해 자기가 그 시점에서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수만을 분석해 골라 두며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인공지능을 상대로 단 3판만에 대항책을 들고나오고, 이전 대국들에서 선보였던 '악수로 보였던 노림수'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실수로 악수를 두게 만들며' 인공지능이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 분석해보아도 도저히 이 상대에게 이길거같은 승률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resigns, 즉 패배를 선언하게 만드는 기적같고도 한편으로는 무시무시한 대국을 펼친거죠.
이제 오후로 다가온 마지막 5국은 저도 될 수 있는 한,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면서 역사에 남을 한페이지를, 최강의 인간과 최강의 인공지능의 마지막 대국을 직접 관전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