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규제개혁을 둘러싸고 여러 말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규제를 암덩어리 내지는 격파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거침없는 표현도 나오고, 끝장토론이라는 것도 실시되었고, 공무원집단은 부패하고 구태의연한 집단으로 묘사되기도 하지요. 자유를 신장하고 부패를 제거하여 사회의 혁신을 도모하자는 취지 자체를 나쁘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개혁이라는 것이 방향, 실천방법 등에 따라 그 결과가 개악이 될 수도 있는 여지도 많아요. 그래서 어떠한 미명하게 포장된 개혁이 정말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는 바로 그 전제를 볼 필요가 있어요. 전제는 건조물의 기초공사와 같아서, 이것이 부실하면 그 위에 적층될 정책이 건전할 리가 절대로 없는 것이고, 공들인 것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갈테니까요.
보통 규제개혁을 이야기하면 항상 들먹이는 것이 있어요.
공무원집단을 개혁해야 한다느니, 규제는 줄이고 철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느니, 해외의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느니 하는 것이 있어요. 규제개혁의 3종의 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하나하나 의문을 제기해 보기로 하죠.
공무원집단은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집단이니까 개혁해야 한다고 하지요.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서번트×서비스 애니에서는 관청에 전화를 걸어서 공무원을 공개비난하거나, 인감도장을 갖고 오지 않은 민간인이 창구직원에게 융통성이 없니 하면서 투덜대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어요. 그리고 현실의 사례는 이것보다 더욱 험악해요. 공무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온갖 행패를 부려 놓고는 대응하는 공무원이 불친절하게 대응했다고 인터넷에 올리고 분란을 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폭력을 행사하기도 해요. 그래서 공무원수험 열풍과 공무원 때리기가 공존하는 기묘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런 문제의 책임은 과연 공무원에 있는 걸까요? 예라고 대답하실 거라면, 칼에 의한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칼의 제조업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괴상한 주장에도 당연히 찬성해야 해요.
오늘날의 관료제도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국가에 전적으로 고용된 전업공무원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것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건 결코 아니예요. 혹시 엽관제라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한자로는 猟官制라고 쓰는데, 글자 그대로 어느 정당이 정권획득에 성공하면 마치 관직을 사냥하듯이 공직을 정당의 인물 내지는 지지자들로 교체하는 것을 말해요. 이러한 시스템은 시민혁명 직후의 근대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의 의의는 있지만, 선거결과에 따라서 인적요소가 일거에 교체되다 보니 일관적인 국정수행이 어렵고, 모든 것이 선거에 종속되어 버려서 금권선거 등의 온갖 부정부패를 낳기도 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정치에서 중립적인 전문관료제가 정착하게 되었어요. 따라서 지금의 관료제는 국가의 행정작용을 정국의 변화에 관계없이 일관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수행하기 위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공무원집단은 규범을 준수해야 하고, 규범에 따라 움직여야 해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니 당연히 이 규범을 바꾸는 것은 공무원집단의 일이 아니라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예요.
그렇다면 이제 의문이 풀릴 거예요. 왜 칼로 사람을 죽인 사건에 대해 칼의 제조업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 부당한지를.
같은 칼이라도 주부나 요리사가 사용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도구가 되어요. 하지만 이것이 정신이 온전치 않거나 범죄를 꿈꾸는 사람의 손에 들려지면 이것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끔찍한 흉기로 돌변해요. 이처럼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선의 공무원을 탓하기보다는, 그 공무원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제도와 법령을 돌아봐야 해요. 그것이 맞지 않나요? 지금은 엽관제를 쓰는 것도 아니니까요. 공무원은 법령에 따라서 행동할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데, 규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잘못된 제도와 법령은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정치권이 멋대로 제도와 법령을 만들고, 그 책임은 모두 일선 공무원들이 지라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공무원을 처벌로 배제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을 선발하여 다음의 소모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구요. 정말 개혁을 원한다면 정치권이 제대로 책임있게 활동해야 해요. 따라서 공무원 때리기는 사안의 선후관계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에 다름아니예요.
흔히 정치권에서는 국민을 위한다느니 국민의 대표니 하면서 갖가지 제도와 법령을 만들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 얼마나 자성을 하고 있고, 그 결과에 대해서 얼마나 책임을 잘 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들어요. 그리고 오로지 책임은 공무원이 져야 하지요. 이런 구태를 깨고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 규제인가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일텐데 이런 데에는 하나같이 목소리가 없네요.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