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 한가운데 앉은 밀레나는 곧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무대 쪽으로 손을 뻗친다. 다음 목표가 곧 밀레나의 눈에 들어온다. 그건 다름 아닌 타미. 타미는 지금 피티피의 공세를 잘 이겨내고 있다. 밀레나로서는 아니꼬운 장면이다. 그래서, 밀레나는 더욱 긴장될 수밖에 없다.
“5연승이라고 했나? 하지만 6연승은 절대 못 해. 그것도 우리 피티피한테 3승이나 챙겨가다니, 그건 더 못 봐 줘!”
그렇게 결의를 굳히고는, 밀레나는 곧장 타미를 응시한다. 마침 타미는 다시 반격의 기회를 잡은 피티피에게 진지를 3개씩이나 잃어, 위기에 처해 있다. 이걸 기회라고 판단한 밀레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
“됐어... 지금이야!”
그리고 그때, 타미 역시 지금 무슨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눈치챈 모양이다.
“아니, 설마, 그 변호사님이 말한 게... 또야?”
물론 경기에 집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타미 역시 안 보일 수가 없다. 팬들과 서포터즈들이 그 불의의 공격에 당해서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지금도 조금씩 늘어나는 게 보인다. 하지만 타미는 경기를 속행한다. 마침 지금이, 공세를 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마우스를 잡으려는 그때...
“뭐지...”
삐- 하는 울림이 타미의 머리를 사로잡는다. 그것도 마치 방송사고 같은 데서나 들을 법한, 웬만한 스피커를 최대한 높은 음량으로 틀어 놓은 상태의 그 소리에 가깝다. 설마, 타미는 그 능력자가 자신을 직접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뭐야... 이 소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찰나, 예비진 다음에 본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여자의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 같은 괴성이 타미의 머릿속을 사로잡는다.
“으앗... 하필 이럴 때에...”
불의의 공격을 당한 타미는 당황한 나머지, 순간 손에서 마우스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 그 사이, 피티피가 다시 주도권을 가져간다.
“야, 예담아, 이렇게 너무 성급하게 일어서지 말고!”
안젤로가 만류하자, 예담은 이내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한다. 하지만, 예담은 금방 다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만다. 다음 순간, 민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다.
“어? 저기 봐!”
민은 유와 토마에게 무대 쪽을 가리키며 보라고 한다.
“아니, 뭐가...”
다들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채게 된다. 타미는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모니터를 보고 경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눈에 띄기는 하지만,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타미와 피티피로 양분되어 치열하게 승부를 벌이는 이 상황에는 더욱 그렇다.
“갑자기 왜 저러지? 설마 그 장난을 치는 사람이...”
“맞아. 그런 것 같아.”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예담이 맞장구치며 말한다.
“그리고 이제 어디 숨어 있는지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확신에 찬 듯 말하는 예담의 말을 들은 타토와 지아가 말한다.
“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봐봐, 저기. 타미 선수는 다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생각?”
타미는 깨질 듯한 머릿속의 상황에도, 이를 악물고서 피티피의 공세를 계속 막아낸다. 순간 당황해서 주도권을 잠시 놓치기는 했지만, 곧 마우스를 잡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로 오는 공세를 막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예담의 말대로, 타미는 무의식중에 자신에게 다시 다가오는 그 소음의 파동을 막아낸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어... 꽤 멀리서 귀신 소리를 내다니... 그 변호사님 말이 맞았네. 하지만, 누군지 모르겠는데... 반격은 성공했어. 나한테 공격을 건 그 순간부터!”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티피가 차지한 진지를 다시 차지하기 위한 공세를 시작한다. 물론 피티피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피티피는 지금 타미가 밀레나에게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지면 3연패라 승점이 깎이는 것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티피를 응원하는 밀레나 역시도 초조해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밀레나는 거기에다가 더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못 하는 상황까지 겪고 있다. 바로, 자신의 공격을 그대로 맞고 있기 때문이다.
“뭐야... 귀에 왜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려... 이거 설마... 타미가...”
밀레나의 말대로, 틀림없이, 그건 밀레나가 타미에게 쏜 바로 그 소음이다.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이라면, 분명히 밀레나가 쏘아보낸 그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밀레나의 두 팔과 귓가에 벌건 자국이 나기 시작하고 있다. 밀레나의 입안이 마르기 시작한다.
“이... 이익! 이게 뭐야! 타미... 타미 보이즈!”
밀레나는 자신이 몰래 이 일을 꾸미던 것까지 잊어버리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그걸 본 카토를 포함한 지인들이, 밀레나가 왜 그러는지 걱정되어 묻는다.
“왜 그래요, 밀레나 씨?”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조용히 못 해, 타미 보이즈!!”
밀레나가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자, 카토를 포함한 지인들까지 그 소음이 덮쳐온다. 밀레나의 지인들이 머리를 감싸고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예담과 안젤로의 눈에 들어온다.
“저기 저 사람들, 왜 저래?”
“몰라. 저 사람들도 무슨 소음 공격에 당한 것 같은데...”
“그런데, 라임색 응원봉이잖아?”
“맞아... 그런데 저렇게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당했다는 건, 많이 이상해 보이는데...”
예담과 안젤로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고는, 곧 그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인형 하나가 예담의 발밑에서 뛰어오르더니, 응원봉을 하나 쥐어준다. 라임색의 피티피 응원봉이다. 예담은 뒤를 돌아본다. 예상대로, 지아가 예담의 뒤쪽 좌석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야, 지아! 나는 피티피 팬도 아닌데 이걸 왜 나한테 줘?”
하지만 지아는 말도 없이 묘한 웃음만 짓는다. 그래도 이왕 줬으니, 예담은 그 응원봉을 받아들고서 밀레나가 앉아 있는 자리로 향한다. 곧장 그 좌석 쪽으로 가 보니, 이미 머리를 싸매고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많이 늘었다. 아까는 그 주위의 몇 명 정도였는데, 좌우로 10석 정도씩 늘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 밀레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담을 가만히 보더니, 무언가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다.
“뭐야, 타미 보이즈가 왜 피티피의 응원봉을 들고 와?”
예담이 피티피의 응원봉을 들고 있었음에도, 밀레나는 적대감부터 드러낸다. 그런데, 밀레나의 공격을 예상한 예담은 이미 헤드폰을 쓰고 있다. 얼마 전에 민에게서 받은 건데, 마침 생각나서 쓰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밀레나가 쏘아보낸 소음은 웬만해서는 상쇄된다.
“제법인데?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내 능력을 알고 있다면... 이 녀석도 초능력자군? 좋아, 그렇다면 더욱 못 봐주지!”
그렇게 밀레나가 말하자마자, 별안간 무슨 충격파가 예담의 머리와 가슴을 때린다. 예담을 바로 노리고 쏘아보낸 것이다. 곧, 외부에서가 아닌 머릿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대는 시끄러운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덮기 시작하고, 심장을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이 전해진다.
“윽, 이게 뭐야!”
“소리라는 게, 단순히 귀로만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라고 해야겠지. 안 그래?”“아니, 그러니까 내가 아까 말해주려고 했는데...”
어느새 뒤에까지 따라와 있는 민의 그 말이 시끄러운 중에도 들리자, 예담은 뒤를 돌아보더니 성질을 낸다.
“시끄러! 그걸 말 안 해 주면 어떡해!”
“아니, 그러니까 말을 해 주려고 했다고...”
그런데, 안젤로가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다.
“야, 예담아, 너 계속 뭐가 들리기는 하는 거지?”
“아, 들려, 들린단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막 무언가 귀에서 시끄럽게 울리는데, 그 사이를 뚫고 뭔가 들리는, 그런 상황이라고!”
“그럼 됐어. 아주 잠깐, 네 옷을 조종할 테니까.”
“뭐...라고?”
그런데 바로 그때, 예담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달려나가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밀레나에게 날아들기 시작한다. 밀레나에게 달려들수록 소음이 심해지고, 고막이 터질 듯하지만, 지금의 움직임은 예담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예담도 어쩌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소음이 줄어들어 있다. 예담의 옷을 조종한 안젤로가 예담에게 발차기를 시켰고, 그게 밀레나가 앉은 좌석을 강타하며, 밀레나가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튕겨져 나간 것이다. 예담이 머리를 흔들고 보니, 주위의 사람들이 ’하‘ 하고 깊은 날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너 타미 보이즈지.”
하지만, 밀레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예담은 그때, 머릿속의 소음이 다 사라진 채로, 밀레나를 마주하게 된다. 티 하나 없이 맑은 눈이다. 하지만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독기가, 예담을 잡아먹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선사해 주겠어. 너같이 한 녀석은, 내가, 최고의 소음을...”
“응? 뭐라고 그러는 거야.”
하지만 예담이 한발 빨랐다. 재빨리, 예담은 밀레나의 뒤쪽으로 접근해서, 고열을 주입한다. 밀레나는 순간적으로 그 뜨거움을 못 이기고 비명을 질러 댄다.
“앗, 뜨거! 뜨거워! 뜨겁다고! 절대, 절대 이건...”
“시끄럽다니까. 지금 너만 생각하냐?”
밀레나는 예담의 열에 제대로 직격당하자, 약이 단단히 오른 모양이다. 눈을 부릅뜨고는, 입으로 숨을 들이쉬기 시작한다.
“내가 본때를 보여주면, 더 크게 후회한다는 걸 알게 될 테니...”
“시끄러워. 얌전히 이거나 받고 조용해지라고.”
“너한테만 경고하는 게 아니야! 여기 아레나, 모두 고통스럽게 만들어 줄 테니...”
밀레나는 이리저리 발악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처럼, 안젤로의 머릿속에,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소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안젤로가 머리를 싸맨다.
“야, 안젤로...!”
안젤로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예담이 밀레나를 보며 말한다.
“이 자식...!”
한편 그 시간, 언주는 아멜리를 비롯한 선배 몇 명과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에 있는 어느 소품 전문점에 들른 길이다.
“그런데 말이죠...”
언주는 한참 곰인형을 모아 놓은 매대에서 구경하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하다.
“하이디 선배님은 어디 갔어요?”
“하이디 선배님? 어...”
같이 구경하던 현애와 니라차 역시 그 상황이 이상한 걸 느낀 모양이다.
“글쎄. 아까 화장실 간다고 해 놓고 30분째 안 돌아오냐.”
“하이디? 하이디가 왜...”
아멜리 역시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언주가 말하자마자 그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야, 하이디 어디 있는지 한번 전화해 봐!”
그런데, 아멜리가 그렇게 말하는 그때, 하이디가 보인다.
“야, 하이디! 어디 갔다 왔어!”
그런데, 표정이 이상하다. 무엇보다도, 표정이 매우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