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몇 댓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재 맡은 번역작업의 양이 상당한 터라 지난주부터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처음에는 목에 염증이, 이후엔 식도염이, 그리고 등은 계속 앉아 있어서 그런지 거의 돌이 박혔더군요. 몸이 앞뒤로 아프니까 식사 중에는 음식이 가슴을 지나갈 때마다 아프고, 잘 때는 가슴과 등 양쪽의 통증으로 인해 쉽게 잠을 이루기 힘든 상태입니다. 그나마 내과와 신경외과 두 곳을 전전하며 돈을 날린 덕분에 등의 통증은 다소 가라앉았습니다만, 가슴은 아직도 아프네요. 그 와중에 코로나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정말 복잡미묘합니다.
2. 번역작업의 마감은 9월 초입니다만, 개발진 쪽에서 또 일정을 살짝 바꿨습니다. 오래 기다리기 뭐했는지 스토리 관련 핵심 파트만 얼른 작업해서 넘겨달라네요. 전작이 발번역으로 말이 많았던 걸 보면, 아마 핵심 부분만 번역 적용하고 나머지는 차후에 업데이트하면서 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나머지 파트의 번역을 포기하고 기계번역 돌려서 주고, 저한테는 지금까지 작업한 양만큼의 번역료만 주는 거고요. 애초에 무리하게 일을 맡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저로서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제 나름대로의 '가치'를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관련 커뮤니티에 (이전 스톤샤드 때처럼) 미리 인사 겸 변명을 해둬야 할지 고민입니다. 뭐 기계번역이나 조선족은 아니니 욕은 덜 먹을 테고 가능하다면 자그마한 응원이라도 받지 않을까 싶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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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러다 보니 반작용으로 소설 개편 작업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개편을 포기한다"입니다. 정확히는 마지막 단계인 '3회(One Step on the Road)'의 개편이요.
처음에는 3회도 2회처럼 전반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이런저런 묘사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2회도 거의 절반의 내용이 새로 쓰인데다가, 3회는 핵심 사건 자체가 지나치게 비일상적인 '은행강도'여서 작품의 주제고 뭐고 다 덮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내용상 3회의 1~3장이 은행강도 이야기이고 실제로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4장에서 찔끔 나오고 마는 수준이라, 소재 자체의 균형도 이미 상당히 어긋난 상태고요. 해당 '목적'을 위한 은행강도였다면 처음부터 당위성(?)을 제시한 뒤에 계획 수립부터 묘사해가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정확히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재된 분량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현재 3회는 비공식 처리하고 새로 3회를 연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삭제를 할까 했지만 연재 중인 것도 아닌데다 이미 회차가 마무리돼서 통으로 날리기도 그렇거든요. 의적활동 자체는 매력적인(?) 소재라서 나중에 다시 꺼내긴 하겠지만, 현재 3회처럼 쓰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점을 하나 더 짚어보자면, 주인공 간의 비중도 너무 차이가 나요. 첫 만남인 1회야 그렇다쳐도, 3회는 하나부터 열까지 존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니...
3-2. 이 주인공의 비중 차이를 느끼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최근에 참고자료로 삼고 있는 만화 "QED 시리즈(본편 QED 증명종료, 스핀오프 CMB 박물관 사건목록, 본편 후속작 QED 증명종료 iff)" 때문입니다. 스핀오프인 CMB야 주인공이 다른지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시리즈의 전반적인 틀은 비슷합니다. 제가 참고하고자 하는 부분은 주인공 콤비의 역할 및 비중의 분담입니다.
주인공 콤비 중 '탐정역' 토마 소는 MIT를 중퇴했음에도 평범한 일상을 위해 일본으로 귀국해 고등학교를 다니는 안락의자형 탐정이고, '조수역' 미즈하라 가나(로마자 표기상 미즈하라 카나)는 적극적인 성격이고 오지랖이 넓지만 신체능력이 압도적인 슈퍼우먼라서 아무도 감히 대들지 못하는 조사원 겸 (무력행사에 의한) 진도 빼기 담당입니다. 그래서 시리즈 내내 가나가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오면 토마가 그것들을 취합해 '해답'을 알려주는 구성을 띠고 있습니다. 종종 예외가 있긴 하지만 큰 틀은 유지되고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둘 중 하나의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커지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토마와 가나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이상적이자 불가분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상술했듯이 토마는 지성을 이용한 판단력이, 가나는 붙임성과 신체능력을 이용한 활동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토마는 (iff에서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사회성이나 적극성이 부족하고, 가나는 (대부분의 추리물이 그렇지만) 진상에 다가서지 못한다는 태생적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토마에게 다소 우악스럽지만 가장 먼저 다가서서 사회와의 다리(+경찰 인맥)를 놓아준 게 가나여서 토마는 그녀에게 은연중에 감사함을 표하고 있고(다만 이성으로 보고 밀당하는 관계는 전혀 아니라고 합니다. 친한 사람들 중 하나), 가나 역시 토마가 위험할 때마다 구해주거나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 먹는 식으로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친한 정도는 아니지만 스토리 전개에 문제는 없고 그걸 떠나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상황인 거죠.
이런 점들을 감안했을 때, 레스터가 가나만큼 신체능력이 우월하진 않더라도 존을 대신하거나 단점을 메워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존이 원래 셜록 홈즈를 모델로 한 캐릭터라 단점은 딱히 없는 상황이고 유명한 탐정이라 뭐든 허용되는 상황이지만(참고로 홈즈는 마이페이스적인 면이 다소 있지만 출중한 연기력으로 숨기는 편입니다), 존은 유명해지는 거 자체가 생활에 타격을 받는 '직업'을 가졌고 사회에서 썩 인정받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아마 이 쪽으로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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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무튼 새로 연재할 3회의 내용은 뭐... 일단은 비공개로 해두겠습니다. 핵심 사건을 뭘로 할지 아직 못 정한 경향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본격적으로 연재하는 김에 판을 완벽하게 깔아두고 싶거든요.
사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이나 소설보다는, 정신적 안정입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엄청 망가진 것 같거든요.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 먹는 것은 죽도록 싫지만, 일을 끝내려면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으니... 이러면서 하나둘씩 포기하고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