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지금 통장에 남은 잔고가 39만원 정도밖에 없다. 어떻게 써 버린 거지, 도대체? 어떻게 써 버린 것인가? 지금은 2월 중순, 그리고 저번 달에 지출한 돈은 그 어느 달보다도 많았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의 텅 비어 버린 통장 잔고도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은 요즘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 먹다 보니 배달비 지출이 좀 늘었다. 거기에 비해서 버는 건 얼마 없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생활비에 충당하기는 역시 모자르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좀 더 좋은 여건의 아르바이트를 찾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취업도 취업이지만 공모전 준비도 하는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를 내게는 잠자는 시간조차도 최소한으로 해야 할 정도로 빠듯하다.
“어,,, 여보세요?”
엄마한테서 온 전화다. 원래 저녁 8시 정도면 전화를 하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조금 더 빨리 전화를 걸어왔다.
“뭐기는, 너 걱정되니까 한번 전화해 봤지.”
“에이, 걱정 안 해도 돼. 나 잘 지내.”
“정말? 엄마가 안 도와줘도?”
“괜찮아, 괜찮아.”
그랬다... 나는 그때, 도와 달라고 해야 했다. 그런데 왜, 괜찮다고 한 걸까!
“알았어.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괜찮다’고 한 건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허세를 부린 건지!
시계를 보니까 아직 7시 30분. 이제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편의점으로 갈 시간이다. 엄마하고 전화를 하는 시간이면 이제 ‘갈 시간인가 보다’ 하고 옷을 챙겨입고 문을 나서는데, 지금은 왜인지 모르게 시간이 더 생겼다. 저녁 식사는 간단히 컵라면을 먹기로 하고, 시간 난 김에 입사원서하고 공모전 결과를 보기로 했다. 요즘 같은 때가 긴장이 꽤 많이 되는 때다. 우선은 큰 회사들의 채용 일정이 많이 몰려 있다. 소설 공모전이나 신춘문예 같은 것도 그렇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데다가 연거푸 취업에서 고배를 마신 내게는 더욱 똥줄이 타지 않을 수가 없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막 졸업할 적에는 좋은 곳에 취업하겠다고 장담했고, 실제로 그것을 위해서 스터디그룹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많은 것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람도 무심하게, 나는 졸업을 전후해 원서를 낸 모든 채용 시험에서 보란 듯 낙방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끝이 없는 추락의 시작이었다. 다시 한번 채용을 준비하고 도전했지만, 연거푸 낙방을 거듭했다. 그렇게 11월이 되니 내 멘탈도 멘탈이지만, 수중의 돈이 점점 떨어져 갔다. 대학에 다닐 때 모은 돈은 1년 만에 다 써 버렸고, 그 결과가 지금의 39만원이었다.
돈이 점점 궁해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각종 공모전 정보였다. 마침 내가 졸업한 학과는 문예창작과였고, 그 이전에는 도에서 주최한 청소년 문예상에 입선한 적도 있었다. 글 쓰는 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출품해 봤다. 단편이면 단편, 중편이면 중편, 장편이면 장편, 가리지 않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되지 못했다. 거짓말처럼, 나는 모든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나 정도면 어느 정도는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것 같다. 취업 준비도 잊고 몰두했던 여러 공모전에서 모두 낙방하자, 그나마 내게 남아 있던 희망의 끈들이 다 떨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그 날 이후로 사흘을 입에 먹을 것도 안 대고, 종일 방 한구석에 앉아 울기만 했다. 정말 그 사흘은 절망이라는 구덩이의 밑바닥에 닿은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도, 내 삶에는 힘이라는 게 도무지 나지 않았다. 뭐를 해도 도무지 다시 시작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고작해야 주변 산책을 한다든가, 공원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것 정도. 그렇게 시간이 또 한 달이 흘렀다.
시간은 한겨울이 되었고,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대부분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같은 데에 취직이 성공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는... 또다시 나는 그렇게 절망에 빠져들었다. 다행히도 어렵게 찾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다시 희망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붙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요 근래에 대한 생각을 하며 저녁식사를 다 마치고, 막 편의점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나가기 전에 방 온도를 다시 한번 보고, 보일러를 껐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면 춥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돈을 아낄 수 없다.
집을 나서는 길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다름아닌 집주인 아저씨.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는 왜인지 모르게 표정이 밝으셨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나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오, 오늘도 출근하나? 수고가 많네.”
“아... 그렇죠...”
왜 그랬을까? 나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월세 내는 건 알고 있지?”
“네, 알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내 대답은 컸다. 내가 품은 기대가, 한꺼번에 확 터져 나온 듯.
하지만 기대는 금방 꺾였다.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 그럼 이번 달도 예정된 날짜대로 부탁하네. 수고하고!”
“네... 아저씨도...”
내 입에서 금방이라도 패기를 뿌릴 것 같았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나는 다시 쪼그라들었다. 결국, 월세는 예정대로 내야 한다니...
그렇다. 기적은 쉽게 오는 게 아니다. 허튼 생각 말고, 열심히 내일을 준비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