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985년 어느 봄날의 등교경쟁

SiteOwner, 2020-03-22 19:48:21

조회 수
204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5년의 어느 봄날.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서 등교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가장 일찍 오는가로 경쟁이 붙은 것이지요.

어떤 학생들은, 아예 전날 밤부터 있겠다고 했지만 이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결국 새벽 등교경쟁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어느 동네에 살고 소요시간이 얼마 되는지를 알고 있었던 저는, 5시 쯤에 일어나서 대충 준비를 하고 5시 30분까지 학교에 도착하면 1위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대체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대세였는데다 농가가 많은 특성상 보통 그 정도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가구가 많아서 딱히 문제가 없었고, 저희집이 학교에서 가장 가깝다 보니 이 정도면 저의 승리는 확실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또 하나의 고려요소는, 단지 등교경쟁을 위해서 새벽 2-3시 쯤에 일어나서 출발하도록 허용할 가정이 없겠다는 것.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승냥이나 삵 같은 대형 야생동물이 돌아다닌다는 목격담도 있었고, 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 단지 학생들 사이에서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혼자 새벽길을 걷도록 허락할 부모 또한 기대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결전의 날.

학교에 갔습니다. 예상한대로 5시 30분에 학교 교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미 어떤 여학생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너, 몇시에 온 거야...?"

"5시 13분."

"어떻게 온 건데? 집에서 3시간 걸어온 거야?"

"아니, 아빠 차 타고 왔는데?"


즉 그 여학생은,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하는 아버지의 트럭에 첨승해서 학교에 도착했던 거였습니다.

아무리 도보로 몇 시간 걸리는 먼 데에 살더라도, 자동차같은 게임체인저가 있으면 이야기는 별개의 것. 그것을 간과했다 보니 저는 17분 늦게 2등이 된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은, 누구도 지각하지도 결석하지도 않았습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시어하트어택

2020-03-22 21:45:51

재미있는 에피소드네요. 하긴, 교통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또 호기심으로 가득찬 시기였다 보니 저런 게 가능했겠지요.


제가 저 나이였다면 저렇게는 못 했을 겁니다.

SiteOwner

2020-03-24 18:15:39

3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할수록 신기한 이 사건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일단 그 나이의 아이들이 시도조차 않을 것이고, 시도를 한다고 한들 과연 순순히 보고 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지 않겠습니까.


저 때에는 철도의 레일 위를 걷는 것도 유행이었습니다. 열차의 운행본수가 많지 않았다 보니 어린이는 물론이고 성인도 잘 그랬습니다. 오늘날같으면 철도안전법의 규제대상이 될테니 이미 폐선되어 상업운전이 끝난 구간이 아닌 이상 안되겠지만요.

Board Menu

목록

Page 1 / 31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교환학생 프로젝트를 구상 중입니다. (250326 소개글 추가)

6
Lester 2025-03-02 473
공지

단시간의 게시물 연속등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SiteOwner 2024-09-06 484
공지

[사정변경] 보안서버 도입은 일단 보류합니다

SiteOwner 2024-03-28 321
공지

코로나19 관련사항 요약안내

621
마드리갈 2020-02-20 4149
공지

설문조사를 추가하는 방법 해설

2
  • file
마드리갈 2018-07-02 1157
공지

각종 공지 및 가입안내사항 (2016년 10월 갱신)

2
SiteOwner 2013-08-14 6187
공지

문체, 어휘 등에 관한 권장사항

하네카와츠바사 2013-07-08 6770
공지

오류보고 접수창구

107
마드리갈 2013-02-25 12299
6279

폴리포닉 월드의 미친 설정 3부작 #2 - 인명경시의 사례

  • new
마드리갈 2025-12-14 5
6278

휴일의 새벽에 혼자 깨어 있습니다

  • new
SiteOwner 2025-12-13 8
6277

미국의 공문서 서체 변경이 시사하는 것

  • new
마드리갈 2025-12-12 13
6276

동네 안과의 휴진사유는 "가족의 노벨상 수상 참석"

  • file
  • new
마드리갈 2025-12-11 15
6275

폴리포닉 월드의 미친 설정 3부작 #1 - 해상의 인민혁명

  • file
  • new
마드리갈 2025-12-10 22
6274

친구와 메일 교환중에 지진경보가...

  • new
마드리갈 2025-12-09 30
6273

"민주당은 수사대상 아니다" 라는 가감없는 목소리

  • new
SiteOwner 2025-12-08 36
6272

소시민은 잘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4
  • new
SiteOwner 2025-12-07 108
6271

러시아의 간첩선은 영국 근해까지 들어왔습니다

  • file
  • new
SiteOwner 2025-12-06 43
6270

애니적 망상 외전 11.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구요

  • new
마드리갈 2025-12-05 48
6269

흔한 사회과학도의 흔하지 않은 경제관련 위기의식

  • new
마드리갈 2025-12-04 51
6268

AI 예산은 감액되네요

3
  • new
마드리갈 2025-12-03 82
6267

저만 지스타에 대해서 실망한 건 아니었군요

6
  • new
Lester 2025-12-02 110
6266

온천없는 쿠사츠시(草津市)의 역발상

  • file
  • new
마드리갈 2025-12-02 56
6265

12월의 첫날은 휴일로서 느긋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2
  • new
SiteOwner 2025-12-01 60
6264

"혼자" 를 천대하는 한국문화, 과연 자랑스러울까

2
  • new
SiteOwner 2025-11-30 67
6263

안전이 중요하지 않다던 그들은 위험해져야 합니다

4
  • new
SiteOwner 2025-11-29 122
6262

이탈리아, 페미사이드(Femicide)를 새로이 정의하다

5
  • new
마드리갈 2025-11-28 115
6261

국립국어원이 어쩐일로 사이시옷 폐지 복안을...

2
  • new
마드리갈 2025-11-27 79
6260

통계로 보는 일본의 곰 문제의 양상

5
  • new
마드리갈 2025-11-26 91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