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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페미사이드(Femicide)를 새로이 정의하다

마드리갈, 2025-11-28 01:52:17

조회 수
115

여성살해(女性殺害)를 의미하는 페미사이드(Femicide)에 대해 이탈리아 국회에서 새로이 정의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성별이 동기가 된 여성살해를 독립적인 범죄 카테고리인 이탈리아어의 펨미니디치오(Femminicidio)로 정의하고 위반자에게는 종신형(終身刑)을 선고하도록 하는 법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어요. 이 법안에 대한 논의는 2년 전인 2023년 11월 11월 당시 22세의 여성 쥴리아 체케틴(Giulia Cecchettin, 2001-2023)이 이미 2023년 8월에 교제관계가 해소된 필리포 투레타(Filippo Turetta, 2001년생)에게 살해당한 사건 이래 촉발되었어요.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2건 소개해 둘께요.

강력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다 저는 엄벌주의를 지지하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총론적으로는 찬성하는 입장이예요. 그러나 과연 찬성만 하고 그걸로 끝이라고 깔끔히 선언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는 생각이 좀 달라요.
2번째의 보도에서 지적되는 논점이 제 생각과 비슷해요. 이탈리아어 원문을 가져와 볼께요.
  1. l’ennesima distorsione demagogica del paradigma ideologico di genere
  2. frizione con i principi costituzionali di eguaglianza e tassatività
  3. proporzionalità sanzionatoria

1번째 논점은 "하지만 또다른 성별의 이론적 패러다임에 대한 선동적 왜곡", 2번째 논점은 "평등과 책임의 헌법상 원리와의 마찰", 3번째 논점은 "적절한 부과" 정도로 옮길 수 있어요. 이 법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을 때 입법권자들은 이 세 논점을 얼마나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페미사이드가 아닌 여성살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성별이 동기가 되지 않아도 여성이 살인범죄의 객체가 되는 경우 또한 존재하는데다 그 동기를 입증하는 자체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이탈리아가 페미사이드를 독립 카테고리로 정의하면서 유럽연합(EU) 역내의 사이프러스, 몰타 및 크로아티아와 함께 이 조류에 동참했어요.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대책은 이것으로 얼마나 진전이 있고 또 얼마나 충분할까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5 댓글

Lester

2025-11-28 09:01:29

어째 이탈리아도 국내의 동탄경찰서 같은 사안이 많아지겠다는 예감이 드네요. 뭐든지 덮어놓고 특별 취급하면 대체로 끝이 좋지 않던데...

마드리갈

2025-11-28 13:22:35

이미 그 우려가 브레이크 없이 폭주를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무고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몰아가고도 사태에 대해 진정한 반성 없이 졸렬한 태도로 일관한 화성동탄경찰서의 만행이 앞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상례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부터 드네요.

사실 이탈리아는 따로 논할 필요도 없이 문화적 영향력이 막강한데다 비록 오늘날의 위상이 리비아, 에티오피아 및 소말리아를 지배했던 근대 식민제국 시대만은 못하더라도 여전히 강대국의 최소라는 칭호를 들을만한 레벨인데 그 국격에 맞지 않게 사회상은 의외로 부패한 데가 많아요. 게다가 여성에게 친절한 국민성이 있으면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는 유럽연합(EU)의 평균 대비로는 협박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성폭력 제외)의 경우는 EU 평균을 하회하는 반면 성폭력에서는 EU 평균을 상회하는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등의 이상한 사회상에 대해서는 해법의 방향설정조차 못하는 실정이예요(Violence against women in the EU State of play in 2025, 유럽의회 발행 PDF 문서/영어).


글을 쓰면서 사고실험을 고안한 게 있어요. 그러면 이것을 별도의 코멘트로 써 볼께요.

마드리갈

2025-11-28 13:45:58

그러면 설계해 본 사고실험에 대해서 코멘트해 볼께요.

페미사이드가 "성별이 동기가 된 여성살해" 로 정의되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정의를 벗어나는 사안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 양산되는 상황에서도 속수무책이예요. 성별이 동기가 되었다는 전제나 여성이 살해당했다는 결과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페미사이드가 아니니 처벌할 수 없어지니까요.


상황 1. 성별이 동기가 되었지만 여성이 살해되지 않았다.

살해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거나 그에 이르지 않더라도 최소한 영구장애라도 입혀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범의가 있었다고 가정해 볼께요. "죽더라도 상관없어" 라는 의도인 미필적 고의의 결과가 살인이 아니니까 종신형의 선고를 내릴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영구장애를 입힐 의도로 공격하여 그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살인이 아니라 상해나 중상해 등이니까 종신형의 선고에는 이르지 못해요. 이 경우, 예의 법으로 지켜야 할 법익은 여성이 살해되어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할 수밖에 없어요.


상황 2. 성별이 동기가 되지 않았지만 여성이 살해되었다.

이를테면 각종 사고나 무차별 살상 테러리즘의 경우가 이 사례에 해당되겠죠. 폭발의 화염과 파편 등의 비산물이나 환경을 급속히 오염시켜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독극물 등이 특정 성별만 타격하거나 그렇지 못한 것은 적어도 현실세계의 범주에서는 존재하지 않아요. 창작물 중에서도 오오쿠(大奥)에 나오는 적면포창(赤面疱瘡)이나 종말의 하렘(終末のハーレム)에 나오는 MK 바이러스 같은 극소수의 사례밖에 없다는 것은, 생각을 달리하자면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하는 위험이 성별을 가려 발생할 것이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증거. 게다가 살인이란 강제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의 인권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사안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정최고형으로 다스려져 왔어요. 그런데 성별이 동기가 되지 않다는 이유로 여성이 살해당한 더없이 끔찍한 결과에 그 법은 손을 놓고 있게 되어요.


상황 1의 경우든 상황 2의 경우든 이런 결과에 대해서 "이미 만들어진 법이니까 어쩔 수 없다" 라고 넘어간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전제하지 않은 상황에 무력한 대륙법의 약점은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노정되었어요.


사실 이렇게 법안 자체의 약점 이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어요. 이것도 별도의 코멘트에서 논해 볼께요.

마드리갈

2025-11-28 23:05:09

예의 페미사이드 법안을 정책적으로 고찰했을 때에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해요. 이것도 상황을 하나 상정해서 접근해 볼께요.

여성에 대한 흉악범죄는 살인만이 있지는 않아요. 사실 살인 이외에도 상해, 폭행, 성폭력 등의 여러가지가 있는데 예의 법안은 오로지 살인만을 그것도 동기를 좁혀서 규정하는 데에 큰 문제가 있어요. 사실 살인범죄도 무섭지만 그 이외의 흉악범죄가 안 무서운 건 또 아니거든요. 그리고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이는 살인범죄의 주체가 반드시 남성이라는 보장도 없다는 데에서도 맹점이 있어요.

법안추진의 배경이 된 사건이 쥴리아 체케틴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인데, 과연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살해하는 이유는 없을까요? LGBT의 존재를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동성애자인 남성인 게이(G)를 제외하면, 레즈비언(L), 양성애자(B) 및 트랜스젠더(T)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이유는 소유욕, 증오, 이익충돌, 용이성 등 다양할 수 있어요. 그것들을 감안한다면 결국 결과는 "모든 형태의 여성살해가 페미사이드이다" 라고 정의하는 게 맞아요. 그게 문리적 의미에서든 법안의 취지에서든 옳은데 예의 법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예의 법안은 본의아니든 의도했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사각지대를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해요.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엄벌주의를 택했다지만 결국 사형제를 전면폐지한다는 유럽연합(EU)의 벽은 전혀 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결국 여성은 살해되지만 그 여성의 살해범은 동기가 입증된 경우에 한해서만 종신형이 선고되어 사회에서 격리될 뿐. 딱 그것밖에 되지 못해요. 살인범이 법을 지켜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닌데, 정작 추구하는 침해된 법익의 회복은 EU 국제법의 그리고 이탈리아 국내법에 제약받는 이상한 상황에 빠진다는 정책상의 문제에 대해 전혀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어요. 이탈리아는 EU의 형사정책이 가해자의 인권 중시에 기울어져 있다고 비판할 용기는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 사안으로 엄벌주의가 잘못되었다는 진보주의적 법률관은 깨졌어요. 제1세계에서 그리고 G7 회원국에서 진보색채가 특히 강한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일어난 일이니 변명도 못하겠죠.

마드리갈

2025-11-28 23:19:52

그리고, 이탈리아의 성급하고 감정적인 성향이 정책의 대실패로 이어진 경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요.

1986년에 발생한 당시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참사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원자력 반대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끓어올랐고, 1987년의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이 결정되면서 1990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종료되었어요. 그리고 이탈리아는 2011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제1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안을 국민투표로 부결시키기도 했는데, 2022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 기존의 에너지정책을 대전환해야 하는 압박이 생겼어요. 하지만 그게 이탈리아의 자체역량으로 해결될 수 없어요.

그럼, 1990년에 이탈리아 국내에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중단되었다고 해서 그대로 탈원전이 되었을까요? 그건 아니예요. 원자력발전소는 상업운영만 중단했지 폐로작업은 이탈리아 재무부 및 1999년에 설립된 이래 폐로사업을 전담하는 국영기업인 SOGIN S.p.A.가 계속 진행중이예요. 즉 원자력발전소와 무연의 존재도 되지 못한 채로 이탈리아의 재정을 충실하게 갉아먹는 중이예요.


이 성급하면서도 완전하지 못한 탈원전에서의 패착이 이번의 페미사이드 재정의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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