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최강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유용하게 잘 쓰일 수 있다면 적이나 라이벌의 문물도 거리낌없이 수용하는 것. 이미 이런 사례가 상당히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은 과거의 적부터.
독립전쟁의 적 영국으로부터는 이런 것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롤스로이스의 가솔린엔진 및 가스터빈, 잉글리시 일렉트릭 캔베라(English Electric Canberra) 경폭격기의 미국 생산판인 B-57 캔베라, BAE 호크에 기반한 함재훈련기인 T-45 고등훈련기, 호커-시드레이 해리어의 미국 생산판인 AV-8 해리어 수직이착륙기 및 마틴-베이커(Martin-Baker)의 사출좌석.
양차대전의 적 독일로부터 받아들인 것은 위장무늬 군복, PAGST 헬멧, 자유진영 전차포의 표준인 라인메탈 120mm 활강포 및 HK416 돌격소총, 메르체데스-벤츠 G클래스 전술차량을 개조한 잠정고속공격차량(Interim Fast Attack Vehicle, IFAV) 등이 있습니다. 게다가 미 육군의 범용헬리콥터인 UH-72 라코타의 원형은 일본의 카와사키 및 독일의 MBB가 공동개발한 BK117 헬리콥터, 현재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H145이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적 일본으로부터는 항공모함기동부대의 운용 및 강습상륙함 개념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지스(AEGIS) 함대방공체계의 공세적 수단인 SM-3 스탠다드 함대공미사일은 미일 공동개발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UH-72의 기원 또한 절반은 일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적 이탈리아로부터는 오토 멜라라 76mm 함포 및 베레타 M9 권총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의 행보는 현재의 적으로부터도 배울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배우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소련의 유명한 대전차탄 RPG-7은 미국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군인들이 현장의 판단으로 각종 분쟁지역에서 소련/러시아의 각종 화기류를 조달해서 사용합니다. 게다가 세계각지에서 노획, 구매 등의 다양한 경로로 얻어진 소련/러시아의 군장비들이 각종 실험평가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보니 미 공군도 MiG-29 및 Su-27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을 지경입니다.
또한, 중국에서 받아들인 것이 있습니다. 배에 탄입대를 두른 형태의 택티컬 베스트(Tactical Vest)의 디자인이 의외로 중국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작년 5월에 쓴 글인 장수하는 폭격기를 위한 개량방법에서 언급한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 B-52의 엔진교체프로그램의 승자는 롤스로이스. 프랫&휘트니가 가장 유력할 것이라고 보였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오히려 가장 불리하다고 여겨진 롤스로이스가 이 프로그램의 승자로서 2038년 9월 23일까지 650개의 BR725 엔진을 F130이라는 미 공군 제식명으로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F130 엔진.
사진출처
Rolls-Royce Will Build F130 in Indianapolis If It Wins B-52 Re-Engining (2019년 2월 25일 Air Force Magazine, 영어)
F130 엔진에 대한 소개는 이하의 웹사이트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F130 - Rolls-Royce (영어)
Rolls-Royce North America selected to power the B-52 Commercial Engine Replacement Program (2021년 9월 24일 롤스로이스 프레스릴리즈, 영어)
이 엔진은 이미 걸프스트림 V 비즈니스제트의 미 공군, 미 해군 및 미 연안경비대 도입판인 C-37 수송기는 물론 봄바르디어 글로벌 6000 비즈니스제트를 개조한 전장공중통신결절(Battlefield Airborne Communications Node, 약칭 BACN) 항공기인 E-11에도 이미 채택되어 있는 제품으로 기본적으로는 BR700 시리즈의 BR725 엔진입니다. 참고로 BR에서 B는 BMW, 그리고 R은 Rolls-Royce의 약칭으로 독일의 BMW와 영국의 롤스로이스가 1990년에 결성한 조인트벤처가 탄생시킨 엔진이 바로 BR700. 이 조인트벤처는 BMW가 이탈하자 롤스로이스 독일법인이 되었고, 롤스로이스는 영국을 거점으로 하되 3축식 대형 제트엔진 및 가스터빈은 영국 본사에서, 2축식 소형 제트엔진은 독일법인에서, 터보프롭 및 터보샤프트는 미국의 앨리슨을 인수하여 개편한 미국법인에서 개발생산중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이 엔진이 영국기업의 상품으로서 전세계 비즈니스제트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자체는 이상하지 않습니다만, 이 성공은 어디까지가 민간영역입니다. 게다가 군사장비라는 것이 전적으로 경제논리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고 선택 자체가 크게 정치적이다 보니 이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작년에 프랫&휘트니 PW800 엔진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 이유 또한, 이 엔진이 적성국인 러시아의 여객기인 Tu-334에 채택되어 있는데다, 그 엔진을 직접 쓰지는 않지만 Tu-334 여객기의 원형이 러시아 공군의 대형정찰기인 Tu-214이다 보니 여러모로 껄끄럽게 보이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우려보다는, 이미 미 공군에서의 운용실적이 있는데다 롤스로이스가 제네럴 일렉트릭이나 프랫&휘트니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어필한 점이 더욱 높게 평가된 것같습니다. 그래서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가 저먼 엔지니어링(German Engineering)으로 파워업하여 21세기에도 계속 활약하는 놀라운 역사가 펼쳐질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P-51 머스탱 전투기가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을 이식받아 환골탈태해서 역사를 썼는데, 이제는 B-52 스트라토포트리스 전략폭격기가 롤스로이스 BR725, 미 공군 제식명 F130 엔진과 함께 새 삶을 이어가며 역사를 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