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팔방 무례함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 세태 속에서 참 기묘하게 보이는 게 하나 있어요.
이렇게 자유롭게 무례함이 온세상을 채우고 있는데, 왜 검열은 없어지거나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여러가지가 법제화되어 있는 것인지, 이런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각에서 이런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는 있었어요.
예의범절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검열이 없어져야 인간이 자유롭게 된다고. 그래서, 연장자나 상급자에 대한 경칭도 없어져야 하고, 경어는 가식적이니까 반말이나 욕설이 일상화되어야 한다나 어쩌고 하는 주장이 범람했어요. 그들이 쓰는 말도 그런 생각을 아주 그대로 담아 있어서 거칠기 짝이 없었고, 사실을 말한다는 구실로 누군가를 후려패고 할퀴고 뜯어버리는 일이 횡행했어요. 
이런 풍조를 대중매체든 생활권에서든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된 지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그리고 요즘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죠. 게다가, 얼마나 당당해졌는지 자기 이름과 얼굴을 내걸고 대놓고 헛소리, 인신공격 등을 말해도 소신발언이 되고, 또 누군가는 그 발언을 적극옹호하고 그 발언자를 신격화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요.
그와 동시에, 그렇게 말하는 자들이 속한 세력은 권력을 차지하니 검열을 이야기하네요.
특정사항에 대해서는 사실을 언급하여 비판하는 것조차 막으려 하고, 게다가 온갖 구실을 붙여가면서 현행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검열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무력화하는 사실상의 검열제도를 만들려 해서 국내외 언론계 및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국제연합(UN)까지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어요. 그 무례한 자들과 검열을 말하는 자들이 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은 희극일까요, 아니면 비극일까요.
미국의 마지막 해군성 장관이자 첫 국방성 장관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탈(James Forrestal, 1892-1949)이 유서로 대신했던 고대 그리스의 문인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비극 아이아스(Ajax)의 일부분을 읽고 있어요.
Frenzy hath seized thy dearest son,
Who from thy shores in glory came
The first in valor and in fame;
Thy deeds that he hath done
Seem hostile all to hostile eyes...
Better to die, and sleep
The never waking sleep, than linger on,
And dare to live, when the soul's life is gone. 
이러한 시대도 과거의 영역이 되겠죠.
그리고, 후세가 평가하겠죠. 무례의 시대, 동시에 검열의 시대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