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풍 계획을 세우면서 여러 장소를 놓고 고민하다가 봄을 맞은 산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대구에 있는 팔공산으로 정하고 어제 다녀왔습니다.
아침 일찍 집에서 동서울터미널로 이동하여
미리 예매해 둔 동서울터미널에서 동대구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표를 발급받았습니다.
주말이어서 버스 터미널은 아침인데도 버스 반에 승객들 반으로 미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드디어 동대구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플랫폼에 들어왔고, 정시보다 2분 넘겨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 정체 때문에 3시간 30분이라는 예정 도착시간이 4시간 30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계획 일정보다 1시간 이상이 늦어서 동대구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곧바로 팔공산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동대구역으로 갔습니다.
동대구역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훨씬 복잡하여 길을 잃을 뻔했지만
길을 물어 가며 팔공산으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을 찾았습니다.
급가속과 급정거가 인상적(?)이었던 버스를 타고 2시 즈음에 동화시설집단지구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예정 계획은 제 힘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었지만 1시간 이상이 허비되었기 때문에
케이블카라는 트릭을 쓰기로 했습니다.
단, 내려오는 것만큼은 제 힘으로 했습니다.
12간지(干支)를 상징하는 동물들이 유머러스한 조각상의 모습으로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는 계단에 다다랐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집에서 싸 온 유부초밥과 불고기로 이루어진 점심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제가 실수로 현미를 충분히 불리지 않아 까끌까끌했지만 야외에서 먹는 것은 뭐든지 맛있습니다.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편도 탑승권을 샀습니다.
케이블카는 4인 가족이 앉으면 자리가 찰 정도로 아담했습니다.
출발!
온갖 종류의 나무들과 꽃들이 제 발 밑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것을 구경하면서 마냥 흐뭇했습니다.
드디어 7부 능선 부근인 해발 828m의 신림봉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비로봉과 동봉까지는 제 힘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아스라이 보이는 비로봉의 통신시설들이 '어서 와. 팔공산 등산은 이번이 처음이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쾌청해서 멋진 절경들이 펼쳐졌습니다.
봄꽃의 개화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봄꽃은 언제 봐도 예쁩니다.
산길을 올라갈 때마다 16-32-64비트 순으로 울리는 드럼처럼 뛰는 제 심장소리를 들으며
걷다 쉬다를 반복하다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목적지인 비로봉 및 동봉의 거리를 체크해 두었습니다.
산에서는 모두가 친절해집니다.
극심한 갈증을 느끼지만 물병은 거의 빈 제 처지를 이해하고 물을 건네신 아저씨와,
'Have a nice day!' 라는 인사를 건네고 'Thank you!' 로 화답했던 외국 관광객들까지
산은 사람을 친절하게 만드는 장소인가 봅니다.
냉각수가 부족해 과열된 엔진처럼 극심한 갈증에 시달린 끝에 드디어 오아시스를 발견했습니다.
신선한 계곡물로 목을 축이고 바닥이 난 물병을 다시 가득 채웠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서도 꽃은 작고 예쁘게 피었습니다.
비로봉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연료를 가득 넣은 자동차처럼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드디어 통신중계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정상까지는 좀 더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 언덕을 올라가 보면.............
해발 1193m의 비로봉 정상입니다.
팔공산은 통신상 중요한 지역인지 통신중계시설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부는 바람이 땀으로 얼룩진 제 얼굴을 식혀 주었습니다.
어느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상쾌했습니다.
대구 시내의 일부가 보일 정도로 오늘의 시야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로봉에서 동봉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왼쪽 길을 택했습니다.
동봉으로 가는 길에 바위에 새겨진 큰 석상을 보았습니다.
어림짐작해도 제 키의 2배 정도 되었습니다.
이 계단을 세어가며 올라가면.............
해발 1167m인 동봉(미타봉) 정상입니다.
비로봉보다는 높이가 약간 낮았지만 경치는 비로봉만큼 절경이었습니다.
동봉에서 동화사까지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계곡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저는 소나무 숲에서 나는 흙 냄새를 가장 좋아합니다.
소나무 특유의 향과 흙 냄새가 박자가 잘 맞거든요.
포장도로까지 내려왔습니다.
여기서부터 동화사까지 포장도로가 쭉 이어져 있습니다.
이 때부터 발과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대었지만 이정표를 보고는 그저 무시했습니다.
(덕분에 오늘 발과 다리에 제대로 알이 배겼습니다. 아야....)
등산의 끝을 알리는 동화사 주차장이 보였습니다.
산에서 흐르는 계곡은 여기에 모여 잔잔한 호수가 됩니다.
일주문을 지나서 버스정류장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고모께서 고모 댁에 묵고 가도 된다고 연락이 와서
고모 댁으로 가기로 하고 대구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잠깐... 이러면 여행 아닌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팔공산에서 대구 시내로 가는 버스는
아무리 버스를 애용하는 저라지만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급출발과 급정거가 심한 편이었습니다.
고모 댁에 오랜만에 가는데 빈손으로 가기가 왠지 찜찜해서 찬거리라도 사기 위해 칠성시장으로 갔습니다.
칠성시장은 육류와 해산물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무엇을 살지 한참 고민하다가 오징어와 주꾸미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칠성시장에서 고모 댁으로 버스를 갈아타고 무사히 도착해서
저를 반겨주는 고모 식구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피곤함에 젖은 눈을 붙였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고모부께서 동대구버스터미널까지 저를 태워 주셨습니다.
대구에 가기 한참 전에도 배워 둔 사실이지만, 대구는 각 운수회사별로 터미널이 쪼개져 있었기 때문에
한 터미널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었던 제게는 꽤 복잡했습니다.
동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표를 발급받았습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가 플랫폼에 들어왔습니다.
즐거운 일들을 가슴에 간직하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요즘에 나오는 고속버스에는 좌석에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군요.
다행히 큰 교통정체는 없었습니다.
고속도로 주변의 풍경은 어떤 계절인지를 직감시켜 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정오가 되어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서울도 대구 못지 않게 날씨가 더워졌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부족한 시간 때문에 제 힘으로 완전히 산을 등정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을 상쇄시켜 주었던 절경들과 등산객들의 친절함은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이 기행문을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