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기리는 뜻에서 "베르세르크" 애니의 OST인 Force [히라사와 스스무 作]을 추가합니다.)
미친 듯하게 사실적인 작화로 유명한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三浦建太郎)가 2021년 5월 6일(발표 자체는 20일에 이루어짐) 급성 대동맥 박리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만화 자체는 읽어보지 않았으나 주인공 가츠로 대표되는 비극적이면서도 영웅적인 행보와 "인간이 운명에 대적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 그리고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도착한 곳, 그 곳에 있는 건, 역시 전장 뿐이다."라는 명대사 속에 내재된 인간 찬가 의식 같은 것은 알음알음 주워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나무위키를 지나다니면서 듣기로는 작가 본인이 직접 인터뷰에서 "이제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라고 했기에 '완결나면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말이 되어버렸군요.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p.s.1. 뜬금없긴 하지만 그래도 "헌터X헌터"의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가 왜 농땡이를 부리면서 작품을 만드는지 내심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작품 활동이라는 것도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미우라 작가의 경우 상술했듯이 내용도 내용이지만 압도적인 작화 때문에 유명세를 얻긴 했지만, 자신도 서서히 힘에 부쳤는지 후반부로 갈수록 작화가 단순해지고 어시스턴트도 선별해 투입하는 중이라고 했던 걸 보면 장인 정신으로서는 분명 인정받아야 하겠지만 너무 과로했던 게 아닌가 싶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토가시 때문에 작가로서 휴재하는 것이 무슨 나태와 태업의 상징으로 여겨지긴 했지만, 그래도 장기 연재일수록 작가가 스스로 건강을 챙길 권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이 글의 주제에 안 맞는 담론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건 사실이니까요.
p.s.2.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언제부턴가 소위 '젊은 꼰대'들(그러니까 딱 젊은 블랙기업 사장님들) 사이에서 자기개발서처럼 사용되더군요. 의도는 좋죠. 시련이라는 건 어지간해선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강해지는 계기가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애초부터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죠. 이런 상황에서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실제로 저도 모 게임회사에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글쎄입니다?
이 대사는 베르세르크의 주인공 '가츠'가 한 말인데, (읽어보진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질'이라는 캐릭터가 막장 부모에게 시달리며 인신매매까지 당할 지경이 되다가 자신을 구해준 가츠에게 고마워하며 가츠를 따라가겠다고 하자 자신의 (싸움만이 존재하는) 현실을 보여주며 만류하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 말의 의미는 "어디로 도망가든 싸워서 버텨야 하는 건 똑같아. 그리고 네 전장이자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가라."라는 뜻이겠죠.
그런데 이 말을 블랙기업에서 써먹는다? 이만한 블랙 코미디도 없겠군요. 모 사이트에서 자신이 다니던 블랙기업에서 저 말을 들었다며 분노를 표하며 보이던 반응이 인상깊었습니다. "아니 가츠는 이러나 저러나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잖아. 그런데 우리는 그냥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되지 않아? 회사가 거기밖에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