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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이라는 게 참 그렇죠

Lester 2021.03.27 23:29:33

(모처에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넋두리도 풀 겸하여 포럼에서 민감할 만한 주제임을 무릅쓰고 써 보겠습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도구가 너무 많아졌죠. (도구로서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스마트폰을 제외하면) 전화, 채팅, 메신저, SNS, 화상통화...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정말 다양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수단에 따라서는 기능적인 장단점도 있지만 감성(?)적인 장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화상통화 같은 경우엔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 즉 상술한 수단들 중에서 상대방과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 관계적인 측면에서) 일반인들끼리 사용하기는 힘들죠. 반대로 메신저나 SNS는 짧은 말들을 즉각즉각 보내기에 피드백이 빠르지만 그만큼 성의(?)가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특히 저처럼 상대방의 말을 천천히 듣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요. 한 줄 읽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도 읽어 이것도' 하고 말을 자르는 느낌이라...


그런 의미에서 저는 채팅이 가장 편합니다. 말이 끊어지는 것은 메신저나 SNS와 다를 게 없지만 손가락을 모두 사용한다는 점에서 터치보다는 확실히 할 말을 좀 더 생각할 틈이 있고 표현도 훨씬 깔끔하죠. 메신저나 SNS야 터치를 이용한 처리속도(?)와 경제성(?)상 단타, 즉 줄임말을 쓰는 게 합리적(?)이지만 채팅은 꼭 그렇지만도 않으니까요.


제가 채팅을 처음 접했던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컴퓨터실입니다. 당시 (시대적 정황은 모르겠지만) 컴퓨터실에는 윈도95와 그럭저럭 인터넷이 깔려 있었는데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몰랐어요. 포털 사이트라는 개념 자체도 모르고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니까요;;; 그래서 특별히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그냥저냥 넘겼는데,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선생님(닉네임이 지금도 기억나네요. 파뿌리)이 지인 분이랑 채팅을 하고 계신 걸 봤습니다. 워낙 제가 신기해하니까 선생님과 지인분이 '선물 던질테니까 받아라' 하면서 절 놀렸던 게 기억납니다.


그 때 제가 채팅에 대해서 강하게 인상을 받았던 건 아무래도 가정 환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집 가정사를 통틀어 보면 마지막으로 이사하고 온 집(즉 제가 독립하기 전까지 최소 약 20년을 산 집)이었습니다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그 집에서 산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내심 심란했겠죠. 게다가 부모님은 맞벌이이시고 형하고의 사이도 애매하다보니 친구가 없었고, 그래서 그 '살아 있는 누군가와 얘기한다'는 것에 감명을 깊게 받았나 봅니다. 정작 그 당시의 저는 그 지인분을 무슨 인공지능인 줄 알았지만요. 소위 어렸을 적의 '상상 속의 친구'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연습장에다 색연필로 제각각 닉네임을 부여해가며 대화 기록을 만들면서 (결과적으론 1인 다역) 역할극을 하거나, 컴퓨터를 산 이후에도 워드패드(한글이 안 깔려 있었으니까)에서 같은 짓을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스토리를 짜는 것'의 가장 큰 뿌리는 거기서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사하면서 옛날 노트도 다 가져왔으니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 있긴 할텐데, 소위 이불킥을 할 만큼 오그라들까봐 차마 펼쳐보질 못하겠네요.


뭐, 그렇습니다. 빨리 모 커뮤니티의 채팅 기능이 정상화되면 좋을텐데, 아니면 정상화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심란해하다가 과거 회상까지 짚어봤습니다.